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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의 문화톡톡] 운명적 사랑에 대한 지독한 착각
[이정옥의 문화톡톡] 운명적 사랑에 대한 지독한 착각
  • 이정옥(문화평론가)
  • 승인 2020.05.25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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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문화 톡톡 | 이정옥(문화평론가)

 

나르시스트와 로맨티스트는 동질적이다

 

착각은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지각하거나 생각하는 오류다. 인지과학에서는 착각을 의식과 무의식의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인지부조화로 정의한다. 심리학적으로 바꿔 말하면, 착각은 이성과 감성의 불일치에서 오는 인지부조화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착각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착각이 습관화될 경우 감정적 판단이나 주관적 신념에 따라 현실을 잘못 인식하는 인지불능의 늪에서 헤어나기가 어렵다. 때문에 감성적 지각과 기억을 이성적 판단으로 검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착각은 자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판단이나 결정이 지닌 오류를 검토하는 최소한의 합리적 사고마저 외면한 채 스스로 인지불능의 늪에 갇혀 사는 나르시스트들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려면 굳건하게 지켜온 신념을 수정하거나 버려야 하는 고통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나르시스트는 이런 고통을 감내하기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지지할만한 근거를 선택적으로 수집하여 현실을 왜곡하고 일부분만을 인식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뿐만 아니라 나르시스트는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기준에서 벗어나는 대상이나 현실과 마주칠 경우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끌어 모아 자신의 논지를 정당화한다. 불리한 상황에 처할 경우 말을 바꾼다거나 기억을 조작하는 등과 같은 왜곡된 필터링을 통해서 자신이 옳다는 자족감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나르시스트의 착각과 로맨티스트의 착각은 동질적이다. 로맨티스트는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와 같은 생물학적 본질론을 근거 삼아 남성과 여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확증편향적 착각을 강조한다. 또한 세상 어딘가에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운명적인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순환론적 필터링을 반복하며, 운명적 사랑에 대한 신념은 남녀 모두에게 보편적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신념을 보편적 가치로 정당화하는 로맨티스트의 보편주의는 서구적 보편주의와 유사성을 지닌다.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개념, 보편적 가치와 진리에 기초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우는 서구문명의 우월성을 우리 모두에게 자명한 관념처럼 강요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비서구인들을 포한한 모두에게 서구적 보편주의가 자명하지 않은 것처럼, 남성 중심적인 보편주의가 보편적 보편주의가 아님을 입증할만한 근거는 차고 넘친다.

서구 중심적인 보편주의에 내재되어 있는 유해하고 비본질적인 요소가 제거될 때 비로소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 보편주의로 승화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성 중심적인 보편주의에서 여성에게 유해하고 불편하거나 비본질적인 요소가 제거될 때 비로소 만인에게 통용되는 보편적 보편주의로 거듭날 수 있다.

 

운명적 사랑이라 착각하는 남자의 신뢰할 수 없는 기억

 

<500일의 썸머>(2009)는 얼핏 운명적 사랑을 믿는 로맨티스트가 변덕스러운 여자와 연애하다 헤어진 후 사랑의 상처를 극복하는 평범한 로맨스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운명적 사랑에 대한 남성 중심적인 보편주의가 왜, 어떻게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대단히 문제적인 영화다.

 

<500일의 썸머>(2009) 영화 포스터

영화 곳곳에 특이성이 산포되어 있다. 우선,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펜을 들고 메모하고 있는 남자 위로 조각조각 모자이크 처리된 여성의 사진이 헝클어진 퍼즐조각처럼 화면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는 영화 포스터가 인상적이다. 이 포스터는 남자의 시선에 포착된 여성의 변덕스러운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운명적 사랑에 관한 주제를 단 한 장의 컷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물론 이 영화에서 남자의 시선에 포착된 여성의 이미지는 여성의 실체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남자의 주관적인 시점을 따라 전개되는 독특한 플롯과 그 남자의 사랑이야기를 보편적인 남자와 여자에 대한 연구보고와 같은 다큐멘터리 형식이 감싸고 있는 중층적인 의미구조는 여성의 이미지 왜곡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액자구조의 서사는 액자에 해당하는 외부의 서사를 먼저 분석한 다음 액자 내부로 진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거꾸로 접근할 경우 이 영화에 드러난 운명적 사랑에 대한 이중삼중의 확증편향적인 착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액자 내부에 해당하는 톰과 썸머의 연애서사는 만남에서 이별에 이르는 순차적인 시간 순서가 아니라 톰의 주관적인 기억에 따라 전개된다. 톰의 기억에 의존하여 썸머를 만난 첫날부터 완전히 잊기까지 500일에 달하는 스토리가 조각조각 퍼즐처럼 나열되는 플롯구성은 관객 입장에서 매우 혼란스럽다. 썸머에 대한 톰의 기억이 전적으로 그의 감정선에 따른 것이어서 일관성이나 인과성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썸머는 대단히 변덕스럽고 먼저 꼬리를 치며 다가왔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떠나 다른 남자와 갑작스럽게 결혼한 나쁜년(bitch)’으로 부각된다. 하지만 두서없이 자신의 기분에 따라 썸머에 대한 기억을 횡설수설 서술하는 톰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신뢰할 수 없는 화자라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신뢰할 수 없는 남자의 기억에 따라 변덕스럽게 소환되는 썸머의 왜곡된 이미지를 넘어서 그녀의 실체나 톰과 결별 후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된 이유 등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된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톰의 조작된 기억을 해체하고 순차적인 시간 순서에 따라 스토리를 재구성한 다음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톰과 썸머의 연애과정을 재검토해야 한다.

물론 액자의 외부서사에서 내레이션을 통해 썸머가 어렸을 적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사랑을 믿지 않으며, 뛰어난 미모로 남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는 정보는 미리 제공됐다. 그럼에도 19살 어린 나이에 첫눈에 반해 결혼했던 부모가 결혼생활 내내 지긋지긋하게 싸우다 끝내 이혼한 상처로 인해 누구와도 사랑을 할 수 없게 된 썸머의 심리를 대해서는 공백으로 남아 있다. 물론 썸머의 심리에 대한 이해는 전적으로 톰의 몫이다. 그러나 톰은 썸머의 심리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오직 운명적 사랑에 빠진 자신의 감정에 몰입해 있을 뿐이다.

썸머는 톰과 처음 만날 때부터 일관되게 자유롭게 살고 싶다, 구속이 싫다, 친구로만 지내고 싶다를 반복적으로 선언했지만, 톰은 서운함을 토로하며 썸머를 여자로봇에 비유한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평소 나비문양의 액세서리를 즐기는 썸머가 나비문신을 하겠다”(191)거나 새처럼 나는 꿈을 자주 꾼다는 말을 할 때(109)조차 톰은 썸머의 심경에 일말의 관심도 갖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썸머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자기만족을 토대로 썸머가 자신의 운명적 사랑이라는 확증편향적 착각을 키워나갈 뿐이다. 딱 한번 썸머가 만났던 남자에 대한 질투심이 일어날 때(259)만 예외적으로 썸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정도다. 

당연한 결론이지만 썸머가 결별을 선언한 결정적인 사유는 톰의 나르시스트적인 자기중심성에 있다. <졸업>이란 영화를 함께 보는 동안 자신을 대입하여 사랑을 완성한 행복에 젖어 있던 톰은 내내 구슬프게 울고 있는 썸머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할 뿐 아니라, 썸머의 결별선언에 대해서도 난 지금 행복한데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강력하게 거부한다.(450)

 

썸머의 집 옥상정원에서 열린 파티 장면

톰의 극단적인 자기중심성은 옥상정원의 파티 장면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톰은 썸머의 초대를 다시 만나자는 청신호로 착각하며 기대에 부풀어 파티장으로 향하지만, 자신을 친구로 대하는 썸머의 태도에 분노하여 파티장을 뛰쳐나간다.(408) 실상 썸머의 태도는 상대에게 관심과 배려가 부족했던 톰의 모습을 거울처럼 보여주는 것이어서, 변덕스럽고 감정기복이 심한 쪽은 썸머가 아니라 오히려 톰이라는 사실을 강화시켜 준다. 톰은 썸머와 결별한 후 카드 문구 카피라이터로서의 직분을 망각한다거나 27주년 창립기념 행사를 망치는 등 감정컨트롤에 실패하며 무기력증을 자초한다. 그럼에도 톰은 기억을 조작하여 모든 문제의 원인을 배신하고 떠난 썸머 탓으로 돌리며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술을 펼친다.

비혼주의자인 썸머가 갑작스럽게 결혼을 결심한 동기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식당에서 책을 읽고 있는 썸머에게 다가와 책에 내용에 대해 물어보고 썸머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공감해준 유일한 남자라는 것이다. 자기감정에 몰입해 있는 나르시스트 톰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면모이다.

썸머와 헤어진 후 운명적 사랑에 대해 회의적으로 변한 톰은 우연히 만난 썸머에게 네 말을 들었어야 했어. 운명이니 영혼의 반려자니 이런 건 없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를 썸머와 톰의 사랑관이 서로 바뀌었다는 영향관계로 단정짓기는 어렵다. 썸머가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특별한 관계에 초점을 두었던 합류적 사랑을 찾았던 반면, 톰은 특별한 사람과의 운명적 사랑을 이루지 못한 실망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500일이 지나 톰이 새로운 여자, 즉 가을을 만나는 장면도 흥미롭다. 사랑의 상처를 정리하고 건축사무소에 지원 서류를 내는 등 새로운 삶을 모색하지만, 톰은 여전히 운명적 사랑에 대한 착각을 고수하고 있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듯, 썸머가 떠난 후 면접 대기실에서 만난 가을은 로맨티스트 톰에게 운명적 사랑을 완성할 수 있는 새로운 여자로 다가온 것이다. 가을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톰의 들뜬 표정과 이게 무슨 일이야? 로맨스는 살아있고 희망은 있다. 그녀는 너를 흥분시켰어를 반복하는 OST의 중첩효과는 이를 명징하게 뒷받침해준다.

문제는 톰이 운명적 사랑에 대한 확증편향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이상, ‘특별한 사람과의 운명적 사랑을 원했던 톰과 특별한 관계의 합류적 사랑을 추구했던 썸머 사이가 어그러지게 된 모든 책임이 썸머에게 전가된다는 데 있다. 왜곡된 기억을 동원하여서라도 자신이 옳다는 자족감에 빠져 있는 톰은, 초딩의 여동생 레이첼도 익히 알고 있는 연애상식조차 알지 못하는 자신의 과오를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여자라는 법칙을 동원하여 무화시킨다. 설령 톰이 썸머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생물학적인 본질에 따른 오류이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논리를 펼치는 것이다.

 

보편주의적 유권해석을 부여하는 지독한 착각

 

<500일의 썸머>에서 내부서사인 톰과 썸머의 연애이야기를 감싸고 있는 외부의 액자는 이중삼중으로 겹쳐 있어 매우 복잡하다. 그럼에도 이런 액자구조를 동원하는 목적은 명백하다. 운명적 사랑에 대한 신념을 고수하는 나르시스트적인 남성의 관점에 보편주의적인 유권해석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물론 왜곡된 기억을 통해 운명적 사랑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톰의 관점을 지지하는 보편주의적인 유권해석에도 확증편향적인 오류가 내포되어 있다. 때문에 남성 중심적인 보편주의를 보편적 보편주의로 확대하기 위해 이중삼중의 장치를 동원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허구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 남자와 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살아 있는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누군가와 유사하다면 그건 전적으로 우연이다. 특히 너, 제니 벡먼 말이다. 나쁜년.

이처럼 영화는 서두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에 대한 연구보고서인 듯 중립적인 작가노트라는 장치를 동원한다. 그러나 그 서술방식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은, 겉으로 드러난 의미와 발화자의 실제 의도가 모순되는 전형적인 비꼬기(sarcasm)의 표현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고도로 계산된 전략이다. 첫째, 특정한 여성을 향해 나쁜년이라고 비난하는 남자와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허구로 포장함으로써 모든 여성을 비난한다는 일반화의 오류라는 비판을 모면할 수 있다. 둘째, 만약 제니 벡먼이란 여성이나 다른 여성이 나쁜년이라는 비난에 발끈하여 반박한다면, 분명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이고 우연의 일치라고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제 발 저려 나쁜년임을 인정한다는 방어논리로 대응할 수 있다. 셋째, 궁극적으로 여성을 비난하려는 본래의 의도를 교묘하게 감추는 은폐효과가 극대화 된다. 

이 영화는 한 소년이 한 소녀를 만나는 이야기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것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뉴저지 주 마게이트 출신인 톰 핸슨은 운명적인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는 믿음 속에서 성장했다. ······ 톰 헨슨은 썸머 핀을 보는 순간 운명의 반쪽임을 직감했다.

이처럼 작가로 추정되는 중저음의 나이든 남자의 내레이션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한 소년과 소녀가 만나는 이야기라는 언어유희를 반복하며 톰과 썸머의 연애이야기를 소개한다. 물론 톰과 썸머의 관계가 작가와 제니 벡먼의 관계와 유사성을 지닌다는 추론은 정당하다.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한 소년과 소녀가 만나는 이야기라는 패턴의 유사성과 더불어, 운명적 사랑을 믿지 않는 썸머가 톰을 배신하는 나쁜년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내레이션은 톰과 썸머의 성장과정이 성격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마치 학술적 연구보고처럼 설명하는 맨스플레이션(mansplain)효과를 증폭시켜 나간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남자로 성장한 톰과 운명적 사랑을 믿지 않는 썸머의 성장과정에 대한 대비적인 영상은 이런 설명에 유권해석을 부가한다.  그리하여 우울한 브리티시 팝을 어린 나이에 접하고 영화 졸업의 내용을 오해한 톰이 운명적 사랑을 만나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신념을 키워왔던 반면, 어린 나이에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썸머가 운명적 사랑을 믿지 않는 평범한 여자로 성장했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확보하게 된다.

그럼에도 운명적 사랑을 대해 전혀 다른 관점을 지닌 남자와 여자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계기에 대한 설명은 셀 수 없이 많은 공백으로 남아 있다. 운명적 사랑을 만나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는 톰이 운명적 사랑을 믿지 않는 썸머를 만날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중저음의 남성 내레이터는 썸머효과에 대한 설명을 추가한다.

썸머효과란 썸머가 가는 곳마다 매출이 오르거나 전세가가 떨어지거나, 혹은 대중교통 이용자가 급증하는 등의 이상현상을 말한다. 내레이션은 각 분야 연구자들의 분석을 인용하여 이런 현상을 뛰어난 외모와 여성적인 매력을 겸비한 썸머를 만나는 남자들은 누구나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주장을 마치 학술적으로 증명된 가설인 양 권위적인 태도로 설명한다. 이런 가설을 토대로 운명적 사랑을 신봉하는 톰과 사랑을 거부하는 썸머가 운명처럼 만나게 됐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운명적 사랑을 믿지 않는 평범한 여자, 썸머가 운명적 사랑에 빠질 확률이 100%라는 주장에는 모순이 내재해 있다. 이런 모순으로부터 썸머와 같이 사랑을 믿지 않은 여성이 배신할 확률, 다시 말해 나쁜년이 될 확률이 100%가 된다는 허수아비의 오류가 발생한다.

이런 오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처음으로 돌아가 이 이야기는 허구이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는 것이다. 이 순환론적 오류는 역설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보편주의에 유권해석을 부여하여 만인에게 통용되는 보편적인 보편주의로 승화시키려 했으나, 확증편향적인 지독한 착각에 지나지 않음을 확연하게 입증해준다. 운명적 사랑이 박제화된 21세기 현실을 보다 큰 맥락에서 조망하면, 순환론적 오류의 맨스플레인은 현실에 대한 인지부조화를 권력의 레토릭으로 무마하려는 지독한 착각임이 자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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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구글

<참고문헌>

데이비드 맥레이니, 착각의 심리학, 박인균 옮김, 추수밭, 2012.

이메뉴얼 월러스틴, 유럽적 보편주의: 권력의 레토릭, 김재오 옮김, 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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