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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의 문화톡톡] 디지털 단말(端末)이라는 문화 놀이터
[류수연의 문화톡톡] 디지털 단말(端末)이라는 문화 놀이터
  • 류수연(문화평론가)
  • 승인 2020.07.20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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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신하는 독서, 다시 읽고 쓰는 일에 대하여(1)

일상을 잠식한 디지털 단말(端末, terminal)

무어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1965년 인텔의 공동 창업자인 고든 무어(Gorden Moore)마이크로 칩의 처리 능력은 18개월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라고 말한 데서 비롯된 용어이다.1) 한때 그것은 기술의 가공할 발전 속도를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그 의미가 무색해져버렸다. 18개월은 이미 너무나 긴 시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의 유효기간을 가늠하는 것은 무의미해진 지 오래다. 그 누구도 최신의 기준을 가늠할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스마트폰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최신 기종으로 소개되었던 제품들이, 경쟁상품의 등장과 동시에 구식 폰이 되어버리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뿐이랴.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디지털 매체들도 이미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보다 현실적인 실감은, ‘최신이라는 말이 가진 효용성이 불과 1-2개월 정도면 끝나버린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변화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매체가 도달하는 지점, 그것은 다름 아닌 단말(端末)’이다.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의 시작과 함께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물들이 디지털이라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이루는 단말로 변신하고 있다. 이미 생활의 필수품이자 최대의 장난감이 되어버린 스마트폰부터 TV와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 이동수단인 자동차나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생활 속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그 본래의 용도와 함께 디지털 정보를 전달하는 단말의 기능을 수행하는 시대가 되었다.

AI 스피커를 통해 날씨를 확인하고, 터치 한 번이면 문을 열지 않고도 냉장고 속을 확인할 수 있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버스의 위치를 확인하고, 퇴근하면서 배달앱을 통해 저녁거리를 미리 주문한다. 촘촘하게 조직된 통신망으로 연결되어 쉴 사이 없이 디지털화된 데이터를 연결해주는 단말 없이는 우리의 일상은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 정도이다.

그런데 이러한 디지털 네트워킹의 시작과 끝을 작동시키는 힘은 의외로 사소하다. 바로 우리의 손끝이다. 여기서 단말(terminal)의 또 다른 의미는 종착역임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이 종착역이 곧 시발역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진법에 갇힌 디지털 네트워크 속의 모든 정보들은 우리의 손끝으로 수신(受信)된다. 하지만 그 수신을 가능하게 만드는 명령어 역시 그 손끝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그것을 터치라 부른다. 그것이야말로 이 거대한 디지털 세계를 가능하게 만드는 유일한 명령어가 되고 있다. 놀랍지 않은가? 이 첨단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은 여전히 가장 인간적이라는 사실이 말이다.

 

터치의 세계에서 마주친 또 다른 빈곤

언뜻 보면 디지털 세계만큼 평등한 곳도 없다. 사적인 성격이 강한 스마트폰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디지털 단말기는 그것을 작동하는 모든 터치를 동일하게 취급한다. 어른이든 아이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하나의 터치는 하나의 수신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수신(受信)이 비교적 동일하게 이루진다는 점 때문에 우리가 종종 간과하는 것이 있다. 이 단말의 자체가 지독하게도 차별적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단말의 소유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여기서 디지털 빈곤의 문제가 탄생한다.

디지털 세계에서의 불평등은 디지털 리터러시 개념으로부터 환기되었다. 처음 디지털 리터러시가 문제시 되었던 것은 디지털 미디어의 과도한 사용에 따른 윤리적인 지점들이었다. 스마트폰을 필두로 광범위한 디지털 미디어가 일상에 남용되는 것에 대한 우려였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디지털 리터러시의 문제는 오히려 사회, 경제적인 문제로 환기되고 있다. 그것은 디지털 정보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이 날로 가중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사진1. 디지털 리터러시 이미지. 출처: 교육부
사진1. 디지털 리터러시 이미지. 출처: 교육부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수업이 확대됨에 따라 디지털 빈곤의 문제는 보다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디지털로 제공되는 정보의 양이 늘어날수록, 어떤 디지털 환경과 어떤 단말을 소유했느냐에 따라 정보량에 현격한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가용할 수 있는 디지털 단말기의 수준, 무선데이터의 양에 따라 학습효과도 천차만별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따라서 이제 디지털 세계에서의 상대적 빈곤은 결코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다. 비단 한 국가 내에서의 문제만이 아니다. 전체 세계로 확장했을 때는 그 격차는 더 심각하다. 팬데믹은 이 격차를 더 벌려 버렸다. 선진국의 아이들이 그나마 온라인을 통해서 비정상적이나마 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반해, IT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은 국가의 아이들에게는 이제 교육은 정말 불가능한 꿈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디지털 세계의 불평등은 그대로 한 개인과 사회의 또 다른 빈곤이나 소외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실제로 미국 딜로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개인 신용을 점수로 평가하게 될 2030년에는 디지털화로 인해 주요국의 노동 인구 중 1명은 새롭게 빈곤에 빠지게 된다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2)

 

놀이의 회복, 문화 놀이터로서의 디지털 단말

하지만 이러한 디스토피아적 전망은, 우리가 디지털이라는 세계를 지나칠 정도로 사회·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일한 정답도 아니다. 디지털 세계와 그곳으로 소통하는 단말은 하나의 자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놀이이다.

 

사진 2. 마인크래프트 속 청와대. 출처: 머니투데이
사진 2. 마인크래프트 속 청와대. 출처: 머니투데이

디지털의 본질을 살펴보기 위해서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기계 안에는 여러 가지 첨단기술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첨단기술이 융합하여 나타내고자 하는 최고의 시너지는 바로 놀이 그 자체이다. 그간 스마트폰 개발자들은 더 빠른 속도와 더 높은 화질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TV에서 나오는 스마트폰 광고를 떠올려 보자. 사진이 얼마나 근사하고 멋지게 찍히는지, 게임을 얼마나 속도감 있게 즐길 수 있는지, 좋아하는 노래를 얼마나 고품질의 음향으로 감상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이 주를 이룬다. 이 모든 기능은 바로 놀이를 위한 것이 아닌가?

디지털 단말을 대표하는 스마트폰은 애초에 일을 위한 기기가 아니라 즐거움을 위한 기기”3)이었다. 전화기 본래의 기능인 전화는 이미 부수적인 기능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디지털 불평등이 초래하는 상대적 빈곤감이 그나마 적은 영역도 바로 이 문화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손끝에 수신되는 문화콘텐츠는 저렴하면서도 유용한 편이다.

따라서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디지털 단말이 가진 놀이의 기능은 보다 강화될 필요성이 있다. 현재 많은 과학자들이 예견하듯이 본격적인 의미의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한다면, 디지털 미디어에서 놀이의 기능 강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화예술 비즈니스의 많은 부분은 이미 지금까지보다 더 적극적으로 디지털이라는 세계를 재영토화 하고 있다. 독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실 독서라는 문화적 행위는 디지털이라는 세계에 적응함에 있어서 가장 보수적이고 속도가 느린 영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변화의 속도는 급속히 빨라지고 있다. e-book 시장의 확산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웹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웹 콘텐츠 시장에서 그 지분을 넓혀가고 있는 웹툰이나 웹소설, 종이책이 아닌 웹으로 발간되는 잡지들. 그리고 최근 들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오디오북까지. 독서는 이미 변화했고,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 단말에 보다 최적화된 형태를 찾아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독서를 변화시켰고, 또 독서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그 답은 달라진 독서의 방식을 추적함으로써 추정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글에서는 그 질문에 답해보고자 한다.

 

- 계속 -

 

참고문헌

1) 강상현, 유비쿼터스 신화와 모바일 미디어, 모바일 미디어,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2쪽 참조.

2) 2030년 주요 20개국 54천만명 디지털 빈곤층전락 우려, 연합뉴스, 2019.4.22.

3) 이장주, 스마트폰은 사람을 마음을 어떻게 바꿀까, 십 대를 위한 미래과학 콘서트, 청어람미디어, 2018, 62.

 

 

: 류수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문학/문화평론가. 인천문화재단 이사. 계간 <창작과비평>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고, 현재는 문학연구를 토대로 문화연구와 비평으로 관심을 확대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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