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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천국>이 소환한 영화관의 추억
<시네마 천국>이 소환한 영화관의 추억
  • 송영애 | 영화평론가
  • 승인 2020.08.31 18: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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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19일 현재,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1988년 영화 <시네마 천국>은 상영 중이다. 국내에서는 1990년 여름 첫 개봉 이후 여러 차례 재개봉 됐는데, 이번에는 지난달 세상을 떠난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를 추모하며 대표작 4편과 함께 재개봉됐다. 

 

<시네마 천국> 포스터

모리코네의 영화음악으로도 유명한 <시네마 천국>은 대표적인 추억 소환 영화다. 주인공 살바토레(토토)는 유명 영화감독이다. 알프레도의 사망소식을 듣고 30여 년 전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토토가 추억하는 1940~1950년대 시칠리아의 일상을 보면 가족, 친구, 이웃, 첫사랑, 동네 골목, 학교, 영화관 등을 떠올리게 된다. 시간도 많이 흘렀고 지구 반대편이라 모습은 다르지만, 영화 곳곳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이 자리한다. 

오랜만에 다시 본 <시네마 천국>은 개인적인 추억뿐만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영화의 역사도 소환했다.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천국극장’이라는 이름의 영화관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영화의 역사를 담았다. 영화 속 관객들이 관람하는 영화들 중 영화사적으로 유명한 영화들도 보이고, 가톨릭 교구의 영화검열 현장도 목격할 수 있다. 알프레도의 목소리를 통해 옛날 영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시네마 천국>은 이탈리아 개봉 버전(감독 버전), 해외 개봉 버전에 따라 이야깃거리가 많은 영화다. 그 중 이 영화가 소환한 영화사 몇 가지를 살펴보려 한다. ‘팩트체크’가 곁들여진 옛날이야기가 될 듯하다. 그리고 영화관의 변천사도 살펴보려 한다. 

 

<시네마 천국> 스틸

영사실, 영사기, 무성영화  

관객들에게 영사실은 낯선 공간이지만, 알프레도와 토토에겐 일상공간이다. 커다란 영사기에는 필름 롤이 걸려있고, 조각 필름들이 쌓여있다. 영사기 쏘는 빛은 사자머리 모양의 구멍을 통해 스크린에 비친다. 영사기사는 그 옆 작은 창을 통해 상영관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일하고 이야기도 나눈다. 

영화 초반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무성영화 시기에 영사 기사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한다. 이 장면은 책으로만 배운 역사의 빈틈을 실감하게 했다. 무성영화 시기 카메라와 영사기에는 모터가 달리지 않았다. 카메라 기사는 1초에 20프레임 안팎을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를 돌려야 했고, 영사기사는 촬영된 속도와 비슷하게 영사기를 돌려야 했다. 촬영 속도보다 빠르게 영사하면 화면 속 움직임이 패스트 모션이 되고, 느리게 영사하면 슬로우 모션이 되어버리니 주의가 필요했다. 영화사를 공부하며 알게 된 사실이었으나, 2시간 내내 긴장하며 영사기를 돌려야 했던 영사 기사의 고생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책 속의 기록이 순식간에 공감되는 현실로 다가왔다.

카메라와 영사기에 모터가 달린 것은 1920년대 후반부터였는데, 이 변화는 영사 기사의 일을 덜어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영상과 사운드가 서로 일치되는 게 중요해진 유성영화 시기가 온 것이다. 일정한 속도로 촬영, 녹음, 영사하는 게 중요했기에 모터가 장착됐다.  

 

필름, 화재

영사기에 모터가 장착됐다고, 영사 기사가 마냥 편해진 건 아니었다. 알프레도는 늘 불이 날까 신경을 쓴다. 토토에게도 필름에 불이 붙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가르친다. 언뜻 보면, 이후 발생하는 화재 사고에 대한 복선으로만 여길 수 있는데 이는 명백한 팩트다. 초창기 영화 필름에는 쉽게 불이 붙었다. 가연성이 높은 질산염 성분 때문에 종종 화재가 발생했고,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영화관 화재 뉴스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시네마 천국>에서는 두 번 불이 난다. 토토가 집에 모아둔 필름에도 불이 붙지만, 다행히 금방 진압됐다. 그러나 두 번째 큰불은 영화관 ‘시네마 천국’에서 난다. 상영 중이던 필름(버스터 키튼의 얼굴)에서 일어난 불꽃은 순식간에 영화관을 폐허로 만든다. 토토가 정신을 잃은 알프레도를 힘겹게 구출해 내지만, 알프레도는 시력을 잃고 만다. 이후 영화관은 재건돼, ‘신 시네마 천국(Nuovo Cinema Paradiso)’, ‘신 천국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재개관되고 영사실은 어린 토토의 일터가 된다.

필름은 영화 탄생의 필수조건이었다. 카메라 조리개를 통해 들어온 이미지가 ‘필름’이라는 미디어에 저장되지 않으면 영화 탄생 자체가 불가능했다. 1970~80년대 비디오 테이프라는 새로운 저장 미디어가 등장했을 때도 화질 차이 때문에 필름은 계속 사용됐으나 어느새 디지털 저장 미디어로 교체됐다. 2020년 현재 국내 영화관에서도, 촬영 현장에서도 필름은 사라졌다. 영화 필름을 현상할 수 있는 곳도 없다.

촬영·영사 장비가 급속하게 교체되면서 디지털 상영이 대세가 됐다. 9년 전만 해도 스크린 중 절반 이상에서 필름 상영이 가능했지만,(1) 2019년 통계에서 필름 상영 스크린은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대신 3D, 4D, IMAX, ScreenX 등 특수상영관이 집계되고 있다.(2) 세계적으로도 2019년 현재 영화관의 디지털화는 97%에 이르렀다.(3) 

 

<시네마 천국> 스틸

영화관의 변화는 어디까지?  

영화관은 오랫동안 꾸준히 변화돼 왔다. 영화전용관이 없던 시기엔 공연장이나 어두운 창고면 됐다. 점차 영화전용관이 생겨나고, 여러 차례 위기도 맞는다. 1960년대 TV가 대중화되고 1980년대 홈비디오가 등장하면서, 영화관은 이제 영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아니게 됐다. 자연스럽게 관객이 줄고 많은 영화관이 사라졌다. <시네마 천국>에서 ‘시네마 천국’도 문을 닫았고 철거된다. <시네마 천국>을 처음 개봉했던 호암아트홀도 사라졌고, 서울 신사역에 있던 영화관 ‘시네마 천국’도 사라졌다. 

이후 쇼핑몰과 결합한 형태의 멀티플렉스로도 변화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8년에 첫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 강변점이 개관했는데, 2019년 현재 우리나라 전체 스크린 3,079개 중 93.7%인 2,885개가 멀티플렉스 스크린이다.(4) 그 사이 또 많은 영화관이 사라지거나 몰라보게 바뀌었다. 영화관은 다양한 역할도 한다. 토토와 마을 사람들에게 그랬듯, 영화관은 영화를 보는 공간만이 아니라 만남의 공간, 오락의 공간, 휴식공간이다. 무더위 속에서는 도심의 피서지가 되기도 한다. 영화관람 전후 활동도 매우 중요하다. 패키지로 모여 있는 마트나 백화점에서 쇼핑을 할 수도 있고, 식사를 할 수도 있다.  

올해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전 세계적인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일상에서 멀어졌다. 개봉을 미룬 영화도 많았다. 영화관을 전처럼 가지 못하면서 뭐가 제일 아쉽고 불편한지 생각해봤다. 영화를 못 보고 있는 건 아니다. IPTV, OTT 등 영화를 볼 곳은 많다. 그러나 컴컴한 공간의 큰 화면이 그립다. 영화관 때문만은 아니지만, 줄어든 친구들과의 만남, 외식도 그립다. 영화관도 포함돼 있던 일상이 아쉽다. 

<시네마 천국>를 통해 영사실, 무성영화, 필름, 영화관의 변천사를 살펴봤다. 그중엔 관객들은 변화를 체감하기 힘든 기술적인 변화도 있었다. 사실 관객에게 영화관은 언제나 일상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영화관은 변하기는 해도, 사라지지는 않을 듯하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사와 문화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1) 필름 상영이 가능한 스크린이 전체 스크린의 57.2%인 1,130개였다. ‘2011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영화진흥위원회, 34쪽.  
(2) ‘2019년 전국 극장 현황’,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 중 산업통계 메뉴, 
https://www.kofic.or.kr/kofic/business/board/selectBoardDetail.do?boardNumber=2&boardSeqNumber=49935
(3) ‘Theme Report 2019’, MPA, p.14.
https://www.motionpictures.org/research-docs/2019-theme-report/
(4) ‘2019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영화진흥위원회,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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