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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0.09.1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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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단상’

코로나19가 수도권 중심으로 다시 창궐했다. 차마 3단계로 가지 못해 아슬아슬하게 2.5단계 로 버티기를 이주일간 하고 있다. 이 말을 쓰는 지금은 분노를 지나 우울한 평정심을 무력하게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이번 집단 전염에 대한 분노는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다수의 사람들이 일상의 문턱에 다시 들어서려고 조심조심 생활을 점검하고 또 점검하는 순간에, 대규모 예배와 집회 강행으로 그동안 노력과 희망을 한순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를 박해하고 음모한다고 말하며 집단 모임을 강행한다고 선포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시점에 의대 증원 문제로 의사들이 파업을 선언하고 나섰다. ‘우리’ 밖에 없는 우리들로 인해 대면하게 되는 파괴 앞에서 드는 분노와 절망이었다. 이렇게 밖에 사고할 수 없고, 이렇게 밖에 행동할 수 없는 것일까? 그들의 우리를 보다보면 결국 부끄러워진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조금 다른 ‘우리’를 보여준다. 영화는 일본 패전 후 직접적인 가해 세대가 아님에도 일본에 의해 착취당하고 죽음을 당한 동아시아 사람들을 ‘우리’로 여기며 일제 전범기업을 연쇄폭파한 사건과 사람들을 다룬다. 일본인이지만 국민국가인 폐쇄적 우리를 넘어서 일본이 행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책임을 물어 앞장 선 기업을 응징한 것이다. 여기에는 그때도 지금도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열린 우리가 존재한다.

‘우리’는 실체가 명확하지 않지만 ‘우리’가 명시적인 순간이 있다. 주로 공격과 방어의 순간이다. 외부를 향해 공격하고 내부를 위해 방어하는 그 경계가 우리의 영역인 것이다. 우리를 저열하게 단합하고 확인하게 하는 순간이 편을 가른 스포츠나 싸움과 전쟁인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성숙된 ‘우리’는 그 경계와 테두리를 이권이나 편가르기로만 활용하지 않고 성찰과 연대로 풀어간다. 거기에 작동하는 기제 중 하나가 부끄러움이다. 소속감은 애정과 충성을 빙자한 맹목적인 방어와 공격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몸담고 있는 곳에 대해 수치심이 일어날 때도 확인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릇된 행동을 하는 나를 비롯한 내 가족과 동료가 부끄럽고, 길을 잘못 가고 있는 내 나라가 부끄러울 때 나는 ‘우리’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부끄러워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일본 역사 내에서 이미 판단 종결되어 지워진 혹은 금기시된 사건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권력자의 시선에서 동아시아반일전선의 행위와 그 이면의 자기성찰적 부끄러움은 지워내야 할 사건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사건을 일본에 반기를 드는 반일투쟁으로 간주하고, 자국의 기업을 폭파한 테러 혹은 폭탄마니아의 악행으로 기록한다. 즉 맥락과 의미를 거세하고 얼굴 없는 절대악 테러범으로 낙인찍고 금기 목록에 가둬 버린 것이다. 영화는 일본조차 묻어버린 그 사건을 40여년 흐른 후, 한국의 감독이 역사 다시 쓰기를 시도한다. 한국의 일용직 노동자의 삶을 기록하는 감독은 한국 건설산업을 추적하다 일본 일용직 노동자를 만나고, 한 나이든 활동가로 인해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알게 된다. 감독이 역사를 파고들었다기 보다는 범국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에게 사건이 찾아온 것이다. 이후 일본의 역사학자 후지이 다케시와 만남으로 영화는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다.

영화는 그 자체로 ‘우리’를 재설정하는 여정이다. 한국의 노동자와 일본의 노동자가 연결되고,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과 일본의 역사학자가 함께 만든 ‘동아시아’ 영화이다. 무엇보다 영화의 언어로 ‘우리’를 유연하게 엮어내고 있다. 영화는 두 제작자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감독은 현재 시점에서 영화의 여정과 사건의 개요를 들려주고, 역사학자는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과거 각 부대의 선언문을 낭독하며 그들의 목소리와 얼굴을 구체화한다. 사람을 죽인 테러범으로서 절대악에 가두지 않고, 깊은 생각과 고민을 가진 실천적 인물들로 숨결을 불어넣는다. 무엇보다 영화는 과거 사건을 파고들어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사건 자체를 다루면서 그 맥락과 의미를 짚어낸다. 영화와 역사는 접속이 불가능한 자료와 인물을 상상하며 지워지고 왜곡된 사건을 메워간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사건은 영화로 제작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공식 기록에서는 테러범으로 판단종결 된, 그리하여 자료의 편향과 부재 그리고 접근 불가능한 사건 당사자들을 두고 기록 기반의 사람과 사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작업은 한계가 명확했다. 영화는 그런 한계를 영화적 상상력으로 근사하게 타계해나간다. 하나는 감옥에 종신형을 살고 있어 실제 만남이 불가능한 인물들의 삶을 추적하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과 연대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렇다고 연대한 인물들을 만나 사건과 인물에 대해 섣부르게 조각 맞추기를 하거나 인물을 신화화하거나 신파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담담하고 건조하게 인물들의 삶을 추적하는 여정은 일본의 현재 풍광을 담고, 연대한 인물들의 자기 목소리와 현재 삶을 담는다.

이처럼 영화는 과거의 순간과 현순간이 만나는 일종의 변증법적 이미지를 통해, 축척된 시간의 겹을 들추는 대신에 현재의 표면에 놓여있는 시간들을 상상하게 한다. 과거 사건의 표면을 가장 간결하게 정보와 목소리로 풀어내고, 사건에 연대한 사람들의 현재 모습에 접속해 그들의 신념과 얼굴을 보여준다. 영화가 우리를 엮어내는 또 다른 방법이다. 표면을 통해 과거와 현재, 사건 당사자와 사건 연대자, 감독과 대상을 함께 이어내고 소리로 상상하고 이미지로 읽어내게 한다. 일명 시공간을 가르는 초연결의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 담긴 풍광 속 안개와 흐르는 이미지는 사건과 역사를 표상한다. 안개가 가려진 불투명한 과거사는 이동하는 이미지를 통해 유기적인 역사를 드러낸다.

 

영화는 철도와 기차를 매개로 지속적으로 흐르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사건을 특정 인물과 특정 시간에 가두지 않고 현재로 다중으로 펼쳐나간다. 영화는 현재 자리에서 과거 사건을 불러오기도 하고, 과거 사건을 현재로 흐르게 하는 쌍방의 이동과 시간성을 갖는다. 나아가 사건을 현재 자리에서 해석하고 반성하는 성찰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십대에 감옥에 들어가 생을 마감한 마사시의 언어 속에서 자신이 벌린 일의 대의를 넘어서 사건의 결과를 대면하며 수단으로서 틀렸다는 점과 가해자로서의 스스로를 책망하는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어른의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삶의 여정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 만큼이나 선택에 대해 어떻게 사고하고 대처하는가에서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영화는 어쩌면 이 시대에 부재하는 어른의 상을 찾아가는 여정인 지도 모르겠다.

우회하였지만, 영화는 제목 그대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있는 그대로 알아가며 알린다. 감독의 높임말 내레이션처럼 가르치는 자세가 아니라 알아가면서 알려주고, 무조건적 옹호나 비판이 아니라 사건의 의미와 결함 그리고 맥락을 일깨운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국가나 민족에 반하는 반일에 초점을 맞춘 사건이 아니라 국가의 기능과 결함을 지적하고 반성하고자 하는 아래로 부터의 실천이었다. 진짜 폭력은 힘을 가진 자가 힘을 가지지 않은 자의 폭력성을 전면화할 수 있다는 것도 일깨운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들의 분노와 환멸을 드러내는 방식이 아니라, 어떻게 세계와 관계 설정을 다시하고 돌아보고 나눌 것인가를 논하게 한다. 요즘처럼 작디작은 우리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어떻게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 어떤 어른과 어떤 우리가 가능한 지를 꿈꾸게 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제공

 

글·이승민

영화평론가. 현장 비평가이자 기획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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