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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애의 문화톡톡] 사랑과 그 적들- <노멀 피플>
[양근애의 문화톡톡] 사랑과 그 적들- <노멀 피플>
  • 양근애(문화평론가)
  • 승인 2021.01.18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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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어려운 시대라고, 사랑이 소비된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사랑은 언제나 필요하다.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으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그와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느낌은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안정감을 얻기 위해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파괴적인 열정이나 죽음 충동으로 치닫는 사랑도 있다. 누구를 언제 어디서 만나는지 또 그 만남이 어떻게 중단되고 지속되는지에 따라 사랑은 무수히 많은 모양으로 나타난다. 모양은 다 달라도 사랑으로 인해 사람이 변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타인으로 인해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충격, 나의 변화로 인해 세계의 풍경이 달라지는 느낌,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경험. 어쩌면 고단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견디기 위해 사랑이 발명된 것은 아닐까. 사랑의 목적은 사랑 그 자체일 뿐, 이제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사랑의 완성이라니, 구시대의 유물편에 들어가야 할 단어 같다.

대중매체에서 다루어지는 사랑의 양태도 많이 변했다. 가장 보수적인 매체로 체제 승인과 재생산의 논리를 제공해왔던 텔레비전에서도 결혼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 않게 된지 오래다. 이성애자 남녀가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치고 결혼으로 진입하는 이야기가 로맨스를 다룬 멜로드라마의 오랜 공식이었다면 그러한 공식은 이제 판타지로서만 유효하다. 그러면 사랑은 어떻게 존재할까. 사랑을 살아남게 하는 사랑의 적은 무엇일까. 샐리 루니 원작으로 2020년 4월 영국 BBC에서 방영되고 최근 한국에도 소개된 <노멀 피플>은 사랑에 관한 오래된 질문을 곱씹게 만든다.

 

노멀피플(출처: wavve)
노멀피플(출처: wavve)

 

우정의 정치와 사랑의 생존

주인공 메리앤과 코넬은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 슬라이고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풋볼선수로 주목받으며 주변에 어울리는 친구들이 많은 코넬과 달리 메리앤은 말없이 혼자 학교에 다니고 있다. 겉으로 오만해 보이는 메리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코넬이 유일하다. 짓궂은 희롱을 일삼는 다른 남학생들과 달리 코넬은 필요한 질문을 하고 메리앤은 솔직하게 자신이 느낀 대로 답한다. 이들 사이에 싹튼 사랑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이유는 그들이 서로에게 진실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노멀 피플>은 고등학생인 메리앤과 코넬의 사랑을 풋풋하고 순수한 시절의 경험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사회화 과정에서 맺게 되는 관계와 그로 인한 젠더롤의 모순이다. 코넬은 남자 고등학생들이 여학생들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자신을 깔보는 듯한 메리앤을 일부러 괴롭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에게 인정받고 무리에서 배제되지 않기를 택한다. 메리앤과 함께 있을 때 코넬은 사려 깊고 정직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그들의 시답잖은 말에 동조하거나 최소한 묵인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태도로 인해 결국 메리앤과 이별하게 된다.

경제적인 문제로 법대 진학하려고 했던 코넬은 메리앤의 말대로 결국 영문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에서 만난 메리앤은 슬라이고의 고등학생이던 메리앤과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두 사람은 다시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다른 사회적 관계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고 주저한다. 슬라이고에서 코넬이 그랬던 것처럼, 메리앤은 자신과 비슷하게 부유한 계층으로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어떤 역할을 가장하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관계에서 배제되거나 축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사랑을 넘어서지 않지만, 그들은 사랑 속의 충만함보다 관계 속에 있다는 위안을 택하고 그 후회까지 끌어안으려 한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메리앤은 “너랑은 게임을 할 필요가 없었어. 전부 진짜잖아.”라고 말하면서도 코넬에게 완전히 자신을 던지지 않는다.

에바 일루즈는 『사랑은 왜 아픈가』에서 자본주의적 속성이 열정적 사랑과 로맨스의 주술화 된 경험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낭만적 사랑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타인의 인정을 통해 자아이미지를 강화하는 기제라는 것이다. 코넬은 맨박스에 갇힌 남성 친구들과의 우정을 포기하지 못했기에 자신이 진짜 사랑이라고 느꼈던 메리앤에게 상처를 준다. 마찬가지로 메리앤은 과거의 상처를 잊고 대학에서 만난 자기 계급의 동료들과 우정을 쌓고 있다고 믿으면서 코넬과의 관계를 공식화하지 못한다. 두 사람은 그들의 사랑이 우정을 포괄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연인 간의 독점적인 관계가 두 사람의 연결만으로 이루어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요컨대, 자본주의의 가속화로 인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평등한 사랑의 관계는 자신을 둘러싼 성별, 계급, 인종 등 사회적 관계망을 안전하게 통과해야만 성립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노멀 피플>은 뒤집힌 신분상승의 로맨스를 시도할 생각이 전혀 없다. 장학금을 받아 유럽 여행을 하던 코넬이 이탈리아에서 메리앤을 만났을 때, 두 사람이 광장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그때 코넬은 “돈이 대단하다”고, “세상을 진짜로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메리앤은 코넬의 엄마를 가정부로 썼던 자신의 엄마가 좋은 고용주가 아니었다고, “왜 전엔 이런 얘길 안 했을까?”라고 반문한다. 그리고 대화는 공평하게 누려야 할 문화자본에 이야기로 살짝 이동한다.

 

노멀피플 (출처: wavve)
노멀피플 (출처: wavve)

 

결핍과 상실의 유대와 노멀 러브

계급적 차이는 경제적 층차뿐만 아니라 문화자본과 같은 상징자본의 위계화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노멀 피플>은 코넬을 영문학에 조예가 깊은 소설가로 설정함으로써 그 위계를 결정적인 요인으로 크게 부각 시키지 않는다. 더구나 코넬에게는 비혼모로 아들을 편협하지 않게 키운 엄마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파티 문제로 메리앤에게 상처를 준 아들을 비난하고 상처 입은 메리앤을 안아준 그녀의 모습은 바람직하면서도 생경하다. 드라마의 후반부는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인한 상처와 오빠의 물리적 폭력으로 인한 메리앤의 위기, 그리고 고등학교 때 친구였던 코넬의 친구 롭의 자살로 인한 코넬의 불안이 가중되면서 둘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진다. 이제 두 사람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되지 않는 더 깊은 쪽으로 이동한다.

평범하고 보편적이고 이른바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범주가 허상이라는 듯, <노멀 피플>은 역설적인 제목을 달고 상처 입은 자신을 알아보는 타인을 받아들이고 그의 세계로 편입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그러니 노멀 러브 같은 것도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기껏해야 할 수 있는 일이란, 결핍과 상실의 유대 속에서 순간에만 유일한 진실인 열정적이고 친밀한 사랑의 행위를 영원인 것처럼 되풀이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코넬의 미래를 위해 그를 미국으로 떠나보내고 아일랜드에 남기로 한 메리앤의 선택은 이별도 사랑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용기로 지속시키는 삶이라고 믿고 싶어졌다.

 

글·양근애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극작, 드라마터그, 평론을 병행하며 극 창작에 참여하고 있다. 2016년 방송평론상을 수상했다. 기억과 역사의 길항 및 문화의 정치성 수행성에 관심을 두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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