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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드라이브> ― 차가운 시선과 잔인한 폭력의 대비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드라이브> ― 차가운 시선과 잔인한 폭력의 대비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0.09.0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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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세상의 폭력과 죽음 속으로

2020년 9월 3일에 재개봉한 <드라이브>(Drive, 2011)는 젊은 영화감독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에게 2011년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덴마크 출신의 레픈 감독은 <푸셔> 3부작, <발할라 라이징> 등으로 독창적인 연출세계를 보여준 바 있다. <드라이브>는 차 외에는 관심이 없던 주인공 드라이버(라이언 고슬링)가 여주인공 아이린(캐리 멀리건)을 만나면서, 브레이크 없는 질주로 세상의 폭력과 죽음을 맞닥뜨리는 이야기이다.
 

정체성의 변화와 죽음의 상징

<드라이브>의 전반부는 정체성의 변화와 죽음의 상징을 보여준다. 주인공 드라이버는 카멜레온과 같은 정체성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는 본업 카센터 정비사와 부업 영화 스턴트맨으로 일하지만, 무장강도 드라이버로 명성을 떨친다. 그가 항상 입고 다니는 전갈이 그려진 흰색 잠바와 경찰복 영화 의상은 범죄와 사랑을 동시에 보여주는 그의 모순된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의 흰색 잠바는 시간이 흐를수록, 사건이 진행될수록 점점 붉은 피로 물들어가면서 죽음의 상징을 보여준다. 무장강도 드라이버로 일할 때 항상 5분만을 기다려주며, 무장강도와의 거리두기, 뛰어난 운전 실력, 냉정한 판단으로 원칙을 지킨다. 무장강도 드라이버로서 주인공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운전을 하며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감정이 실리지 않은 드라이브를 보여준다.

<드라이브>에서 주인공의 시선은 밤의 범죄와 낮의 로맨스에서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주인공은 무장강도 드라이버로서 거리를 바라보는 장면, 무장강도를 돌아보는 장면, 경찰차를 보는 장면 등에서 모두 침착한 표정과 차가운 시선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모습은 다양한 앵글과 화면로 구성되지만, 자신과는 무관한 사물을 보는 일방향의 시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관되다. 하지만 주인공은 여주인공과 함께 있을 때 쌍방향의 시선, 다양한 표정 변화, 은은하게 비치는 햇살, 남녀의 투숏, 따뜻한 색조 등을 통해 시선과 감정의 교감을 보여준다.

 

 

 

사랑/폭력과 정보/죽음의 확대
 

<드라이브>의 중반부는 사랑/폭력과 정보/죽음의 확대를 보여준다. 주인공은 여주인공에 대한 사랑으로 여주인공과 그녀의 아들, 남편까지 보호하기 위해서 점점 폭력의 범위를 확대해 간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사랑과 폭력은 공존이 불가능하다. 아이린의 남편 스탠다드가 아이린과 만난 날이 ‘내 인생 최고의 날’이라고 말하고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드라이버도 아이린과 만난 날이 ‘내 인생 최고의 날’이라고 고백하고는 떠나간다.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주인공은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외로운 경계인, 아웃사이더의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이버가 아이린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스탠다드와 벌인 전당포 무장강도 사건은 스탠다드의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 드라이버가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블랜치, 쿡, 섀넌, 버니, 니노의 순서로 차례대로 정보를 캐내어 간다. 반면에 사건의 배후에 있는 니노는 동료 버니에게 도움을 요청해 블랜치, 쿡, 섀넌의 순서로 살해해 간다. 정보의 대가는 죽음으로 되돌아온다.

<드라이브>는 편집과 더블링을 통해 유사성과 차이를 대비시킨다. 편집은 주인공과 여주인공의 교감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강조한다. 아이린이 출소한 남편 스탠다드의 환영 파티장에서 흥겨운 분위기와 맞지 않는 슬픈 눈빛으로 드라이버를 그리워한다. 드라이버는 같은 시간 옆방의 떠들썩한 파티와는 달리 혼자 외롭게 아이린을 그리워한다. 아이린과 드라이버의 바스트숏 교차편집은 다른 분위기의 공간을 대비시키는 동시에 교감하는 남녀의 감정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더블링은 전반부의 무장강도 사건 장면과 중반부의 전당포 무장강도 사건 장면을 비교, 대조한다. 첫 장면과 마찬가지로 드라이버는 5분만 기다린다는 원칙을 밝히고, 두 번째 인물(스탠다드)이 늦게 나온다. 하지만 첫 장면과 다르게 스탠다드가 전당포 주인공에 살해당하고, 드라이버와 블랜치는 다른 차의 추격을 받게 된다. 첫 장면으로 인해 지식을 습득한 관객은 인지로 인해서 기대하게 되지만 두 장면 사이의 간극으로 놀라게 된다.

 

폭력/사랑과 탐욕/죽음의 상관관계

<드라이브>는 폭력/사랑과 탐욕/죽음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폭력과 사랑을 반비례의 관계를 보여준다. 드라이버는 아이린에 대한 사랑으로 아이린과 그녀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폭력과 살인을 행하지만, 그 폭력과 살인으로 아이린의 사랑을 잃게 된다. 드라이버는 백만 달러의 거금과 여주인공에 대한 사랑이라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이게 되고, 결국 여주인공에 대한 사랑을 선택하면서 백만 달러를 포기하고 여주인공을 위협하는 일당들을 전부 살해한다. 돈에 대해 탐욕하는 인물(니노, 쿡 등)은 죽는 반면, 돈에 대해 초월하는 인물(드라이버, 아이린 등)은 생존한다.

<드라이브>는 카메라 움직임, 상징, 편집을 통해 사랑/폭력의 대비와 죽음의 확대를 보여준다.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린을 위협하기 위해 나타난 니노의 부하를 맞닥뜨리는 장면에서, 드라이버는 아이린을 뒤로 물리고는 뒤돌아서서 아이린에게 키스를 한 후, 그 남자를 폭행하여 죽게 만든다. 그 장면을 목격한 아이린이 두려워하며 뒤로 물러서고, 서로를 쳐다보던 두 사람을 가로막으며 엘리베이터가 닫힌다. 이 장면은 슬로우모션을 통해 애틋한 사랑과 잔인한 폭력을 대비시킨다. 주인공의 폭력은 여주인공의 생명을 구하지만 여주인공의 사랑을 잃게 만든다. 전갈이 그려진 흰색 잠바는 드라이버가 폭력과 살인에 점점 연루될수록 붉은 피로 물들게 되면서 폭력과 죽음을 상징한다. 중식당에서 버니와 드라이버가 협상을 하는 장면에서, 버니는 돈만 넘겨주면 여자는 무사하지만 드라이버는 평생 쫓겨 다닐 것이라고 말하자, 드라이버가 그 조건을 받아들인다. 중식당에서 두 사람이 눈빛을 주고받는 장면과 주차장에서 버니가 드라이버를 칼로 찌르는 장면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준다. 이 교차편집을 통해 버니가 그 합의를 지키지 않을 것이며, 드라이버가 이를 짐작하고 있다는 것을 눈빛으로 보여준다.

 

시선의 일탈과 폭력의 확대

<드라이브>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스타일적 특성은 시선의 의미작용과 폭력의 미학이다. 주인공의 차가운 시선과 잔인한 폭력이 대비를 이룬다. 과묵한 주인공은 말을 하지 않고 계속 세상을 차가운 시선으로 지켜보면서 거리를 둔다. 주인공의 시선이 유일하게 머물고 마주 보는 인물이 바로 여주인공이다. 주인공은 세상과 철저하게 거리를 두면서 생존을 지켜왔지만, 사랑하는 여주인공을 지키기 위해 세상에 뛰어들어 폭력과 살인을 행하고, 그 폭력과 살인의 대가로 여주인공의 사랑을 잃고 고독한 방랑자로 떠나간다. 이런 점에서 <드라이브>는 아이러니한 결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여운이 길게 남는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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