2024년 03월호 구매하기
[문선영의 문화톡톡] 불편한 진실, 불안한 시선 :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
[문선영의 문화톡톡] 불편한 진실, 불안한 시선 :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
  • 문선영(문화평론가)
  • 승인 2020.05.25 13: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원물 드라마 관습 깨기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학원물 드라마는 청소년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소재로 한다. 한국 학원물 드라마의 경우 주로 학업성적, 입시, 경쟁, 체벌, 학교폭력, 가출, 부모님 또는 선생님과의 관계 등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루면서도, 고정된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 학원물 드라마의 관습은 10대들의 고민이나 갈등을 제시하고 이를 해결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 스토리 중심이 대부분이다. 학교나 가정을 벗어나 방황하는 10대를 교육하여 제도권에서 안정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이상적인 결론이기 때문에, 진정한 주인공은 청소년이 아니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청소년은 그들을 이끄는 성숙한 어른의 교육 대상으로 주변을 맴도는 방황하는 영혼이었다. 청소년 드라마에서 청소년의 탈선은 어른들이 수용할 만한, 충분히 감당할 만한 수준에 머물러야했다. 학원물 드라마가 교육용 성장물이거나 판타지 로맨스로 빠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인간수업>은 한국 학원물 드라마의 관습을 과감히 깨뜨린 파격적인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19금 등급을 받은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은 공개 전부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청소년 성범죄를 주제로 하는 <인간수업>이 오픈되는 시기는 N방 사건의 가해자들이 검거되고 그 정체가 드러나면서 사회적 충격이 한참인 그쯤이었다. 성매매 포주 역할로 생활비를 버는 가해자 청소년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인간수업>은 어떻게 재현되는 간에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끔찍하고 악랄한 수법으로 수많은 청소년 피해자를 만들었던 N방의 가해자들 중에 10대부터 범죄에 가담한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도 <인간수업>의 가해자 스토리를 편안한 방식으로만 수용하기 힘든 부분이다. 하지만 불편하다는 것은 감추었던 진실이 수면으로 드러날 때 발생한다. 그렇다면 <인간수업>의 진한새 작가가 말했듯 이 드라마가 끔찍한 현실에 대해서 반추할 기회를 마련하는”[1]데 얼마큼 그 문을 열어놓고 있는지 논란을 넘어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진출처: 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사진출처: 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10대 청소년의 범죄를 마주하는 불편함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의 고등학교 2학년 오지수(김동희)는 학교에서 학업 능력은 뛰어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존재감 없는 인물이다. 그는 특별히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 않은, 조용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소위 말하는 평범한 모범생의 외양을 하고 있다. 심지어 지수의 착하고 순진한 표정과 행동은 학교 폭력 피해자의 전형적 모습을 닮고 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지수는 조건만남 알선 및 경호 사업을 비밀리에 운영하는 성매매 범죄자이다. 그는 삼촌이라는 닉네임으로 채팅과 스마트 폰 기계음으로 연락하며 자신을 철저히 감추며 활동하는 성매매 범죄의 실질적 포주이다. 지수는 학교에서는 모범생이지만 학교 밖에서는 불량 청소년으로 돌변하는, 이중적 인물로 재현되었던 기존 학원물 드라마의 문제적 청소년과는 다르다. 성매매 알선은 성실히 학업을 수행하는 학교에서도, 학교 동아리실에서도, 평범한 등·하굣길에서도 행해진다. <인간수업>의 지수에게 성매매 범죄는 일상이다.

 지수의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되어 지수의 성매매의 동업자가 되는 배규리(박주현)는 지수의 일상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공부도 잘하고 학교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규리는 잘나가는 기획사 대표 부모의 억압에 대한 해방구를 지수에게서 찾는다. 지수에게 성매매 범죄는 생계를 위한 수단이지만, 규리에게 성매매 범죄는 억압적 현실에서 가지는 탈출구이다. 지수와 같은 반 서민희(정다빈) 역시 낮에는 학교에서 조용히 지내지만 밤에는 성매매로 용돈을 버는 인물이다. 민희는 성매매로 번 돈으로 남자친구 기태(남윤수)에게 선물을 해주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그녀는 성매매의 현장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위험한 순간을 겪은 후 공황장애에 시달리면서도 성매매 현장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민희에게 성매매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주기 위해 필요한 일상이다. 기태는 그런 민희를 여자 친구가 아닌 물주처럼 여긴다. <인간수업>에서에서 학교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범죄의 먹이사슬이 은폐된 공간이다.

 <인간수업>에서 성매매 범죄를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의 청소년들이 관계되어 있다는 점은 우리가 알고 있던 학원물의 문제적 주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물론 기존 한국 학원물 드라마에서도 청소년의 문제에 대해 유사한 에피소드를 다루기도 했지만, 성매매 범죄의 실질적 가해자를 10대 청소년으로 설정한 것은 처음이다. 그들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입장에서 재현되었기에 <인간수업>이 초점화하는 방식은 낯설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인간수업>에서 10대 중심의 성매매 범죄는 일상처럼 그려진다. 그들의 행동에 대해 기존의 학원물 드라마의 해결사인 성숙한 어른들(선생님, 부모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떤 일에도 적극적 해결책이 될 수 없는 담임선생님 조진우(박혁권), 청소년 성매매 범죄에 대해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지만, 겨우 사실여부를 파악하는 데 그치는 경찰 해경(조여진)등이 그렇다. 그들은 무능력하지는 않지만, <인간수업>10대들에게 어떤 길도 제시할 수 없다.

 <인간수업>의 평범해 보이는 인물들의 끔찍한 이중생활은 현재 우리 사회 10대들의 현주소일지 모른다.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에만 급급한 사회에서 10대만 꿋꿋하게 우리가 기억하는 청소년의 이미지를 간직할리 없다. <인간수업>은 그동안 보류했던 청소년의 현실, 시대가 변해도 교육적 의미라는 규정 안에서 주저하던 청소년의 이야기를 과감하게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진출처: 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사진출처: 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흔들리는 관점, 불안정한 설정

 <인간수업>이 한국 학원물 드라마의 관습을 넘어, 청소년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문제들은 많다. <인간수업>은 성매매 범죄 가해자들 서사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그들의 행위에 대한 합리화나 타당성을 마련해준다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수의 성매매 범죄 이유가 가정을 버린 이기적이고 무능력한 아버지를 의지할 수 없어 생존을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수단이었다는 점, 부모의 억압적 태도가 규리의 비틀어진 행동의 이유가 된다는 점은 청소년 범죄의 이유를 탐색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청소년들이 끔찍한 범죄의 가해자임에도 죄책감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도,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체득된 것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수업>을 가해자 청소년의 범죄 사실에 대한 합리적 이유를 마련해준다는 논란보다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은 이 드라마를 몰입시키는 방식에 있다. <인간수업>은 오로지 성매매 해결책 이실장(최민수)과의 관계를 통해 성매매 알선을 하던 지수가 규리에게 비밀을 들키게 된 이후부터 급박한 리듬감으로 진행된다. 이후 <인간수업>은 조폭과 연관된 규모가 큰 범죄 사건에 10대들이 연루되는 이야기로 긴장감과 몰입감을 높인다. 노래방 바나나 클럽을 운영하며 성매매를 알선하는 조폭 류대열(임기홍) 일당의 개입으로 지수는 그들의 위험으로부터 쫓기는 입장이 된다. 지수와 규리보다 더 나쁜, 진짜 나쁜 어른들의 등장과 쫓고 쫓기는 서사 진행은 <인간수업>의 수용자를 청소년 주인공이 잡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 반복되는 긴장 속에서 <인간수업>에서 성매매 범죄의 가해자 청소년들은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된다. 잔인한 폭력성이 난무하는 거대 사회에서 쫓기는 입장이 된 10대들은 가해자가 아닌 새로운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수업>에서 그들이 무엇을 했고, 왜 그랬던 것인가에 대한 질문들을 사라지고 만다. 거기다 폭력현장에서 지수와 민희를 보호하려고 죽는 순간까지 싸우는 이실장 왕철의 희생은 그의 존재의미 조차 무색하게 만든다. 그의 죽음은 가해자 주인공들을 향한 동정적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신파적 요소로 작동될 뿐이다. 

 <인간수업>은 외부적 사건을 삽입함으로써 다양한 에피소드, 스펙터클한 장면을 통해 수용자의 몰입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을지는 모르지만, 본래 이 드라마가 묻고 싶었던 질문에서는 멀어진다. 화려한 액션장면으로 묻혀버린 10대 가해자들의 불안정한 설정은 <인간수업>10대들을 단지 폭력적 오락물로 소비해버릴 위험성도 존재한다. <인간수업>이 애초에 의도한 바가 끔찍한 현실을 반추할 기회 마련으로 두었다고 한다면, 그래서 지금까지의 청소년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비추고 싶었다면, 10대를 향한 흔들리는 관점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대중들의 불편한 시선을 깊숙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참고자료

[1] 연합뉴스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200514081400005?input=1179m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