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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의 문화톡톡] 미얀마에서 전해온 또 다른 ‘광주’
[류수연의 문화톡톡] 미얀마에서 전해온 또 다른 ‘광주’
  • 류수연(문화평론가)
  • 승인 2021.03.15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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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무엇인가? 기억은 머릿속에 저장되고 축적된 무엇인가를 지시하는 말이다. 그것은 경험이나 일상일 수도, 때로는 학습이나 배움을 통해 쌓여진 지식일 수도 있다. 의도적으로 머릿속에 넣은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잔상처럼 남겨진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 그 가운데 일부는 자꾸 잊혀서 반복적으로 다시 암기해야 하지만, 다른 일부는 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각인된 듯 자꾸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처럼 기억은 의도와 비의도, 목적과 비목적, 유쾌와 불쾌가 혼돈된 상태로 뒤엉킨 머릿속의 그 ‘무엇’에 대한 통칭이다. 그럼에도 기억이란 그 자체로서는 지극히 무색무취한 정보의 덩어리에 가깝다. 어떤 의도가 덧붙여지지 않은 이상, 그것은 그저 축적된 그 무엇 이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의 사건과 결부되는 순간, 동사화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의미 역시 증폭된다. ‘기억하다’라는 말에는 그 자체로 정치적인 의미가 내포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거기엔 의도적인 사고작용이 동반되며, 때때로 그것은 가장 적극적인 행위로서 뒷받침된다.

더 나아가 ‘기억하다’라는 말의 앞에는 어떤 분명한 목적이 부여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그 목적이란 단지 기억을 머릿속에 축적하는 것만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반복적으로 되새김질 하며, 그 기억을 공유하는 과정까지 포함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오월 광주는 그러한 ‘기억하다’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건일지도 모른다.

 

 

오월 어느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대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이민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민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군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낮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낮 12시였던가

- 김남주, 「학살2」 일부

 

김남주 시인의 「학살2」는 우리에게 이 ‘기억하다’가 작동되어야 하는 순간을 환기한다. 비단 이 시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호출을 수없이 맞이해 왔다. 시가, 소설이, 그리고 영화가 그러했다. 그 모든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기억하다’의 공감대를 확장해야 할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오늘, 이 잔혹한 역사의 현장을 기억하는 의미는 또 다른 축으로 확장되고 있다. 바로 2021년 미얀마의 광장이다.

미얀마에서 시민들의 시위가 시작된 것은 지난 2월 초였다. 일부 교수들과 의료진들의 동참으로 규모가 커지기 시작한 시위는 순식간에 거리시위로 확대되었고, 미얀마 경찰이 시위대 해산을 핑계로 총기를 사용하면서 투쟁의 물결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계엄령이 내려졌고, 전투경찰이 실탄을 발사했고, 군대가 진압을 시도했다.

어쩐지 낯익지 않은가? 우리는 꼭 40년 전 광주에서, 미얀마의 오늘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김남주 시인의 시가 그토록 처절하게 토로했던 그 순간은 지금 미얀마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다시 군인으로 대체되는 현장들. 총검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대고 살육과 약탈을 자행했던 그 무자비하고 노골적인 폭력으로 점철되었던 열흘. 그것이 데칼코마니처럼 미얀마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익숙한 또 다른 풍경을 마주쳐야 할 필요가 있다. 바로 2017년 개봉된 영화 <택시운전사>이다. 이 작품은 오월 광주를 그려낸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뿐이랴. 관객 수가 천만을 훌쩍 넘었으니 대중적인 성과까지 획득한 행복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너무나 유명한 영화이기에 그 줄거리를 자세히 말하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광주를 취재하러 온 독일기자와 그를 태운 택시운전사의 동행. 그들을 통해 드러난 광주의 ‘그날’이 깊은 울림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은, 이미 천만이 넘는 관객을 통해 증명되었으니 말이다.

사진1: 영화 [택시운전사] 포스터. 출처: 인사이트
사진1: 영화 [택시운전사] 포스터. 출처: 인사이트

그런데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사실 이 영화의 포스터 속에 모두 담겨 있다. 여기 두 개의 포스터가 있다. 영화 <택시운전사>가 대중적 성공을 거머쥐게 만든 것이 왼쪽의 포스터라면,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아낸 것은 바로 오른쪽의 포스터이다.

바로 “진실을 반드시 전하겠다.”라는 약속. 그것은 오월 광주의 열망과 그것을 짓밟은 폭력을 만천하에 드러나게 만든 힘이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바로 오늘의 그곳, 미얀마에서 말이다.

사진2: 미얀마의 시위현장. 출처: 오마이뉴스
사진2: 미얀마의 시위현장. 출처: 오마이뉴스

 

우리는 이 지점에서 ‘기억하다’는 동사를 다시 끄집어내야 할 것 같다. 기억은 과거의 축적물이지만, 그것이 ‘기억하다’라는 동사로 전환되는 순간 그 의미는 언제나 현재적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우리가 기억하는 것을 지속하는 한, 그것은 고요한 침전물로 가라앉지 않는다. 대신 언제나 요동치는 물결로 또 다른 파동을 야기한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진실을 반드시 전하겠다.” 바로 40년 전의 그 약속이다. 그것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그 진실이 전달될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40년 전 광주의 ‘그날’에 귀를 기울여 주었던 얼굴 모르는 수많은 이들처럼, 미얀마의 ‘오늘’의 소식을 듣고 보아야 하는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그러므로 지금 눈과 귀를 열자. 그리하여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바로 그 ‘기억하다’에 동참하자. 그것이 40년 전 우리의 광주를 지킨 그 약속을 다시금 이행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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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류수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문학/문화평론가. 인천문화재단 이사. 계간 <창작과비평>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다. 현재는 문학연구를 토대로 대중문화연구와 비평으로 관심을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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