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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지의 문화톡톡] 예능의 일상화 - 무한 예능의 시대
[이은지의 문화톡톡] 예능의 일상화 - 무한 예능의 시대
  • 이은지(문화평론가)
  • 승인 2020.08.03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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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서 예능이 비처럼 쏟아져

선악과가 에덴동산에서 태초의 인간을 추방했듯이, 잡스의 애플은 근대와 현대 사이에 기거하던 인간을 근대로부터 사실상 추방하는 데 성공했다. 1인 1스마트폰 보급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진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을 수시로 받아들이고 또 내보내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포스트모던 시시포스’가 되었다.

그러나 손 안의 작은 화면이 각자의 영혼을 충실하게 붙들고 있는 동안에도 텔레비전의 영향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텔레비전에 정주하던 프로그램들이 스마트폰의 스트리밍 서비스와 연동하여 텔레비전 시청률과 스마트폰 조회수를 동시에 노리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연예인들은 텔레비전에 노출되면서 키워온 영향력을 바탕으로 개인 채널을 개설하여 수익을 올리고 있다. 텔레비전은 스스로 좀 더 큰 스마트폰이 되거나 스마트폰을 좀 더 작은 텔레비전이 되게 함으로써 대중을 향한 소구력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집안에서 가족 구성원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거실’에 텔레비전이 놓이는 경향이 말해주듯이, 텔레비전은 여러 사람을 동원하는 매스미디어의 성격을 띤다. 지난 시절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이러한 매스미디어의 성향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2000년대 이전의 프로그램은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선보이는 고전적인 극장의 형태를 재연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 당시에 코미디 프로그램은 여러 편의 짧은 콩트로 구성되어 있었고, 예능 프로그램 또한 서로 간에 큰 유사성이 없는 여러 편의 코너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통칭하는 ‘예능’에 상응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출현한 것은 2000년대 이후로서, 국내에서는 10년 이상 장수했던 MBC의 <무한도전>이 대표적이다. 이전 예능과 달리 <무한도전>에서는 예능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세계와 캐릭터를 형성하며 그에 상응하는 서사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러한 예능이 수용되는 방식은 다분히 상호적이다. 기존의 극장식 예능이 (극장식이라는 데서 유추할 수 있듯이) 연극이나 단편소설과 같이 비교적 닫힌 구조의 완결된 작품들을 선보였다면, <무한도전> 이후의 예능은 현실과 예능, 출연진과 캐릭터가 일치하고 또 불일치하기를 수시로 반복하며 열린 구조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출처 : MBC
출처 : MBC

즉 2000년대 이후에 출몰하여 지금까지 텔레비전을 장악하고 있는 예능의 성격은 텔레비전이 가상의 독립된 장이 아니라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고 종국에는 가상에 현실의 자리를 내줄 수도 있게 하는 가변적인 매체임을 확인시켜준다. 닐 포스트먼의 표현을 빌리자면 2000년대 이전의 텔레비전이 “단순한 기계”로서의 테크놀로지에 좀 더 가까웠다면, 2000년대 이후의 텔레비전은 “그 기계가 창조해내는 사회적‧지적 환경”1)으로서의 매체에 훨씬 더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다.

텔레비전이 개발되어 보급되기 시작한 1950년대에, 독일의 철학자 귄터 안더스는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듯이’ 텔레비전을 통해 현실이 집집마다 공급된다고 표현하고 있다. 텔레비전-대량생산-소비대중의 연관관계를 정확히 통찰하고 있는 유명한 이 글에서, 그는 대량생산체제의 관심은 “집결된 대중”이 아니라 “가능한 많은 수의 구매자 대중”이며, 가능한 많은 이들이 “동일한 욕구”를 기반으로 “동일한 것”을 사도록 하는 데 있다고 진단한다.

텔레비전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 까닭은 우리를 대중적 상품의 소비자로 ‘생산’해내기 때문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대중적 상품의 소비자는 자신의 소비 행위를 통해 대중적 인간을 생산하는 과정의 협력자”가 된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는 순간 우리는 휴식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 상품을 소비하고픈 욕구, 혹은 그러한 욕구를 가진 인간을 만들어내는 노동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2) 이처럼 휴식과 노동을 혼재시킬 뿐 아니라 휴식마저도 노동에 봉사하게 만드는 유연하고도 폭력적인 전치는 예능을 통해서 가장 훌륭하게 완수된다. 현실의 긴장을 적절히 와해시키는 웃음을 동반하는 예능이야말로, 텔레비전이 기존 생산체제의 유지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영원불멸한 사회 질서로 각인시키는 도구임을 효율적으로 망각시킨다.

 

가상은 더 생생하게, 현실은 더 납작하게

닐 포스트먼이 매체란 텔레비전과 같은 구체적인 ‘기계’가 아니라 바로 그 기계가 창조해내는 ‘환경’이라고 한 까닭은, 기계를 작동시키는 메커니즘이 종국에는 기계를 둘러싼 다른 모든 것에도 두루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매체 환경인 까닭은 “텔레비전이 세상을 연출해내는 방식이 세상이 적절히 규정되는 방식의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텔레비전 화면을 벗어나더라도 동일한 메타포가 지배”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텔레비전이 보급된 1980년대 미국사회에서 미국인들이 “생각을 교환”하는 대신 “이미지를 교환”하게 되었음을 포착해낸다.3)

매스미디어로서 텔레비전은 한편으로는 많은 수의 사람을 동시다발적으로 끌어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로 하여금 지극히 개별적으로 텔레비전을 체험하게 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대중은 광장이나 극장 같은 단일한 장소에 운집함으로써 공동의 체험을 공유하고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을 학습할 수 있었다. 반면 매스미디어 시대의 대중은 동일한 콘텐츠를 체험하면서도 물리적으로는 전혀 접촉하지 않을 수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가브리엘 타르드는 이러한 가상의 대중을 기존의 대중과 구별하여 ‘독자층Publikum’으로 개념화하였다. 동일한 취향이나 정치적 지향을 갖고 신문이나 채널을 소비한다면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은 사람들끼리도 동일한 의견을 공유하는 가상의 대중이 될 수 있다.

가상의 대중을 잠재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취향을 추구하는 행위는 철저히 개별적으로 이루어진다. “외부의 조작에 흔들리지 않고 나의 취향 선호에 따라 확실하게 추구하는 나의 독자적 선택”이 기실은 일면식도 없고 내가 선택한 적도 없는 가상의 대중이 내리는 선택과 다르지 않다. 즉 “각자가 홀로 결정”하지만 그 결정은 소름 끼칠 만큼 동질적이다.4) 이에 대해 귄터 안더스는 현실이 이미지로 가공되고 해석되어 끊임없이 공급되면서 개개인이 “창문 없는 모나드”가 되어 “우리에게 우주가 반사”되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오로지 나 자신의 표면에 반사되는 현실만을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세계를 재구성함으로써 “나의 표상은 ‘나를 위한 표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5)

나를 통해 반사되며 ‘나를 위한 표상’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매끄러운 세계에는 애초에 갈등이나 논쟁이나 모순이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공적인 것은 본질상으로 사적인 견해의 반영일 뿐”6)이게 된다. 이는 가장 공적인 매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텔레비전의 편성표가 지극히 사적인 일상을 다루는 예능으로 채워지는 현상을 설명해준다. 이는 예능의 내용과 별개로 그 포맷을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과거의 예능에서 다수의 방청객이 동원되었던 데 반해 오늘날의 예능에는 방청객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형식상의 변화는 텔레비전이 제공하는 이미지를 통해 ‘나를 위한 표상’을 보다 효율적으로 가공해내는 데 기여한다.

 

출처 : MBC
출처 : MBC

가령 2013년부터 방영중인 MBC <나 혼자 산다>의 경우, 출연자들이 각자 자신의 일상을 촬영한 뒤 그 결과물을 방송국에 함께 모여 모니터링하는 포맷을 취하고 있다. ‘혼자 산다’는 동일한 생활조건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비롯하여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각자의 일상을 함께 들여다보며 공감하거나 조언과 충고를 나누는 것이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 하에 임금은 낮아지고 일자리는 줄어드는 한편 소비지향은 극대화됨으로써 필연적으로 증대하는 1인가구의 수는, 이러한 형식의 예능 또한 꾸준히 늘어나게 하고 있다.

비록 텔레비전에서 영향력을 갖는 연예인이 출연할지라도 그들이 혼자 사는 일상은 시청자의 혼자 사는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그것은 ‘연출되고 가공된 일상’의 이미지라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소비된다. 혼자 사는 일상의 처연함이나 핍진함마저도 현실이 아닌 매체가 제공하는 가상의 이미지 속에서 보다 극대화된다. 현실에서 스스로 일상을 감각하는 것보다 현실을 극적으로 연출한 이미지를 통해 일상을 감각하는 것이 보다 생생하고 풍부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체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제 그러한 체험을 경험적인 현실이 아니라 가상현실에서 구하게 되었다.”7)

 

 

1) 닐 포스트먼, 「쇼 비즈니스의 시대」, 『매체이론의 지형도 I』, 클라우스 피아스 외 편저(안성찬 외 공역),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8, 357쪽.

2) 귄터 안더스, 「유령과 매트릭스로서의 세계 -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대한 철학적 고찰」, 같은 책, 337~339쪽 참조.

3) 닐 포스트먼, 같은 책, 368쪽 참조.

4) 군터 게바우어, 스벤 뤼커(염정용 옮김), 『새로운 대중의 탄생』, 21세기북스, 2020, 270~282쪽 참조.

5) 귄터 안더스, 같은 책, 341쪽~344쪽 참조.

6) 군터 게바우어, 스벤 뤼커, 같은 책, 261쪽.

7) 노르베르트 볼츠(김태옥‧이승협 옮김), 『미디어란 무엇인가』, 한울, 2011, 72쪽.

 

글 : 이은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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