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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버전스 아트, 예술의 탈을 쓴 기술 전시일까?
컨버전스 아트, 예술의 탈을 쓴 기술 전시일까?
  • 장영주 l 르디플러 1기
  • 승인 2020.10.05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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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인사 센트럴 뮤지엄에서 약 4개월간 진행된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이 막을 내렸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마그리트의 작품만 보여주는 게 아니었다. AR 증강현실, 실감형 영상기반 체험물, 모노크로매틱 라이트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마그리트의 회화를 입체적으로 구현했다. 예를 들어, 메인 영상 룸(Immersive Room)에서 마그리트의 그림은 애니메이션처럼 움직이며 거대한 전시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플레이 마그리트 존(Play Magritte Zone)에 설치된 증강현실 포토존에서 관객들은 작품 속 주인공이 돼보며 온몸으로 전시를 체험했다.(1)

 

<빛의 벙커>, 파리 - 2019

이런 형태의 전시를 ‘컨버전스 아트’, 또는 ‘몰입형 전시’라고 부른다. 평면에 머물러있던 작품에 다양한 비주얼 이펙트(비주얼 디자인, 홀로그램, 시각적 특수효과(VFX), 3D, 프로젝터 등)를 적용해 원작에서 느낄 수 없었던 공감각적 효과를 연출하는 미디어 아트다. 예를 들어 2015년 용산전쟁기념관 <반 고흐: 10년 전 기록>에서는 전시장 벽면과 바닥, 계단에 Full HD급 프로젝터 70여 대와 높이 4m가 넘는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디지털 기술로 재해석한 고흐의 대표작 350여 점을 상영했다. 또한 모션그래픽 기법을 사용해 그림 속 인물의 동작과 표정,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 반짝이는 별 하나하나에 움직임을 더했다.(2) 이외에도 인터랙티브 기술, 3D 맵핑, 몰핑 기법 등 첨단기술로 고흐의 작품을 복제하고 변형했다.(3)

<빛의 벙커: 반 고흐>, 2016년 용산전쟁기념관 <모네, 빛을 그리다>, 2016년 문화역서울 284 <반 고흐 인사이드: 빛과 음악의 축제>, 2018년 한가람미술관 <그대 나의 뮤즈: 반 고흐 to 마티스>, 2018년 본다빈치뮤지엄 서울숲 <르누아르: 여인의 향기> 모두 컨버전스 아트에 기반한 전시들이다. 무려 50만 명이 <빛의 벙커: 클림트>를 관람했고 <모네, 빛을 그리다>는 열띤 성원에 힘입어 전시를 연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컨버전스 아트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한편, 컨버전스 아트를 보면서 문학과죄송사 박준범 대표가 출간한 시집 <PoPoPo>가 떠올랐다. 그는 수록된 모든 시를 구글 번역기에 ‘돌려서’ 제작했다. 한글-일본어-영어-한글 순으로 번역했으며, 마우스 클릭만을 사용해 집필의 모든 과정을 ‘복사’와 ‘붙여넣기’로 진행했다.(4) 이런 방식으로 그는 원작과 한참 동떨어진, 어법이 처참히 붕괴된 시뮬라크르 문학을 만들어냈다. 흥미롭게도 컨버전스 아트와 <PoPoPo>는 상당 부분 유사하다. <PoPoPo>와 마찬가지로 컨버전스 아트는 원작을 비주얼 테크놀로지에 ‘돌려서’ 제작한다. 단 한 글자도 직접 쓰지 않은 <PoPoPo>처럼 컨버전스 아트도 붓질 한 번 없이 원작을 ‘복사’하고 ‘붙여넣기’한다. 결국 문법이 파괴되고 엉뚱한 단어들로 점철된 <PoPoPo>의 시처럼 컨버전스 아트에서도 원작의 형태와 질감, 작가의 의도가 해체된다. 즉, 디지털 기술에 ‘세탁’된 시와 회화에는 명백한 작가도, 창작활동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기술만이 묵직하게 자리 잡을 뿐이다. 

첨단기술로 재해석된 작품을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디지털 복제를 거치면서 원작의 아우라가 얼마나 마모되는지 알아내려면 철학적, 미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서술하기에는 내 지식이 짧고 지면이 한정돼 있다. 따라서, 나는 서술 대신 사회학적인 맥락에서 컨버전스 아트를 다뤄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 나는 컨버전스 아트를 향유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요목조목 살펴볼 예정이다. 그리하여 컨버전스 아트의 흥행과 소비가 현대사회의 어떤 특성을 드러내는지 검토해보고자 한다.

 

1. 컨버전스 아트는 미술 전시임에도 비평이 거의 전무하다. 반면 컨버전스 아트에 사용된 첨단기술과 블록체인 개발에 관한 기사는 흔히 접할 수 있다. 이들은 수천 안시루멘의 높은 밝기와 Full HD를 뛰어넘는 해상도를 가진 프로젝터를 극찬한다.(5) 그리고 예술품을 토큰화해 아트 블록체인 거래소에 등록해, 사업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높이 평가한다.(6) 관람객들도 원작이 주는 느낌보다 기술이 연출한 효과에 열광한다. 정적이고 섬세한 붓터치보다 역동적이고 화려한 비주얼 이펙트에 뜨거운 반응을 보인다. 즉, 컨버전스 아트는 ‘예술이라는 탈을 쓴 기술 전시’에 가깝다. 작품은 그저 첨단기술을 돋보이게 하는 재료에 불과하다. 이렇게 예술보다 기술이 중심이 된 컨버전스 아트에서 우리는 기술만능주의에 젖은 현대사회를 엿볼 수 있다. 마치 신형 아이폰 출시 소식이 보도되자마자 긴 행렬로 애플 스토어 앞에서 대기하는 풍경처럼 말이다. 

 

2.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메인 영상 룸에는 사진 찍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벽에 투사된 마그리트의 작품 앞에서 자기 자신을 찍기에 바빴다. 화려하게 연출된 컨버전스 아트는 분명 ‘인생샷’을 건지기에 완벽한 장소다. 이는 최근에 급부상하고 있는 SNS용 전시와 일맥상통한다.

“밀레니엄 세대에게는 SNS에 올릴 수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7)라는 말처럼, 현대인들은 무언가를 하는 모습을 찍는 게 아니라 찍기 위해 무언가를 한다. 그들은 ‘인증샷’을 찍기 위해 경복궁에서 한복을 입고, 표지가 예쁜 책을 사고, 힙한 카페에서 힙한 커피를 마신다.(8) 이런 ‘감성’을 눈치챈 예술시장은 내용·구성보다 컨셉·분위기를 앞세운 전시를 기획해 테마파크처럼 사진 찍기에 적합한 공간을 마련한다. 플레이 마그리트 존과 같이 아예 전시장 중간에 포토존을 설치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프룻프룻 뮤지엄>, 2018년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앨리스: 인투더래빗홀>, 2020년 용산역 아이파크몰 <스폰지밥의 행복을 찾아서>가 있다. 전시를 방문한 관객들은 가볍게 작품을 훑어보며 사진을 찍고, 굿즈샵에서 예쁜 아이템을 구매하고,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사진을 올리면서 관람을 마무리한다.(9)

하지만 이런 ‘보여주기식’ 전시는 어떠한 예술적 사유도 제시하지 못한다. 작품은 관객의 영혼을 울리지도, 영민한 시선과 통찰을 보여주지도 못한다. 그저 사진의 예쁜 배경으로 소비될 뿐이다. 즉, SNS용 전시에서 관객들은 작품이 아니라 작품을 ‘찍는 행위’에 더 큰 만족을 발견한다. 컨버전스 아트도 마찬가지다. 관람객들은 현란한 비주얼 이펙트로 점철된 고흐, 모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진지하게 감상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 환상적인 공간에 자신을 어떻게 담아서 찍을지 궁리한다.

 

3. 텍스트, 이미지, 영상의 시대를 거쳐 오늘날 우리는 4D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현대인들은 시청각뿐만 아니라 촉각, 미각, 후각을 동시에 충족시켜줄 새로운 매체를 모색 중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영상으로 오감을 전달하려는 시도는 이미 여러 번 있었다. 사람들은 ‘먹방’을 보면서 눈으로 맛을 음미하고, ‘슬라임’ 또는 ‘액체괴물’을 만지작거리는 영상에서 중독적인 촉감을 시청한다. 그리고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영상(Oddly Satisfying Video)’에서 깔끔하게 맞아떨어질 때의 쾌감을 공감각적으로 느낀다. 영화산업에서도 IMAX와 ScreenX를 통해 시청각 효과를 최대한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4D 기술을 도입해 좌석이 움직이고 바람과 물이 흩뿌려지는 연출을 선보였다. 컨버전스 아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첨단기술을 활용해 시각에만 국한됐던 회화를 공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웅장한 음악을 삽입하고, 인터랙티브 존을 설치해 작품을 직접 만질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리고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그림이 변형되는 키넥트 기술을 적용했다.

그러나 자극만을 좇는 행위가 바람직한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먹방’과 ‘슬라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영상’에서 시청자는 감각에 완전히 압도돼 생각할 틈을 잃는다. 그들은 중독된 것처럼 바로 유튜브 ‘다음 동영상’을 클릭한다. 마찬가지로 산만한 시각효과와 감상을 왜곡하는 음악, 체험을 강요하는 코너 등 컨버전스 아트에서 관객은 능동적인 해석의 주체가 아니라 쏟아지는 자극에 둘러싸인 객체에 가깝다. 이런 환경에 노출된 관람객는 담담한 사유가 아닌, 더욱 자극적인 감각만을 찾을 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이 연출한 1999년 S/S No.13 피날레가 떠올랐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모델이 무대 위에 서 있고, 양 옆에는 로봇 팔 모양의 기계가 설치돼 있다. 그녀가 선 자리가 회전하자 기계에서 페인트가 뿜어져 나온다. 모델은 손을 뻗어 필사적으로 막아보지만, 사방으로 뿌려지는 페인트를 속수무책으로 맞을 뿐이다. 결국 하얀 드레스에 페인트가 무질서하게 그려진 채 쇼는 끝난다.(10) 

컨버전스 아트를 통해 반추해본 현대사회는 예술과 기술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모델과 흡사하다. 온몸에 페인트가 묻은 모델처럼 우리의 삶 곳곳에도 기술이 잠식해있다. 첨단기술을 숭배하는 문화, 작품보다 사진이 우선인 전시, 자극만을 추구하는 욕구는 우리 사회가 입은 하얀 드레스에 얼룩덜룩 번져있다. 하지만 모델은 스스로 걸어 나와 관중 앞에 당당히 선다. 기계가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그녀의 아름다움이 눈부시게 빛난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기술에 발을 묶여선 안 된다.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예술의 아우라를 포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방법은 다양하다. 어렵고 지루해도 원작을 이해해보려 할 수도 있고, SNS에 신경을 잠시 끈 채 전시에 집중할 수도 있고, 내면에서 꿈틀대는 작품의 인상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다. 그 어떤 방법이든 우리는 주체적으로 예술을 감상하는 능력을 잃지 말아야 할 것 이다. 

 

 

글·장영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서포터즈 1기


(1) 김지윤, “”네가 거기서 왜 나와?“ 상식 밖의 남자 르네 마그리트가 선을 넘는 방법”, 올댓아트, 2020.06.26. 
http://www.khan.co.kr/allthatart/art_view.html?art_id=202006261110001 
(2) fromA, “문화예술과 IT의 융복합콘텐츠 컨버전스아트”, 2016.06.23. https://froma.co.kr/93 
(3) 박솔, “예술과 기술의 만남 ‘컨버전스 아트’”, The Science Times, 2016.03.23.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98%88%EC%88%A0%EA%B3%BC-%EA%B8%B0%EC%88%A0%EC%9D%98-%EB%A7%8C%EB%82%A8-%EC%BB%A8%EB%B2%84%EC%A0%84%EC%8A%A4-%EC%95%84%ED%8A%B8/ 
(4) 문학과죄송사 트위터 https://twitter.com/moonjoi_books/status/504514379098763264
(5) 파나소닉, “컨버전스 아트 문화 ‘선두주자’”, 2016.03.24. https://panasonic.co.kr/community/press_view.php?page=8&search_v=&search_s=&idx=68
(6) 박철, “컨버전스 아트 전문기업 본다빈치㈜, 문화·예술 블록체인 사업 진출”, 미래한국, 2019.07.04. 
https://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9044
(7) 원천보, “작품감상보단 ‘인생샷’… ‘전시는 SNS의 배경이 된다’”, MICE 산업신문, 2018.06.21. 
http://www.mice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8
(8) 옐로우 펜 클럽, “남는 건 사진뿐?”, 2017.07.31. 
http://yellowpenclub.com/chch/insta_art/
(9) 이승하, “SNS용 전시, 이대로 괜찮을까?”, 아트인사이드, 2019.09.04.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3620
(10) 옷 읽는 남자, “알렉산더 맥퀸과 <데미안>의 구원자_1”, 브런치, 2018.01.04. https://brunch.co.kr/@hukho/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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