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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제국주의의 그림자, 난민문제: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 <인 디스 월드>(2003)
[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제국주의의 그림자, 난민문제: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 <인 디스 월드>(2003)
  • 정재형(영화평론가)
  • 승인 2020.09.2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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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사회를 자각해 가는 길의 영화

<인 디스 월드 In This World>(2003, 마이클 윈터바텀, 영국)는 길을 따라 가는 로드 무비(Road Movie)다. 로드 무비는 길을 가면서 여러 극적인 국면을 마주 하고, 인생의 교훈을 깨우치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종래의 짜여진 드라마 보다는 느슨하면서도, 나름 대로의 동적인 전개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동양에서는 [서유기], 서양에서는 [오딧세이] 등의 고전문학에서부터 로드 문학의 전통은 이어져 왔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란-터키-이태리-프랑스-영국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은 4개월 동안 여러 장소를 경유한다. 이 길을 경유하면서 한 사람이 죽고, 한 사람은 살아서 목적지에 도착한다. 아이러니한 건 정작 가려던 사람은 죽고, 통역으로 따라 갔던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다. 영화속에서 길은 도피의 길이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안정된 삶을 향해 가는 길이다.

이 영화는 제 3세계인들의 고난의 행군을 보여준다. 감독은 영국인으로서 제1세계 사람이다. 제3세계가 원하는 건 빈곤으로부터 해방이다. 제1세계의 시선, 서구인의 시선으로 제3세계 현실을 그린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갖고 있다. 제3세계인 스스로 느끼는 시선과 제1세계인이 느끼는 시선은 다를 것이다. 감독 윈터바텀은 이들의 여정이 단지 경제적인 문제에서 도피하는 것이고, 중간에 다른 제3세계인들이 이들을 착취하는 모습을 시선으로 담았다. 영화의 주인공 자말은 마지막에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이전에는 그러한 모습이 많이 담기지 않았다. 신앙에 가득찬 마음으로 여정을 맞이하는 그들의 내면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건 감독이 제1세계 서구인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서방외국인들에 의해 역사적으로 수난을 많이 당했다. 영국, 소비에트연방, 미국에 이르기까지 이들을 여러 가지 이름과 명분으로 유린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역사적 상처를 그들 스스로 말하는 대목을 이 영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단지 경제적 자유만을 찿아가는 단세포적인 인간들을 볼 수 있을 뿐다. 이들이 영국을 찿아가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헐벗게 된 역사적 근원이 영국이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러니가 이 영화 이면에 숨겨져 있다. 식민지 역사가 묻혀있고, 이 영화는 제3세계인들이 왜 아직도 전근대적 삶을 유지할 수 밖에 없는 가에 대한 이유를 근본적으로 파헤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는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허구인지를 구별할 수 없도록 짜여져 있다. 국경수비대 일원은 실제 인물들이 참여했고, 주인공을 위시한 대부분 인물들이 말하는 대사는 대본에 없는 즉흥적인 말들이라는 후기가 있다. 산악지역을 넘어갈 때 민병대의 총질과 소리는 진짜 현실이다. 이렇게 진짜와 가짜를 교묘하게 뒤섞은 의도는 무엇일까? 영화를 좀 더 현실적으로 느끼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제3세계에서 제1세계로

2002년 2월. 파키스칸. 북서초 국경지대 페샤와르 근처 샴샤푸 난민촌. 부모를 잃은 아프간 난민 형제 에냐와트와 자말은 삼촌의 도움으로 영국으로 가게 된다. 2002년 2월. 그들은 브로커에게 돈을 지불하고 육로로 가는 길을 가기 시작한다. 그들이 먼저 도착한 곳은 퀘타. 거기서 하룻밤을 자고 트럭을 타고 한참을 더 간다. 먼지 날리는 황량한 곳이지만 먹을 물로 발을 씻고 알라에게 기도도 드린다. 차를 타고 가는데 경찰이 검문을 하며, 왜 가는지 묻는다. 그들에겐 나가는 것도 자유롭지 않다. 형이 갖고 있던 워크맨을 주고 검문의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들은 이란에 들어간다. 브로커를 다시 만남. 돈을 다 지불했는데도 다시 방값을 내라는데, 형은 탐탁치 않아 한다. 사기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한다. 10일 후 버스를 탔는데, 이란 경찰의 검문에 걸려 다시 파키스탄으로 돌아온다. 1주일 후 다시 이란으로 들어온다. 브로커는 돈을 요구하고, 다 써서 없지만, 형이 숨겨놓은 달러가 있어 그걸로 지불한다.

2002년 4월. 테헤란에 도착. 심심하게 5일을 보낸 후 과일상자에 둘러싸인 트럭을 타고 한참을 간다. 이어 내려서 어둠속에 산길을 가로질러 간다. 순찰병들을 피해 야간도주를 감행한 것이다. 눈이 덮힌 산길. 간간히 총소리가 들리고, 그들은 게릴라처럼 산을 타고 넘었다. 이윽고 터키에 도착. 아기를 데리고 있는 부부와 합류. 그들은 덴마크행이다.

4월 29일. 트럭을 타고, 터키의 이스탄불 도착. 브로커는 그들을 공장에 취업시킨다. 한동안 즐거운 생활이 전개된다. 차를 타고 지루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어느 날 누군가 와서 그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 그들은 차로 움직이고, 배로 이송된다. 40시간을 경과한 후 그들은 뭔가 잘못 됐음을 알게 된다. 모두의 몸상태가 말이 아니다. 마침내 그들은 이태리의 트리에스테에 도착했지만, 모두들 기절해 있었다. 형은 사망했고, 자말은 혼자 도망쳐 나온다.

2주 후, 자말은 물건을 팔러 다니다가, 돈을 훔쳐 달아난다. 그는 파리행 기차를 타고, 영국과 가까운 프랑스 지역 상가프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자말은 유세프란 친구를 사귄다. 거기 모여있는 사람들은 모두 런던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세프와 자말은 널빤지를 구해, 배에 선적되어 영국으로 가는 트럭밑바닥에 잠입한다.

결국 런던에 도착한다. 자말은 커피숍에서 일하면서, 집에 전화를 한다. 형의 죽음을 알린다. 그는 회교사원에 가서, 알라신께 기도를 드린다. 그의 망명신청은 거부되었고, 18세 이후 추방된다는 조건으로 겨우 입국이 허락되었다.

 

제국주의의 그림자, 난민

감독 마이클 윈터바텀( Michael Winterbottom, 1961- )은 영국 감독으로 영화를 하기 전 방송을 했었고, <웰컴 투 사라예보>(1997), <원더랜드>(1999), <24 Hour Party People>(2002), <관타나모 가는 길>(2006) 등의 영화로 유명해졌다. 그의 영화는 발칸반도의 긴장감을 표현하거나, 런던지역의 삶, 음악밴드의 역사와 대중성,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있는 이슬람 죄수들을 탐구함으로써 일상과 사회속에서 인간이 삶이 얼마나 다양하게 전개되는 가에 관심이 있다. 그의 영화적 스타일은 다큐와 극을 서로 혼용하여, 박진감이 넘치는 현실 드라마를 보여준다. <인 디스 월드> 역시 주제나 형식에 있어서 그러한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영화고, 그 특징이 잘 살아 있는 대표작이다.

영화의 소재가 되는 아프가니스탄과 영국, 그리고 2002년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세기 열강 영국은 인도를 위시한 중동지역에 제국주의의 영향을 드리우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영국과의 3차 전쟁을 통해 1919년 전투를 마지막으로 독립한다. 영국과 식민지 전쟁 역사는 아프간 사람들에겐 가장 커다란 상처다. 국내 정세는 서구 사회주의적 진보정치와 탈레반과 같은 보수적 이슬람 근본주의와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럴 때마다 정치적 명분으로 외국 열강들이 개입했다.

정치적 혼란을 겪게 되고 한 세력을 지지하기 위해 1979년 소비에트 연방이 보호의 명분으로 침공한다. 이후 1989년 철수할 때까지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실제 지배하고 있었고, 이를 경계하기 위해 냉전의 명분으로 이번엔 미국이 개입한다. 이후 소련과 미국은 아프간에서 서로 전투를 벌였고, 소련이 퇴각한 이후에도 계속 개입한다. 탈레반 정부를 전복시키고, 테러집단 알 카에다,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를 알기 위해 개입한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소련과의 경쟁속에서 석유나 자원 등을 장악하기 위한 음모였다는 후문도 있다.

이러한 불안한 정세 속에서 아프간 국민들을 희생되었고, 그 과정에서 전쟁 난민이 발생한 것다. 그들은 정치적 억압, 경제적 기아와 빈곤 때문에 조국을 등지고 제1세계인 서방으로 탈출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시점 현실을 소재로 하고 있다.

 

글·정재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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