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3월호 구매하기
[최양국의 문화톡톡] 고려장 - 순장 그리고 오동나무 집
[최양국의 문화톡톡] 고려장 - 순장 그리고 오동나무 집
  • 최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0.12.07 11: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월은 죽어서 살아난다. 매년 12월은 사생아의 막내로 오지만, 그때 마다 죽어가는 12월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2020년의 12월은 20의 반복을 마무리하며 그만의 하얀 꽃으로 죽음을 피워낸다. 하얀 꽃은 노란 나비에 업혀와 시공간에 머무른다. 하얀 꽃이 피어나면 노란 나비는 어느새 커져 버린 하얀 꽃에 업혀 산을 오른다. 산에 오르며 풀피리를 부는 ‘여인(麗人)’이 된다.

 

* 풀피리-대마초, Pixabay
* 풀피리-대마초, Pixabay

세상은 시간의 주름살을 늘리고 공간의 주름살을 더욱 깊게 하며 닫혀 간다. 시공간의 닫혀진 주름살은 기다림과 외로움의 흔적이다. 익숙해진 기다림과 덮혀주는 외로움 마저도 놓아 버리고 싶은 여인은, 마지막 한 단어인 ‘돌아간다’를 그리며 낯설기만 한 외국인을 좇아간다.

하얀 꽃은 떠나버린 여인의 가는 길을 그린다. 12월은 살아서 하얀 꽃의 그리움으로 피어난다. 그 여인에 대한 마지막 사진으로 남아 있는 이미지의 모사가 아니라, 마음 속 동일체로서 함께 하는 살아 있는 영원한 대상으로서의 존재 가능성을 확대 시키며 점점 커져 온다. 그리움은 어떤 사람이나 대상의 관계에서 벌어진 틈새를,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메꾸어 보려는 재현의 감정이다. 길을 걷거나 창가로 넘어가는 보름달을 보며, 우리의 손끝에서 붓으로 다시 태어나며 그려지는 얼굴이 있다면 그리움인 것이다.

그리움의 싹은 무심한 ‘나’로 인한 여인의 때늦은 여행으로 부터 더욱 크게 돋아 난다. 그 여행은 동사와 명사를 비용으로 지불한다.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이동을 선과 면으로 그리지 못하고 점과 점의 이동으로만 여기며, 과거의 한 점에 머무른다. 점과 점을 잇지 못하고 겨울밤 푸른 별처럼 툭 떨어지듯이 동그라미나 세모를 그리며, 오래된 우리의 흔적 가꾸기에서 멀어져 간다. 첫 여행은 이렇게 시작한 것이다. 동사를 하나씩 둘씩 버려 가는 여정이다. 그들과 ‘여인(旅人)’간 마음의 관계는, 유무형의 선과 면으로 나타내며 흔적을 남기는 행위로서 수평적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닫혀진 공간은 원래의 집이며, 같은 공간에 머무르는 그들은 믿음직한 오빠, 다정한 언니 그리고 어려서 이별한 애틋한 동생과 다름이 없다. ‘나’만은 그 공간에 없다. ‘나’는 일주일에 한번 얼굴을 보이며 얼음 도가니 같은 하얀 꽃으로 눈도장을 찍는다. 여인의 눈동자는 눈도장을 받아 주기 위해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견딘다. 그래도 그녀의 동사는 아직은 드문 드문 함께 한다. 한달이 4일 이지만, 소박한 행복의 점을 어렵게 나마 네 번은 찍어 볼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여행은 명사를 잃어가며 네모의 공간 속 직사각형 상자안에서 머물러야 하는 여정이다. 직사각형 상자는 명사를 싫어한다. 고유명사가 떠나간다. 이어서 보통명사가 하나 둘씩 이별을 한다. 풋풋한 시절에 도시의 표준어로 함께 했던 그 여인의 언어는, 동사 몇 개와 ‘나’를 위한 명사 한 개만을 놔둔 채 사라져 간다. 욕망과 관계가 사라져가며 긴 이별을 예고한다. 명사를 잃어 버린다는 것은 욕망을 놓아 버리는 것, 동사를 잃어 간다는 것은 관계를 놓쳐 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만을 위한 점과 점은 더 이상 찍히지 않는다. 오직 한 점으로서 결핍된 상자와 함께 보완된다.

세 번째 여행은 회심(回心)의 길이다. 고유명사와 보통명사를 모두 잃어버리고 마지막 동사 한 두 개만을 남긴다. “하지마”, “아퍼”. 그 단어들만이 되돌이표 되어 계속 맴돈다. ‘나’가 어린왕자의 소행성(B612)으로 그리움의 별을 찾아 간 날. ‘여인(麗人)’은 돌아간다. 그녀는 12월의 하얀 꽃을 위해 여인(旅人)이 된다. 소행성에서 돌아 온 ‘나’는 신(新)고려인이 되어 노란 나비와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을 나눈다. “햇살이 무너져 내린 어느날. 90여년 지은 노란 삼베 나비옷을 입고 한 여인(麗人)이 파란 하늘나라로 떠났네요. 가지 않은 갈림길에서 ‘여자의 일생’을 부르는 여인(旅人)을 만나면, 청산도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한 아이가 있다고 전해 주세요.“ 우리에게 고려장은 속설이지만, 신(新)고려장은 ”따뜻한 봄날“(김형영 시)과 ”꽃구경“(장사익 노래) 속에 있다.

 

* 노란 삼베, Pixabay
* 노란 삼베, Pixabay

12월은 노란 나비로 죽어 하얀 꽃으로 살아난다. 하얀 꽃은 사방이 봄기운으로 넘쳐나는 그때를 기다리는 노란 나비를 여인(麗人)의 무덤에서 만난다. 오지 않는 ‘나’의 눈망울을 기다리며, 놓여져 가는 의식과 가늘어진 두 다리를 곧추 세웠던 그날의 여인을 위해, 하얀 꽃은 12월과 함께 노란 나비를 업는다. ‘나’와 그녀의 ‘풀피리 소리처럼 살았던 시간’은 겨울 햇살과 같다. 그들이 함께 가는 길가에 햇살에 반짝이는 오동나무가 부챗살 모양으로 퍼져 있다. 오동나무 햇살 속으로 들어간다. ‘나’와 여인의 집. 오동나무 집이다.

 

〈 오동나무 집 〉

굴곡져진 하얀 달빛을 안으며

이 계절의 풀피리 소리가 햇살로 무너지니

입 맞춘 이마의 주름살은 멈추어 시린 채로 차다.

 

낯설은 듯 매정하게 모은 두 손을

노오란 삼베 나비 옷에 수줍은 듯 묻고

버선코를 곧추 세우며 슬며시 떠나셨다.

 

가얏고 진양조는 들숨의 농현(弄絃)으로 떨리고

날숨의 휘모리는 파아란 초승달로 좇으니

끝없이 흘러가는 그 구름을 바라본다.

 

영화 속 어디에서나 한 어린애를 안고

그득하기만 한 사방의 봄기운을 엮던 그 소녀는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은 “고마워”의 눈빛을

간절한 긴 동화로 살포시 남겼다.

 

인과 연을 곧추 세우고

하얀 국화로 곱게 단장한

오동나무 집으로 이사 하던 날

가슴 속 한 어린이도 순장되어 사라졌다.

Please Look After Mom.

 

 

글 : 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시 종이신문 과월호를 발송 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