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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프리즌 이스케이프> ― 구속에서 자유로, 굴종에서 저항으로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프리즌 이스케이프> ― 구속에서 자유로, 굴종에서 저항으로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0.06.0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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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사상 최대의 탈주자 수색작전 실화


범죄영화의 하부 장르에서 경찰영화가 범죄를 수사하고 범죄자를 체포하여 감옥에 넣는 영화라면, 탈옥영화는 형을 선고받은 범죄자 죄수가 감옥을 탈출하는 영화이다. 이러한 탈옥영화의 바탕에는 무고한 죄수라는 단서가 깔려 있어, 관객이 탈옥을 시도하는 죄수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든다. 김상진 감독의 한국영화 <광복절 특사>(2002)는 이러한 탈옥영화의 컨벤션을 뒤집는다. 이 영화에서 죄수 유재필(설경구)과 최무석(차승원)은 애인(송윤아)의 변심과 억울한 감옥살이로 인해 탈옥하지만, 자신들이 광복절 특사로 사면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려고 고군분투한다.

프랭크 다라본트의 할리우드 영화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1994)에서 무고한 죄수인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이 착복, 폭행, 살인이라는 감옥의 억압적인 폭력에 저항하여 지략과 인내로 감옥을 탈출한다. 이때 감옥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죄수가 맥주와 클래식음악을 즐기는 장면, 감옥에서 우정을 쌓은 죄수 엘리스 보이드 레드 레딩(모건 프리먼)과 푸른 바닷가에서 만나는 장면은 극과 극의 대비로 시원한 쾌감을 선사한다. 바비 로스, 케빈 훅스, 드와이트 H. 리틀 연출의 미국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1>(Prison Break, 2005)는 억울한 누명을 쓴 형 링컨 버로우스(도미닉 퍼셀)을 탈출시키기 위해서 동생 마이클 스코필드(웬트워스 밀러)가 일부러 죄를 지어 감옥에 들어간 후, 동생이 철저한 준비와 천재적인 두뇌로 형과 함께 탈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인공이 감옥 설계도를 등에 문신으로 새기는 기발한 방법과 매순간 닥치는 위기와 난관을 뛰어난 지략으로 극복한다.

프란시스 아난 감독·각본의 <프리즌 이스케이프>(Escape From Pretoria, 2020)는 남아공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의 이념을 지지하는 백인 인권운동가 티모시 젠킨(다니엘 레드클리프)과 스티븐 리(다니엘 웨버)가 전단폭격범으로 체포되고 이후 프리토리아 교도소에서 탈옥하는 실화를 다룬 영화이다. 영화 <프리즌 이스케이프>와 미국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는 두뇌, 기술, 협력으로 탈옥하기, 무고한 죄수와 교도소의 억압적 행위의 대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프리즌 이스케이프>에서 팀과 스티븐은 억울한 판결로 투옥되어 404일의 감옥생활 속에서 39개의 나뭇조각으로 만든 열쇠를 만들어 15개의 문을 열고 탈출한다.

 

처음은 있는 법. 필요한 만큼만 알기.


<프리즌 이스케이프>의 전반부에서는 전단폭격 사건, 재판, 교도소 수감 1일째를 보여준다. <프리즌 이스케이프>의 전단폭격과 재판은 인종 차별과 인종 평등의 이념적 대립을 보여준다. 아프리카민족회의 소속 인권운동가 팀과 스티븐은 남아공 정부에 저항하는 전단폭격범 활동으로 체포되어 각각 12년형과 8년형을 선고받는다. 피고인/재판부는 인권운동/공권력, 평등/차별, 민주주의/파시즘의 대립을 보여준다. 스타일에서는 하강하는 카메라와 멀어지는 카메라를 통해 공권력에 포획된 인권운동가의 미약한 처지를 보여주며, 유리창과 틈새의 이미지를 통해 세상과의 단절을 표현한다.

<프리즌 이스케이프>의 수감 1일째는 인권운동가 죄수와 교도관의 대립을 보여준다. 팀과 스티븐은 ‘백인 만델라’, ‘가장 착각에 빠진 인물’이라는 조롱과 함께 교도관의 집중 감시를 받게 된다. 한편 죄수 중에서 왕족 격인 원로 정치범 데니스는 여태까지의 탈옥 시도는 모두 실패하였고 자신들은 ‘전쟁포로’라는 말을 함으로써 두 사람의 탈옥 의지에 비관적인 태도를 취한다. 팀은 ‘처음은 있는 법’, ‘필요한 만큼만 알기’라는 신조를 바탕으로, 모스 부호로 대화금지의 상황에서 소통하며 다른 죄수들과 협력한다. 팀의 바스트숏 장면은 팀에 대한 감정이입으로 이끌고, 팀, 스티븐, 레너드 사이의 시선은 앞으로 일어날 협력과 사건을 암시한다.

 

잘 활용해야 한다. 적군이 걸친 틈새를.


<프리즌 이스케이프>의 중반부에서는 수감 23일째에서 206일째까지의 탈옥 준비 과정을 보여준다. 수감 23일째부터 142일째까지 팀, 스티븐, 레너드가 15개의 문을 열기 위한 준비에 착수한다. 레너드는 1년에 30분만 가족 면회를 허용하는 교도소의 방침에 분노하며 팀과 스티븐의 탈옥 계획에 동참한다. 폭탄 제조 전문가 팀은 스티븐과 레너드의 도움을 받아 나무로 된 복합열쇠를 제작하여 15개의 문 중 3개의 문을 여는 데 성공한다. 팀이 밀대에 장치를 부착하여 자기 방의 철문을 열려고 시도하는 장면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팀의 얼굴 클로즈업, 밀대의 어두운 그림자, 교도관의 발소리를 통해 시청각적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프리즌 이스케이프>의 수감 206일째에서는 영화장비실까지의 탈출 연습을 보여준다. 팀은 생각한다. ‘감옥에서는 변하는 게 없다. 반복되는 일과는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이다. 잘 활용해야 한다. 적군이 걸친 틈새를. 그 틈새로 무미건조한 생활에 승리가 찾아올 것이다. 이것이 파시스트를 이기는 길!’ 나뭇조각으로 만든 열쇠를 발견한 교도소장이 사진받침대라는 팀의 변명을 듣고 믿는 장면에서 조롱당함으로써 웃음을 창출한다. 팀, 스티븐, 레너드가 영화장비실까지의 탈출을 연습하는 장면과 교도관이 영화장비실로 다가오는 장면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줌으로써 긴장과 불안을 고조시킨다. 영화장비실 문 밖에 있는 교도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영화장비실 안에서 숨죽이고 있는 세 사람의 얼굴과 눈동자를 어둠과 빛의 명암 대비로 표현해 불안감을 강조한다. 팀이 공항발작을 일으키는 장면에서는 팀의 바스트숏으로 인물의 두려움에 감정이입하게 만든다.

 

모두 말 뿐이고 행동을 하지 않는다.


<프리즌 이스케이프>의 후반부에서는 수감 404일째부터 탈옥 실행까지를 보여준다. 팀 일행은 39개의 나무열쇠로 15개의 문을 열 수 있다는 확신에 탈옥을 실행하고자 한다. 팀 일행이 탈옥을 권유하자, 원로 정치범들은 ‘이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라는 말로 거절한다. 팀 일행은 ‘모두가 말뿐이고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 결정을 평생 후회할 거예요’라는 말로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인권운동가/정치범의 갈등은 신참/원로, 탈옥/잔류, 자유/원칙이라는 세대·이념의 차이를 보여준다. 스타일에서 영화장비실 안에서 클립이 없어져 문고리를 잡고 숨어 있는 죄수들과 영화장비실로 걸어오는 교도관을 교차편집함으로써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프리즌 이스케이프>의 탈옥 실행에서는 돌발 상황과 해결을 보여준다. 팀, 스티븐, 레너드는 복합열쇠로 15개의 문 중 14개의 문을 여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마지막 15번째 문에 이르러 39개의 모든 열쇠로도 열리지 않자 세 사람은 절망한다. 이때 레너드가 나무로 된 문틀을 부수어 틈을 만듦으로서 마지막 문을 여는 데 성공한다. 팀, 스티븐, 레너드는 유색인종 전용 택시를 타고 탈옥에 성공하지만, 탈옥 성공 이후에 팀의 여자친구가 끌려감으로써 또 다른 희생자가 된다. 마지막 15번째 문 앞에 서서 교도소 밖을 내다보는 장면에서 세 사람의 얼굴에 비친 밝은 햇살로 자유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표현한다. 교도소에서 팀의 텅 빈 침상을 보고 절규하는 교도관과 택시에서 탈옥의 기쁨으로 환호하는 죄수들의 교차편집으로 감금과 해방의 대조를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팀의 클로즈업에서 멀리 사라지는 택시의 익스트림롱숏으로 연결함으로써 극과 극의 대비의 스타일 연출로 인물의 감격과 해방의 상황을 함께 보여준다.

 

탈옥영화의 두 가지 쾌락


<프리즌 이스케이프>는 내러티브와 스타일에서 수미상관식 구성을 보여준다.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이 똑같이 반복되지만, 처벌과 희생이라는 다른 의미를 보여준다. 인권운동가인 주인공들이 아프라카민족회의를 지지하고 모든 인종은 평등하다는 이념을 주장하자, 재판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12년형과 8년형을 선고하며 정치범 수용소에 감금하는 등 과도한 처벌을 통해 억압적 파시즘을 보여준다. 탈옥하자는 팀 일행의 제안에 정치범 원로들은 ‘우리가 필요한 건 단결뿐’이며 감옥생활은 ‘우리 모두가 치러야 할 대가’라고 답변한다는 점에서 인종평등을 실천하는 정치범의 자기희생의 의지를 보여준다. 버즈아이뷰숏은 감시의 시선과 해방의 기쁨을 대비시킨다. 첫 장면에서 전단지폭탄이 터지는 직전에 주인공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버즈아이뷰숏은 그들을 미약한 존재로 표현하여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암시로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무 것도 없는 넓은 들판에서 질주하는 택시를 내려다보는 버즈아이뷰숏은 주인공들의 자유와 해방의 쾌감을 표현한다.

탈옥영화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치밀한 계획 하에 주인공이 탈옥하면서 관객들에게 대리만족과 쾌감을 주는 방식으로 구속과 자유를 대비시킨다. 둘째,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죄수들이 이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는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굴복과 저항을 대비시킨다. 탈옥영화는 범죄자에 대한 감정이입을 바탕으로 교도소의 억압적 상황을 고발하고, 합법/불법, 질서/무질서, 선/악의 전도를 통해 공권력의 폭력과 감시의 시선을 비판한다. 최근 감옥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는 죄수에 대한 동일시, 죄수가 과연 유죄인가라는 문제제기를 통해 법체계와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기저에 깔고 있다. 감옥에 가두는 것은 자유를 억압하는 합법적인 국가 폭력의 한 형태이다. 구속에서 자유로, 굴복에서 저항으로. <프리즌 이스케이프>은 파시즘적인 인권 탄압에서 인종 평등을 위한 저항을 보여주며, 탈옥은 감옥의 구속에서 자유로의 전진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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