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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라의 문화톡톡] 가난의 화법
[이주라의 문화톡톡] 가난의 화법
  • 이주라(문화평론가)
  • 승인 2020.12.14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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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난이 초래하는 물질적 곤경과 인격적 모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난은 언제나 경제적 문제나 제도적 결함으로만 다루어져 왔다. 특히나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복지의 노력들도 대부분 경제적 지원의 문제에 기본적으로 초점을 맞춘다. 당연하다. 가난은 어쨌든 경제적 자립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제적 조건이 가난을 겪고 있는 한 인간의 사회적 관계 형성에 미치는 영향 혹은 그 사람의 심리적 위축에 미치는 영향 그로 인한 감정적 표현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많이 논의되지 않는 것 같다. 가난의 원인은 경제의 문제이지만 가난의 결과는 감정이자 심리의 문제이다.

에바 일루즈는 『감정 자본주의』(돌베개, 2010)에서, 사회 계층별 감정 표현 방식의 차이가 나타나며, 인간관계에서 감정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처리하는 방식에서도 큰 차이가 보인다는 점을 심층 인터뷰 자료를 통해 밝혀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며 그로 인해 교육을 받은 중·상 계층의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충분히 연습하여, 어떤 문제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상대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이것이 사적인 인간관계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다면 어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잘 알고, 현실에서 이를 자연스럽게 실천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가난하고 교육을 받지 못한 하층민의 경우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그래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인지, 즉 정체성 파악도 확고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 자신의 감정 및 상태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데 대체로 실패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부부 싸움이 났다. 서로 소통이 잘 안 돼 아주 화가 나는 상태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무엇 때문에 왜 화가 났는지 설명을 해낼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사적인 혹은 사회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감정을 조절하고 상대를 설득해 내는 연습을 많이 한 계층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상대에게 설명하거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기 위해 상대를 설득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대부분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현실 속 싸움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혹은 이해하고 싶지 않은 상대방 때문에 생기니, 나는 내 말만 하고 상대는 알아듣기 힘든 소리만 지르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이들은 극단의 문제에 처했을 때, 주변의 친구, 심리상담가, 혹은 정신과 의사를 찾아 관계 속에서 자신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내 가족에게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나도 모른다. 그냥 화가 난 것이다. 상담사가 어떤 질문을 해도 답은 모른다, 그냥, 기분 나쁘다, 이다.

 

날아라 개천용 공식포스터 ⒸSBS&wavve
날아라 개천용 공식포스터 ⒸSBS&wavve

OTT 서비스인 wavve 오리지널로 만들어져 SBS에서 2020년 10월 30일부터 금토드라마로 방영중인 <날아라 개천용>은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이러한 심리적 문제 및 언어적 표현의 문제를 섬세하게 포착해 내고 있다. 이 드라마는 박상규 기자와 박준영 변호사가 진행한 실제 재심 사건을 바탕을 픽션화한 것이다. 이미 드라마가 나오기 전에도 박준영 변호사가 담당한 재심 사건들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이나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 ‘완도 무기수 김신혜 사건’ 등은 박준영 변호사의 활약과 <그것이 알고 싶다>나 <PD수첩>과 같은 시사보도 언론의 활약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과정에서 박상규 기자가 합류하면서 나라슈퍼, 약촌오거리, 김신혜 사건은 다음(Daum) 스토리펀딩을 통해 5억 원 이상의 펀딩 자금을 마련할 정도로 일반 대중들의 관심과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박상규 기자는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라는 기획으로 스토리펀딩에 실었던 기사들을 정리하여 『지연된 정의』(후마니타스, 2016)을 출간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까지 집필한다. <날아라 개천용>은 박상규 기자가 직접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보좌관>의 감독 곽정환이 연출을 맡았다.

이 드라마의 장르는 ‘법정 코미디’로 분류되는 만큼, 작중 캐릭터의 성격이 단순하고, 연기가 과장되어 있다. 그리고 서사는 너무나 예측 가능하게 정의롭다. 요즘 수사물의 어둡고, 미스터리하고, 심각한 분위기를 따라가지 않는다. 영화처럼 있어 보이게 만들지 않았고 만화처럼 단순하게 만들었다. 선과 악은 명확하게 나뉘어져 있으며, 선한 사람들은 너무 쉽게 주인공을 돕는다. 실화가 바탕이었다는 것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모든 사건이 결정적인 순간에 간단하게 승기를 잡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핵심은 이러한 단순한 코미디의 문법 안에 현실의 진실 혹은 어떤 진정성을 심어놨다는 것이다. 이 진정성은 단지 실화 바탕이기 때문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제 일어난 사건을 직접 관찰하고 경험한 기록자의 어떤 시선 때문에 진정성이 생겨난다. 그것은 아주 사소한 부분이다. 그것은 이 드라마에 잠깐씩 등장하는, 가난의 실체를 포착하고 드러내는 시선 때문에 생겨난다.

그 하나는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사건의 진범 집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찾을 수 있다. 박태용 변호사(권상우 분)는 부산 달동네 꼭대기에 있는 진범의 집을 찾아갔다가, 진범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공범의 연락처를 더 캐묻지 못하고 돌아 나온다. 그러다가 박태용은 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안타까움을 전하기 위해 과일이라도 사서 드리려고 근처 슈퍼에 들어간다. 가게 주인은 말한다. 우리는 과일 안 팔아요. 박태용은 내려가면서 보이는 온갖 슈퍼를 다 돌아다니지만 과일 사는 데 실패한다. 이 동네 사람들은 과일 안 먹어요. 기본적인 식사 챙기기도 버거운데 과일을 사치라는 것이다. 박태용은 아랫동네 대형 마트에 가서야 과일을 살 수 있게 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공식포스터
나, 다니엘 블레이크 공식포스터

가난의 물질적 곤경이 가지는 디테일은 과일을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디테일은 꽤나 자주 다루어졌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에서, 미혼모 케이티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난함에도 자신을 인간적으로 존중하고 도와주는 다니엘에게 자신의 힘겨움을 털어놓으면서, 아이들에게 줄 과일 하나를 사지 못한다는 것을 힘들어 한다. 미국 다큐멘터리 <푸드 주식회사>(2008)에서는 라틴계 불법이민자 가족이 마트에서 장을 볼 때 겨우 한 명 정도 먹을 수 있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살 돈이면 대여섯 명의 모든 가족이 먹을 수 있는 고칼로리 패스트푸드를 사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것을 알고, 건강을 걱정하면서도 언제나 햄버거를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물질적 곤경보다 우리에게 자주 포착되지 않았던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표현법이다. <날아라 개천용>의 디테일은 이 지점에서 섬세하게 드러난다.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나온 남자는 근로복지공단이 택시 기사 유족에게 지급했던 4천만 원을 이자까지 쳐서 물어내라는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이 소송이 부당함을 주장하기 위해, 변호사와 기자 그리고 그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는 법정에서 이 사건이 재심의 여지가 있음을 판사에게 설득하고자 한다. 그 주요 쟁점 중 하나는 살인범 누명을 쓴 사람이 경찰의 강압 수사를 받았다는 것. 이를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누명을 쓴 남자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법정에서 자신이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자 판사가 묻는다. 왜 변호사를 쓰지 않으셨나요? 어머니는 황당하다는 듯이 판사에게 되묻는다.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해요? 판사님, 변호사를 쓸 수 있다는 생각은 변호사를 쓸 수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생각이에요.

 

지연된 정의 표지 Ⓒ후마니타스
지연된 정의 표지 Ⓒ후마니타스

이 드라마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 『지연된 정의』에서 박상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재심을 진행할 때, 판사들이 늘 똑같이 묻는 질문이 있다고. 그것은 그토록 억울했으면 왜 처음 수사 과정에서 허위 자백을 했느냐는 것이다. 경찰의 강압 수사로 누명을 쓴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답한다. 안 맞아 본 사람들은 저렇게 말을 쉽게 한다고. 골방에서 한번이라도 두들겨 맞으면 무서워서 어떤 자백이라도 하게 된다고.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사회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고, 그 폭력 앞에서 도망치는 삶만 살았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쉽게 잃어버리고, 자존감이 약해지며, 자신이 존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폭력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끝까지 안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자기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끝까지 자신이 주장했을 때, 자신의 발언이 사회에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믿음도 없다. 주어진 질문에 대한 즉자적이고 순간적인 대답으로 그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삼례 3인조는 검찰에서 진범 3인조와 대질 심문을 받을 때, 검사가 “범인이 아닌데 어떻게 교도소 생활을 하느냐?”라는 질문을 하자, “처음엔 힘들었는데, 지금은 적응돼서 지낼 만합니다.” 라고 대답한다. (『지연된 정의』 311쪽)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에서 이 장면이 등장하였을 때, 너무나 위험하게도 사건을 조작하는 검사의 마음이 무엇인지 살짝 알 것 같았다. 진범들은 정말 억울한 표정으로 억울하다고 호소하는데, 누명을 썼다는 아이들은 감옥살이가 괜찮다고 말하니,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그냥 상황 판단을 잘 못하고 덜 억울하여 지금이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감옥에 남겨두어야 겠다.

가난한 사람들의 행동과 표현법은 가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판사들의 상식으로는 진짜 억울하면 끝까지 억울하다고 말해야 한다. 검사의 상식에서도 누명을 쓴 이들이 진범을 마주한 상황에서 풀려나고 싶으면 감옥살이가 너무 힘들다고, 지금 억울해서 못 살겠다고 읍소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러한 상식적인 자아존중감, 감정표현법, 논리정연한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 상식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이들의 화법을 오해한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매끈하게 그리고 논리정연하게 표현되지 않는 언어에 대해 무시한다. 하지만 진실은 상식이 아니다. 진실은 상식 이면에 조각난 언어로 표현되어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이기호의 소설 전자책과 단편소설이 실린 단행본 표지 Ⓒ이북이십일&문학과지성사
이기호의 소설 전자책과 단편소설이 실린 단행본 표지 Ⓒ이북이십일&문학과지성사

이기호의 단편소설 「옆에서 본 저 고백은」(『최순덕 성령충만기』, 문학과지성사, 2004)에서, 고아이자 앵벌이인 시봉은 쌈마이 형님들의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자 한다. 시봉은 손글씨로 쓴 자기소개서를 컴퓨터로 문서 작업을 하기 위해 PC방의 어벙한 아르바이트 생 팔대이를 협박하여 타이핑을 시킨다. 하지만 시봉은 팔대이가 던지는 ‘상식적’인 질문에 무너진다. 부모가 없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는 시봉에게 팔대이는 그렇게 쓰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고 말하며 시봉에게 ‘진정성 있는 고백’을 요구한다. 팔대이가 말하는 진정성 있는 고백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고백이다. 고아는 부모에게 버림받았기 때문에 부모를 원망할 것이다, 라는 상식. 팔대이는 상식의 기준으로 시봉이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상식의 힘으로 시봉에게 고백을 강요하고, 결국 시봉을 제압한다.

이렇게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진실은 상식의 기준에서 왜곡되고, 지워진다. 우리가 문화적으로 재현하는 가난도 이러한 상식의 기준에서 전형화 된 가난일 수 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가난만을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이러한 소비를 통해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있으며, 도덕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난한 사람의 이미지를 착하고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꿋꿋한 혹은 불쌍하고 연약한 모습으로만 손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왜 분노하고 폭력적이며 거칠고 위험한 혹은 바보같고 모자라 보이는, 그러한 가난한 사람들은 외면하고 피하려고 하는 것일까. <날아라 개천용>을 보며 자꾸 생각해 보게 된다.

 

글·이주라(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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