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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영의 문화톡톡] 한 아이를 향한 관심과 책임 :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
[문선영의 문화톡톡] 한 아이를 향한 관심과 책임 :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
  • 문선영(문화평론가)
  • 승인 2020.06.22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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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봉투에 버려진 혜나는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초등학교 1학년 혜나는 저녁이 다 되어도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친구들은 꼬질꼬질한 혜나에게 곁을 주지 않는다. 유일한 친구는 햄스터 찡이, 찡이를 안고 어둑해진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혜나의 몸에는 멍자국, 작은 상처들이 종종 발견된다. 2018년 방영된 드라마 <마더>(tvN)의 주인공 혜나 이야기이다. 일본 드라마 <마더>를 리메이크한 이 드라마는 친모와 친모 동거남의 학대로 상처받은 아동 혜나(허율)를 임시교사 수진(이보영)이 구출해서 도망치는 과정을 다루었다. 혜나와 비혈연관계인 수진이 위험한 결심을 한 결정적인 이유는 쓰레기봉투에 들어있는 혜나를 목격하고 나서이다. 그녀의 엄마는 자신의 딸을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넣어 집 앞에 버려놓고 동거남과 외출을 한다. 쓰레기봉투 속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는 혜나의 소리 없는 움직임에 마음이 아파, 수진의 행동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적 상상이라 생각했던 그 일들은 단지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발생한 아동 학대 사건들은 드라마보다 더 끔찍하다. 9살 아이를 작은 캐리어 가방에 7시간이나 가두고 외출한 계모는 작은 가방 안에서 가쁜 숨을 내쉬며 죽어가고 있는 아이는 잊은듯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다. 창녕의 계부로부터 도망친 9살 소녀의 손바닥에는 화상자국이, 온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계부는 아이를 쇠사슬에 묶어놓고 심부름 시킬 때와 화장실 갈 때만 풀어주었다. 계부의 학대와 친모의 방임에 견디다 못해 탈출한 9살 소녀. 드라마 <마더>의 혜나는 우리 주변에서 더 끔찍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끝까지 외면당했던 아이 백상호, 지켜진 아이 고은호

<아무도 모른다>(SBS, 2020)는 고등학교 시절 연쇄 살인 사건으로 친구를 잃은 형사 차영진(김서형)이 성흔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을 쫓는 과정을 다룬 드라마이다. 영진은 자신 대신 친구가 연쇄 살인범에게 살해당했다는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미제 사건이 되어버린 성흔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해 애쓴다. <아무도 모른다>는 살인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영진의 주변 인물들이 얽히면서 발생하는 새로운 사건, 사건의 진실과 범인의 존재가 드러나는 과정을 흥미롭게 구성한 추리 드라마이다. 추리 장르의 재미는 사건에 대한 추측과 분석의 과정을 통해 범인을 찾는 데 있다. 이 드라마도 범인이 누구이며, 왜 살인을 하였는지에 대해 추적하는 것이 주요하다. 하지만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에서 좀 더 주목해 볼 문제는 범인 백상호(박훈)는 왜 범죄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이다.

 

출처: 아무도 모른다 공식홈페이지(https://programs.sbs.co.kr)
출처: 아무도 모른다 공식홈페이지(https://programs.sbs.co.kr)

 백상호는 연쇄 살인 사건의 공범이며, 또 다른 사건의 피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밀레니엄 호텔의 대표이면서 한생명 복지재단의 이사장이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호텔의 10층 전부를 사용하고 호화스러운 삶은 즐기면서도 사회배려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지원하고, 아픈 아이들의 수술비를 지원하는 등 봉사와 기부를 활발히 한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호는 약한 사람을 자신의 힘으로 지배하려는 욕망을 이루려는, 이중적인 면모를 가진 인물이다. 아무것도 기대 곳 없는 소외된 아이에게 자본을 쥐어 주고, 자신의 부를 지키기 위한 범죄의 동조자로 사용하는 그는 현대사회 악인 캐릭터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아무도 모른다>에서 상호는 왜 이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 드라마는 상호의 과거를 추적해서 제시한다. 상호는 어머니의 폭언과 폭력을 견디며 가난하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던 중, 서상원 목사(강신일)에게 발견되어 집으로부터 벗어난다. 새로운 삶을 찾게 될 것이라 기대와 달리, 상호는 서상원의 자기 합리화에 빠진 잘못된 신앙에 의해 또 다른 폭력을 당한다. 서목사는 상호를 선택받은 자라고 세뇌하면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누군가의 희생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도록 가르친다. 서목사의 거짓 믿음은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아이에게 고통스런 삶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닌, 학대의 연장으로 작동된다. 어머니의 학대에서, 굶주림에서 벗어났지만 상호는 굶지 않기 위해 성경을 암송하고, 서목사의 구원실천을 위해 살인사건을 도우며 청소년기를 보내야했다. 그렇게 성장한 백상호는 버림받았던 상처에서, 버려지지 않기 위해, 약한 사람을 짓밟고 생존하는 힘만을 키우는 어른이 되었다.

 

"아무도 모른다" 공식홈페이지(https://programs.sbs.co.kr)
"아무도 모른다" 공식홈페이지(https://programs.sbs.co.kr)

 우연히 상호의 비밀을 알게 되어 사건에 얽히게 된 은호(안지호)는 영진의 이웃에 사는 아이다. 은호의 엄마는 남자친구가 집에 오는 날에는 어린 은호를 밖으로 내보내고 방치했다. 영진은 자신의 문 앞 계단에 혼자 앉아 있는 어린 은호에게 말을 건 유일한 사람으로, 그 순간부터 은호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영진은 알콜 중독으로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는 엄마로부터, 엄마의 남자친구의 폭력으로부터 은호를 보호했다. 은호에 대한 영진의 관심과 배려가 과거 자신이 지키지 못한 친구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아이가 따듯하게 자랐으면 하는 영진의 바람은 진심이다. 어른들의 무관심에서 외로운 시간들을 보냈을 수도 있었지만, 누군가의 관심으로부터 소년은 따듯하고 배려 깊은 아이로 성장했다.

 

"아무도 모른다" 공식홈페이지(https://programs.sbs.co.kr)
"아무도 모른다" 공식홈페이지(https://programs.sbs.co.kr)

 백상호와 고은호의 어린 시절은 같았다. 부모의 무관심, 방치 속에서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고, 자신은 부모에게 귀찮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자존감을 지킬 수 없었던 아이들, 스스로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생존 본능만이 남은 소시오패스 백상호, 누군가의 진정한 관심과 배려 속에서 타인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방법을 알게 된 고은호, 그들은 다르게 성장했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배려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에서 형사 영진, 교사 선우(류덕환)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책임지려 애쓰는, 좋은 어른이다. 드라마에서 그들의 행동은 자신을 희생하며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려 한다. 하지만 좋은 어른의 이미지는 드라마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과도함의 판타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꿈꾼다. 현실에서 한 아이의 인생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는 없을지라도 작은 관심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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