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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칼럼] 시무 7조, 일곱 개의 개소리 반박
[서포터즈 칼럼] 시무 7조, 일곱 개의 개소리 반박
  • 민현기(르디플러)
  • 승인 2020.09.15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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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진인 조은산'이란 사람이 쓴 정부 비판적인 청와대 국민청원 '시무 7'가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가 되었다. 글은 봐주기 힘든 고색창연한 상소문 형태의 문체를 하고 있는데,(반절은 그 문체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일 테지만) 언론이 대대적으로 소개한 것으로 그 안에 약간의 통찰이나마 담고 있으리라는 기대는 배반되고 웬 멍청하고 둔중한 철봉 같은 '시무'를 일곱 개나 늘어놓아 생긴 철창 우리 속에 갇혀 열심히 심벌즈를 쳐대는 한 마리 침팬지 밖에는 목격되지 못한다.(글을 쓴 본인은 침팬지가 아니라 '진인' 먼지로 여겨지길 원하는 것 같다) 통찰의 부재는 '부재' 그 자체에서 이것이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나머지 반절의 이유를 알 수 있게 한다. 부동산 정국의 연장선상에서 정부 비판의 불쏘시개적 필요일 것이다.

7개의 시무라 불리는 '주장'들은 누견이라 부르기도 누추해서 차라리 변견이라 조어하여 부름이 마땅할 정도로, 어떻게 이렇게 멍청한 소리를 저리도 당당히 할 수 있는가에 관하여 이것이 과연 인류의 결과물인지에 관한 린네적 생물 분류의 고뇌에 빠져들게 한다. 심지어 내용이 새롭거나, 혹은 기존 내용에 자신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가미되어 있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 내용에 있어서 인터넷 댓글이나 저잣거리에서 소주 까마시며 나누는 보수적이고 편향된 오류들의 앵무새적인 재생산 한 것에 가까워 이런 멍청한 소리를 반복하기 위해 정성스레 상소의 형식을 택한 '침팬지''심벌즈' 표출의 의도까지 궁금할 지경이다.(정확히는 의도보다 지능이 궁금하다고 해야 하겠지만 남의 지능을 의심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무'는 둘 다 가히 초등학생 수준의 조세와 경제 이해에 기반했다고 볼 수 밖 수 없는 정책 조언들이다. 첫 번째 시무를 요약하면 '세금 줄여라', '부자가 번 돈 삥 뜯지 마라' 정도이며, '두 번째 시무'에서는 '재정지출하지 마라'라며 재정지출은 감성이고 쌓아두면 이성이라는 말 같잖은 규정에 나선다. 첫 번째 시무에서는 세금 줄이라면서 두 번째 시무에서는 재정건전성을 요구하는 자가당착적인 발언은, '시무'란 것이 사실상 경제에 대한 이해를 통해 발화되는 '충언'이 아니라 자신의 두개골 속에 가득 낀 보수적 선동이라는 구름층을 해소하기 위해 가열차게 손가락으로 그 산성비를 뿌리는 배설, 즉 유아적 '발광'(전문 용어로 떼쓰기라고 한다)에 지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니까 바닥을 뒹굴며 노는 6살짜리 아기가 딱 자기가 가능한 정도의 경제적 이해를 통해 '세금 나빠', '아빠 돈 좀 쓰지 마' 하는 것과 동일한 행위라는 것이다. 특히 감세를 통한 소비 진작 따위 같은 것은 2012년 발표된 미국 의회입법조사국 보고서를 포함하여 그 어떤 곳에서도 실증적으로 입증된 적 없는 경제학적 헛소리다. 차라리 로버트 노직식으로 정직하게 내 돈에 손대지 말라고 말하면 또 모를 일이다. 혹여 하이에크가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 꼭꼭 숨겨놓은 사생아라서 염기서열을 통해 '세금은 없애야 돼'라는 생각의 덩이를 생득적인 진리로 유전 받고,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에 대한 맥락은 지적 탐험의 여지를 남겨놓기 위해 물려받지 못하기라도 한 것인가?

한 번이나마 경제학적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해 깊이 숙고해본 적이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사실상 그저 앵무새처럼 '보수적 개소리'에 기반한 피상적인 이해를 내뱉는 것에 불과해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의 뇌는 경제적 이해를 담당하는 부위는 오롯이 '세금 나빠' '저 공산당 놈들이 우리 돈 다 뺏어가네!'라는 형태의 톱니바퀴 한두 개 정도로 구동되는 지극히 단순한 기계장치로 대체되어 무얼 입력하든 같은 것만 반복 출력하는 정신적 작용만 이루어질 것이다.

두 번째 시무의 '이성''감성'의 규정은 황당스럽기 그지없다. 코로나19의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을 포함해 전 세계가 재정지출을 늘리고 국가채무에 보수적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조차 재정지출을 긍정하는 가운데 재정지출을 하는 것이 '감성'의 발로이며 무조건 재정을 쌓아두는 게 '이성'이라고 우겨대는데 정말로 그 멍청함이 수술대에 누운 환자가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메스로 찌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세금도 줄이고, 재정지출도 줄여서 경제를 총체적 난국의 디스토피아로 만들어 우익 포퓰리즘의 부흥을 노리는 것인가? (물론 그렇게 깊이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자기가 무슨 말 하는 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유아적인 떼쓰기로 일관하면서 자기가 주장하는 것이 '이성'이고 재정지출이 '감성'이라는 논리적 전도를 보여주는 것에서 전형적으로 잘 선동된, '보수적 선민의식'을 표출하는 멍청한 인터넷 보수들을 생각나게 한다. 혹시 그에게 평생 경제에 대해서 학습할 기회를 제공한 교육기관이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것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닌가?

세 번째 시무를 요약하면 '북한 중국 러시아'와 친하면 '명분'을 앞세운 것이고 '미국 일본'과 친하면 '실리'를 앞세운 것이라는 건데, 두 번째 시무의 이성과 감성의 논리처럼 제멋대로 '명분''실리'를 정하는 것에서 그의 멍청함이 우주의 물리적 상수들만큼이나 일관되고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초적인 정치외교 상식이나마 갖추고 있다기보다는 그가 경제를 학습한 곳에서 정치도 같이 배우지 않았나 하는 강렬한 의심이 들 뿐이다. 진부한 조선과 명-청 외교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중국은 한국의 최대 경제적 교역상대국임에도 무조건 멀리해야 하며, 무조건 미국과 일본에 저자세로 조아리는 것이 '실리'라는 그 어느 정치외교 이론에서도 찾기 힘든, 혁명적으로 멍청한 주장은 뇌의 작용을 거쳐 배출되었다기보다는 뇌에 부착된 보수적 전극에서 나오는 전기신호를 손가락이 그대로 받아 적은 것만 같은 느낌이다. 한국은 작은 나라니까 무조건 조아려야 한다는 멍청한 주장, 그리고 그 때리고 싶은 문체로 판단하건대 국가 간의 외교 형태라고는 근대 이전의 조공-책봉 외교밖에 모르는 것 아닌가? 문재인이 장기집권을 꿈꾸고 있다거나, 지소미아가 동북아 안보의 상징이라고 제멋대로 아무 말이나 하는 것에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주장을 하기 위해 일부러 뇌의 개입을 최소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이다.

사법부의 강제 징용 판결로 인해 촉발되어 아베 정권의 정치적 행위로 이루어진 일본의 경제적 보복을 문재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서도 국제 외교는커녕 삼권 분립에 관한 기본적 상식조차 갖추고 있지 못하거나 혹은 삼권 분립에 대해 박근혜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박근혜 시절엔 재판 거래로 사법부의 강제징용 재판에 개입했으니까 말이다) 일본의 경제적 보복에 정부가 대응에 나서는 것을 '명분'이라 주장하며 무조건 저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기발한 발상은 대체 외교의 기본 원칙인 상호주의는 둘째치고 '명분'의 사전적 정의를 알고나 있는 것인지, 개인적으로 내 방에 초대하여 내 국어사전을 소개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두꺼운 국어사전으로 때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초등학생적인 경제 이해만큼이나 멍청한 정치외교 이해를 바탕으로 인터넷에 퍼져있는 극우적 사고방식을 깊이 체화해 배설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일본에 대응하는 것을 아니꼬워하며 위악적일 정도로 '너희들 그냥 일본에 꿇어라'라고 하는 것이 전형적인 보수의 사고방식이지 않은가?

게다가 민간의 자발적 불매운동을 마치 행정부의 시책으로 착각하는 기초적인 멍청함부터 시작해서, 불매운동 때문에 매출의 급격한 하락을 겪는 중인 유니클로 야나이 타다시 회장의 일본 정부 비판에서 보듯 정부와 분리되어 진행되는 국민들의 자발적 불매운동은 한국 정부가 '명분''실리' 모두를 챙길 수 있는 일본 정부 압박 카드임에도 불구하고, 불매운동을 대하는 보수 지지층 특유의 아니꼬움이나 비난을 앵무새처럼 읊고 있는데, 이것은 이런 불매운동에 대한 비난이 국익에 대한 진지한 고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 비판에 매몰된 탓에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여 위악을 부리는 패악으로부터 이뤄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테다.

네 번째 시무의 '욕망을 인정하라'라는 것은 보수의 멍청한 생각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인데, 그러니까 '위선'부리지 말고 차라리 솔직해지라는 보수의 뇌를 잠식하고 있는 위악적이고 이기적이고 소시오패스적이며 아노미적인 발상 말이다. '위선 부리지 말라'의 숨겨진 의미는 이런 것이다. '겨가 나쁘니 차라리 똥이 되어라'. 언뜻 합당한 지적 같아 보이지만 진보로 향하는 길에서 조금의 지체도 용납하지 않고 '거봐 차라리 하지 말라니까'라며 깽판을 치는 것이 그 본질이다. 인권에 있어서도 보수는 동일한 행태를 보인다. 한국 내의 인권 문제를 논하면 '북한 인권은 왜 말 안 해?' 북한과 외교에 나서면 '북한 인권은 왜 말 안 해?' 다른 국가의 인권을 논하면 '북한 인권은 왜 말 안 해?' 보수가 다른 인권은 모조리 개무시로 일관하면서 오로지 북한 인권에만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딱 하나다. 대북 유화적 외교에 끼얹을 찬물로서의 용도, 즉 상대 진영에 대한 정치적 공격 용도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가 그 누구보다 국가보안법따위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을 사랑하면서, 문재인이 집권하자 문재인이 중국몽을 따라 독재를 꿈꾸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말 같잖은 공격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유니 인권이니 하는 것은 그들에게 상대방의 위선을 드러낼 공격용 무기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인권이나 진보를 지적할 때 그들은 그것을 참된 실현을 위해서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목적인 수구적 후퇴를 위해 이용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선을 가장하여 위선을 지적하며 지옥으로 향하는 길로 인도하는 악마의 속삭임 같은 것이다.

또 이상 따위는 없으니 현실을 인정하라며 인간의 '본성', '욕망'을 주장하지만, 이러한 멍청한 주장은 민현기씨(현은 현명하다 할 때 현이다)가 쓴 첫 번째 칼럼 '본성에 대한 배반'(https://blog.naver.com/vitastein/221982081449)에서 잘 반박되고 있다. 민현기씨(기는 그냥 돌림자다)는 해당 칼럼에서 '본성', '욕망'을 이유로 합리화하는 것이 왜 멍청한 일이며 인류가 어떻게 공감능력과 이성으로 본성을 배반하며 진보를 이루었는지 논하고 있다. '위선'을 지적하며 차라리 '위악'적이 되자는 보수적 사고방식은 깊이 사고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표면적으로 '솔직'해 보이고 ''해 보일 수 있다. 그런 '쿨병'에 포섭되는 것이 30대 이하의 정신적으로 부실한 이들이 보수가 되는 주요한 요인 중에 하나일 것이라 생각한다.

다섯 번째 시무에서는 '신하를 가려 쓰라'라며 '자유'의 가치를 아는 사람을 뽑으라고 한다. 신하들에게 자유, 민주, 인권이 적힌 '명패'를 들게 하라는 둥 멍청하지만 적당히 귀여운 알레고리를 지어내며 설명하려 하는 것 같은데,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헷갈리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함께 가야 한다는 당위와 본질을 혼동하는 등 아무래도 지적으로는 소질이 전혀 없는 것 같다. (혹 경제, 외교,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멍청함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요량인가?) 자유라는 가치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해봤을 것 같지도 않지만, 그렇게 강조하는 '자유'란 첫 번째 시무에서 말한 '세금 줄여달라'의 맥락에서 '자유'일 것이다. 동어반복이다.

여섯 번째 시무의 '헌법을 지켜라', 이쯤에 와서는 자신의 멍청함을 무기 삼아 타인으로 하여금 공감성 수치를 유발해 괴롭히는 전문적 사디스트가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다.(이번엔 법학이다) 모든 분야에서 무식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이 헌법 1조의 국민주권론을 시위대의 노래에서나 들어보는 개념으로 여기는 것도 웃기지만, 문재인이 헌법적 권리를 침해했다고 우기는 데 그 침해의 근거가 '부동산 정책'인데다, '부동산 정책'이 어떻게 헌법적 권리를 침해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서는 이미 지구를 벗어나 아스트랄계로 진입하려는 것처럼 보인다.(제정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문재인이 헌법 14조의 거주 이전의 자유를 짓밟았다며 문재인이 건국 이래 토지거래허가제를 최초로 시행했다고 우기는데, 토지거래허가제란 1979년 박정희 시절에 만들어져서 정권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시행되어 온 제도다. 검색 한 번으로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이유는 자신이 그저 멍청이가 아니라 악한 멍청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인가? 임대인의 권리 보호를 위한 임대차 3법은 헌법의 거주 이전의 자유와 대체 뭔 상관인가? 그러니까 이런 것은 전형적으로 나이 어린 아이들 혹은 나이 먹은 보수적인 멍청이들의 습성인데, 어디서 주워들은 것을 논리적 정합성과 상관없이 일단 다 갖다 붙이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엄마부대 주옥순이 파시즘의 의미도 모르면서 '문재인 파쇼!'라고 악을 지르는 행위 같은 것처럼 말이다.

일곱 번째 시무에서는 앞선 여섯 개의 시무들로 쌓아올린 멍청함을 근거로 대통령에게 일신하라고 주문한다. 물론 문재인 정권의 실정에 대한 비판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나, 뇌가 아니라 대장에서 쏟아낸 것 같은 멍청한 소리로 대통령에게 고치라고 주문하는 것은 똥이 겨를 보고 더욱 똥 같아지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은 '개소리'. '일신'이 필요한 것은 이 글을 작성한 조은산 본인 또는 이런 멍청한 글을 띄워준 언론이 먼저일 것이다.

그 멍청함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하나 내게 통찰 같은 것을 준 게 있다면, 그것은 매우 간접적인 것인데, 자기가 가진 생각을 글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딱 제 수준의 집단의 보수적인 소리에 감화된 멍청이가 가지고 있을 법한 편향적인 오류로 가득 찬 생각을 7개로 추출하여 다이제스트로 나열해 준 것이다. 그런 것은 직접 조사하려면 매우 수고스러운 일이다. 예를 들어 흰손긴팔원숭이의 습성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제인 구달처럼 정글에서 뒹굴지 않아도 원숭이가 스스로 '8시쯤에 저기다 변을 놓고 12시쯤엔 저기서 바나나 까먹어요'라고 말해주면 매우 기특한 일이잖은가?

비단 조은산의 이 글뿐만이 아니라, 나는 적어도 한국의 일반 대중이 갖는 정치적 인식의 문제에서 이러한 보수적 개소리(Bullshit)로부터 파생되는 문제가 6할 정도는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가짜 뉴스와 선동으로 조립된 편협함으로부터, 내가 알기로는 세계 어디도 제대로 벗어난 곳은 없다. 그럼에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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