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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의 시네마 크리티크] 남김없이 죽여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 - <악의 교전>
[최재훈의 시네마 크리티크] 남김없이 죽여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 - <악의 교전>
  • 최재훈(영화평론가)
  • 승인 2020.07.06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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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교전' 일본판 오리지널 포스터
'악의교전' 일본판 오리지널 포스터

이야기와 질문 사이에서 주춤대지 않는다. 오직 하드 고어 장르 영화에 관객들이 바라는 모든 것을 담아내겠다는 듯이 잔혹하고 무자비하다. 영화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성추행(사제지간의 성추행, 동성애 등)과 폭력 등을 버무려 놓지만, 이는 추악한 교육 현실을 고발하거나 문제의식을 담아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래서 선생의 연쇄살인과 조금도 망설임 없는 하드 고어 몰살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어떠한 정서적 교감이나 악인에 대한 분노를 담지 않는다. 죽어가는 학생들에 대한 동정심도 주인공이 사이코패스가 된 이유나 합당한 스토리텔링도 모두 생략한다. 쓸데없는 설명과 감정이입 없이 피칠갑 하드고어 장르의 관습적 쾌감에만 집중한다.

<악의 교전>은 막힘없이 쭉 뻗어나가는 영화다. 30분 넘게 사방으로 시신이 난도질 당하는 장면이 끝나면,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당황스럽지만 허무해할 일은 아니다. 관객들이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영화에 기대하는 모든 것들이 그 30분 안에 다 담겨있기 때문이다. 다카시 감독은 『검은 집』으로 알려진 기시 유스케의 동명 소설에서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아닌 주인공의 죄의식 없는 연쇄살인을 영상으로 재현해 낸다.

 

자신의 악행을 눈치 챈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14세 소년의 살인사건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시작은 꽤 우아한 느낌이다. 십 수 년 후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의 시공간은 어느 한적한 고등학교로 툭 옮겨온다. 선생 하스미(이토 히데아키)는 훈훈한 외모와 밝은 성격으로 선생들과 학생들은 그를 신뢰하지만, 정작 그는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 여고생과 밀회를 즐기거나, 협박한다. 본 모습이 들키면 바로 죽여버리면 된다. 걸리적거리는 인물은 바로 제거한다. 시체가 늘어나면서 하스미를 의심하는 시선도 늘어가고, 한두 명 없애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하스미는 학교를 봉쇄하고 전원 몰살을 결심한다.

자신의 제자를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는 하스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는 학생들까지 죽어나가지만, 동정심을 가지고 응원하게 되는 캐릭터나 감정이입이 되는 캐릭터를 애초에 만들어두지 않았기에, 관객들은 그저 학생들이 죽어나가는 장면을 맥없이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은 숨어있는 학생들이 무사히 탈출하기를 응원하기 보다는, 하스미가 곳곳에 숨어있는 학생들을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악의 교전>은 학생들 중 누가 살아남느냐의 서바이벌 게임이 아니라,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야 한다는 하스미의 서바이벌 게임이다.

1995년 <신주쿠 흑사회>로 장편 데뷔한 후, 1997년 쓸쓸한 야쿠자의 일생을 그린 <극도흑사회>, 1998년 동성애적 취향을 숨긴 야쿠자의 슬픈 멜로 <블루스 하프> 등 초기의 미이케 다사키 감독은 쓸쓸함과 상실감을 기본정서로 한 섬세한 야쿠자 영화를 선보인다. 하드보일드 액션영화 <데드 오어 얼라이브>를 거쳐 미이케 다카시를 세계적으로 알린 영화는 2000년 <오디션>이었다. 2001년 <비지터 Q>는 작정하고 만든 엽기 영화다. 오직 비디오카메라로만 촬영되어 더욱 묘하고 변태적인 느낌을 준다. 같은 해 <이치 더 킬러>는 하드 고어의 팬을 열광시켰다.

 

이후의 작품은 앞선 세 작품만큼 충격적이진 않다. 2003년 <착신아리>는 <링>과 <주온> 이후 귀신과 악령 영화가 유행하던 시기에 작정하고 만든 대중영화였다. 의뢰가 들어오면 그냥 촬영에 들어간다는 그의 말처럼, <착신아리>는 귀신 영화를 싫어한다고 공공연히 말해오던 그가 만든 귀신이 나오는 공포영화이다. 휴대폰의 저주, 예고된 죽음 등 <링>의 아류처럼 보이지만 다카시는 사다코 캐릭터를 베끼는 짓은 하지 않았다.

2010년 영국 영화잡지 토탈필름에서 역대 가장 불편한(Disturbing) 영화 25선을 선정한 적이 있는데, 불쾌감을 조성하는 기라성 같은 작품들을 사이에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 함께 미이케 다카시는 <오디션>과 <비지터 Q>로 10위권 안에 2개의 작품을 올렸다. 결과를 보고 <이치 더 킬러>가 왜 빠졌냐고 투덜댔다는 일화를 남겼다. 그의 작품은 보지 않았더라도 그의 작품의 제목 혹은 감독의 이름은 알 수 있을 만큼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하지만, 명성이 있다고 해서 그가 대중적인 감독인 것도 그의 작품이 대중적인 것도 아니다. 시간이 나면, 의뢰가 들어오면 영화를 찍는다는 그의 말처럼 70여 편이 넘는 연출 작품 중에는 비디오 영화도 있고, 어린이 영화, SF, 호러, 코미디, 멜로, 판타지 등이 마구 뒤섞여 있고 작품의 완성도도 편차가 심한 편이다. 영화제에서 다카시 감독의 영화는 순식간에 매진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시간낭비만 했다고 악평을 늘어놓는 관객들을 아주 많이 보았다. 다카시 감독의 영화는 그의 명성 때문에 보는 게 아니라, 그의 악취미와 그 정서에 대한 호기심과 그 잔혹함 속에 피어오르는 그의 장난기를 즐기면서 봐야한다. 즐길 자신이 없다면 미이케 다카시의 작품은 솔직히 평생 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사진출처_네이버영화_악의교전

 

글·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제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다. 2019년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2018년 이봄영화제 프로그래머, 제3회 서울무용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객석, 문화플러스 서울 등 각종 매체에 영화와 공연예술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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