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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라의 문화톡톡] 무관심이라는 특권
[이주라의 문화톡톡] 무관심이라는 특권
  • 이주라(문화평론가)
  • 승인 2020.10.12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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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놀라 홈즈 포스터
영화 에놀라 홈즈 포스터

2020년 9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에놀라 홈즈>는 그 유명한 탐정 셜록 홈즈의 여동생에 관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낸시 스프링어(Nancy Springer)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출간한 6권의 책 『에놀라 홈즈 미스터리(The Enola Holmes Mysteries)』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원작 소설은 ‘셜록 홈즈에게 그만큼 똑똑한 여동생이 있다면?’ 이라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에놀라 홈즈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 아서 코난 도일의 원작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홈즈의 여동생이라는 캐릭터를 새롭게 탄생시킨 것이다. 이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대중문화 속에서 젠더 감수성의 변화를 반영하면서 여성의 시각으로 고전을 재해석하거나,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계발하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여성의 세계와 아주 무관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조차 젠더적인 시선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다들 아는 것처럼, 셜록 홈즈는 그 무수한 사건을 해결하면서, 수많은 미녀들을 만나지만, 단편에 한 번 등장하는 아이린 애들러를 제외하면, 그 흔한 스캔들 하나 없으며, 여성에게 마음을 흔들려서 일을 그르치지 않는 냉정한 이성을 갖춘 탐정이다. 그래서 셜록 홈즈를 이상으로 삼는 추리소설에서는 여자에게 마음이 흔들려 스스로 위험에 빠지는 탐정을 탐정 자격 미달이라고 판단한다. 물론 1920년대부터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능가하는 인기를 끌었던 하드보일드 범죄소설에서 탐정은 미녀의 유혹을 받아들이고, 사랑을 나누다가, 범죄를 저지른 미녀를 가차 없이 버리는 또 다른 종류의 냉정함을 보여준다. 셜록 홈즈는 아름다운 여성을 하드보일드 탐정처럼 이용해 먹지도 않는 냉철함을 갖추었다. 셜록 홈즈는 어머니 혹은 할머니 뻘인 허드슨 부인을 제외하면 어떤 여성과도 사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그래서 셜록 홈즈 시리즈를 젠더적 관점으로 재해석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여성들이 필요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재해석은 BBC에서 2010년부터 2017년까지 방영한 드라마 <셜록(Sherlock)>이다. <셜록>의 시즌4에서 홈즈의 여동생인 유러스 홈즈가 등장하여, 마이크로프트와 셜록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21세기를 살아가는 셜록 홈즈에게 존재하는 21세기 식 여동생 유러스 홈즈는, 뛰어난 지능을 가졌지만 싸이코패스 성향으로 반사회적 위험인물이 되어, 오빠 마이크로프트에 의해 절해고도 감옥에 갇힌 신세다. 조금 단순하게 대비하자면, 소시오패스인 오빠 셜록은 자신의 문제 성향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탐정으로 문제없이 살아가는데, 비슷한 성향의 여동생 유러스는 범죄자가 되어 큰오빠로 대표되는 가족의 손에 의해 유폐된다.

그렇다면 여성에게 가장 보수적인 시대였던 빅토리아 시대에, 셜록 홈즈에게 똑똑한 여동생이 있었다면, 그 여성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에놀라 홈즈>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원래 배경인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여성 캐릭터는 <셜록>에 비해 더욱 21세기 여성인물형에 가까워진다. 에놀라는 참한 숙녀로 교육시켜 누군가의 아내로 만들려고 하는 두 오빠들의 보수적인 교육 방침을 거부하고 런던으로 가출하여,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주는 일을 시작하여 혼자만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셜록 홈즈의 여동생 에놀라 홈즈는 세상과 부딪히며 모험하고 성장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낸시 스프링어의 소설 자체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어서, 소년소녀소설의 공식인 모험과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그대로 따라간다. 그렇기 때문에 <에놀라 홈즈>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2차 창작물이라 할 수 있지만, 셜록 홈즈 시리즈의 애독자인 추리소설 마니아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에놀라의 추리는 꽃말 풀이, 알파벳 순서 바꾸기, 알파벳을 숫자로 전환하는 암호 풀기 정도에 그칠 뿐, 셜록 홈즈 시리즈에 나오는 논리적이고 귀납적인 추리의 과정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놀라 홈즈>는 한 소녀의 모험물 혹은 성장물로 즐겨야 하는 콘텐츠이다.

에놀라의 모험과 성장의 서사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셜록 홈즈라는 위대한 탐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타나는 지점이다. 셜록 홈즈 원작에서 굳이 등장하지 않는 여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데에서 이미 알 수 있지만, 에놀라 홈즈 시리즈는 셜록 홈즈 시리즈에 대한 여성적 관점의 재해석을 내세우는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는 여성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된다.

그 첫 번째. 에놀라 홈즈 시리즈 3권 『기묘한 꽃다발』은 왓슨 박사의 실종을 다루고 있다. 왓슨 박사를 찾기 위해 에놀라는 왓슨의 아내를 만나러 왓슨의 집을 가야 하는데, 그 집에 가면 오빠인 셜록을 마주칠 위험이 있다. (에놀라는 기숙학교에 가지 않기 위해 오빠들을 피해 가출한 상태여서 셜록을 만나면 안 된다.) 그래서 에놀라는 변장을 하기로 한다. 변장술에 능한 셜록의 눈을 속일 수 있는 변장은 무엇일까. 에놀라의 결정은 ‘아름다운 여자’로 변신하는 것이었다. 에놀라는 셜록 오빠가 인간혐오자, 특히 여성혐오자라는 사실을 간파하였다. 셜록은 여성을 경멸하거나 여성에게 무관심하며, 아름다운 여자일수록 일부러 시선을 두지 않는다. 그러니 에놀라가 전형적인 미녀로 변장을 하면 오히려 셜록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역시나 에놀라는 왓슨 부인의 응접실에서 셜록과 맞닥뜨리지만, 셜록은 아름다운 여성으로 변장한 에놀라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두 번째 장면. 영화 <에놀라 홈즈>에서 셜록은 가출한 에놀라를 찾아다니다가, 여성 전용 티룸을 운영하는 이디스 그레이스턴 양을 만나게 된다. 이디스는 셜록과 에놀라의 어머니인 유도리아 홈즈의 동료이자, 유도리아 홈즈와 여성참정권 운동을 전개하는 페미니스트이다. 에놀라의 주짓수 선생님이기도 하다. 어머니를 찾아 에놀라의 양육을 맡기려는 셜록에게 이디스는 묻는다. 어머니와 에놀라가 왜 집에서 나갔는지 아느냐고. 셜록은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이디스는 다시 말한다. 셜록이 어머니와 에놀라의 가출 이유를 모르는 것은 “당신이 권력 없이 사는 인생이 어떤 건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셜록은 정치는 지루해서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디스는 셜록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은 지금 세상이 “본인에게 이미 딱 좋은 세상이라서” 그래서 “세상을 바꾸는 데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자신을 둘러싼 인간과 세상에 관심이 없는 셜록 홈즈는 매우 멋있는 캐릭터다. 그런데 그의 무관심은 여성참정권 운동에 참여하는 어머니와 기숙학교를 거부하는 여동생을 만나는 순간, 무책임으로 바뀐다. 이디스의 지적처럼 셜록은 인간과 세상에 관심이 없어도 편안하게 살 수 있다. 합리, 이성, 논리에 기반한 근대 사회에서 지적 능력을 가지고 감정 조절에 능한 냉철한 남성 셜록은 타고난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적 혜택을 누리며 잘 살아갈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문제, 사건을 해결하며 사회적 관습을 가끔 위반하며 생기는 문제는 모두 정부의 요직을 맡고 있는 마이크로프트 형이 해결해 주며, 의식주를 비롯한 사적인 생활 관리는 허드슨 부인이 처리해 주고, 일과 심리의 균형은 왓슨의 배려로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다. 셜록은 뛰어난 지적 능력 하나로, 자기 생활 관리, 인간관계 관리, 사회생활 관리에서의 무능함을 용서받는 것이다. 그런데 동일한 능력을 가진 그의 여동생들은 다르다. <셜록>의 유러스 홈즈는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하며, <에놀라 홈즈>의 에놀라는 가출해야만 자신의 주체적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세상사에 무관심할 수 있는 것 또한 특정 계층과 성별에 주어진 하나의 특권이다. 부자는 가난한 자에 무관심할 수 있으며, 남성은 여성이 겪는 일상의 불편에 무관심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특유의 무관심함은 속세에 초연한 태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태도로 여겨져, 세상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19세기 초에 등장한, 세상 쿨한 댄디들은, 속세에 연연하지 않고 순수한 예술적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며, 특유의 미적 세계를 구축하였다. 댄디들이 만들어내는 예술과 그들의 생활 태도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멋지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리타 펠스키는 『근대성의 젠더』(김영찬·심진경 역, 자음과모음, 2010)에서, 보들레르로 대표되는 19세기 댄디들은 아름답게 치장한 여성들에 대한 찬양을 예술로 표현하였지만, 그 이면에서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소비적 경향을 남성의 그것과 철저히 분리시켰으며, 여성을 아름다움의 대상으로는 찬양해도,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주체로는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속세를 초월하여 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댄디들의 예술 지향적 태도는 겉으로는 ‘보편적 미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젠더적 여성을 배제하고 비하하는 태도를 내재하고 있다.

무관심은 현실의 정쟁에 휘말리지 않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태도 혹은 그래서 고고하게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주체적인 태도가 아니다. 무관심은 그 자체로 세상에 타협하여 안주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다. 셜록 홈즈의 무관심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셜록 홈즈라는 위대한 탐정 캐릭터가 이렇게 젠더적 시선에서 재해석 될 때, 기존의 추리물, 수사물, 범죄물, 스파이물의 장르적 관습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 새롭게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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