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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운디네> ― 운명적 사랑의 세 얼굴과 현실/환상을 가로지르는 초인간적인 힘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운디네> ― 운명적 사랑의 세 얼굴과 현실/환상을 가로지르는 초인간적인 힘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1.01.0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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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운디네>와 운명적 사랑

운명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이 나아갈 길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말한다. 이것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깨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며 운명 같은 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운명적 사랑은 단순한 무작위성이나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 사랑을 말한다. 혹은 자유의지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사랑이라 할지라도 그 전개가 드라마틱하고 애정이 강렬하면 운명적 사랑이라 말한다.[1] 영화나 드라마는 대부분 운명적 사랑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최근 개봉한 영화 <운디네>(Undine, 2020)도 운명적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크리스토프티안 펫졸드 감독의 <운디네>는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여자연기자상을 수상하였다. 여주인공인 폴라 비어는 <프란츠>(2016)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바 있다. <운디네>에서 도시개발 전문 역사학자이자 박물관 관광 가이드인 운디네(폴라 비어)는 운명적 사랑이라 믿었던 요하네스(제이콥 맛쉔즈)에게 실연당한다. 절망한 그녀 앞에 산업 잠수사인 크리스토프(프란츠 로고스키)가 나타나고 그녀는 다시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는 운디네의 운명적 사랑 이야기를 낭만적 사랑, 열정적 사랑, 합류적 사랑이라는 세 가지 얼굴로 그려낸다.

 

낭만적 사랑: 운명적 목소리와 이별/만남의 교차로
 

<운디네>의 전반부에서 운디네의 낭만적 사랑은 운명적 목소리와 이별/만남의 교차로 표현된다. 이 영화는 특정한 공간에서 이별과 만남이 교차됨으로써 낭만적 사랑의 변화를 보여준다. 운디네는 요하네스의 이별 선언에 “날 떠나면 당신은 죽어”라며 절박한 심정으로 매달리지만, 그 직후에 바로 크리스토프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박물관은 과거의 모형과 현재의 해설을 통해 과거/현재의 교차, 전남친/현남친의 교차의 장소로 그려진다. 운디네가 해설하는 박물관은 도시의 역사를 설명하는 공적 장소이자 운명적 상대인 크리스토프를 만나는 사적 장소의 역할을 수행한다. 박물관 계단에서 내려다보는 카페의 실외는 기다림의 공간, 이별의 공간인 반면에, 카페의 실내는 만남의 공간, 운명적 암시의 공간이다. 카페 실내 수족관의 산업 잠수사 모형에서 “운디네”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은 운디네는 자신의 앞에 갑자기 등장한 산업 잠수사 크리스토프와의 운명적 사랑을 예감한다.

<운디네>의 전반부 스타일에서는 카메라, 시선, 사운드/편집이 운명적 사랑의 과거와 현재의 교차를 보여준다. 핸드헬드 카메라는 실연당한 여주인공이 느끼는 마음의 동요를 흔들리는 화면으로 표현한다. 박물관 계단에서 카페를 내려다보는 여주인공의 시선은 관찰자 시선으로 요하네스의 사랑에 대한 배신, 불신, 의심을 표현한다. 운디네를 부르는 운명적 목소리를 들려주는 사운드가 나오면서, 동시에 수족관의 산업 잠수사 모형과 현실의 산업 잠수사 인물을 교대로 보여준다. 수족관이 깨지면서 운디네의 흰 셔츠에 묻은 유리조각과 붉은 피는 사랑에 대한 상처와 불길한 미래를 암시한다.

 

열정적 사랑: 과거에서 현재로, 거짓된 사랑에서 진실된 사랑으로
 

<운디네>의 중반부에서는 운디네의 열정적 사랑이 과거에서 현재로, 거짓된 사랑에서 진실된 사랑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선, 물 속 산업시설에 새겨진 ‘운디네 ♡’라는 글씨는 사랑의 시작, 확인, 종말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글씨는 물 속 연인의 이름을 새기는 낭만적 사랑, 메기에게 목숨을 위협당하도 좋을 만큼의 열정적 사랑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박물관 해설은 요하네스로 인한 사랑의 아픔에서 크로스토프와의 찰나적 매혹의 순간으로 그 의미가 변모한다. “지금과 옛 것은 다르지 않다고 한 것은 거짓”이라는 운디네의 말은 역사적 시간의 흐름과 동시에 사랑의 변화를 의미한다. 과거 요하네스가 갈아타기, 흔들림, 배신, 의구심으로 운디네에게 괴로움을 안겨줬기 때문에, 현재 운디네는 단 하나의 운명적 사랑인 크리스토프를 선택하고 재결합을 원하는 요하네스를 거부한다.

<운디네>의 중반부 스타일에서는 암시, 카메라 움직임, 시선을 통해 운디네의 열정적 사랑과 미래의 불길한 예감을 표현한다. 운디네가 메기에게 끌려가는 장면, 정신을 잃고 물에 떠있는 장면에서, 운디네의 검은 실루엣과 역광의 조명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현실/환상의 경계를 보여주며 불길한 미래를 암시한다. 또한 깨어진 산업 잠수사 모형도 남녀 주인공의 미래에 난관이 있음을 암시한다. 집에서 크리스토프의 요청으로 운디네가 박물관 해설을 하는 장면에서, 포옹하면서 가까이 앉은 남녀의 투숏(바스트숏)에서 시작해서, 일어서서 해설을 하는 운디네(무릎숏)와 경청을 하는 크리스토프(미디엄숏)의 원숏을 교대로 보여준다. 이 장면은 박물관 해설에서의 긴 역사성과 사랑의 찰나적 낭만적 순간을 대비시켜 보여주면서, 남녀 주인공의 교감을 드러낸다.

기차역 앞길에서 운디네-크리스토프 커플과 요하네스-노라 커플이 교차하는 장면에서, 서로 스칠 때 운디네와 크리스토프가 옆으로 쳐다보는 시선을 보여주며, 지나칠 때 운디네와 크리스토프가 뒤로 쳐다보는 시선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선으로 과거 연인에 대한 감정적 흔적을 보여주며, 시선의 강조를 통해 앞으로의 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박물관 앞 카페에서 요하네스의 곁을 떠나는 운디네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전반부에서는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운디네를 핸드헬드로 따라가며 실연당한 그녀의 감정적 동요를 보여준 반면, 중반부에서는 멀어지는 운디네를 요하네스의 시점에서 보여줌으로써 재결합에 대한 그녀의 감정적 단절을 강조한다.

 

합류적 사랑: 거짓된/진실한 사랑에 대한 처벌/관용
 

<운디네>의 후반부에서는 현실/환상, 처벌/용서를 통해 운디네의 합류적 사랑을 보여준다. 크리스토프가 전화를 걸어 운디네가 전남친을 스쳐지나갈 때 심장박동이 잠깐 멈추었다며 그녀의 거짓말을 비판하는 장면은 현실/환상의 경계에 있다는 점에서 영혼의 공명을 보여준다. 깊은 물 속에서 크리스토프와 운디네가 만나는 장면도 동영상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실/환상의 경계에 있으며 사랑의 정념을 보여준다. 운디네에게 있어 운명적 사랑은 단 하나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배타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크리스토프에 대한 운명적 사랑으로 인해서 요하네스의 가벼운 사랑과 크리스토프가 없는 자신의 삶을 용납할 수 없게 된다. 말과 행동이 다른 요하네스의 사랑은 처벌받는 반면, 거짓이 없고 자신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 크리스토프의 사랑은 용서받는다.

<운디네>의 후반부 스타일에서는 사운드와 영상의 반복을 통해서 운명적 사랑을 그려낸다. ‘스테잉 얼라이브’ 노래가 흘러나오는 장면은 운디네가 메기에게 끌려갈 때와 크리스토프가 운디네의 거짓말에 대해 말할 때 나옴으로써 남녀의 위기를 표현한다. 크리스토프의 전화에서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장면은 어긋난 관계 혹은 불길한 미래를 암시한다. 수족관에서 “운디네”를 부르는 목소리는 운명적 사랑에 대한 예고 혹은 죽음에 대한 암시를 나타낸다. 물 속에서의 물방울 거품 장면이 계속 반복되어 나온다. 특히 운디네가 물에 들어가는 모습에서 크리스토프가 깨어나는 모습으로 연결되면서 죽음/삶의 교차와 초현실적 사랑의 힘을 보여준다. 깊은 물 속에서 손을 보여주는 장면이 계속 반복된다. 크리스토프의 잠수복 장갑과 운디네의 손이 겹쳐지는 장면, 크리스토프의 손과 운디네의 손이 겹쳐지는 장면, 크리스토프의 손에 산업 잠수사의 모형이 들려지는 장면 등에서 남녀 주인공의 운명적 사랑을 보여준다.

 

운명적 사랑의 세 가지 얼굴
 

<운디네>는 요하네스, 운디네, 크리스토프라는 세 인물을 통해서 운명적 사랑의 세 가지 얼굴을 보여준다. 요하네스는 말과 행동의 이중성을 통해서 현대인의 이기적인 사랑과 거짓된 낭만적 사랑을 보여준다. 그는 말로는 “사랑한다”라고 외치지만, 행동은 양다리 걸치기, 배신하기 등 운명적 사랑을 말로만 내뱉는 유형이다. 그는 운디네와 사귀면서 노라를 사귀게 되어 운디네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노라와 사귀면서 싫증을 느껴 운디네에게 재결합을 제안한다. 그는 노라와 헤어질 것이라고 운디네에게 말하지만 그의 말은 거짓으로 드러난다. 그의 사랑은 지금 여기에 있지 않다. 그는 지금 여기에 있는 여성이 아니라 항상 지금 여기에 없는 여성을 꿈꾼다. 요하네스는 인스턴트 사랑, 이기적인 사랑, 가벼운 사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운명적 사랑을 추구하는 운디네에 의해서 처벌받는다.

운디네는 운명적 사랑에 대한 추구와 목숨을 건 사랑법을 통해 열정적 사랑을 보여준다. 그녀는 요하네스에게 ‘자신을 떠나면 죽인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죽이지 않는다. 정작 그녀는 요하네스가 자신의 운명적 사랑을 방해하자 그를 처벌한다. 그녀는 운명적 상대의 주변을 떠돌면서 영혼·육체를 모두 바치는 운명적 사랑을 보여준다. 운디네에게 있어서 사랑은 여러 번 올 수 있지만 운명적 사랑은 단 한 번의 기회, 단 한 명의 연인이라는 점에서 ‘유일성’의 의미로 나타난다. 그래서 그녀는 운명적 사랑 외의 사랑을 배척하고 믿지 않는다. 자신과 연인을 오고가는 기차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바뀌지만 그 기차는 오직 연인에게 가기 위한 수단으로만 작용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유일무이한 운명적 사랑을 표현한다.

크리스토프는 낭만적 사랑과 열정적 사랑에 대한 거짓 없는 마음과 현실에 대한 인정을 통해서 합류적 사랑을 보여준다. 그는 운디네를 계속 그리워하지만 현실의 삶을 선택한다. 그는 현실의 삶에 안주하지만 운디네가 부르는 영혼의 공명에 응답한다. 그는 운디네와의 운명적 사랑을 그리워하지만 현재의 삶을 중시하며, 자신의 사랑과 행동에 거짓이 없기 때문에 운디네의 이해와 용서를 받는다.

<운디네>에서 운명적 사랑의 세 얼굴은 낭만적 사랑의 허상(요하네스), 열정적 사랑의 맹목성(운디네), 합류적 사랑의 균형(크리스토프)을 보여준다. 운명은 모든 것이 나아갈 길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을 의미하며, 그것에 의해서 이미 삶이 정해져 있는 것을 의미한다. <운디네>에서 운디네의 운명적 사랑은 낭만적 사랑, 열정적 사랑, 합류적 사랑의 순서로 나아가며, 우연을 운명으로 바꾸는 찰나적 매혹의 순간을 드러내며, 현실을 초현실로 바꾸는 운명적 사랑의 초인간적인 힘을 보여준다.

 

참고자료
[1] ‘운명’, ≪나무위키≫, 2020.12.14.
https://namu.wiki/w/%EC%9A%B4%EB%AA%85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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