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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이음동의어(Synonyms)의 모호한 세상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이음동의어(Synonyms)의 모호한 세상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0.11.17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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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소리도 없이>

공간은 사회적 이름을 갖는다. 공간이 사람처럼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주변 조건과 부합하여 공적인 이름을 갖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영화가 ‘공간’을 활용하고자 할 때는 그 이름에 기대기 마련이다. <소리도 없이> 속 아이들 장난감이 놓인 공간은 놀이의 공간임을 말해주고 버려진 폐 공장은 죽은 공간임을 말해준다. 노란 색 봉고차의 공간은 아이들의 공간임을 말해주고, 번잡한 시장 통은 경제적 공간임을 말해준다. 백숙 식당은 외지에 위치한 맛집의 공간이고 더러운 화장실은 악취의 공간이다.

 

<소리도 없이>는 이런 공간의 통속적인 이름을 적극 활용하나, 등장인물들을 통해 그 의미를 곧 비틀어버린다. 놀이의 공간은 유괴의 공간이 되고 폐공장은 경제적 공간이 된다. 노란 색 봉고차는 불법의 공간이 되고 번잡한 시장의 공간은 죽음의 공간이 된다. 백숙 식당은 감금의 공간이 되고 더러운 화장실은 소통의 공간이 된다.

 

소리 높여 말해야 하는 의무는 ‘공간’에 부여하지만, 등장인물에게는 다른 임무를 맡긴 결과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행복한 가족의 전형적인 모습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그렇게 공간의 문법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태인’(유아인)이 말을 못하는 이유 역시 공간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불행히도 ‘태인’은 자기의 행동이 또 다른 의미를 써내려간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행동과 진심이 갈라지는 이 안타까운 상황은 ‘초희’(문승아)와의 관계 덕에 외려 더 증폭되기만 한다. 그러니까 영화 마지막 귓속말로 나누었을 ‘초희’와 ‘담임선생님’과의 대화가 ‘태인’을 겨냥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도망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극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 상황 때문이다.

행동과 진심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바라보면 그 둘은 남남이라고 보기에 석연치 않고, ‘유괴’라고 하기에도 뭔가 부족하다. '이별'이라거나 '검거'라는 식의 감정적, 사회적 명명어로도 ‘태인’의 그 상황을 말해줄 수 없는 이유 역시 그렇다. 이 영화가 보편적으로 명명된 그 모든 것을 향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의지는 그런 모호함 속에 서려있다.

 

명명 자체의 모호함. 그게 행동과 진심이 어떤 공간에서 갈라질 때 발휘되는 거라면 명명어의 모호함은 진심의 의미를 회복시키고 싶다는 의미인지 모른다. 그러면 ‘초희’가 ‘담임선생’과 나눈 귓속말을 아무도 들리지 않게 처리한 이유 역시 설명된다. ‘초희’는 상황 그대로를 말했을 것이지만,(모르긴 해도, ‘나와 함께 있던 사람’ 정도) ‘담임선생’은 그 말을 맥락 속에서 받아들였을 것이다.(유괴 상황) 그래서 어떤 소리도 없어야 한다. ‘유괴’는 그렇게 끝난다.

‘소리도 없이’라는 의미는 ‘태인’에게 부과된 상황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침묵하라고 강권하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러면 뜻하지 않게 우리의 관념이 뒤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맥락이라면 그 경험은 새로운 공간의 발견과도 같은 의미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공간, 즉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새로운 발견. ‘유괴’가 ‘보호’의 이음동의어(Synonyms)가 될 때 나타나는 모호함은 우리에게 새로운 공간, 새로운 의미적 공간을 발견하게 해줄 수도 있다. 바로 그 사실을 영화<소리도 없이>는 그렇게 ‘소리도 없이’ 알려준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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