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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증발>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증발>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0.11.1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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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짐과 비워짐

<증발>은 2000년에 실종된 여섯 살 준원의 행방을 찾는 아버지와 가족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영화는 아버지가 준원을 찾는 여정을 담는 한편, 준원이 사라진 후 가족의 20년 시간을 응시하는 작품이다. 시간은 1년 365일 24시간 균질적인 듯 간주되지만 실상 지극히 개별적이고 주관적이다. 영화는 가족 개개인이 보낸 혹은 겪어낸 시간을 현재 삶 속에서 가만히 비추어낸다. 애써 지난 시간을 들추거나 설명하지 않고, 지금 현재 각자의 자리에서 품고 있는 시간의 켜를 가늠케 하는 방식을 취한다.

<증발>은 아버지가 준원을 찾는 여정을 담는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지하철과 터미널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아버지는 준원이 사라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당시 언론과 수사 그리고 걸려온 수십 통의 전화번호와 내용을 빼곡히 기록해 반추하고 또 반추한다. 무엇을 놓쳤을까?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자... 그렇게 사건으로는 모두에게 잊혀져도 자식이기에 준원을 찾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다 장기실종 수사팀이 재구성되어 함께 준원을 찾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한다.

 

<증발>은 준원을 찾는 행위를 영화 안에서 뿐 아니라 영화 밖 현실로도 확장한다. 7년의 제작 기간을 거쳐 마침내 지난 주 극장 개봉을 시작한 영화는 국내 최초로 임팩트 다큐멘터리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임팩트 다큐멘터리는 영화를 매개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자 공익적 캠페인과 더불어 배급활동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 실질적 변화를 촉구하고자 한다. 따라서 영화는 실종된 준원이 뿐 아니라 장기실종 아동을 찾는 ‘#찾을 수 있다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개봉 전부터 다양한 상영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공식 서포터즈 ‘바라미’를 모집하고 문소리 배우를 필두로 사회 유명인사의 응원 영상 담는 한편, 아동권리보장원 실종아동전문기관과 협력하여 장기실종 아동의 문제를 알려내고 실종 아동을 찾는 실질적 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현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가지는 사회 변화의 힘을 상영 활동과 맞물려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실종의 “미씽”을 지우며 “미라클“을 사용하고 “당신의 기억이 기적을 만든다” 는 포스터

<증발>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영화는 실종의 문제를 실종아동을 둔 가족으로 확장한다. 가족이 가족인 것은 가족 구성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실종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가족 구성원이 비어짐과 동시에 가족은 더 이상 이전 가족이 아니다. 영화는 준원이 가족을 통해 준원의 사라짐으로 인해 ‘비어진 그 무엇들’을 시각화한다.

영화는 빗속에서 차로 이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어디론가 향하는 아버지를 담은 영화는 불쑥 아버지의 눈을 클로즈업 한다. 그리고 그 눈은 어딘가를 응시하지만 목적지가 명확하지 않다. 이어 영화는 준원이가 오가던 그러나 사라진 동네 풍경과 집 안 공간을 차분하게 담는다. 비어진 공간의 이미지들은 비어짐 자체를 감각하게 한다. 왁자지껄 분주했던 장소가 일순간 텅 비었을 때 혹은 늘 있던 사람이 더 이상 그 곳에 있지 않을 때 마주하는 적막과 공허를 담고 있다. 이는 준원이의 방을 담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영화는 준원의 언니 준선을 만난다. 준선은 표정이 없고 늘 혼자다. 특히 아버지와 관계에 있어 건조하다. 어린 시절 동생의 실종 이후 첫 등교 때나 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그녀가 자신을 둘러싼 주변 관계에 대한 신뢰가 부재함을 드러낸다. 이처럼 비어있는 표정, 공허한 눈빛, 텅 빈 공간은 한편으로는 준원의 존재를, 다른 한편으로는 준원의 부재를 동시에 마주하게 한다. 그러다 점차 집 안에 아버지와 준선을 제외한 다른 가족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을 인지하게 된다. 더 이상 가족이 함께 살지 않는 것이다. 가족애로 인해 가족애가 증발되고 있는 역설이다.

 

<증발>이 ‘비여있음’을 다루는 방법은 놀랍다. 뭔가를 투영하는 비유적인 비어있음이 아니라 비어있음 그 자체를 담는다. 결여, 분노, 고통, 공포, 사랑과 같은 감정이 표명되고 있지 않다. 다수의 영화는 고통을 분노나 절규 혹은 울음과 같은 표정과 제스추어로 드러내면서 동일시를 야기하거나 보는 이의 경험을 소환하도록 감정을 강제하거나 전시하곤 한다. 때론 비어있는 이미지 마저 상실의 한 표징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증발>의 텅 빈 눈빛과 빈 공간은 고통을 표명하기 보다는 비어있는 그 자체로 놓여있다. 감정이 사라져버린, 제목처럼 감정이 증발된, 있어야만 하는 고통이 오히려 부재한 결여이다. 시간 속에서 그마저 증발된 것이다. 영화의 카메라는 이들을 피해자로 가두거나 비어있는 이미지를 채워 고통을 드러내기 보다 비어있음 그 자체에 주목한다.

영화는 아동 장기실종에 대한 문제를 실종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남은 가족의 상실과 공허 그로 인한 가족 개인이 감내한 각자의 내상에 주목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준원이를 찾아나선 아버지, 그 상황을 지속할 수 없었던 어머니, 어느날 갑자기 주변 관계망이 부서진 경험을 한 준선, 기억이 없기에 상대적으로 발랄할 수 있는 동생의 모습까지 영화는 어떤 판단도 해석도 하지 않고 이들 모습을 가만히 담고 있다. 무엇보다 가족 구성원들의 지금 현재 삶의 선을 넘지 않는다. 그저 곁에서 기록할 뿐이다. 아이의 실종 이후 각자 겪어낸 시간들, 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삶을 다 걸고 매달릴 수도 없는 딜레마를 담은 영화는 이를 통해 장기실종의 문제를 사건만이 아니라 사회적 아젠다로 확장한다.

 

 

사진출처: 네이버

 

글·이승민

영화 연구자, 평론가, 기획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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