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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아메드의 진심 : <소년 아메드>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아메드의 진심 : <소년 아메드>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0.07.27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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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에는 <소년 아메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가 연출한 <소년 아메드>는 2019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작품이다. 다르덴 형제는 작품마다 매번 첨예한 사회적 이슈와 개인의 도덕적 딜레마를 절묘하게 다루면서 국제적 명성을 쌓아왔다. <소년 아메드>에서는 13세 소년 아메드를 통해 유럽 사회의 이슈인 이슬람 극단주의를 다루고 있다. 벨기에는 유럽에서 이슬람교 인구 비율이 높은 나라로, 2015-16년에 유럽에서 잇달아 발생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사건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게임에 빠져있던 소년 아메드(이디르 벤 아디)는 이슬람 교단의 지도자 ‘이맘(Imam)’의 영향으로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로 변신한다. 이맘은 자폭 테러로 순교한(것으로 추정되는) 아메드의 사촌을 ‘알라의 길을 따르다 목숨을 잃은 자’라며 숭배하고, 오랫동안 아메드를 가르쳐온 돌봄 교실 교사 이네스(미리암 아케듀)를 배교에 신성모독을 했다며 비난한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이슬람교의 소멸을 기도하고 있다며 아메드를 부추긴다. 이맘의 세뇌에 따라 점점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져든 아메드는 이네스를 해치려다 실패하고 소년원에 수감된다. 그럼에도 아메드는 이네스를 제거할 계획을 포기하기는커녕 교화된 척하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아메드는 이네스 선생이 여자라는 이유로 악수를 거부한다.
아메드는 이네스 선생이 여자라는 이유로 악수를 거부한다.

다르덴 형제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과정 중에 있으므로 이상주의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어른이 된 급진주의자들은 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메드의 나이를 13세로 설정했다”면서, “변화의 여지가 남아 있는 모호한 연령대의 소년을 통해 개인이 자신의 광기를 과연 극복할 수 있을지의 문제에 주목했다. 종교적 신념은 무척 복합적인 문제인데, 우리는 무엇이 그로 하여금 종교에 대한 망상을 포기하고 다시 일상적인 삶으로 복귀하게 만들지를 고민했다”고 말한다(「씨네21」 (2019.06.05.)). 따라서 이 영화에서는 아메드의 테러 계획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놓고 ‘서스펜스’를 증폭하면서, 그가 변화의 여지를 보이는 지점까지 이야기를 밀어붙인다.

 

아메드는 자폭 테러로 순교한 사촌의 사진을 보면서 더욱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져든다.
아메드는 자폭 테러로 순교한 사촌의 사진을 보면서 더욱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져든다.

아메드는 종교적 신념을 최우선 가치에 두면서 자신의 순수함을 오염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비난하고 거부한다. 극단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세상을 선악으로 나눈 다음, 자신이 믿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을 악으로 몰고 배척하는 것이다. 아메드는 자신을 바깥 세계로부터 완전히 격리하려고 시도하지만, 이네스를 해치려는 계획을 이루기 위해 소년원 외부의 농장으로 사역을 나가게 된다. 거기서 아메드는 비슷한 또래의 소녀 루이즈(빅토리아 블록)를 만나게 되고, 그녀가 애정을 표시하며 키스를 하자 혼란에 빠진다. 이맘의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신체와 행동을 철저하게 통제해온 아메드는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그는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루이즈를 만나려면 그녀를 개종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메드는 부재한 아랍계 아버지가 벨기에인 백인 엄마를 이슬람으로 개종시키지 못한 배교자라고 비난해 왔기에 자신이 그 실패를 답습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루이즈가 단호히 개종을 거절하자, 아메드는 자신의 죄를 만회하고 굳건한 믿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는 사회복지사를 따돌리고 이네스를 해치기 위해 그녀의 거처로 간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주로 핸드헬드 카메라를 통해 인물의 행동을 세밀하게 추적해 왔던 것처럼, 아메드가 어렵게 흉기를 구한 다음 이네스가 거처하는 건물의 문이 모두 닫혀 있자 담을 타고 올라가는 과정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어떤 망설임 없이 오로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아메드는 그것이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는 의식조차 전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아메드가 순교를 각오한 듯 목표에 집착할수록 오히려 그의 종교적 신념에 이미 균열이 시작되었다는 반증처럼 보인다.

 

비슷한 또래의 소녀 루이즈를 만나면서 아메드의 종교적 신념에는 균열의 조짐이 생긴다.
비슷한 또래의 소녀 루이즈를 만나면서 아메드의 종교적 신념에는 균열의 조짐이 생긴다.

결국 아메드는 바닥으로 추락하게 된다. 이전까지 아메드에게 지하드 수행자(테러리스트)와 테러 희생자들의 고통이나 죽음은 추상적인 것이었다. 때문에 사회복지사가 “사람을 죽이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니다”라고 할 때, 아메드는 이네스를 해치려 했던 행위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추락하면서 그는 죽음의 공포를 맛보고,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다치면서 아픔을 체험한다. 이때 아메드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13세 소년답게 ‘알라’가 아니라 ‘엄마’를 부른다. 그리고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온 이네스에게 “용서해 달라”고 사과한다. 영화 첫 장면에서, “여자와 악수하면 안 된다”면서 이네스의 악수를 거부했던 아메드는 그녀의 손을 잡는다. 그는 비로소 자신의 행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 것일까? 이네스가 겪은 공포와 고통을 이해하게 된 것일까? 그러므로 이제 그는 극단주의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될 것인가?

영화는 여기까지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언제나 ‘열린 결말’이며, 관객에게 결말의 의미 또는 그 다음 이야기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인물들이 타협하거나 화해하기 어려운 지점에서 영화가 마침표를 찍는다 해도 이미 어느 정도 긍정적인 방향이나 도덕적인 관점이 제시된 다음이다. 따라서 아메드의 변화에 대한 질문의 답은 주어져 있는 것 같다.

아메드가 살인을 저지르려고 악전고투하는 과정을 보면서, 로제타가 자살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로제타>(1999)가 생각났다. 이 영화에서 다르덴 형제는 로제타가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그녀를 둘러싼 벨기에 사회의 문제를 드러냈다. 반면, <소년 아메드>에서는 아메드가 어떤 사회, 경제적 환경에 처해있기에 이맘을 추종하게 되었는지 다루지 않는다. 아버지가 부재한 아메드가 정상적인 롤 모델을 갖지 못해 이맘을 따르게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다르덴 형제는 “이러한 소년의 태도에는 그가 처한 경제적, 사회적 조건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한 사람이 이 같은 광기에 물들고 급진화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다”(위의 「씨네21」 인터뷰)면서, ‘광기의 극복 가능성’에 집중하고 있다. 이것이 비난거리가 될 수는 없겠지만, <로제타>를 봤기 때문에, 로제타 또한 이탈리아계 엄마를 두고있기 때문에, 아메드의 경우와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다르덴 형제가 로제타와 아메드가 처한 문제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룰 때,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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