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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은 미치지 않았다, 뻔뻔할 뿐
등록금은 미치지 않았다, 뻔뻔할 뿐
  • 임은희
  • 승인 2011.05.0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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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등록금이 사회적 문제로 연일 관심을 받고 있다. 예년 같으면 학기 초 대학 안에서 본부와 학생들의 문제로 마무리됐을 텐데, 올해는 양상이 다르다. 대학생들은 학생총회를 성사하고 등록금 문제를 대중적으로 논의하는가 하면, 학기 중반이 된 지금까지 등록금 동결을 요구하며 싸움을 이어가는 대학이 있다. 시민단체에서는 ‘반값 등록금’이 시행될 때까지 1인시위를 이어가겠다고 하고, 예비 대학생을 둔 초·중·고 학부모들도 등록금 해결을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한 해 대학 교육비 2천만 원 시대
대학 등록금이 사회적 의제로 확산된 이유는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은 국·사립을 막론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비싸다. 2010년 기준 연간 등록금은 국립대 444만원, 사립대 754만원이다. 국립대 최상위권 등록금은 사립대 수준에 다다랐고, 사립대 최상위권 등록금은 계열별로 1천만 원을 넘어섰다. 등록금은 공식적인 교육비이고 여기에 교재비, 추가로 부담하는 실험실습비, 그리고 기숙사비, 용돈, 학원비까지 합치면 연간 학생 1인당 교육비는 2천만 원에 이르게 된다.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이 이처럼 비싼 이유는 현대적 의미의 대학이 들어선 해방 직후에서 비롯된다. 해방 이후 국민의 교육열은 폭발적으로 표출됐는데, 미군정은 국·공립대보다는 사립대 유치를 통해 이를 해결했다. 연희(연세대)·보성(고려대)·이화(이화여대) 등 일제시대 전문학교들이 대학으로 승격됐고, 경희대·홍익대·한양대·영남대 등 사립대가 줄줄이 설립됐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사립대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된 원인이다.

이 과정에서 미군정은 교육에 필요한 비용의 대부분을 학부모에게 떠넘기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영세한 자본으로 우후죽순 대학을 설립했던 사립대 운영자들은 국가 지원은 거의 받지 못한 채 대학 운영비의 대부분을 학생 등록금으로 충당했다. 교육받는 학생들이 비용을 부담하라는 수익자 부담 원칙이 지난 60년 이상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 정책의 뼈대를 이루게 된 배경이다.

이런 대학 설립 역사는 오늘날 대학들이 등록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운영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사립대는 재정수입의 3분의 2를 등록금으로 충당하고, 국립대도 전체 수입의 5분의 2를 등록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국고보조금은 사립대 경우 전체 재정의 3%에 불과하며, 국립대라 하더라도 47.5%에 그친다(사립대 2009년, 국립대 2008년 기준).

수익자 부담 원칙에 근거한 우리나라와 달리, 프랑스·독일 등 다수 유럽 국가들은 무상 수준으로 대학 교육을 하고 있다. 프랑스는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1791년 제정된 헌법에서 “모든 시민에게 공통적이며,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무상교육을 실시한다”는 조항을 명문화한 이래 1960년대부터 전면적인 대학 무상교육을 실현했다. 독일은 1970년부터 모든 대학에서 수업료가 사라졌다. 이 나라들에도 최근 등록금이 도입됐지만, 등록금·학교병원비·의료보험료 등을 포함해 연간 6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대학 등록금이 지금과 같이 폭등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1989년부터 실시된 ‘등록금 자율화 조처’다. 이전까지는 정부가 적정 등록금 수준을 제시하고 권장하는 정책을 실시해 등록금인상률이 물가상승률에 미달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등록금 자율화 조처로 사립대들은 일방적으로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사립대 등록금은 1990년대 중반까지 매년 15% 안팎씩 인상됐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때인 1998∼99년 등록금이 동결됐으나, 2000년부터 다시 물가인상률의 2∼5배씩 매년 인상됐다. 그 결과 사립대 등록금은 인문사회 계열 기준으로 1989년 128만 원에서 2010년 659만 원으로 5배 인상됐고, 공학 계열은 145만 원에서 849만 원으로 6배 인상됐다.

우골탑의 뿌리는 ‘수익자 부담 원칙’
매년 폭등하는 등록금은 점차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하지만 정부는 ‘등록금 자율화’라는 미명 아래 관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가 인상률을 통제해온 국·공립대 수업료마저 2002년부터 자율화했다. 물론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등록금이 동결됐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등록금이 미치는 경제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조성된 암묵적 규제였지,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선 대책이 아니었다.

정부가 사립대 예산 편성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을 담아 매년 발표했던 ‘사립대학 예산편성 지침’도 2004년부터 폐지했고, 2008년부터 적립금 규제를 완화해 주식·펀드 상품 등에 투자하게 했다. 대학 건물에 대한 감가상각비를 법제화해 대학들의 적립금 축적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이와 같은 정부 정책은 대학 재정 부담을 가중해, 등록금 인상을 부추길 것으로 우려된다.

1990년대 중반부터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은 대학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확산시켰다. 여기에는 정부는 물론이고 사립대 운영자, 보수 언론, 정부 출연 연구기관까지 가세했다. 이에 따라 대학들은 세계화와 국제경쟁력 확보를 기치로 무한경쟁을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소요되는 예산은 대학이 자체적으로 부담해야 했다. 부족한 재정은 ‘등록금 인상’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불길에 기름 끼얹는 ‘자율화’ 조처

▲ <무제>, 2005-루이즈 부르주아

더욱이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정부 재정 지원을 ‘선택과 집중’에 따른 방식으로 전면화했다. 이에 따라 지원을 많이 받는 대학은 더 높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원을 못 받는 대학들은 재정이 부족하다며 등록금 인상을 주장했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인상된 등록금은 교육 여건 개선을 통한 대학 경쟁력 확보에 사용되지 않았다. 2011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전임교원 1인당 재학생 수는 2000년 32.2명에서 2010년 36.2명으로 오히려 4명 늘어났고, 대학 도서관 좌석당 재학생 수도 2002년 3.9명에서 2010년 4.1명으로 증가했다. SCI(과학기술논문 색인지수) 논문 1편당 피인용 횟수도 2000∼2004년 세계 30위(2.62회)에서 2005∼2009년 세계 30위(3.47회)로 제자리걸음이었다.

인상된 대학 등록금은 어디에 사용된 것인가? 물론 10년 전과 비교해 교원이 늘었고, 장학금이 늘었으며, 실험실습비도 늘었다. 하지만 앞에서 제시한 교육 여건 지표를 보더라도 지난 10년간 대학 등록금이 2배가량 인상된 이유가 교육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교육 외적인 부분에 등록금이 새나가는 것이다.

개인에게 비용 떠넘기는 신자유주의
대표적인 것은 외형 확장이다. 우리나라 사립대들은 연중 ‘공사’를 한다. 너무 자주 건물을 고치고 새로 짓는다. ‘개교 ○주년 기념관’ 등의 이름으로 수백억 원짜리 호화 건물이 들어서기도 한다. 호화 건물은 교수, 직원, 학생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도 없다.

건물 공사만이 아니다. 2009년 현재 우리나라 사립대들이 교육용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토지 규모는 여의도 면적의 18배에 달한다. 그중에는 대학 캠퍼스와 거리가 멀어 과연 교육용 목적으로 얼마나 활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땅도 많다. 이 많은 땅을 두고도 대학들은 캠퍼스 조성을 목적으로 또 다른 땅을 매입하고 있다.

문제는 상당수 대학들이 법인 돈이 아닌 교비회계로 땅을 사고 건물을 짓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 한 해 동안 사립대들이 토지 매입과 건물 공사 등 자산적 지출에 사용한 금액은 1조2667억 원이다. 대학 예산의 10분의 1에 해당한다. 그런데 사립대 법인이 자산적 지출에 지원한 비용은 1366억 원에 불과했다. 교비회계의 대부분이 등록금으로 구성되는 만큼, 등록금으로 대학 자산을 불리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등록금으로 무분별한 자산 증식
적립금도 등록금 인상의 주된 요인이다. 대학들은 미래의 투자를 위해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자금을 축적할 수 있다. 하지만 사립대들은 경쟁적으로 적립금을 쌓고 있다. 2010년 2월 말 기준, 전체 사립대(대학·전문대학·대학원 포함)가 보유한 적립금은 10조 원(법인적립금 포함)을 넘어섰다. 1년간 전체 사립대 학생들이 등록금을 내지 않고 다녀도 되는 금액이다. 10년 전보다 대학당 평균 3배가량 늘어난 금액이다.

더욱이 적립금은 불합리한 예산편성을 통해 조성된다. 예산을 책정할 때 수입은 적게 잡고 지출은 많이 책정한 뒤, 결산에서 차액을 남겨 이 돈을 적립금으로 쌓는 관행을 반복하고 있다. 기부금과 법인지원금이 적은 상황에서 적립금 재원의 대부분은 등록금이다. ‘묻지마’식 적립금 축적 경쟁이 등록금 인상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 2010년 1670만 명의 임금노동자(면세 소득자 포함) 중 월급이 100만∼200만 원인 사람이 40.1%를 차지했다. 전체 인구 10명 가운데 4명은 연간 급여를 모두 모아도 자녀 1명을 대학에 보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고교 졸업생의 80%가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에서 대학 등록금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민생 문제다.

‘반값 등록금’, 문제 해결의 열쇠
이명박 정부가 획기적인 등록금 대책이라며 ‘취업 후 학자금 대출제도’를 내놓았지만, 이 정책은 현재의 등록금 부담을 미래로 연기한 것에 불과하다. 높은 이자율과 이자에 이자가 붙는 복리 방식은 상환 부담을 더욱 가중할 것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마련한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도 한계가 있다. 인상률 상한제는 등록금 인상률을 직전 3개년도 물가인상률의 1.5배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한 정책인데, 이는 과도한 인상률을 제한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1천만 원에 달하는 고액 등록금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려면 등록금을 낮추어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안은 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시작해야 한다. 반값 등록금은 2006년 한나라당에서 당론으로 발표한 이후 사회적으로 공론화됐다. 민주당도 반값 등록금 정책을 당론으로 확정했고, 민주노동당은 일찌감치 연간 300만원 수준의 등록금을 주장했다.

전체 대학생을 대상으로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려면 5조∼6조 원이 필요하다. 다행인 것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모두 정부 차원의 고등교육재정 확충 필요성을 인식하고 각각 ‘고등교육재정 교부금법’을 발의했다는 것이다. 두 법안은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내국세의 약 8% 수준으로 고등교육재정을 확보하자는 면에서 유사하다. 두 법안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예산은 약 10조 원이다. 현재 고등교육재정이 약 5조 원이므로, 추가로 5조 원가량 확보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반값 등록금을 실현할 수 있고, 고등교육재정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1% 수준으로 늘어나 OECD 회원국 평균에도 도달한다.

반값 등록금이 실시돼 사립대에 국고보조금이 대폭 확충되면, 우리나라 사립대도 ‘정부 책임형’ 사립대로 거듭날 수 있다. 불합리한 예산편성 관행을 근절하고, 법인전입금 부담 기준을 명문화하며, 적립금 한도액을 설정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 사립대 재정 운영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글 · 임은희
저서로 <미친 등록금의 나라>(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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