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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정답’과 ‘돈’을 거래하는 것, ‘윈윈’이었을까? - <배드 지니어스>
[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정답’과 ‘돈’을 거래하는 것, ‘윈윈’이었을까? - <배드 지니어스>
  • 송연주(영화평론가)
  • 승인 2021.04.05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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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SAT 답안 유출 사건을 모티프로 한 <배드 지니어스>는 2017년 개봉한 나타웃 푼피리야 감독의 태국 영화다. 학원물, 스릴러, 케이퍼 무비의 매력을 잘 살렸고, 흥행에도 성공해 2020년 12부작 드라마 <배드 지니어스 더 시리즈>로도 제작됐다.

빈부격차를 기반으로 학생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을 다룬 학원물은 많았지만, <배드 지니어스>는 천재이지만 가난한 학생이 공부는 못하지만 부자인 학생들에게 시험 정답을 알려주고 돈을 얻는 관계로 ‘윈윈’을 지향한다. 가난한 학생은 학비를 벌어서 좋고, 부자인 학생들은 성적을 높일 수 있어서 ‘윈윈’이라는 논리다. 그래서 이들은 한 팀이 되고, ‘정답’과 ‘돈’을 거래하는 사이가 된다. 영화는 이들이 ‘윈윈’하는 과정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을까. 그들은 마지막까지 ‘윈윈’일 수 있었을까.

 

보통 케이퍼 무비는 멤버들이 만나는 과정과 멤버 소개, 멤버들이 한 팀이 되어 타깃을 정해 어떻게 미션을 완수할지 작전을 짜며 계획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영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션을 향할 수도 있고, 초반에 작은 미션의 성공을 반복하고 미션을 키우며, 후반으로 갈수록 거대한 미션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 사이에 멤버들의 갈등과 작전을 방해하는 적대자, 금기나 예측 못 한 돌발 상황 등을 활용해 영화에 몰입하게 한다. <배드 지니어스>는 케이퍼 무비의 공식을 따르면서, 교내 중간고사 컨닝 같은 자칫 작아 보일 수 있는 사건에도 몰입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오프닝과 구성을 택했다.

<배드 지니어스>의 오프닝은 STIC 시험지가 유출되고 이에 대한 수사가 지연되고 있다는 뉴스 멘트다. 그리고 어두운 취조실에서 심문을 받는 린, 그레이스, 팟, 뱅크를 순차적으로 소개하며 과거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보여준다. 이들은 각자 억울함을 호소하며 서로가 어떻게 만났고, 어떤 관계인지를 설명한다. 이는 학생들이 교내 중간고사부터 컨닝의 크기를 키워 영화의 중간점에서야 드러나는 STIC 답안 유출 계획까지를 시간 순으로 구성하는 것보다 몰입감을 주기에 적절한 선택이었다. 거대한 목표를 초반에 확실히 제시하면서 동시에 과거의 상황과 인물 소개, 갈등을 경제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 후반에 드러나는 멤버들의 심문 과정에 대한 반전도 좋았다.

린의 전학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가난한 교사이자 이혼남인 린의 아버지는 딸의 미래를 위해서 비싸지만, 졸업생이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많이 간다는 방콕의 명문 고등학교로 린을 전학시킨다. 입학 면담에서 린은 교장을 재치 있게 설득해 전액 장학생이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학교 교장은 뇌물을 받아 학교를 운영하고, 수학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과외라는 명목으로 시험문제를 유출해주고 있었다.

 

린은 천재이지만 되바라진 소녀다. 자신에게 예쁘다고 칭찬해준 그레이스가 수학문제를 풀지 못하자 기꺼이 지우개에 정답을 적어 전달해준 자기만의 선함도 가지고 있다. 그레이스에게 베푼 호의가 문제가 됐다. 엄청난 부자인 그레이스의 남자친구 팟은 린에게 은밀한 제안을 한다. 부자 학생 다섯 명이 돈을 줄 테니 그레이스에게 알려준 것처럼 시험마다 정답을 알려달라고. 그렇게 린은 돈을 받고 시험 중에 피아노 운지법으로 정답을 알려주는 일명 ‘피아노 선생’이 된다.

이제 이들의 작전을 방해할 인물이 나타날 때다. 뱅크. 낮에는 학교 가고, 밤에는 홀어머니가 운영하는 세탁소 일을 돕는 착실한 학생이다.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는 뱅크는 린과 전교 1, 2등을 다투는 라이벌이다. 뱅크 역시 린처럼 호의를 가진 것이 문제가 된다. 린과 통이 거래관계에 있는 것을 모르는 뱅크는 린에게 통이 린의 답안지를 엿보고 있다고 알려주고, 통이 린의 답안지를 훔쳐봤다고 학교에 고발한 것이다. 이로 인해 린은 통에게 돈을 받고 답을 알려주었다는 것이 들통나고, 린에게 주어질 장학금 혜택은 취소가 된다. 그리고 뱅크는 경쟁자인 린이 배제되면서 학교 대표로 싱가폴 장학금 대상자가 된다. 이 지점에서 린에게 돈을 주고 성적을 높인 부자 학생들은 잃는 것이 없다. 돈을 주었던 그들이 고발되거나 처벌 받는 상황은 생기지 않는다. 결국 이들의 작전이 실패했을 때, ‘윈윈’은 성립할 수 없었다. 가난한 린에게만 벌이 주어졌다.

 

부자 학생들의 다음 미션은 미국 유학이다. 그레이스는 미국 유학에 반드시 거쳐야할 STIC를 린에게 도와달라고 한다. 장학금이 취소되고 돈이 필요한 린은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 린은 팟에게 뱅크와 함께해야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뱅크는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 착실하고 고지식한 학생인 데다, 싱가폴 장학금을 받는 시험까지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팟은 사람을 시켜 싱가폴 장학생 시험 하루 전날, 뱅크를 폭행하고 쓰레기더미에 버려서 시험을 치를 수 없게 만든다. 모든 희망을 잃은 뱅크에게 린이 제안한다. STIC 정답을 유출하자고. 뱅크가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영화는 중간점을 넘어 이제 큰 미션을 향해 달려간다.

 

린과 뱅크는 STIC 정답 유출을 위해 시드니로 간다. 오페라하우스를 바라보며 이 작전에 성공해서 돈을 벌고, 더 넓은 세상을 누비고 싶다고 꿈꾸는 린과 뱅크. 그러나 돌발 상황이 벌어진다. 대한민국에서 시험지가 유출되어 감독이 더 깐깐해진 것이다. 린과 뱅크는 우여곡절 끝에 정답은 전송했지만, 뱅크는 STIC 감독관에게 잡히고,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게 된다. 부자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얻어 호화로운 파티를 할 때, 뱅크는 희생양처럼 최악의 상황이 되었고, 린은 뱅크를 망가뜨린 죄책감에 빠진다. ‘정답’과 ‘돈’을 거래하는 것, ‘윈윈’은 마지막까지 절대 가능하지 않았다.

 

‘돈’을 주고 ‘정답’을 산 부자들의 각성은 없어서 아쉽지만, ‘먼저 속이지 않으면 당하는 게 인생’이라고 말하던 린이 뱅크를 통해 변화했고, 희생양이자 더 큰 악당으로 타락하려는 뱅크를 보고 모든 것을 바로잡으려는 린의 마지막 행동은 영화의 오프닝과 연결되면서 여운을 남긴다.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배드 지니어스>

글·송연주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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