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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의 문화톡톡] 일본어 록의 탄생: 핫피엔도
[이혜진의 문화톡톡] 일본어 록의 탄생: 핫피엔도
  • 이혜진(문화평론가)
  • 승인 2021.05.03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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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s in Japan 1966(출처: http://blog.livedoor.jp)
Beatles in Japan 1966(출처: http://blog.livedoor.jp)

 

영국 리버풀 출신의 전설적인 록 밴드 ‘비틀즈’가 최초의 일본 공연을 위해 하네다 공항에 첫 발을 내딛었던 것은 바야흐로 1966년 6월 29일 오전 3시 40분의 일이었다. 전 세계에 걸쳐 확산되고 있었던 브리티시 인베이젼 시기에 비틀즈가 도쿄 부도칸(武道官)의 형편없는 음향시설 속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마쳤을 무렵 일본에서도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록 뮤직이 대중음악 씬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에 록 뮤직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서구의 음악이었지 이른바 독자적인 ‘일본 록’이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1960년대 중반 무렵 록이라고 하면 대개 영미의 록을 번안해서 부르거나 영어 가사로 곡을 써서 부르는 모방의 차원이 일반적이었다.

현재는 한국어나 일본어로 부르는 록의 존재가 당연시 되고 또 익숙해져 있지만, 당시에는 뮤지션들 사이에서조차 일본어 록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불거졌을 정도로 ‘일본 록’의 존재는 매우 생소한 것이었다. 1960년대 말 전 세계가 브리티시 록의 대흥행과 함께 하드록이나 프로그레시브 록이 점진적으로 주목되고 있던 와중에 최초로 ‘오리지널 일본 록’이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선구적 그룹이 바로 ‘핫피엔도(はっぴえんど, HAPPY END)’다.

비틀즈를 중심으로 한 브리티쉬 록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었지만 일본적인 것을 표방하기 위해서는 밥 딜런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포크나 포크 록 정신에 밀착되는 것을 선택했는데, 이러한 태도는 이들의 음악이 미국 록에 대한 강력한 동경과 그 영향력 하에 있었다는 사실뿐만이 아니라 밴드 명의 표기법을 스스로 수정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핫피엔도’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가타카나(ハッピーエンド)로 표기했지만 곧바로 히라가나(はっぴえんど)로 표기법을 바꾸었는데, 이것은 외국어인 ‘Happy End’를 모국어로 표기함으로써 일본적 록 뮤직이라는 독자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점을 존중한다면 ‘해피앤드’라는 영어 발음보다는 일본식의 ‘핫피엔드’로 발음하는 것이 이 밴드의 본의를 적시해주는 자세일 것이다.

 

핫피엔도 멤버 (출처: HATENA Blog)
핫피엔도 멤버 (출처: HATENA Blog)

 

마쓰모토 다카시(松本隆, 드럼), 스즈키 시게루(鈴木茂, 기타, 보컬), 호소노 하루오미(細野晴臣, 베이스 보컬, 신디사이저), 오타키 에이치(大瀧詠一, 기타, 보컬)로 구성된 4인조 남성 밴드 ‘핫피엔도’는 1969년 가을 ‘April fool(만우절)’이라는 밴드 명을 갖고 데뷔한 이래 1970년 ‘핫피엔도’를 결성한 뒤 1973년까지 단 세 장의 앨범만을 발표하고 난 뒤 해체해버렸지만, 포크에 기반을 둔 정통파 J-Rock 장르의 탄생시키면서 현재까지 일본 대중음악 씬에 끼친 기원적 영향력으로 회자되면서 일약 일본 록 씬의 전설이 되었다. 요컨대 ‘핫피엔도’에 의래 미국 록의 취향과 일본문학 풍의 시적 가사가 융합된 오리지널 일본어 록이 처음으로 시도된 것이다. 이러한 면모는 미8군 공연무대에서 미군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면서도 늘 외국 곡을 그대로 따라 연주하고 부르는 것에 회의가 들어 한국적인 음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한 신중현의 발언을 상기시킨다.

약 3년 여 시간의 짧은 활동으로 단명에 그친 그룹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일본 록뿐만 아니라 J-POP 전반에 끼친 이들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뿐만 아니라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이 네 명의 멤버들은 모두 작곡가나 프로듀서, 작사가 등 일본의 메이저 팝 사운드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독자적인 역할을 수행해내면서 지금까지도 대가로서의 활약을 이어오고 있다.

‘핫피엔도’는 1960년대 말 척박한 일본의 록 씬을 일구었다는 점에서 한국 록의 아버지 신중현을 떠올리게 하고, 또 일본어로 된 독자적인 록 뮤직의 효시라는 점에서 한국어 랩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서태지에 비견될 만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970년대 서구의 장르인 록 뮤직에 일본어 가사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는 뮤지션들의 견해를 둘러싸고 ‘핫피엔도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일본어 록의 가능성을 단박에 증명해낸 ‘핫피엔도’의 실험정신과 혁신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971년 12월호 뉴 뮤직 매거진에 수록된 마쓰모토 다카시의 발언은 전후 일본 사회가 앓고 있었던 정체성에 대한 혼돈과 부침 속에서 일본만의 독자적인 의식과 양식이 배태해야 할 주체적 의지를 견지하고자 했던 당대 젊은이들의 기개의 성격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핫피엔도 앨범: 바람을 모아(출처: https://www.pinterest.jp)
핫피엔도 앨범: 바람을 모아(출처: https://www.pinterest.jp)

 


“우리의 일상은 ‘서양의 모조품’과 ‘일본의 꼭두각시’ 사이에 갇혀 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서양’을 잃어버리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일본’마저 상실해버리고 있는 우리가 마치 막다른 골목을 헤매고 있는 맹인처럼 불안해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수단은 우리의 일본을 발굴해내는 것이다. 나는 <핫피엔도>에 그것을 걸고 일본적인 것을 발굴해내련다. (이제 일본어로 록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가나다’의 문제이다. 말을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머리 나쁜 놈들은 침을 놔줄 수밖에 없다.)

일본 록에 먼지 앉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전통 따위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요점은 앞으로 우리가 해나가는 일이 새로운 전통이 될 것이다. (중략) 일본 록이 <핫피엔도>로 진정한 해피엔딩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나는 계몽하겠다는 생각 따위는 해본 적도 없기 때문에 여기서 끝난다 하더라도 전혀 상관 않다. 최초라고 거론되고 있는 것처럼 무언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안온하게 있어서는 안 된다. 공명(共鳴)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문제는, 연주하는 바로 ‘당신’이라는 것, 듣고 있는 바로 ‘당신’이라는 것(미타사이(三田祭) 콘서트에서 <핫피엔도>에 돌팔매질을 했던 제군이여, 우리의 앨범 바람 부는 거리의 낭만(風街ろまん)을 돌로 때려눕힐 작정이었다면 그것은 터무니없는 교만이다). 바람은 역사를 초월하여 불어온다. 그리고 그러한 한에서 바람은 전통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바람 부는 거리의 낭만에서 새로운 일본적인 것을 알아채는 일이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제 <핫피엔도>가 정제(精製)한 바람을 그대들 스스로의 얼굴로 받아들일 때다.”

‘핫피엔도’가 보여준 이러한 기개와 분투는 실제로 그룹이 해체하고 난 뒤에도 멤버 전원이 현재의 J-POP의 기초를 다져가면서 완성을 이루었다(2012년 오타키 에이치가 타계했다). 1970년 URC 레코드에서 발매한 제1집 핫피엔도(はっぴえんど)로 데뷔한 이래, 1971년 제2집 바람 부는 거리의 낭만(風街ろまん), 그리고 1973년 벨우드 레코드에서 제3집 해피엔드(HAPPY END)를 발표한 후 같은 해 9월 해체한 ‘핫피엔도’는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드라마와 영화 OST 작업에 참여하는 등 현역으로서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60년대 고도경제성장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린 옛 도쿄의 풍경에 대한 향수나 상실감을 표현한 마쓰모토 다카시의 가사와 탁월한 연주실력은 일본적 록의 자기화를 가져다 준 가장 큰 무기였다. 다 쓰러져가는 오래된 ‘국수집(ゆでめん)’ 간판으로 상징되는 옛 도쿄의 거리를 그린 1집 앨범 재킷은 전후 일본 사회가 새롭게 찾아가야 할 전통을 상징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는 ‘핫피엔도’의 가장 대표적이고도 대중적인 곡이라 할 수 있는 <바람을 모아(風をあつめて)>를 소개하고자 한다. 1971년데 처음 발표된 이 곡은 2003년의 미국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2009년의 일본 영화 <오토·나·리> 외에 만화 <해변의 여자아이>의 OST로도 사용되었다.

 

​핫피엔도 1집 앨범자켓(출처: https://open.spotify.com)
​핫피엔도 1집 앨범자켓(출처: https://open.spotify.com)

 

바람을 모아(をあつめて)

 

동네 변두리의

비포장도로를 산책하노라면

뿌연 안개 너머로

이제 막 깨어난 노면전차가

바다를 건너는 것이 보였답니다

그래서 나도

바람을 모아 바람을 모아 바람을 모아 

창공을 날고 싶었답니다

창공을

 

아주 아름다운

이른 새벽 무렵이 지나가노라면

휑하니 버티고 있는 방파제 너머로

진홍색 돛을 단 도시가

정박하고 있는 것이 보였답니다

그래서 나도

바람을 모아 바람을 모아 바람을 모아

창공을 날고 싶었답니다

창공을

 

한산한

아침의 커피하우스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노라면

금이 간 유리창 너머로

마천루의 옷깃 스치는 소리가

포장도로를 적시는 것을 보았답니다

그래서 나도

바람을 모아 바람을 모아 바람을 모아

창공을 날고 싶었답니다

창공을

 

동네 변두리의

비포장도로를 산책하노라면

뿌연 안개 너머로

이제 막 깨어난 노면전차가

바다를 건너는 것이 보였답니다

그래서 나도

바람을 모아 바람을 모아 바람을 모아 

창공을 비상하고 싶었답니다

창공을

 

 

글 · 이혜진

세명대학교 교양대학 부교수. 대중음악평론가.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도쿄외국어대학과 도쿄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공부했다. 2013년 인천문화재단 플랫폼 음악비평상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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