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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의 문화톡톡] 정세랑이라는 세계
[류수연의 문화톡톡] 정세랑이라는 세계
  • 류수연(문화평론가)
  • 승인 2020.09.21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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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지구에서 한아뿐』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정세랑은 최근 수년간 가장 ‘핫’한 한국작가 중 한 명이다. 2010년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이 당선되며 장르소설 작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거의 매년 작품집을 낼 정도로 다작하는 작가이다. 그뿐이랴. 그는 대중적인 인기와 함께 평단의 호평을 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로서 정세랑이 매력적인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그가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밀고 나가는 뚝심 있는 작가라는 사실이다. 그는 장르소설가로서 자기 정체성을 언제나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는 작가이면서, 그러한 자기 세계를 통해 독자와 평단을 모두 설득해낸 작가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작가 정세랑이 한국문학에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사진1. 정세랑의 『지구에서 한아뿐』 표지. 출처: 교보문고
사진1. 정세랑의 『지구에서 한아뿐』 표지. 출처: 교보문고

SF와 로맨스가 결합된 장르소설 『지구에서 한아뿐』(난다, 2019)은 이러한 정세랑의 독특한 좌표를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랑을 위해 몇 만 광년이 떨어진 우주에서 지구로 온 한 남자의 ‘직진’뿐인 사랑을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 말한 대로 그가 지구에 온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한아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제목 그대로 로맨스 소설인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로맨스를 다루는 방식은 예사롭지 않다.

그는 오직 한아의 곁에 있기 위해서 그녀의 오랜 남자친구 경민의 몸을 얻고, 그에게 자기 삶을 통째로 넘긴다. 하나의 세계와 다른 세계를 맞바꾸는 이 엄청난 과정을 가능하기 만든 것은 오직 사랑 하나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아직 그리 놀랍지 않다.

혹시 우주를 관통하는 세기의 사랑을 기대했는가? 무려 우주를 가로질러서 지구로 온 남주인공이라는 세기의 로맨스에 필적할 만한 화두를 던졌지만, 이 작가가 사랑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사실 조금 낯설다. 무엇보다 이 사랑을 대하는 여주인공 한아의 태도는 지독하리만치 담담하고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한아와 경민은 오래된 연인이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설렘마저 잃어버릴 정도로 익숙해져버렸다. 그런데 캐나다 여행에서 돌아온 경민은 180도 달라졌다. 한아는 그러한 경민의 낯선 모습에 설레면서도 의심한다. 그리고 결국 자기 눈앞의 경민이, 자신이 사랑했던 그 ‘경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다. 자신을 사랑해서 우주를 건너 자기 한 생을 넘겨주고 경민의 외양을 얻었다는 그 절절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한아가 이 사랑에 적응하는 데는 꽤나 시간이 걸린다.

당연하게 않겠는가? 눈앞에 존재하는 외계인 경민의 존재는, 본래 연인이었던 경민에게 한아의 존재가 너무나 무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한아는 절망하기보다는 자기 앞에 놓인 현실에 빠르게 적응한다.

오직 사랑만을 위해 자기 세계 전체를 맞바꾼 남자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한 세계를 받아버린 여자. 이처럼 『지구에서 한아뿐』은 로맨스이되, 결코 로맨틱하지 않은 현실 감각 위에 놓여 있다. 외계인 경민과 지구인 한아의 사랑이 이 소설의 핵심적 서사이지만, 어쩌면 그것은 지극히 지구적인 방식의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외계인 경민이 지구 생활에 정착하고, 한아를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는 모든 과정은, 그가 외계인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사실 익숙하고 평범하다. 하지만 아직 실망은 이르다. 이 지구적 사랑을 완성시키는 우주적 사랑이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왜 그러고 사니?”

주영이 아폴로를 발견하고 나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이었다. 그 말을 정말이지 다채로운 톤으로 들어왔다. 영ꥷᅪ 40도의 무시, 영상 23도의 염려, 70도의 흐느낌, 112도의 분노로.

(중략)

어차피 다른 이의 세계에 무력하게 휩쓸리고 포함당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차라리 아폴로의 그 다시없이 아름다운 세계에 뛰어들어 살겠다. 그 세계만이 의지로 선택한 유일한 세계가 되도록 하겠다…… 주영의 선택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무 고민 없는 아둔한 열병 같은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명확한 목표 의식의 결과였다.

- 『지구에서 한아뿐』, 35쪽

 

인기가수 아폴로의 팬클럽 회장인 주영은 소위 말하는 ‘덕후’이다. 주변 사람들은 아폴로에 대한 ‘덕질’에 빠져 있는 주영을 안타까워하고 한심해 한다. 하지만 주영은 다르게 생각한다. “자신을 아폴로의 부속 위성이라고” 그러므로 “아폴로를 잃는 순간 궤도에서 떨어져나가 빙글뱅글 어둠 속을 떠돌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주영의 말대로 이것은 단순한 종속이 아니다. 아폴로라는 세계의 위성이 된 것은 그 무엇보다 주영 자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주영의 세계는 캐나다에서 아폴로가 실종되면서 부서진다. 주영은 아폴로의 실종에 의문을 품고 추적하던 중 외계인 경민과 한아를 만나고, 아폴로가 우주로 떠났음을 알게 된다. 그녀가 지구가 아닌 우주에서의 삶을 선택한 것은 필연적이다. 더 이상 지구에는 아폴로라는 그녀의 모성(母星)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영은 자신이 선택한 세계(아폴로)에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정한 궤도를 그리는 그 거리감을 유지하기 위해 지구에서의 삶을 버린다.

이러한 주영을 통해 ‘덕질’은 우주적인 사랑으로 전환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덕질’에 대한 평가를 떠올려 보라. 여전히 너무나 자주 무시되고 간과되며, 때로는 한심하다는 평가에 직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세랑의 해석은 다르다. 『지구에서 한아뿐』에서 아폴로와 주영의 관계를 통해 드러난 스타와 팬의 관계는 모성(母星)과 위성(衛星), 태양과 행성 간의 궤도라는 우주적 질서 속에 있다.

이처럼 『지구에서 한아뿐』은 외계인 경민과 지구인 한아를 통해서는 가장 익숙한 사랑(지구적 사랑)을 가장 낯선 방식으로 실현시키고, 우주로 떠나버린 아폴로와 그의 팬인 주영을 통해서는 가장 낯선 사랑(우주적 사랑)을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진2.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과 넷플리스의 [보건교사 안은영] 출처: 교보문고, 넷플릭스
사진2.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과 넷플리스의 [보건교사 안은영] 출처: 교보문고, 넷플릭스

그런데 『지구에서 한아뿐』만큼이나 매력적인 또 다른 작품이 바로 『보건교사 안은영』이다. 『지구에서 한아뿐』이 독특한 로맨스로 독자를 즐겁게 했다면, 『보건교사 안은영』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비범한 판타지를 담아내고 있다.

다가오는 2020년 9월 25일이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바로 이 『보건교사 안은영』을 만나볼 수 있다. 원작자인 정세랑이 극본에 직접 참여한 만큼 어떤 시너지가 날지, 기대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활자에서 벗어나 영상으로 만나는 안은영(정유미 분)과 홍인표(남주혁 분)가 어떤 매력으로 우리의 눈을 사로잡을까?

이번만큼은 그저 ‘덕심’으로 이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고 싶다. 이것도 이 우주를 바꿀(?) 또 하나의 사랑일 테니까.

 

글: 류수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문학/문화평론가. 인천문화재단 이사. 계간 <창작과비평>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고, 현재는 문학연구를 토대로 문화연구와 비평으로 관심을 확대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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