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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순·미선’ 18주기에 서한 보낸 미군 대령 출신 평화운동가
‘효순·미선’ 18주기에 서한 보낸 미군 대령 출신 평화운동가
  • 조나리 기자
  • 승인 2020.06.18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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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평화공원 완공식에서 참가자들이 효순미선 평화공원의 제막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효순미선평화공원조성위원회
지난 13일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평화공원 완공식에서 참가자들이 효순미선 평화공원의 제막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효순미선평화공원조성위원회

앤 라이트(Ann Wright) 예비역 대령 서한 원문 공개
효순미선평화공원, 지난해 착공식 이후 1년만에 완공

사건 당시 촛불집회, 이후 한국 촛불집회 대중화에 기여

지난 13일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평화공원에서 ‘효순·미선 18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18년 전 훈련 후 복귀하는 주한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당시 14살 신효순·심미선 양의 추모제는 매년 6월13일 사고가 일어난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56번 국도에서 열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올해 완공한 효순미선평화공원에서 완공식과 함께 추모제가 진행됐다.

이날 효순미선평화공원조성위원회(이하 조성위원회)는 미국 평화재향군인회 한반도 평화캠페인 책임자 앤 라이트(Ann Wright) 예비역 대령의 메시지를 공개했다. 앞서 그는 신효순·심미선 양 유족에게 사과의 뜻을 담은 서한을 ‘평화재향군인회’(Veterans For Peace)를 통해 보냈고, 이 서한이 효순미선 평화공원 조성위원회에 전달됐다. 평화재향군인회 측은 올해 초 십시일반 모은 성금을 조성위원회에 보내기도 했다.

본지는 조성위원회로부터 앤 라이트 씨의 서한을 제공 받아 독자에게 원문을 공개한다.

본지가 효순미선평화공원조성위원회로부터 제공받은 앤 라이트(Ann Wright) 예비역 대령 서한 원문.
본지가 효순미선평화공원조성위원회로부터 제공받은 앤 라이트(Ann Wright) 예비역 대령 서한 원문.

그는 서한에서 “효순미선 평화공원이 역사적 개장을 앞두고 이 특별한 기념식을 위해 모인 한국인 모두에게 따뜻한 인사를 보낸다”며 “평화공원 건설의 작은 공헌자로서 우리는 이 기념식을 듣게 돼 매우 기쁘다”고 말문을 열었다.

라이트 씨는 “한국의 두 10대 여학생이 때 아닌 죽음을 당한 것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큰 비극에 대한 여러분의 깊은 고통과 슬픔을 느낀다”며 “미군 출신으로서 75년간 미군이 한국에서 저지른 많은 범죄로 고통을 받아 온 다른 한국인들에게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50톤짜리 장갑차가 도로를 달리면서 발생한 효순·미선이의 잔인한 죽음과 이후 미군재판소에서 3명의 대원들에 내린 무죄 판결은 많은 한국인에게 정당한 분노를 불러 일으키며 촛불시위를 촉발시켰다”면서 “한국의 촛불시위는 10개월 동안 계속됐다. 이런 민중 운동은 한국에서 촛불시위라는 새로운 시위 문화가 탄생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모든 미군들이 한국을 떠나야 효순이와 미선이에게 완전한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며 “지금 당장 한국 전쟁을 끝내라”고 덧붙였다.

조성위원회는 “2002년 미군장갑차에 의해 희생된 고 신효순 심미선 양의 넋을 위로하고 시민추모비를 사고 현장에 세워 평화공원을 조성하자는 약속을 12년 만에 지키게 됐다”면서 “효순미선평화공원은 꽃다운 나이에 숨진 두 여중생의 넋이 영원히 안식하고 자주‧평화‧통일의 꽃으로 다시 피어나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추모비와 평화공원은 모두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시민단체 평화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등은 효순미선평화공원조성위원회를 구성해 2012년 시민추모비 건립, 2017년 공원 부지(367㎡ 규모)를 사들였다. 시민단체 159곳과 연인원 3,000여 명의 시민들이 모금에 동참했고, 공원 조성 공사도 100여 명이 넘는 조성위원들이 자발적으로 기술을 제공했다. 이후 효순미선평화공원은 지난해 6월13일 착공식 이후 1년 만에 완공됐다.

평화공원 벽면에는 ‘효순·미선 사건의 의미와 과제’ 등 사건과 의미를 소개한 글귀도 적혀 있다. 또한 사고 당시 손을 잡고 걸어가던 효순·미선을 묘사한 실루엣 조형물을 제작해 공원 명칭 조형물과 함께 세웠다. 아울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소파개정, 미국 부시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는 당시 시민들의 촛불집회 벽화도 설치됐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은 2002년 6월 13일 당시 신효순·심미선 두 여중생이 인도가 없는 왕복 2차로를 걷다가 뒤에서 오던 미군 장갑차에 치여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사건이다. 사고를 낸 미군 병사들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의해 대한민국 재판이 아닌 미군재판을 받았으며 무죄 판결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사건 당시 '미군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 심미선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여중생범대위)'가 미군의 재판권 포기를 촉구하는 100만 시민 서명을 받고 있다. /사진=효순미선평화공원조성위원회
사건 당시 '미군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 심미선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여중생범대위)'가 미군의 재판권 포기를 촉구하는 100만 시민 서명을 받고 있다. /사진=효순미선평화공원조성위원회
미군의 불성실한 태도와 불평등한 소파(SOFA)협정에 분노한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집회를 열고 있다. 이 집회를 시작으로 촛불집회가 대중화됐다는 평가다. /사진=효순미선평화공원조성위원회
미군의 불성실한 태도와 불평등한 소파(SOFA)협정에 분노한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집회를 열고 있다. 이 집회를 시작으로 촛불집회가 대중화됐다는 평가다. /사진=효순미선평화공원조성위원회

당시 미군의 태도와 불평등한 소파(SOFA)협정에 분노한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항의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 집회를 시작으로 촛불집회가 대중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날 추모식에는 권정호 변호사도 참여했다. 그는 당시 미군재판에 유일하게 방청했던 한국인이다. 권 변호사는 이날 추모식에서 “매년 추모제 때마다 광화문과 사고현장으로 이동하며 길거리 추모제를 진행했다. 어떤 때는 시민추모비가 경찰에 탈취당하는 일을 겪기도 했다”면서 “갈 곳 없이 떠돌아다닌 시민추모비가 드디어 제 자리를 찾게 됐습니다. 효순·미선의 넋도 이제 안식을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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