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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 - 동성애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 - 동성애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0.07.0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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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의 BL과 GL의 간극

영화에서 여성 동성애는 성적 취향이나 욕망을 넘어서 사적 주체성에 대한 자각과 공적 현실에 대한 저항을 동시에 보여주는 해방의 서사로 재현된다. 메흐따 감독의 인도영화 <파이어>(Fire, 1996)에서는 남편과 소원해진 두 아내가 허탈감과 상실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여성 동성애를 통해 여성의 자아와 정체성을 찾는다. 이 영화에서 여성 동성애는 전통 윤리, 낡은 관습,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항거이자 진정한 자아를 확립하고 자율성을 회복하는 구원의 길로 재현된다.[1] 김태용·민규동 감독의 한국영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에서는 효신, 시은, 민아라는 세 명의 소녀를 통해 동성애의 적극성, 분열성, 주체성이라는 세 가지 재현방식을 보여준다. 세 여주인공의 동성애는 여성 간의 유대감을 강조하는 모성적 관계를 보여준다.[2]

영화에서의 남성 동성애와 여성 동성애를 바라보는 관객의 반응은 다양하다.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2005)는 광대 장생/공길과 연산군을 둘러싸고 동성애/이성애와 예술/정치의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연산군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준다. 한국 역사영화의 장르적 시초가 바로 신상옥 감독의 <폭군 연산>(1962)으로 시작되는 연산군 시리즈이다. 한국영화에서는 유독 연산군, 광해군 등 루저 왕들이 공적으로는 권력의 극과 사적으로는 연민의 극을 달리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왕의 남자>는 동성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에 대한 간접적, 은유적 암시를 통해 거부감을 줄이고 소학지희를 통해 전통 놀이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 영화는 다시 보기 열풍을 일으키며 중년, 노년 세대의 호응을 받으며 천만 관객 영화로 등극한다.

한편, <올드보이>(2003)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이 만든 <아가씨>(2016)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조선/일본, 여성/남성, 전통/근대에 대한 대위법과 함께 완성도 있는 스타일 연출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관람할 당시에 노년세대의 경우 김민희와 김태리의 성행위 장면에서 “더러워서 못 보겠다!”며 극장문을 뛰쳐나가는 관객도 있었다. 여성 동성애 성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가 기성세대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켰고 다소 왜색이 짙은 스타일도 마찬가지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김태리는 이 영화에서 연극판에서 갈고 닦은 연기력으로 신인 영화배우답지 않은 연기를 보여 신인여우상을 휩쓸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2017)은 안드레 애치먼의 2007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 각본의 영화이다. 이 영화는 <아이 엠 러브>(Io sono l'amore, I Am Love, 2009)와 <비거 스플래쉬>(A Bigger Splash, 2015)를 잇는 구아다니노의 ‘욕망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24살의 청년과 17살 소년의 만남을 통해 남성 연인들 사이의 정서적 이행을 보여준다. 결국 미국 청년이 이성애의 길을 택하지만 변치 않는 애정을 보여주고, 소년을 둘러싼 부모 등 동성애에 대한 공감의 시선을 보여주는 색다른 작품으로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위의 영화와는 사뭇 다르게 10대 동성애 이야기이지만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가 바로 최근에 개봉한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The Miseducation of Cameron Post, 2018)이다. 이 영화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10대 소녀 카메론이 여자친구 콜리와의 동성애 관계를 들켜 교회가 운영하는 동성애 치료 교육원에 강제 입소하여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카메론의 동성애를 바라보는 가족, 학교, 교회의 억압적인 시선과 그녀의 동성애를 치료하려는 교육이 자신을 미워하도록 훈련하는 정서적 학대라고 주장하는 카메론이 극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학교: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학교에서의 교육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명확히 하며 동성애자를 비정상의 인물로 규정하며 소외시키고 배척한다. 카메론은 학교에서의 동성애 행위가 드러난 뒤 집의 가족과 학교의 친구, 교사로부터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된다. 영화의 전반부 졸업파티에서 카메론은 콜리와의 성행위 장면을 남자친구 제이미에게 들키게 되고, 반성하는 콜리를 떠나 카메론은 혼자 교육원으로 강제 입소 당한다. ‘창피를 줘도 괜찮아요. 나는 당신을 사랑하니까.’라고 속삭이는 듯한 카메론과 자신의 여자친구의 동성애 성행위를 보고 ‘이런 미친’이라며 분노하는 제이미는 사뭇 다른 결을 보여준다.

카메론과 제이미가 불편한 기색으로 포옹하면서 졸업파티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과 카메론과 콜리가 은밀하고 감미로운 성행위를 나누는 장면이 대조를 이룬다. 또 카메론과 제이미가 어색하게 춤을 추는 장면과 카메론과 콜리가 즐겁게 서로의 몸을 껴안고 춤을 추는 장면이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대조를 통해 카메론에게 동성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본성의 문제라는 것을 드러낸다.

카메론과 콜리의 애무 장면에서 두 사람의 영상과 함께 카메론의 시점과 내레이션이 들어간다. 이러한 연출은 두 여성이 서로 교감을 느끼지만 카메론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나중에 카메론과 콜리의 견해 차이를 암시한다. 나중에 도착하는 콜리의 편지에서 콜리는 카메론에게 자신의 우정을 이용했다고 비난한다. 이에 카메론은 콜리가 자신보다 나은 애이고 자신이 우정을 이용해서 상처를 준 것이 사실이라며 반성한다. 자신을 역겨워 하는 건 10대들의 특권이다. 콜리와 카메론은 ‘원한의 인간’과 ‘가책의 인간’의 한 쌍을 이룬다.

 

교육원: 선과 악의 경계에서

교육원에서의 교육은 선과 악의 경계를 명확히 하며 동성애자를 죄인으로 단정하며 비난하고 억압한다. 카메론은 가족 교회에서 운영하는 동성애 치료 교육원에 강제 입소당하며, 동성애를 반성하는 노력을 안 한다는 이유로 교육원의 친구, 교사, 목사에게 비난을 받는다. 중반부 교육원에서는 릭 목사와 리디아가 설교와 교육에서 오나성을 완성하고 자신의 죄를 밝히는 빙산을 기록하라고 카메론에게 강요한다. 릭 목사도 과거 동성애자였으나 누나인 리디아의 선교로 인해 현재 이성애자 생활을 하고 있다.

부모의 지나친 집착이나 결핍이 동성애를 불러일으킨다는 친구의 말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소녀, 소년들은 대부분 부모와 문제를 겪고 있다. 마크는 아버지의 애정 결핍으로 힘들어하고, 제인은 어린 시절 히피인 부모들로 인해 마약과 집단 섹스에 노출되었고, 아담은 정치인 아버지로 인해 집안의 오점으로 여겨지며, 카메론은 돌아가고자 하지만 이모로부터 허락을 받지 못한다. 에린은 기도와 체조를 통해서, 헬렌은 찬송가를 통해서, 마크는 성경을 통해서, 카메론은 상상을 통해서 이성애자가 되고자 노력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릭 목사의 후레시 불빛은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는 엄격한 도덕의 잣대를 표현한다. 카메론이 과거 회상에서 자신의 여자친구 콜리와 키스하고 상의와 하의를 벗기며 애무하는 장면에 빠질 때 불빛이 비친다. 또 카메론이 자신의 남자친구 제이미와의 키스 장면에 몰입하며 이성애자가 되고자 노력할 때 갑작스럽게 주의가 흐트러지면서 밝은 하늘이 나온다. 그리고 카메론이 교육원의 여교사와의 키스 장면을 상상할 때도 후레시 불빛에 의해 현실로 빠져 나온다.

 

길: 도덕에서 벗어나 윤리로

길은 도덕에서 벗어나 윤리로 나아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성적 욕망을 인정하는 일탈의 삶을 보여준다. 도덕이 선/악의 논리를 내세우며 당위성의 문제로 단죄한다면, 윤리는 가능/불가능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능력의 문제를 제기한다. 교육원의 이성애 강요 교육에서 에린·헬렌은 순응하고, 마크는 저항하고, 카메론·제인·아담은 일탈한다. 후반부에 에린이 갑작스럽게 카메론에게 성적 애무를 하고, 마크는 아버지의 거부에 자신의 성기를 절단하는 자해 행위를 하고, 카메론, 제인, 아담은 몰래 교육원을 떠난다.

카메론은 조사관의 면담에 자신을 미워하도록 교육하는 정서적 학대를 고발한다. 에린은 카메론의 몸을 애무하고 손가락을 넣어 오르가즘을 느끼게 만들지만, 자신은 동성애를 극복하고 싶다며 키스를 거부한다. 마크의 아버지는 마크의 연약함을 거부하기 때문에 집에 오겠다는 마크의 요청을 거절한다. 이에 마크는 ‘나의 약점을 자랑하려 합니다. 나의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역경도. 나는 약할 때 오히려 강해지니까요.’라며 눈물을 흘린다. 마크는 아버지의 거부에 자신의 성기를 절단하고 표백제를 붓는 자해행위로 맞선다.

아담은 자신에게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개의 영혼이 있는데 자신의 남성성이 여자 영혼을 죽인다고 고백한다. 제인은 의족에 대마초를 넣고 다니며 카메론의 죄책감을 덜어주며 그녀의 여자친구를 대신 욕해준다. 주 대표 육상선수였던 카메론이 운동장을 달리는 장면에서 핸드헬드로 흔들리는 영상은 카메론의 갈등을 표현한다. 마크가 눈물 흘리는 모습(미디엄숏)과 이를 지켜보는 카메룬의 모습(미디엄숏)의 교차 편집은 마크에 대한 카메론의 연민과 공감을 표현한다. 카메론, 제인, 아담 세 명이 산 위에서 빙산 그림을 불태우고 떠나는 장면은 억압에 대한 저항을 암시한다.

 

동성애, 자아와 정체성을 찾아서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에서 동성애 주체성의 재현방식은 세 가지 모습을 통해 사회 규범에 대한 저항을 보여준다. 첫째, 의족을 끼고 있는 제인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장 당당한 모습을 통해서 가장 적극적인 레즈비언 주체성을 보여준다. 둘째, 종교에 심취한 에린은 동성애적 욕망과 이성애적 지배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분열적 주체성을 보여준다. 셋째, 카메론은 새롭게 자신의 동성애적 주체성을 자각하는 인물로 나온다.

인물들은 동성애를 통해 사회규범에 저항한다. 마크는 연약함에 대한 아버지의 비난에 자신의 성기를 절단하는 극단적인 자해행위로 자신의 남성성을 제거하고 이성애를 거부한다. 헬렌과 릭 목사가 자신을 억압한다면, 에린은 표면과 이면으로 분열되며, 카메론은 가족과 학교로부터 소외된다. 카메론, 제인, 아담은 대마초를 피우고 산에 올라가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결국은 동성애 치료 센터에서 일탈한다. 그래서 이러한 인물들의 일탈은 동성애 청소년들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이 영화에서 집, 학교, 교육원(교회)이 억압의 주체라면, 동성애 청소년들은 억압의 대상이 된다. 청소년들의 탈주는 동성애 요소가 성장과 연대로 치환되는 지점이다. 이 영화에서 동성애 여성의 재현은 다양한 의미를 보여준다. 카메론은 동성애가 드러나면서 과거 공동체에서의 소외와 현재 공동체에서의 억압의 대상이 된다. 교육원에서는 이성애를 선으로 규정하는 반면, 동성애를 악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동성애 청소년들의 가출은 전통적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이 된다. 집, 학교, 교육원 등 폐쇄적 공간은 이성애를 규범화하는 공간으로 작용한다. 카메론은 콜리, 남자친구, 이모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 독립적, 능동적 여성 주체로 나아간다. 카메론은 동성애 친구들과의 연대를 통해 이성애의 시각에서 동성애를 죄와 악으로 규정하는 것에서 저항하며 수평적 관계로서의 섹슈얼리티의 해방의 서사를 꿈꾸며 일탈한다.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은 권선징악이나 해피엔딩의 결말과는 거리가 멀다. 마크는 아버지가 자신을 만나기를 거부하자 자신의 성기를 자르고, 자신의 성기를 자르고서야 비로소 자신을 찾아온 아버지와 대면하게 된다. 카메론은 자신이 사랑하는 콜리가 동성애의 잘못을 카메론의 잘못으로 전가시키고, 부모 대신 의지하는 이모는 집으로 가고 싶다는 자신의 부탁을 거부한다. 카메론, 제인, 아담 세 사람은 공동체 내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길을 떠나는 것이다. 바로 공동체의 규범을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욕망과 본성을 거부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카메론의 일탈은 바로 자아와 정체성을 찾는 여정이다. 카메론의 가출, 길을 떠나는 행위는 동성애를 억압하는 것이 교육원의 책임자 남매라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카메론도 자신의 동성애를 인정하고 여성으로서의 자아와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진정한 자아를 확립하고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참고자료
[1] 이은구, 「메흐따(Deepa Mehta) 감독의 영화 <불>(Fire)에서의 여성 문제」, 『남아시아연구』, 18권 3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연구소, 2013, 193-211쪽.
[2] 김명혜·박현아, 「영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 나타난 동성애 주체성 재현방식」, 『미디어, 젠더 & 문화』, 4권,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2005, 41-71쪽.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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