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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세월호 세대 ‘그날’의 기억
[기자수첩] 세월호 세대 ‘그날’의 기억
  • 김유라 기자
  • 승인 2021.04.16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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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나는 고3이었다. 쉬는 시간에 수행평가를 준비하느라 교과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한창 공부하고 있는데 교실 뒤편에 모여있던 친구들 무리가 웅성대기 시작했다. ‘어떡해’를 연발하며 집중을 방해했다. 종국엔 한 친구가 내게 다가와 핸드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세월호 뉴스특보 (글에 언급된 '속보'는 사진과 다른 기사임을 알립니다.) 출처=YTN 뉴스 캡쳐

“이것 좀 봐. 이거 우리가 작년에 탔던 배 아니야?”

화면에 보인 건 제주도로 향하던 배가 침몰하고 있고, 그 안에 수학여행 중인 고등학생들도 다수 갇혀 있다는 속보였다. 세월호. 1년 전 수학여행을 떠나던 나와 내 친구들을 제주도로 태워준 바로 그 배였다. 그 커다란 것이 바다 한가운데 빠지고 있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는 무심히 고개를 돌렸던 것 같다. 다시 교과서에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당장 수행평가가 코앞인데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길 순 없었다.

“구조 되겠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정말로 그렇게 믿었다. 조그만 낚시배가 침몰해도 소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헬기를 띄우고 구조선을 보낸다. 하물며 수백 명이 탄 크루즈선인데, 이 나라가 손 놓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현실적인 와닿음

 

기어이 그 많은 사람들을 품고 배가 침몰했다. 온 나라가 발을 동동 구르며 배 안에 생존자가 있을 수도 있다고, 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골든타임은 허무하게 흘러갈 뿐이었다. 그때는 더 이상 연필을 들 수 없었다. 나와 내 친구들은 시시각각 뉴스를 보며, 우리가 세월호에 탔던 1년 전을 회상했다.

 

침몰 전 세월호의 모습 / 출처=뉴스1

세월호를 처음 봤을 때, 태어나서 처음 보는 커다란 배에 시선이 사로잡혔다. ‘이게 배야 건물이야’ 하면서 기대에 부풀었다. 당시 우리 학교에는 큰 다다미방, 작은 다다미방, 침대방 등이 고루 배정됐다. 나는 이 방 저 방 마구 쏘다녔다. 친구들과 큰 다다미방에 모여 화장하고 즐겁게 놀았다.

세월호의 밤에는 크루즈 옥상에서 레크리에이션을 했다. 불꽃놀이가 까만 하늘을 수놓았고, 우리는 큰 소리로 울리는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우리는 식당에서도 상품을 걸고 게임을 했다. 승부욕이 발동해 소리소리를 질렀더랬다.

 

세월호 침몰 현장 / 출처=뉴스1

단원고 학생이 침몰중인 배 안에서 찍은 동영상이 공개됐을 때, 화면 속 다다미방이 내가 1년 전 웃고 떠들던 그 공간임을 바로 알아챘다. 옥상은 완전히 기울어져 바다에 담궈졌고, 식당에서는 사망자가 발견됐다. 이후에도 사망자가 발견된 거의 모든 공간을, 나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느낀 건 보다 실체적인 공포였다. 세월호가 얼마나 안전관리에 허술했는지, 당시 정부가 얼마나 안일하게 대응했었는지 하나 둘 밝혀질수록 ‘내가 세월호에 탄 그 날 사달이 났어도 이상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학교가 그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갔는가. 또 갈 예정이었는가. 4월 16일 이후 세월호에 타기로 되어 있었던 옆 학교 학생들은 비통한 심정이 되어 눈만 마주치면 서로 악수를 했다고 한다. ‘우리 살았다’ 하고. 지금 돌아보면, 공포에 사로잡혔던 열여덟, 열아홉짜리 아이들이 애처롭다. 또 분노가 치민다. 왜 우린 국민국가 안에서 너무나 당연한 ‘안전’을 의심해야 하는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현실적인 와닿음. 또 그들을 구하지 못한 기성 시스템에 대한 분노. 그것이 나와 내 또래를 ‘세월호 세대’로 만들었다. 이 세대에 각인 된 기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유

 

2016년 광화문 집회 현장 / 사진=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가 겸 르포라이터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16일) SNS를 통해 “진상규명이 이루어지도록 끝까지 챙기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사회적참사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과 특검을 거론했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는 ‘교통사고’일 뿐이라며 일축했던 보수진영도 올해는 "아픔을 정치적 이익이나 사익 추구에 이용하는 행위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며 추모에 동참했다.

이걸로 된걸까. 지난 7년 동안 지지부진했던 진상규명이 정말 속도를 낼 수 있을까. 또 4월에만 반짝 이슈된 후 흐지부지 되는 것은 아닐까. 의심과 걱정은 당연하다. 나는 국민을 지키지 못한 국가를 똑똑히 목격한 ‘세월호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욱 끈질기게 기억하고 지켜볼 것이다. 그날을 돌아보면 여전히 마음이 패이고 또 괴롭지만, 잊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 또한, 7년 전 참사를 함께 겪은 ‘세월호 세대’이기 때문이다.

 

글 · 김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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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기자
김유라 기자 yulara1996@ilemonde.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