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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의 문화톡톡] 로맨스와 여성 욕망의 정치
[이정옥의 문화톡톡] 로맨스와 여성 욕망의 정치
  • 이정옥(문화평론가)
  • 승인 2020.09.2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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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와 여성의 욕망

한때 문화론자들은 로맨스 장르가 위축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신자유주의가 등장한 이후 무한경쟁의 개인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이 더 이상 사랑을 찾기보다는 생존에 필요한 물적 자산에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 그 근거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로맨스의 위상은 여전히 공고하며, 로맨스의 기본공식 역시 약간의 변주를 거쳤을 뿐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로맨스에 대한 관점도 새로워졌다. ‘로맨스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의 문학’이라는 정의가 등장한 것이다. 로맨스는 당대 여성들의 감정구조를 포착한 픽션이자, 시대와 사회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여성의 의식과 삶을 반영한 문화적 산물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여기에 로맨스를 여성 욕망의 정치적 구현물로 보는 관점이 새롭게 추가됐다.

이런 변화를 이끈 가장 큰 동력은 페미니즘과 신자유주의적 자기 계발 담론의 세례를 입은 자기 주도적인 여성들의 등장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자아실현과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기 욕망에 충실한 새로운 유형의 여성들이다.

이 새로운 여성들은 평생을 함께할 특별한 남자를 발견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소비하기보다 특별한 관계에 중시하는 합류적 사랑을 추구한다. 독립적이고 평등한 위치에서 사랑의 관계에 몰두하다 감정이 소멸하면 미련 없이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자기 주도적인 여성 욕망의 서사는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처럼 경제력과 사회적 성공을 이룬 여성들만이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주도적인 여성 욕망의 서사는 이런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대다수 여성들의 잠자는 욕망을 자극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화려하게 사회적 성취를 이룰 수는 없더라도, 상위 계층 여성들의 욕망을 모델 삼아 당당한 여성으로 살고 싶은 욕망을 꿈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이제 결혼보다 자신의 성취를 중시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가부장적 질서로의 복속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비즈니스로 여기는 등, 의식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여성 욕망의 정치를 구현하는 로맨스는 낭만적 사랑과 여성의 성적 욕망을 결합한 할리퀸 로맨스와 차별화된다. 외형상 사랑에 대한 믿음과 남자를 향한 수동성,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와 가정적 가치를 옹호하는 로맨스의 기본공식을 고수하지만, 로맨스의 서사 전략은 자기 주도적인 여성 욕망의 실현 플롯으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여성 욕망의 정치를 구현하는 로맨스는 낭만적 사랑의 공식을 고수하는 동시에 낭만적 사랑의 신화에 균열을 가하는 역설을 내포한다.

한국 사회는 1990년대에 들어 급격하게 개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개인화는 개인과 사회관계에 범주적 이동과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적인 개인화가 이루어졌음에도 집단문화와 공동체 의식이 강한 탓에 젠더 평등적인 가족 모델이나 합류적 사랑을 추구하는 등의 문화적인 개인화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 욕망의 정치적 서사는 개인화 사회로 접어들었지만 여성을 온전한 개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그리하여 여전히 여성을 가족과 결혼에 묶어두는 모순성을 반영한다.

여성 욕망의 정치와 가부장제의 공모

<더 와이프>(2017)는 개인화 사회로 접어들었지만 온전하게 독립적인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 개인주의 없는 개인화 사회에서 자아실현의 욕망을 지닌 여성이 가부장제와 공모할 수밖에 없는 역설을 생생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함에도 ‘불공정한 거래’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던 복잡한 속내를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세밀하게 그려낸다.

조안에게 조는 다층적인 남자다. 처음(1956년)에는, 조안의 문학적 재능을 발굴해준 은인이자 문학의 세계로 인도한 젊고 멋진 교수였고, 평생 함께하고 싶은 운명의 남자였다. 그러나 비밀연애로 학교에서 퇴출당한 후, 그는 초라한 작가 지망생이자 조안이 돌봐야 하는 무능한 남편이었다. 40여 년이 흐른 후, 조는 노벨문학상(소설에서는 헬싱키문학상으로 설정됨)을 수상한 ‘세상을 다 가진 남자’가 됐다.

오랫동안 꿈꿔 왔던 생애 최고의 순간에, 조를 바라보는 조안의 시선은 시기와 경멸로 가득 차 있다. 불공정하고 고달팠던 결혼생활을 끝내기로 결심한 조안은 그들의 은밀한 거래를 고통스럽게 회상한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탁월한 문학적 재능을 지닌 조안이 형편없는 조의 소설을 대필하여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조의 역할은 스토리 제공에 그칠 뿐 창작의 고통은 전적으로 조안의 몫이었으니, 노벨문학상은 조안이 받아야 마땅하다.

<더 와이프>(2017년 개봉, 2019년 재개봉)

그러나 유명 작가의 아내이자, 아버지의 비리와 허세로 삐딱해진 세 아이(영화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소설가로 활동하고 싶은 욕망을 지닌 개인으로서 조안의 고충과 고뇌는 그리 간단치 않다. 무엇보다 수많은 여자들과의 염분과 혼외정사를 개선장군처럼 떠벌리며 소설의 재료로 정당화할 때마다, 모욕과 수치심을 짓누르며 작품으로 형상화했던 조안의 고통은 영화와 소설 전체를 압도한다.

엄밀히 말해, 이 부당하고 불공정한 거래는 소설 창작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조안의 정치성에서 비롯됐다. 조안은 ‘남성작가들이 문단권력을 독점하는 가부장적 현실에서 여성작가는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는 선배 여성작가의 고언에 따라 절필했다. 그 대신 ‘모든 특권을 누리는 남자들의 남성다움의 목소리를 갖고 싶은 욕망’을 남편의 이름으로 대리 충족한 것이다.

물론, 조는 이런 정치성을 일찌감치 간파했기에 자기들의 공모가 결코 조안의 문학적 재능을 착취한 ‘불공정 거래’가 아니라 조안이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 거래’라는 방어논리를 펼친다. 이런 논리에 기반하여 작가로서의 지위와 명성이 높아갈수록 조안에게 ‘소설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은인’이라 합리화하며 후안무치의 제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들의 공모는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극적으로 종결된다. 생애 최고의 정점에 이른 순간, 이별 통보를 받은 충격으로 조가 사망한 것이다. 이로써 거래는 끝이 났지만, 욕망의 정치는 지속된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전기 작가에게 조안은 “조지프 캐슬먼은 훌륭한 작가였다”고 단호하게 말하며 진실을 덮어버렸다.

영화의 엔딩은 빈 노트를 쓰다듬는 조안의 영롱한 눈빛을 비추며 막을 내린다. 이로 보아, 조안은 소설을 계속 쓰겠지만 발표는 하지 않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사후에나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음에도 여성 작가에게 지면을 허락하지 않았던 시대가 낳은 비운의 천재 여성작가’로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와이프>는 낭만적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이 실상 교환가치에 기반을 둔 계약이자 거래라는 진실을 신랄하게 고발한 수작이다. 때문에 조안의 시선을 따라 낭만적 사랑의 로맨스를 읽으면, 겉으로 순진하게 보이는 러브스토리의 이면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특별한 남자와의 운명적 만남으로 시작해 우여곡절의 구애과정을 거쳐 결혼 약속으로 끝을 맺는 로맨스의 원형은 빅토리아 로맨스에서 시작됐다. 빅토리아 로맨스는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부르주아 계층의 정치·경제적 이권이 투영된 핵가족 제도를 이상화한다.

낭만적 사랑으로 미화된 빅토리아시대 가부장적 결혼의 궁극적 지향점은 중산층의 계급 재생산에 있었다. 이에 따라 결혼이 성립되기 위한 교환가치로, 남성에게는 돈과 가문 등의 물질적·정신적 자산이, 여성에게는 성적 순결성과 중산층 주부로서 갖춰야 할 교양과 품위라는 덕목이 요구됐다.

여성에게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배제된 당대 사회에서 여성이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최선의 방편은 남편이 제공하는 ‘안락한 가정’을 확보하는 것이다. 때문에 아버지의 딸에서 남편의 아내이자 주부로 살았던 빅토리아 여성들에게 연애와 결혼은 여성 욕망의 정치성이 가장 활발하게 작동되는 정점에 해당한다.

최근 여성 욕망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제인 에어>(1847)의 제인 역시 당대에 인기를 끌었던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벳처럼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에 성공한 여성이다. 그러나 엘리자벳의 러브스토리가 중산층 계급의 재생산을 추구한 당대 결혼제도에 부합한 반면, 제인의 러브스토리는 당대 사회의 통념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제인에어>(2011)

어릴 적에 부모를 잃어 가난하고 고달프게 살았지만 당당하고 굳건하게 살아온 고아가 부유하고 지체 높은 남자와 결혼한 제인의 러브스토리는 당대 사회에서 지극히 예외적인 사례였다. 제인이 고아학교 출신의 가정교사로서 교양과 상식은 어느 정도 갖췄음에도, 중산층 가정주부의 필수 덕목인 가풍과 품위 등의 문화자본이나 남성을 사로잡을 만한 미모나 매력자본이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외적 조건이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제인이 부유한 귀족과의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녀만의 내적 가치에 있다. 제인은 험한 세상과 맞서 싸워온 강인한 의지력과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일궈나가는 자립심을 지녔고, 자신의 열정과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당당한 여성이다. 이런 내적 가치는 로체스터의 꼬여버린 인생을 풀어줄 수 있는 최적의 교환가치에 해당한다.

로체스터는 귀족의 후예지만 상속을 받지 못하는 차남인 탓에 식민지에서 크게 사업을 벌여 자산을 일군 자수성가형 남자다. 그러나 화려한 외적 조건과 달리 그는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사업상 필요에 따라 결혼을 하고 영국에 데려와 아무도 모르게 다락방에 숨겨놓은 식민지 출신의 현지처는 귀족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도덕적 결함에 해당한다.

그러나 제인에게 필요한 로체스터의 교환가치는 험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아버지와 같은 듬직한 부성과 안락한 가정을 제공할 수 있는 경제력이다. 뒤늦게 친척으로부터 받은 유산과 화재를 통해 결혼을 가로막았던 모든 장애물이 사라지자, 외곽지역의 작은 별장에 자신들만의 안락한 ‘사랑의 천국’에 안착하게 된다.

로체스터는 화재로 시력과 다리를 잃었지만, 도덕적 결함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제인 역시 가정교사라는 능력을 발휘하여 로체스터를 ‘새로운 남자’로 깨어나게 만드는 간호사이자 통역사로서 인생 최대의 행복을 만끽한다. 평생 상처로 점철된 고아로 살았던 제인은 비로소 중산층의 안락한 가정을 꿈꾸었던 소원성취를 이룩한 것이다.

캔디렐라의 원형에 해당하는 제인의 러브스토리는 외형상 사랑에 대한 믿음과 운명적 남자를 향한 여성의 수동성,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와 가정적 가치를 옹호하는 로맨스의 공식에 따른다. 그럼에도 당대 사회에서 예외적인 귀족과의 결혼을 통한 자기 욕망을 실현한 제인의 욕망의 정치는 빅토리아 시대 중산층의 성별 분업적인 결혼제도와 사회적 통념에 균열을 가할 만큼 위협적이다.

로맨스가 여성 욕망의 정치를 구현하는 방식

2000년대 초반, 로맨스 장르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섹스 앤 더 시티>(1998~2004)나 <존스 브리짓의 일기>(2001) 등과 같이 자기 계발 담론과 여성 욕망의 정치가 결합된 새로운 로맨스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휩쓸자, 이 주인공들처럼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고 싶은 당대 여성들의 욕망에 주목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막 개인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는 이미 2차 개인화 과정을 이룬 서구사회와 달리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개인주의가 발달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영화와 드라마는 여성 욕망의 정치를 서구의 원본과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로컬화 했다. 좀 더 진취적인 영화는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고 싶지만 이를 용납하지 않은 사회와 갈등하는 여성들의 내적 고민에 주목했다. 반면, 더 보수적인 드라마에서는 덜 위협적인 캔디렐라형 여성의 욕망을 형상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파리의 연인>(SBS, 2004.6.12.~8.15)의 태영과 <내 이름은 김삼순>(MBC, 2005.6.1.~7.21.)의 삼순이는 가진 것도 학력도 보잘것없고 예쁘지도 않지만, 발랄하고 당당한 매력으로 재벌가의 아들과 결혼에 성공한 캔디렐라형 여성들이다. 자신의 내적 가치를 바탕으로 사회적 통념과 제약을 넘어서 신분 상승을 이룩한 점에서 제인의 후예들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MBC, 2005.6.1~7.21.)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높은 인기를 누렸던 두 드라마가 여성의 욕망을 바라보는 관점은 현격하게 다르다. 성격이나 외적 조건에서 동질적이지만, 삼순이는 보잘것없는 외적 조건을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빵을 잘 만드는 능력자라는 점에서 태영과 차별화된다.

맛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외식사업자 진헌에게 빵을 잘 만드는 삼순의 능력은 대체 불가능성의 교환가치에 해당한다. 이런 이유에서 진헌은 파티쉐인 삼순을 붙잡기 위해 다급하게 ‘오천만을 빌려달라’는 삼순의 청을 들어준다. 대신 담보로 정략결혼을 통해 사업 확장을 도모하려는 엄마를 피하기 위한 ‘연애하는 척하는 연기’를 요구한다. 이 계약관계로 옥신각신 다툼을 벌이는 동안 삼순의 내적 가치를 발견한 진헌은 진짜 연애에 빠지게 되고 결국 결혼에 도달한다.

이 단순한 플롯의 드라마가 그토록 인기를 끌었던 비결은, 진헌에 비해 여러모로 떨어지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빵을 잘 만드는 실력으로 무장한 삼순이가 진헌과의 계약관계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는 전복성에 있다. 이처럼 당당한 여성 캐릭터가 처음이라 더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뿐만 아니라 빵을 만드는 넉넉한 마음과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는 특유의 넉살로 형과 형수의 교통사고로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진헌은 물론 그 가족들의 상처까지 치유하는 힘을 발휘한다.

이와 달리 태영의 발랄하고 씩씩한 성격은 사랑 없는 정략결혼에 신물이 난 한기주에게 분명 매력적이지만, 삼순이와 달리 대체 불가능한 교환가치로서는 한참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주의 집안 식구들과 파혼녀로부터 ‘결혼 자격이 없으니 떠나라’는 수모를 끊임없이 당하고 끝내 기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파리의 연인>은 여성 욕망의 서사가 아니라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연애결혼을 통해 아버지의 억압으로부터 독립하는 재벌가 아들의 연애 서사다. 드라마의 엔딩에서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태영의 상상으로 끝을 맺는 서사적 파탄은, 재벌가를 둘러싼 출생의 비밀과 형제의 난, 형제간의 삼각관계 등 진부한 공식의 재벌가 드라마에 여성 욕망의 서사를 무리하게 삽입시켜 초래된 결과다. 개인화 사회로 진입했음에도 여성의 욕망을 용납하지 않는 당대 사회의식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파리의 연인>(SBS, 2004.6.12.~8.15.)

그러나 삼순이의 욕망 정치 역시 한계점을 안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파티쉐라는 대체 불가능성의 장점을 신분 상승의 연애와 결혼의 수단으로 활용하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또한 삼순이 죽은 아버지의 환영에 사로잡혀 있다거나 양쪽 집안 부모의 개입이 여전히 크게 작동하는 등 가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기 계발 담론과 여성 욕망의 정치가 결합된 로맨스에 적합한 여성 인물로 거듭나려면 두 가지 정도는 보완돼야 할 것이다. 삼순이가 그토록 원했던 개명신청을 성사시켜 주체적인 여성으로 거듭나는 것과 호텔사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진헌의 외식사업을 이어받아 번창하게 만드는 사업가적 야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로부터 10년이 채 안 된 시점에 방영된 <청담동 앨리스>(SBS, 2012.12.1.~2013.1.27.)는 여성 욕망의 정치성에 대한 자기 인식이 분명한 로맨스라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돈 없고 빽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헬조선 담론의 시대를 반영하여, 신분 상승을 꿈꾸는 두 여성의 대비를 통해 여성 욕망의 정치성을 본격적으로 다룬 드라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프로 삼은 이 드라마에서, '청담동'은 최첨단의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의 중심이자 최상류층의 혼맥과 사업정보가 거래되는 심상 지리적인 공간이다. 오직 피나는 노력으로 청담동에 입성한 세경과 윤주는 치밀한 전략과 뛰어난 지략으로 자기 욕망을 실현한 자기 주도적인 여성들이다.

이들이 청담동에 진입하기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은 계급 격차와 청담동에서만 통용되는 문화자본, 결혼할 남자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이다. 윤주가 청담동에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비결은 뛰어난 미모와 문화자본을 갖춘 데 있다. 청담동에 걸맞은 윤주의 안목은 IMF 외환위기 전까지 사업가의 딸로 유복하게 살았던 계급적 아비투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고 미모도 뛰어나지 않은 세경에게 장애물은 너무나 높다. 디자이너로서 빵빵한 스펙과 월등한 불어 실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유학파가 아니라서 ‘안목이 후지다’는 이유로 번번이 입사 시험에서 떨어졌다. 그나마 사장 사모이자 학창시절 라이벌 관계였던 윤주가 자기과시를 위해 세경을 고용한 덕에 패션회사의 인턴으로 겨우 취직할 수 있었다.

세경은 ‘노력할수록 마이너스 인생으로 전락하는’ 절망의 헬조선에서 폐인으로 변해가는 전남친과 어렵게 헤어진다. 그 뒤처리 과정에서 아르테미스사의 사장 차승조(텍스트의 내용과 별개인 배우와 관련된 사항은 논외로 배제한다.)와 만남이 이뤄지는 가운데, 세경은 그가 자신을 청담동으로 이끌어줄 ‘시계 토끼’임을 간파하게 된다.

승조는 재벌 2세이자, 파리의 명품 패션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성공한 남자다. 그러나 사업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강요했던 아버지 차회장으로 인해 상처가 깊은 허약한 남자다. 도피성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승조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배신이다. 배신에 대한 공포는 폭군적인 아버지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로부터 비롯됐지만, 사랑으로 다가왔다 돈 때문에 떠난 윤주에 대한 배신감으로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게 됐던 것이다.

사랑을 믿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승조에게 필요한 교환가치는  사랑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는 진심이다. 승조에게 필요한 교환가치는 세경에게 필요한 청담동 입성이라는 교환가치와 일치한다. 이 점을 간파한 세경은 영민하게 세 번째 장애물을 뛰어넘기 위한 플랜을 세우고 차근차근 실행에 돌입한다.

그러나 승조와 세경 사이에 가로막힌 장벽은 다시 1단계인 계급 격차로 환원되고 만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승조는 ‘타고난 운이나 행운’(유학시절 차회장이 자신의 그림을 사준 돈으로 학자금을 마련했으나 이를 모르는 승조는 그것을 행운이라 믿음)을 믿지만, 흙수저 출신의 세경은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청담동 태생의 승조가 ‘진심이 없는 사랑’ 때문에 괴로운 반면, 가난한 세경은 ‘돈이 없어 사랑을 버려야 해서 괴로운’ 것이다.

흥미롭게도 돈과 사랑은, 윤주와 세경의 욕망의 정치성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사랑을 교환가치로 삼았던 세경의 욕망은 승조와의 사랑을 통한 청담동 입성이다. 반면, 미모를 교환가치 삼아 승조와 현재 남편과의 결혼에 성공했던 윤주의 욕망은 오직 ‘돈’을 추구한다. 미모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교환가치이므로, 윤주는 ‘꽃뱀’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승조와 결혼한 전력을 알게 된 남편이 윤주에게 ‘돈으로 사랑을 입증하라’고 요구한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세경의 진심어린 사랑은 허약한 승조에게 대체 불가능성의 교환가치이므로, 사랑이 진심이라는 점을 인정받게 되면 모든 일이 순리대로 풀리게 마련이다.  세경은 그간 쌓아왔던 스펙과 뛰어난 불어 실력을 발휘하여 사업 확장에 크게 일조함으로써 차회장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이어 차회장으로부터 사업가 아내로서 갖춰야 할 비즈니스 마인드와 명석한 지략을 인정받아 결혼 승낙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이처럼 청담동에서 펼쳐지는 욕망 정치의 서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만큼이나 복잡하고 성찰적이다. 고졸 출신의 비유학파 디자이너 타미홍은 윤주와 세경의 욕망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은 인물이다. 청담동 사모들의 스타일스트로 시작해 마담뚜로 활약하는 속물적인 타미홍 역시 세경과 윤주만큼 고달픈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처음에는 윤주처럼 세경을 ‘꽃뱀’으로 이용하려 했으나 점차 세경의 진심과 욕망의 정치성을 실행하는 치밀한 전략에 감동한 그는 마침내 세경의 결혼을 적극 돕는 조력자로 변신한다. 이를 계기로 청담동을 떠나게 됐지만, 겉으로 화려하나 돈으로 사랑을 사며 사람을 믿지 못하는 청담동 특유의 삶의 방식에 염증이 난 타미홍은 윤주처럼 미련 없이 떠난다. 이로써 흙수저 출신의 세 사람 중 오직 세경만이 청담동 입성에 성공한 것이다. 그 비결은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허황한 욕망을 쫒다 괴멸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켜낸 자기 주체적인 욕망을 추구한 데 있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tvN, 2018.6.6.~7.26.)

이로부터 정확히 6년 후, <김비서가 왜 이럴까>(tvN, 2018.6.6.~7.26.)는 그간 엄청나게 변화한 여성 욕망의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드라마다. 애초 웹소설로 인기를 얻어 드라마로 만들어진 원소스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특성상, 텍스트가 추구하는 쾌락은 일반 드라마가 추구하는 바와 상당히 다르다.

이 드라마의 묘미는 김비서라는 인물의 이중성과 전복성에 있다. 외면적으로 비서의 역할과 업무에 충실하고 깍듯하게 사장을 보필하지만, 실제적으로 회사 업무는 물론 재벌가의 집안일까지 좌지우지하는 여왕벌과 같은 존재다. 다소 과장됐지만 김비서를 거쳐야 모든 일이 해결되는 식이다.

김비서의 플롯은 분명 가난한 고아 출신이지만 특유의 긍정적이고 발랄한 여성이 재벌 2세와 결혼에 성공한 신분상승을 욕망하는 서사에 해당한다. 그러나 김비서는 욕망의 정치성과는 거리가 먼 순정만화의 해맑은 캐릭터로 형상화된다. 김비서와 영준 사이에 연애와 결혼을 서두르고 추진하는 쪽은 김비서가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영준이의 몫이다. 또한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두 언니들이 의사가 될 때까지 뒷바라지를 감당한다거나 대책 없는 아버지의 빚 청산 등을 떠안지만 불평 한마디 없는 착한 동생과 딸로 그려진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순진성을 들춰내면, 김비서와 사장 이영준의 관계는 루소가 창안한 ‘주인과 노예의 역설’의 전형적인 예에 해당한다. 처음 입사할 당시 전무였던 영준은 김비서를 유능한 비서로 단련시킨 주인이었다. 그러나 9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을 장악한 김비서는 오히려 사장으로 승격한 영준과 사주인 이회장을 비롯해 재벌가 집안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주인으로 군림한다.

이처럼 김비서가 철저히 비서 역할에 충실할수록 영준이 전적으로 김비서에 의지하게 됨으로써 주인과 노예의 위치가 전도된다. 김비서와 영준의 뒤바뀐 위치는 연애에서 결혼에 이르는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루소의 주장대로 주인과 노예의 역설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 전도된 역설적 관계'로 발전한다.

드라마는 영민하게도 이 단순한 플롯을 어릴 적 유괴사건에 대한 아픈 기억과 오빠 찾기의 모티프와 결합시킴으로써, 미스터리를 가미하여 텍스트의 쾌락을 증폭시켜 나간다. 여기에 영준의 도가 지나친 나르시시스트적인 면모와 유괴사건의 아픈 기억으로 인한 슬픈 상처를 과장되게 대비시킨다거나, 어릴적 결혼을 약속한 운명의 오빠찾기 과정을 영준과 그의 형 성연 사이의 삼각관계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거나, 현실과 다소 거리가 먼 코믹한 인물들이 곳곳에 설정되어 있는 등 미스터리와 만화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깨알 같은 재미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사장의 비서인 여성이 사장의 이름을 빌어 회사와 재벌가 전체를 지배하는 여성 욕망의 정치성은 드라마의 이면으로 철저하게 숨겨진다. 이에 따라 가부장제에 대한 전복성을 내포한 드라마가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발랄 유쾌한 순정만화 정도로 향유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드라마들은 모두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의 욕망을 추구하는 여성 욕망의 서사이다. 이와 달리 <라라랜드>(2016)는 자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 새로운 남자에 의지하여 사회적 성취를 이룬다는 점에서 대조를 이룬다.

<라라랜드>(2016)

유명 배우로 성공하고 싶지만 번번이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시는 미아와 재즈 연주가로 살고 싶지만 카페에서 경박하게 피아노를 치며 생계를 꾸리는 세바스찬은 만나자마자 서로를 향한 연민과 동질감을 공유하게 된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은 평생 운명을 함께 할 낭만적 사랑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욕망을 꿈꾸는 자들의 특별한 관계에서 시작된 합류적 사랑인 것이다.

할리우드 동산 위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별처럼 빛나는 미래를 꿈꾸지만, 가난하고 고달픈 연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것뿐이다. 시나리오를 써 연극배우로 나설 것을 권유한다거나 재즈 카페를 차려 재즈 피아니스트로 살라고 권하지만, 그 꿈이 실현될 가능성은 크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밴드 활동을 펼치는 세바스찬에게 화를 내는 미아나, 미아에게 2차 오디션 통보 소식을 전하는 세바스찬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고달픈 현실이다.

세세한 스토리는 생략하고 노래에 감정을 실어 증폭효과를 노리는 뮤지컬의 특성상 중간 과정은 생략한 채, 유명 배우로 성공한 미아와 재즈 카페에서 재즈 연주자로 변모한 세바스찬이 만나는 엔딩 장면으로 이어진다. 미아가 유명배우로 성공하는 데 크게 기여했을 법한 남편과 함께 세바스찬의 카페에 우연히 들른 것이다. 미아를 발견한 세바스찬이 그녀와의 추억이 담긴 곡을 애잔하게 연주하는 동안 미아는 세바스찬과의 사랑과 결혼생활을 잠시 상상한다. 그러나 연주가 끝나자 무대 위의 세바스찬과 객석의 미아는 눈인사로 서로의 성공을 축하하며 이별한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은 쓸쓸해서 더 아름답다. 미아가 잠시 빠져든 상상은 현재 남편과 이룬 안락한 가정과 세바스찬과의 사랑을 결합한 비현실이다. 만일 미아의 상상대로 이들이 결혼을 했다면, 둘 중 누군가는 꿈을 포기하고 평생 원망하며 살았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낭만적 사랑으로 미화된 로맨스의 이면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이다. 쓸쓸해서 더 아름다운 사랑을 뮤지컬로 그려낸 영화 전략이 신의 한 수인 이유다. 


※ 참고문헌

· 낸시 암스트롱, 『소설의 정치사』, 오봉희·이명호 옮김, 그린비, 2020
· 홍찬숙, 『개인화: 해방과 위험의 양면성』,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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