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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포제서>, “나를 꺼내 주세요”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포제서>, “나를 꺼내 주세요”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1.02.08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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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든 크로넨버그의 <포제서>(2020)는 흑인 여성 홀리가 중년의 백인 남성을 칼로 잔혹하게 살해하는 오프닝 시퀀스로 시작한다. 홀리가 출동한 경찰의 손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 다른 공간에 누워있던 타샤(안드레아 라이즈보로)는 깨어난다. 타샤는 ‘호스트’로 불리는 타인의 뇌를 장악해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조직에서 일하는 요원이다. 홀리는 타샤에게 지배되어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남성을 살해하고 죽게 된 것이다.

 

타샤는 이러한 일에 재능을 보이지만, 살인 행위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정신적인 안정에 약간의 균열이 생긴다. 타샤의 뇌가 홀리의 뇌에서 정상적으로 분리되었는지 테스트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어릴 때 자신의 손으로 죽여서 만든 나비의 표본을 보며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다음 장면에서, 타샤는 가족을 찾아간다. 그녀는 남편 마이클과 아들 아이다를 만났을 때, 어떤 감정을 표현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한다. 그녀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신의 일과 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이 더 흔들리기 전에 조직으로 돌아온다.

 

죄책감에 빠진 타샤는 어떤 감정으로 가족과 대면해야할지 혼란스러워 한다 

타샤의 다음 임무는 젊은 남성 콜린(크리스토퍼 애봇)의 뇌를 장악해, 그의 약혼녀와 약혼녀의 아버지(숀 빈)를 살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콜린의 몸에 들어간 여성 타샤는 콜린이 약혼녀와 섹스를 하게 되었을 때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도록 조정한다. 이 장면은 타샤가 마이클과 섹스할 때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았던 장면과 대비된다. 다시 말해서 임무의 수행 과정에서 타샤는 ‘호스트’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성 정체성도 변화해간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호스트에게서 분리된 타샤와 그녀의 상관 거더(이 역할을 연기한 제니퍼 제이슨 리는 브랜든 크로넨버그의 아버지이자 유명한 작가 감독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엑시스텐즈(eXistenz)>(1999)에서, 주연으로 등장했다. ‘엑시스텐즈’는 인간의 신경계와 직접 연결해 가상현실을 체험하게 만드는 게임의 일종이다)가 나란히 침대에 누워 서로를 바라볼 때, 그들 사이가 레즈비언 관계 같은 느낌을 준다.

 

임무를 마치고 호스트와 분리될 때, 타샤는 자신의 의식을 되찾게 된다

타샤는 콜린을 이용해 임무를 거의 완수한다. 그러나 호스트의 뇌를 최대 80% 정도까지만 장악할 수 있는 기술적 한계 때문에(그래서 임무를 끝낸 호스트는 자살을 통해 사건을 완벽하게 마무리해야 하지만, 실행 직전에 망설이게 된다) 타샤가 콜린의 몸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콜린의 뇌가 활성화 된다. 콜린은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일과 타샤의 뇌에 있던 기억 사이에서 혼란에 빠진다. 콜린의 몸을 장악하기 위해, 콜린과 타샤가 투쟁하는 과정에서 타샤는 괴물처럼 망가져 버린다. 그 상태에서 콜린은 타샤의 기억을 통해 그녀 가족이 살고있는 집을 찾아간다.

이때 콜린은 마이클에게 “당신 부인 타샤는 고양이 똥을 치우다 감염되어 기생충이 뇌에 들어가 괴물처럼 변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러한 설명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초기 영화 <파편들(Shivers)>(1976)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영화는 기생충에 감염된 인간들이 통제할 수 없는 성적 욕망에 빠져들면서 벌어지는 끔찍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호러와 SF 장르를 접목해 기술 발전이 인간의 정신과 신체에 가져올 가공할 영향을 다루면서, 독창적인 상상력이 가미된 잔혹한 장면을 즐겨 연출했다. <포제서>의 선혈 낭자한 몇몇 장면의 연출 솜씨는 ‘부전자전’이라고 할 만하다.

 

호스트의 뇌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타샤는 괴물처럼 망가져간다

콜린은 마이클을 위협하며 타샤를 굴복시키려 하지만, 타샤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마이클을 죽이라고 한다. 콜린이 마이클을 살해하자 아이다가 등장해 칼을 휘두른다. 거더가 아이다의 뇌를 장악해 콜린을 살해한 것이다. 죽어가는 콜린은 아이다에게 미친 듯이 총을 쏜다. 이때 총을 발사하는 주체는 콜린이 아니라 타샤이다. 따라서 콜린을 타샤의 집으로 이끈 주체는 콜린이 아니라 그녀였다고도 할 수 있다. 타샤는 자신의 손으로 남편과 아들을 모두 제거하고,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못하는 상태가 된다. 이러한 결말은 한편으로 타샤가 인간성을 상실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완벽한 요원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과 가정의 딜레마에 빠졌던 여성이 마침내 일을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살인 장면을 보면, 성인 남성은 칼 같은 도구를 통해 잔혹하게 난자당하는 데 비해 여성과 아이는 총에 맞아 죽는다. 영화 도입부의 살인에서 홀리는 총을 갖고 있었는데도 칼로 살인을 하는데, 거더가 이유를 묻자 타샤는 그것이 더 적합한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남성을 향한 여성의 분노를 표출하는듯한 이러한 설정은 근래에 전개되고 있는 공격적인 페미니즘에 대한 코멘트 같아 흥미롭다.

 

사진출처: 다음 영화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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