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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외침 사이에서, 우리는 음악을 선택한다 - <마니에르 드 부아르> 음악편 독자 리뷰⓵
침묵과 외침 사이에서, 우리는 음악을 선택한다 - <마니에르 드 부아르> 음악편 독자 리뷰⓵
  • 권예인
  • 승인 2021.04.05 14: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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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에르 드 부아르> 음악편 독자 리뷰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자매지로 발행하는 계간무크지 <마니에르 드 부아르>의 봄호 ‘뮤직, 사랑과 저항 사이’는 봄만큼이나 다채로운 내용을 담았다. 먼저 알록달록한 겉표지의 그림을 보고 어떤 내용일지 짐작해봤다. 음표를 손에 쥐고 전투적인 자세를 잡은 여러 악기가 보였다. 이들이 노리고 있는 대상은 날개를 단 가위였다. 양복을 차려입은 가위들의 외양을 보니 누군가 떠오르기도 했다. 안에는 어떤 글을 담았을지 기대하며 가방에 잡지를 챙겼다. 

 

 

가방을 메고 나갈 채비를 다 하면 둥글고 작은 플라스틱을 찾는다. 그 귀여운 모양의 블루투스 이어폰은 집을 나서기 전 잊으면 안 될 물건이다. 이어폰 없는 통학 길이라. 상상을 포기하며 ‘유튜브 뮤직’을 켠다.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노래를 틀고 문을 열고 나간다. 그렇게 내 하루는 시작된다.

언제부터 음악이 일상 속 필수 요소가 된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스스로 음악인은 아니어도 음악적 존재이지 않을까 싶었다. 잡지의 서문에서 르노 랑베르와 에블린 피에예가 “벤조를 간직하라”는 이야기를 전했을 때, 작고 네모난 블루투스 이어폰이 오늘 나에게는 하루의 탐험을 시작할 벤조가 아닐까 생각했다. 조난당한 남극 횡단 탐험대가 형제애로 뭉쳐 노래할 수 있게 한 그 악기 벤조를 나도 늘 품고 다녔다.

잡지는 총 4부로 구성됐다. 1부는 상품과 유혹 사이, 2부는 전복과 저항 사이, 3부는 음계의 안과 밖, 그리고 4부에서는 ‘그럼에도 음악은’을 이야기한다. 글 사이사이엔 붉은색 종이 위에 가사, 가수를 수록한 읽을거리 짤막한 읽을거리가 껴 있다. 덕분에 조금 어려운 글에 머리를 싸매 읽더라도 즐겁게 완독할 수 있었다. 

 

어느 사이의 음악

 

 

 

1부에서는 음악의 순수성과 상업성 사이를 탐구한다. 뮤지션에게 역설적일 수밖에 없는 그 틈에 관한 여러 입장을 살펴봤다. 우선, 이 틈이 존재하는 이유는 음악의 소프트 파워 때문이다. 직설적으로 외치지 않아도 마음을 이끌 수 있는 음악의 특성은 종종 힘을 발휘한다. 

이브 외데스는 이러한 MTV의 소프트파워에 집중했다. 한국에 사는 나는 MTV를 그저 유명한 뮤직비디오 채널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록 국가이자 록 채널인 MTV는 TV 프로그램이 아니라 태도이고 분위기며, 삶의 방식이다.”라는 대목을 읽으니 미국에서 MTV의 의미를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미국의 청년 세대와 가장 닮은 미디어로서 자유의 정신을 가득 담고 있다. 그럼에도 MTV 또한 상품이며 인수 이후 수익성을 찾아 나선 역사가 있었고, MTV는 사회적 캠페인과 자유 사이를 경험하며 그 틈에 존재했다. 글을 읽고 나니 “총체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해라”는 MTV의 슬로건은 단순히 이들이 청년 세대에 전하는 말이 아닌, 순수성과 상업성 사이에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벗어나고 싶지는 않은 채널의 존재 이유를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2부의 글은 세상을 뒤집고 맞서는 음악의 모습에 초점을 두었다. 그중 에블린 피에에의 <레트로, 기존 질서를 전복하는 ‘오래된 미래’의 음악>은 레트로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설명한다. 에블린 피에에는 레트로를 옛 문화에 대한 청년 세대의 단순한 호기심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 시대의 정신에 몰입하여 현재에 맞게 배치했다고 말한다. 전복의 주체는 요즘 청년 세대이고, 그 세대인 나는 레트로가 청년들이 어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수단일지도 모른다는 그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얼마 전, 드라마에서 과거 회상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중년인 주인공은 청자켓과 복슬복슬한 머리를 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 외엔 달라진 게 없으니 단순한 스타일 변화인가 싶었지만, 어떤 노래가 흘러나오고 나서 회상 장면임을 깨달았다. 엄마의 애창곡이 나오자마자 그 옛날의 시점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  

 

 

3부에서는 음계의 안과 밖의 실험 정신을 다뤘다. “가장 아름다운 투쟁가는 단순한 후렴가”에서 알 수 있듯, 음계 자체가 가진 힘에 주목한다. 그중 아미리 바라카의 <재즈가 블루스에서 출발한 이유>는 동화처럼 재미있었고, 술술 읽었다. 그는 블루스를 주인공으로 의인화했다.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묘사된 블루스는 재즈의 부모였다. 재즈는 블루스의 감수성을 이어받아 흑인 사회에서 태어났다.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재즈를 보며 블루스는 자랑스러워한다. 재즈 탄생의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읽다 보니 재즈가 올바른 이야기를 외치길, 변질되지 않게 자라길 바랐다.

 

그럼에도 음악은 ‘자유롭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여러 틈 속에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음악의 특성을 짚어간다.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다양하고 근본적인 이유를 탐구했다. 이란의 가수들이 망명을 택하여 음악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부터 BTS의 소프트파워에 담긴 영향력까지, 음악은 현실과 떼놓을 수 없다. 이제 너무나도 익숙한 그룹 BTS의 초국적 보편주의와 탈 국가주의는 그들이 음악을 하는 이유와 팬들이 음악을 향유하는 이유가 단순 유희에 있지 않음을 지적한다. 국가를 초월하는 보편성은 BTS의 노래에 담긴 메시지에 있었다. 자유로운 메시지는 다양한 연령과 국적의 팬들에게 퍼져나간다. 이를 통해 의도적으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마지막 글의 저자는 하림은 “우리는 왜 노래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글을 시작했다. “노래는 우리가 혼자라는 사실을 잊게 해준다.” 중요한 점은 ‘우리’에 있다. 으악은 누구 하나만 사용할 수 있는 소유물은 아니다. 우리 누구든지 따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소리를 낸다. 나만 부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보편적이고, 자유로운 음악이다. 그렇게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자유로이 불릴 수 있었다.

 

그 사이를 지켜보며

책의 끝자락에는 부록으로 ‘뮤직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실렸다. 그중 먼저 눈에 들어온 건 ‘2020년 뮤지션이 순 최저 임금 1,185유로를 확보하기 위해 대중이 그 곡을 청취해야 하는 횟수’를 플랫폼별로 조사한 결과였다. 결과 맨 위에 위치한 ‘유튜브 뮤직 1,910,000’이라는 숫자는 내 선택에 회의를 남겼다. 순수와 상업 사이에서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뮤지션들을 내 선택이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이를 확보하기조차 쉽지는 않으니. 

정치, 사회, 경제, 그리고 음악. 우리와 떨어질 수 없는 존재로서의 음악은 일상을 만들어낸다. 많은 이들은 MTV의 비디오를 보며 정치 선전을 들었고, 재즈를 즐기며 사회를 바꿔놓았다. 지금은 레트로를 즐기며 먼 세대와 화합하고, BTS의 젊은 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곤 한다. 우리는 역사를 노래하고, 또 미래를 노래한다. 사랑과 저항 사이의 줄다리기 안에서 다양한 노래를 만들어낸다. ‘금지곡’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진 만큼, 자유로운 일상은 금지되지 않았다.
 
빅토르 위고는 “음악은 말할 수도 없고, 침묵할 수도 없는 것을 표현한다.”고 말했다. 저항과 사랑처럼 우리가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망설일 때, 음악이 대신하곤 한다. 침묵과 외침 사이에서 우리는 음악을 선택한다.

 

글 · 권예인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자신 있되 자만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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