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7월호 구매하기
연인들이 사랑하기 힘든 은밀한 이유들
연인들이 사랑하기 힘든 은밀한 이유들
  • 서곡숙 | 문화평론가
  • 승인 2020.05.29 17: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자유주의 시대 로맨스 웹툰의 사랑방정식

신자유주의 시대 로맨스 웹툰과 일상성

한국 웹툰의 세 가지 특성은 일상성, 공유성 그리고 상호작용성이다. 웹툰의 독자들은 일상적으로 웹툰을 소비하고, 좋아하는 작품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며, 댓글이나 커뮤니티 활동, 소셜 미디어를 통해 상호작용한다.(1) 독자들은 웹툰에 나타나는 자기 고백적 서사와 일상적 이야기에 공감하며 서로 공유한다. 웹툰 플랫폼을 통해 작가와 독자가 보편적 일상을 다룬 웹툰으로 상호 소통하면서 일상성이 더욱 강화된다. 웹툰은 대중문화로서 현대인들에게 일상생활 속의 친숙한 콘텐츠 역할을 한다. 웹툰 스토리의 핵심적 요소는 다름 아닌 ‘일상성’이다.

웹툰의 일상성은 편의성과 접근성, 일상적 소재, 개인화 추세에서 나온다.(2) 웹툰에서는 사회 현실의 이데올로기보다는 개인 주체의 감성에 초점을 맞춘 서사구조가 더 많이 나타난다. 웹툰에서는 일상적인 소재가 호응을 얻으며, 일상에 대한 관심, 혹은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라는 이중적 특성이 동시에 나타난다. 신자유주의 시대 로맨스 웹툰에서 많이 나타나는 ‘계약 연애’는 바로 이런 일상성을 엿볼 수 있는 소재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계약연애: 연애 공포증의 무거움과 기간 한정 연애의 가벼움

신자유주의 시대, 계약 연애가 유행하고 있다. 계약의 연장과 해지에서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신세대들의 새로운 연애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계약 연애는 이별의 준비, 집착, 결별에의 부담, 갈등, 스트레스, 미련 등 감정적·경제적 부담이 적다. 사실상 계약 연애는 만남과 이별, 연애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연애의 형태다. 동거 확산의 두 가지 이유는 결혼이라는 전통 관습에 대한 반발과 경제적 독립 욕구다. 

로맨스 웹툰에서 계약 연애는 자유연애시대에서의 연애 불능과 연애 공포증을 다룬다. 남녀 주인공은 이성에 대한 공포증과 거부감 때문에 연애를 하지 않는다. 경제력을 갖춘 재벌, 혹은 경제력‘까지’ 갖춘 완벽한 남자 주인공은 탐욕적이거나 공격적인 여성에게 두려움을 느낀다. 여주인공은 과거 사랑의 상처로 연애를 거부하거나 포기한다. 계약 연애는 남녀 주인공이 가진 두려움과 상처를 가볍게 만들면서 용기를 가지고 연애에 뛰어들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계약 연애는 기존의 연애와는 다르다. 

로맨스 웹툰에서 계약 연애란 기간을 한정해 연애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약 중 결별하거나 이후에 계속 집착하게 되면 계약조건을 위배하는 것이 된다.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재벌남은 계약 연애를 통해 형식적인 연인을 조달하며, 여주인공은 생계의 위협에서 벗어난다. 서로의 사랑이 싹틀 때쯤, 트라우마에 벗어나지 못한 여주인공은 계약이 끝나기 전에 결별하려 하지만 남주인공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사랑은 계약의 위반 조건이자 문제의 해결책이 된다. 연애를 못하는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는 남녀 주인공은 명확한 조건, 방식, 기간, 이별을 예고한 계약 연애를 통해 오히려 두려움을 극복한다. 계약 연애는 ‘연애’가 주는 불안정한 변수를 ‘계약’이라는 안정적인 상수로 전환시켜 마음의 부담감을 덜고 사랑에 뛰어들게 만든다. 

 

<이 남자 이 여자의 연애방식>

계약동거: 동거문화의 확산과 섹슈얼리티의 부상

한국에서 동거문화는 외로운 현대사회의 대안이자 경제적인 이점을 갖고 있지만, 부정적 인식으로 활성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되면서, 대학가와 이혼자 중심으로 동거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동거의 순기능은 생활비 절감, 상대를 파악할 여유, 자유로운 성생활이다. 동거가 깨지는 원인으로는 성적 불만족이 최다를 차지한다. 동거가 결별로 끝나는 경우, 사회의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결국 피해자는 여성이 된다. 

로맨스 웹툰에서 계약 동거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여주인공과 주거공간을 지원하는 남주인공의 동거를 다룬다. 여주인공이 주거공간을 상실한 채 빚에 시달리며 경제적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남주인공은 유일하게 여주인공의 경제적 위기에 대해 알게 된다.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은 공적, 사적으로 연결된 관계다.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동거나 부업을 제안함으로써 주거공간과 생계비를 지원한다. 두 사람은 계약동거를 통해 고용주/고용인 혹은 상사/부하라는 공적 관계에서 연인이라는 사적 관계로 발전한다.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의 지원과 지도로 업무능력과 여성적 매력이 향상되고,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의 순수하고 따뜻한 배려로 정신적, 육체적 문제를 극복한다. 

로맨스 웹툰에서 계약동거는 남녀 주인공의 성적 문제와 치유를 통해 자유연애 시대의 순결 콤플렉스와 성적 불능 문제를 드러낸다. 자유연애 시대에는 풍부한 성적 경험이 강조되면서 숫처녀, 동정남, 목석녀 등 성적 매력이 없거나 성적 불감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콤플렉스를 느끼게 만든다. 여주인공은 전 남자친구와의 성관계에서 불감증 혹은 소극적인 태도를 비난받아 성행위에 두려움을 느낀다. 주인공은 전 여자친구의 차갑고 이기적인 태도로 인해 성적 문제(발기부전)를 겪게 된다. 여주인공은 자신의 육체에만 반응하는 주인공과의 동거로 성행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주인공은 여주인공의 육체에 대한 반응으로 성적 문제를 극복한다. 

 

<저한테 느껴줘서, 고마워요>

계약결혼의 딜레마: 불안과 사랑

보부아르는 계약 결혼이 남성에게만 유리한 알리바이를 제공하고, 여성에게는 불리한 점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박완서의 소설 『서있는 여자』는 결혼이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계약적 행위의 산물이라는 믿음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020 혼인·이혼 인식 보고서』에 의하면, 결혼하기를 염려하는 이유는 독립된 삶, 자녀 양육, 결혼 비용, 새로운 가족관계, 경제적 비용 부담 때문이다.(3) 계약 결혼은 결혼의 기간, 의무, 조건을 미리 정해, 결혼에 대한 염려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로맨스 웹툰에서 계약 결혼은 사랑에 대한 두려움과 결혼 공포증을 통해서 결혼 후 사랑과 자유는 양립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남녀 주인공은 한정된 기간과 명확한 조건의 계약 결혼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발전시켜 사랑이나 결혼에 대한 공포증을 극복한다. 남성이 계약 결혼을 제안한 경우, 경제적 강자인 재벌남이 경제적 약자인 평범녀에게 불평등 계약을 요구한다. 남자는 자신의 혼외정사의 자유를 침범 받지 않는 계약 결혼과, 사랑하는 여자를 독점할 수 있는 일부일처제의 결혼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로맨스 웹툰에서 계약 결혼은 과거의 상처로 인해 정상적인 결혼을 거부하는 남녀 주인공의 육체적, 정신적 치유 과정을 보여준다. 계약 결혼에서 육체적 성행위는 정신적 치유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남녀 주인공은 정신적, 육체적 교감을 통해 여성 불신과 남성 공포증을 극복하게 된다. 계약 결혼을 통해 여주인공은 수동적이고 소심한 여성에서 독립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으로 변모한다. 계약 결혼에서 이런 사랑과 자유의 대립항 설정은, 역설적으로 결혼을 통해서는 사랑과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불신을 드러낸다. 

 

이혼해 줄래요?

로맨스와 계약: 일상의 재현 혹은 일상으로부터의 일탈

계약 로맨스 웹툰에서의 일상성은 여성의 경제적 난관과 남성의 정신적·육체적 난관이다. 여주인공은 가족이나 전 남자친구 때문에 진 빚을 갚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고, 사채업자에게 쫓기고, 주거공간에서 쫓겨나는 등 경제적 난관을 겪는 희생자다. 남주인공도 억압적인 아버지, 이기적이고 냉정한 전 여자친구로 인해서 정신적, 육체적 난관을 겪는다. 남주인공의 경제적 우위와 여주인공의 정신적 우위로 인해, 남녀 주인공은 평등한 상생관계를 형성한다. 등장인물의 난관과 계약 연애·동거·결혼은 가족 이데올로기와 기성세대의 규율을 비판한다. 

자기계발과 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남녀 주인공은 공적, 사적으로 상생관계를 형성한다. 특히 여주인공은 자기계발을 통해서 자립심, 자존감을 찾게 된다. 남주인공과의 계약 관계를 통해 소심함과 열등감을 버리고 자신감을 지닌 인물로 변모하며, 일과 사랑의 균형을 이루고, 자아를 실현한다. 이런 인물들의 난관과 자기계발을 통한 해결은 도시공간의 일상성을 재현하며 대중들의 공감을 유발한다. 여주인공은 희생자 상태에서 벗어나 성장하고 변신한다. 그녀는 여성성의 강점을 살려 섬세한 일처리와 따뜻한 인간관계를 형성해 일과 사랑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는 극적인 반전으로 쾌락을 선사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로맨스 웹툰은 일상의 재현, 일상의 뒤집기, 일상으로의 회귀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인물의 성장과 변신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때 계약은 바로 일상성을 뒤집는 계기를 제공하며, 계약 이후 인물의 변화와 비현실적인 결말은 신자유주의 시대 자기계발과 무한 경쟁 속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독자의 소망을 충족시킨다. 20세기 거대담론의 압력에서 21세기의 일상적 개인의 가치를 복원하는 미시 서사로의 변화 과정에서, 계약 로맨스 웹툰은 계약을 통해 일상의 재현과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동시에 보여준다.   

 

 

글·서곡숙
문화평론가 및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르몽드 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웹툰, 카카오페이지 웹툰
(1) 박인하, 「한국 웹툰의 변별적 특성연구」, 『애니메이션연구』, 한국애니메이션학회, 11권 3호, 2015, 82-97쪽. 
(2) 김영숙,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스토리텔링에 나타난 일상성」, 『애니메이션연구』, 13권 3호, 한국애니메이션학회, 2017, 27-61쪽.
(3) 듀오휴먼라이프연구소, 『2020 혼인·이혼 인식 보고서』, 듀오, 2020.』, 듀오, 2020.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을 받아보시고, 동시에 모든 PDF와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PDF와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시 종이신문 과월호를 발송 드립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