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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주의 문화톡톡] <인간수업> ‘나쁜 놈’을 가르치는 자 누구인가.
[송연주의 문화톡톡] <인간수업> ‘나쁜 놈’을 가르치는 자 누구인가.
  • 송연주(문화평론가)
  • 승인 2020.06.15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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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 가출한 또래 친구에게 성매매를 강요한 10대가 구속된 사건을 기억한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유사 사건이 일어났으며, 2020년 N번방까지. 극악한 범죄의 양상과 함께, 주범이 10대라는 사실에 공분이 일었다. 10대 청소년들은 아동학대나 또래들의 괴롭힘으로 피해자의 위치에 서기도 하고, 같은 또래를 괴롭히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의 위치에 서기도 한다. 이는 어른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마음을 먹는 누군가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정황을 두고 어른의 경우에 비해 청소년이 피해와 가해의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경우 그 충격은 엄청난 차이로 다가온다.

N번방 사건과 함께 이슈가 된 넷플릭스의 <인간수업>(감독 김진민, 극본 진한새)은 서스펜스 스릴러 범죄물에 학원물 장르를 더하면서 그 극성을 배가시켰다. <인간수업>의 주인공 오지수를 스물의 대학생으로 설정하여 할 수 있는 극적 전개와 비교해, 열여덟 살 고등학생으로 설정하여 할 수 있는 극적 전개는 차원이 달라진다.

 

(사진출처 : 넷플릭스)
(사진출처 : 넷플릭스)

<인간수업>은 만화경으로 시작한다. 세상을 보는 시선을 의미하듯 만화경 속으로 보이는 것은 색색의 유리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알록달록한 문양에서 레고 조각으로 바뀐다. 레고 조각은 인간 형상의 파편들이고, 이는 쓰레기통 속에 버려진 남녀 레고 인형 화면으로 연결되며 교사 조진우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성실한 학생입니다. 품행이 단정하고, 학업 성취도가 높습니다.

조용하고 차분한 행실이 타의 귀감이 되며,

웬만해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모범적인 학생입니다."

오지수. 학교 안의 세상에서 교사 조진우의 눈에 비친 그는 모범생이다. 1등 성적에, 서연고(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가려는, 서연고 중 성적에 맞춰 어느 학과를 가도 별 상관없는, 그저 서연고에 가는 것 자체가 목표인, 그러나 딱히 꿈은 없는 학생. 반면에 학교 밖의 세상에서는 ‘삼촌’이라는 닉네임으로 자신을 감추고 성매매를 알선하는 포주, 조건만남 브로커다. 성매매 여성 중에는 같은 반 학생인 서민희도 있지만, 서민희에게 자신의 존재는 비밀로 한 채 조건만남을 매칭하고 돈을 번다. 부모에게 양육 받지 못하기에 선택한 생존 방식으로, 고3이 되기 전까지 자신의 대학 등록금을 모아두고 고3 때는 공부만 하겠다는 계산이 끌어낸 자기 생각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한 마디로 ‘나쁜 놈’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인간수업>의 원제목은 ‘극혐’이었다고 한다. 1회 초반에만 해도 ‘극혐’이라는 단어는 여러 번 언급된다. 교사 조진우에게는 극히 모범생이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하고 사는지 알 수 없는 오지수가 애정 어린 ‘극혐’ 대상이고, 오지수는 ‘극혐’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를 모르며, 교실에서 아이들은 곧 다가올 시험에 대해 ‘극혐’이라고 표현한다. ‘극혐’의 대상인 오지수가, 대부분 사람이 알고 있는 신조어 ‘극혐’의 뜻을 모르며, 또래들이 ‘극혐’하는 시험에서는 1등을 하는 것이다.

<인간수업> 김진민 감독은 ‘극혐’이라는 제목을 ‘인간수업(영문 제목 - Extracurricular)’으로 변경하면서, 방과 후 수업.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학교 밖에서 배우는 수업이란 뜻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김진민 감독은 제목에 꼭 수업을 넣고 싶었고, 가장 중립적인 명사로 인간이 와 닿아 최종적으로 '인간수업'이란 제목을 정했다고 전해진다. 1)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인간이 고유하게 가지는 특성을 직립보행, 언어력, 영혼, 사유, 도덕, 소비, 유희 등으로 말한다. 고등학생들도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배우는데. 고등학교 교과서 『윤리와 사상』에서는 ‘인간의 본질’을 ‘사유’, ‘본능에 따르지 않는 이성적인 존재’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에 대해서 ‘윤리적 성찰’과 ‘도덕’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인간수업’이란, 오지수가 ‘인간’을 배우는 것, 또는 수업이라는 단어를 교수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지수에게 ‘인간’을 배우도록 가르치는 것이 될 수 있다. 오지수를 이용하는 주인공 배규리도 함께한다. 배규리는 오지수와 달리 부유한 환경에서 자신을 강압적으로 양육하는 부모에게서 독립을 꿈꾸고 있다. 그 독립에 오지수의 사업을 이용하려 덤비는 또 하나의 ‘나쁜 놈’이다.

이제 이 ‘나쁜 놈’들에게 어디에서, 누가 ‘인간’을 가르칠까.

김진민 감독은 학교 밖에서의 ‘인간수업’을 말했다. 학교 내에서의 ‘인간수업’은 자연히 배제되는데, 드라마 배경인 계왕고등학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공간으로서 존재한다, 학교 공간이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학생들의 인권 침해와 학교폭력을 방치하고, 일진과 셔틀들의 계급이 재생산되는 부정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동시에 학교 밖 범죄와는 별도로 그저 거쳐 가는 의미로라도 생애 통과의례의 공간이고, 신분 상승을 위해 반드시 잘 거쳐 가야 할 공간이다. 무엇보다 학교 밖에서는 익명으로 범죄까지 저지를 정도로 존재가 가능하지만, 학교 안에서는 익명으로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인물들은 학교 밖의 본질과는 다른 성격체로 가면을 쓰고 있다. 또 인물들에게 가장 안전하다고 인식되어 가장 소중한 것을 숨겨놓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숨겨놓은 것을 가장 쉽게 들길 위기에 빠지는 공간이다.

교사의 존재감도 아이러니하다. 교내에서 오지수와 배규리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는 인물은 교사 조진우다. 그는 드라마 내에서 긍정적인 성인인데, 오지수와 배규리에게 ‘인권’과 ‘꿈’을 강조하는 조진우이지만, 그로 인해 오지수와 배규리의 이성과 도덕심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정작 그들이 학교 밖에서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그들이 진짜 어떤 실체인지를 모른다. 드라마 전체를 주인공과 함께하는 인물이면서, 주제를 직설하는 인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주제 구현에서 멀어져 있는 인물이다. 희망적인 캐릭터이지만, 학생들의 실체를 간파하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인간수업’을 성공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학교 밖에서의 ‘인간수업’은 누구에 의해 이루어지는가. 극에 등장하는 범죄자들을 제외하고, 가능성 있는 인물들을 살펴본다.

먼저 부모. 오지수와 배규리 모두 부모에게서 ‘인간수업’을 받지 못했다. 두 인물의 부모 모두 건전한 양육을 시행하지 못한다. 양육은커녕 자녀를 이용하고 더욱더 힘들게 하는 부모다. 자녀를 보호하는 부모가 아니라 거래와 필요의 관계로서 존재하는 부모에게서 ‘인간수업’은 가능하지 않았다. 그들의 양육은 드라마에서 메타포로 등장하는 소라게의 등껍질보다도 못했다.

다음으로 이실장이 있다. 그는 성매매 여성들을 진상 고객들로부터 보호하면서 돈을 벌고 오지수와 공생하는 자다, 퇴역 군인으로, 노숙자로 살아온 과거를 가진 인물로 학교 밖에서 만나는 어른 중에서 오지수에게 세상을 직시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실장은 범죄 미화를 피하려는 감독의 의도에 따라 징벌적 죽음을 맞게 되면서 오지수에게 ‘인간수업’을 할 수 없다.

마지막 인물은 학교 안과 학교 밖을 넘나드는 경찰 이해경이다. 그녀는 가장 강한 공권력을 가진 자이지만, 그래서 가장 조심스럽고, 청소년 성매매 범죄 실체를 인지하면서도 확실하게 개입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경찰이다. 이해경이 서민희를 구조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가지는 시선과 태도에 모호함이 있다. 그래서 시청자는 이해경의 편이 되지 못하고, 오지수와 배규리의 편에 서버리게 되고, ‘인간수업’ 역시 불가능하다.

 

“잘못된 답에 목숨을 걸었다”

<인간수업> 메인 예고편에 등장하는 문구다. 결국, 그 누구도 가르치는 자 없는, 스승이 부재한 ‘인간수업’이다. 그 잘못된 답은 스스로가 만든 답, 스스로가 해버린 선택, 미숙한 열여덟 청소년이 자신의 환경을 이유 삼아 저지른 범죄와 그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저지르는 계속된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한 대가가 아닐까.

이 드라마에서 ‘인간수업’은 미성년인 인물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은폐하고 더 큰 범죄를 저지르면서 스스로 ‘인간’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자신의 판단과 사유로 각자의 입장에서 윤리와 도덕을 만들어낸다. ‘자기 나름의 정의로서의 인간’이 되기 위한 수업을 스스로 해나간다. 비록 그것이 ‘잘못된 답’일지라도. 가르치는 자가 따로 없이 행동하고 그 행동의 착오를 통해서 다음 행동을 어떻게 해나갈지 선택하고 배워나가는 인물들.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 응징 받고 두려움에 발버둥 치면서 파멸해가는 드라마이고, 이 과정을 스스로가 수업 받는 드라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드라마가 오지수를 만약 스물의 성인 주인공으로 설정했다면 어땠을까.

‘인간수업’ 콘셉트에 따라 '나쁜 놈'들이 인간 실존을 스스로 배워가는 과정과 파멸로 향해가며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 인물이 가지는 매력도와 신선함 모두를 잃고 지금만큼의 화제성도 없었을 것이다. 열여덟 살 고등학생이라는 설정 때문에 갖게 되는 금기와 제약, 그 나이 또래다운 예상 밖의 생각과 행동을 선택하면서, 극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 그것은 강력한 극성을 형성했다. 학원물의 형식을 조합해 더 강력해진 서스펜스로 대중성과 화제성을 동시에 얻은 범죄 스릴러물이다. 

 

참조 : 1) 스타뉴스, '극혐'은 어떻게 '인간수업'이 됐나, 전형화 기자

https://entertain.v.daum.net/v/20200509110115692

사진출처 : 넷플릭스

글 : 송연주(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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