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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죽은 자리에서, 우는 것 말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죽은 자리에서, 우는 것 말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 김민주, 신다임, 노수빈기자
  • 승인 2021.05.22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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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죽음, 역사의 눈물] ㉚ 에필로그 집필진 방담회

해방부터 현재까지를 청년의 죽음을 통해 조명한 이 책의 집필에는 문제의식을 공유한 15명이 참여했다. 두 명에서 다섯 명의 필자가 한 주제를 맡아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에 ‘청년의 죽음, 역사의 눈물’이란 제목으로 2020년 11월부터 2021년 5월까지 각각의 기획물로 연재했다. 준비기간까지 합하면 1년 반이 걸린 기획물을 마치며 취재 및 원고작성에 참여한 필진이 모여 방담을 했다. 개인사정으로 빠진 박서윤(이화여대), 한지수(경희대)를 제외한 청년 강우정(고려대), 김민주(경희대), 김유라(가톨릭대 졸업), 노수빈(고려대), 박수빈(서강대), 박수연(이화여대), 송하은(〃), 송휘수(서강대), 신다임(숙명여대 졸업), 이혜원(숙명여대), 최예지(고려대), 황경서(〃)와 유일한 기성세대 안치용(ESG연구소장)이 참석했다.

 

방담회는 2021년 5월 8일 오후 서울 신촌의 ‘파랑고래’에서 안치용 지속가능협동조합 바람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방담회는 2021년 5월 8일 오후 서울 신촌의 ‘파랑고래’에서 안치용의 사회로 진행됐다.

안치용: 우리가 꽤 많은 인물을 다뤘고 정도 차이가 있지만 언론에 보도된 매회 큰 화제를 모았다. ‘이한열 편’은 특정 포털에서만 100만뷰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내가 유일한 글쓰기의 프로이다 보니 여러분에게 엄격한 원칙을 적용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고 그러다 보니 정말 많은 공을 들여 원고를 산출했다. 감사드린다.

황경서: 청년의 죽음이라는 주제로 기사를 쓰고 책을 발행하는 기회가 흔치 않다. 곧 졸업인데 이런 활동을 하면서 대학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의미 있고 좋았다. 내 원고를 쓸 때도 그랬지만, 다른 사람의 기사를 교열을 겸해 앉아 읽으면서 많이 울컥했다. 알지 못한 죽음이 훨씬 많아서 계속 울컥했다. 이러한 기회가 있지 않았다면 몰랐을 죽음을 알게 되었고, 또 이걸 기억할 수 있고 기사로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어서 굉장히 뜻 깊었다.

박수빈: 경서가 말한 것처럼 시리즈의 기사들을 읽어보면서 들어보거나 대충 알았던 사건인데, 내막을 몰랐던 사건이 많았다. 이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내용은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쓴 기사를 보면서 많이 배웠고, 이 작업에 참여할 수 있어서 영광스러웠다.

최예지: 내가 쓴 효순ㆍ미선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 잘 몰랐다.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그 사건 안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포함되어 있음을 느꼈다. 유족들이 사건 초반에는 정치적으로 참여도 많이 하고 투쟁도 하면서 사건을 널리 알리려는 모습을 보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 사건을 기사화해서 다시 상기시키는 걸 원치 않는 모습을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떻게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쓸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효순ㆍ미선의 죽음을 최대한 대상화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조언도 많이 받아서인지 최대한 제가 가고자 했던 길, 즉 객관적으로 감정을 빼고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감사한 마음이다.

안치용: 엄밀하게 말해 정치적 중립이란 없는 것 아닌가. 올바른 정치적 입장을 갖느냐가 중요하다. 정치적 중립이란 말은 대부분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정치적 중립’을 객관적인 입장이라고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면 역사를 똑바로 못 보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을 때 사건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더는 중요하지 않고, 그 해석이 역사와 사회에 맡겨지게 된다. 사적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가 해석하고 사회가 풀어나가는 문제가 된다. 물론 당연히 예의를 지켜야 하지만 사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있음은 분명히 해야 한다.

 

방담회 현장
방담회 모습

 

박수연: 글을 쓰고 글 속의 현장에 다녀왔다. 박영진 열사 원고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밤을 새워 초고를 완성하고 교열하고 넘겼을 때가 오전 8시여서 이미 잠이 다 달아난 상태였다. 박영진 열사는 기념사업회도 없어서 자료 찾기가 매우 어려웠고 사진을 구하기도 힘들다. 차라리 직접 자료 사진을 찍으러 가기로 했다. 2시간 걸려 남양주시의 모란공원에 도착했다. 몹시 추운 2월 어느 날이었다. 모란공원 언덕에 올라가면 미술관이 있고 미술관을 지나 묘역이 있다. 묘역에 가는 길에 꽃집에 들렀다. 꽃집 사장님이 제가 국화를 사려 하니 “묘역 열사 후손이나 친지냐”고 물었다. 열사와 관련된 기사를 썼고, 한 달 걸쳐 쓴 6~7쪽의 기사를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헌화하려 한다고 대답했다. 꽃집을 나와 공원 앞에 있는 민주열사 묘역 지도를 보고, 이정표 솟대를 따라 굽이굽이 길을 걸었다. 아무것도 없이 황량했다. 주말 아침이기도 했지만, 아무도 없고, 까마귀 울고, 헌화 후에 나무 벤치에 혼자 앉아서 묵념하고 있으니, 이렇게 많은 묘역에 많은 열사가 묻혀 있고, 많은 죽음이 있다는 것 때문인지 기분이 굉장히 이상했다. 근처에 전태일 열사 묘역도 둘러봤다. 열사들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노동권을 위해 어떻게 투쟁했는지가 적혀 있어서 한 분씩 천천히 읽어보았다. 그곳이 잊혀진 곳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나라도 기억하고, 또 내가 쓴 글이 앞으로 기사가 되면 더 많은 분이 읽을 것이고, 책으로 출간하게 되면 많은 분이 구입해서 더 많은 사람이 청년의 죽음에 대해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유라: 박수연이 말한 내용을 나는 전태일 열사 편을 쓰면서 느꼈던 것 같다. 평소에 생각하기 힘든, 우리가 지금 영위하는 삶을 위해 죽어간 청년들을 돌아보는 일은 굉장히 뜻 깊다. 그 원고를 쓸 때, 나는 마침 난생 처음으로 최저임금을 받는 알바를 시작했다. 당시 아르바이트 계약서나 월급명세서에 써 있는 최저임금, 주휴수당 같은 것들은 내게 자연스럽게 느껴졌고 안 지키면 ‘나쁘다’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당연한 것을 위해서 전태일이, 누군가가 죽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원고가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많은 청년들이 이 책을 보고 나처럼 다양한 깨달음을 얻어가면 좋겠다.

송하은: 강남역 살인사건 편을 썼다. 글을 쓰는 것이 재미없던 적이 없었는데 글쓰기도 재미없었다.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매일매일 관련 기사와 자료를 찾아보았다. 너무 많이 찾아보다 보니 유튜브 알고리즘이 아예 비슷한 주제의 영상으로 바뀔 정도였다. 원래도 주변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살진 않지만 너무 무서워서 독서실 화장실을 못 가기도 했다. ‘길 가다가 칼 맞기 싫다는 것이 많은 걸 바라는 것인가’하면서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직시해야 하는 현실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한층 성장한 느낌이다. 화장실도 잘 간다. 프로젝트 형식으로 글을 쓴 것이 거의 처음인데, 2~3개월에 걸친 기사쓰기를 끝내고 과제를 하는데 정말 행복했다. 과제는 정말 별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바로 성장했다는 뜻이겠다.

안치용: 힘들었을 거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성과 팩트파인딩 사이의 균형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사관(史官)처럼 객관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정치적 입장을 배제한다기보다 올바름에 관한 객관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건 발생 직후,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강남역 살인사건을 두고 대학생들과 토론한 적이 있다. 여성혐오의 맥락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내가 가진 정보를 가지고는 그 사건을 혐오범죄라고 판단하기 힘든데 누군가는 계속 혐오범죄라고 얘기했다. “팩트에 대해선 우리가 아직 모르지 않느냐”는 내 입장을 마치 내가 혐오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에 나는 판단할 수 없었다. 이번에 강남역 살인사건 원고를 완성하며 판결문 등을 보고 오히려 이 사건 자체는 혐오범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하게 됐다. 청년의 죽음을 통해서 죽음 자체가 의미를 발휘할 때가 있고 죽음을 계기로 새로운 의미가 발휘할 때가 있다. 만일 강남역 살인사건이 혐오범죄가 아니라고 해서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가 없거나 여성 혐오사회가 아니라는 게 아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혐오범죄가 아니라고 해서 그 뒤에 일어난 강남역을 중심으로 한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할 수 있는 운동이 헛수고인 것은 아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그 자체로 혐오범죄를 구성하기 어렵다고 하여도 그것을 계기로 여성들이 새롭게 페미니즘을 각성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고, 그 가치를 부인할 수 없다. 글을 쓰면서 사실 앞에 겸손해야 한다고 믿는다.

김민주: 이러한 프로젝트에 필진으로 참여하거나 개인적으로 이런 기사를 쓴 경험이 많이 없어서 객관적인 자료조사를 하는 것이 어려웠다. 표면적으로 알고 있던 일들을 하나하나씩 살펴보면서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났던 일이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더는 반복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노수빈: 어제부터 지금까지 떨린다.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필진이 조금씩 바뀌고 확대되었는데 나는 처음부터 참여한 멤버였다. 한참 논의가 진행되다가 술만 마시고 흐지부지하는 것 같았는데, 안치용 소장이 갑자기 다음 주부터 발행한다고 해서 당황했다. (웃음) 안소장의 놀라운 추진력 덕분에 지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필연적인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한 일이 개개인의 미시사에서 거시사를 끌어내는 거니까, 그 과정에서 착취나 폭력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개인의 삶을 거시적인 차원으로 끌어 쓰는 데에 있어서 개인 삶의 구체적인 맥락을 생략하거나 일반화하는 것에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글을 낼 때마다 반응이 있어서 내가 너무 작은 것에 집착하고 있었나 등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정리하면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타인의 삶을 쓰는 것에 관한 개인적인 고민이 있었다. 일이 힘들긴 했지만 1차 교열자 역할이 굉장히 재밌었다. 물론 죽음을 다룬 글, 사회적인 것이 얽힌 글이어서 심적으로 힘들었지만, 글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 건축물 하나를 설계도부터 쌓아 올려 완성한 느낌을 받았다. 안치용 소장이랑 밀접하게 일하면서 글이라는 하나의 건축물을 지을 때 어떤 태도, 어떤 균형을 취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어서 굉장히 감사한 시간이었다. 각기 다른 스타일의 글을 보는 것이 재밌었다. 우리가 쓴 글과 우리가 낸 책이 단순한 소비로 끝나지 않고 누군가에게는 진심으로 다가갔으면 한다.

 

방담회 현장
방담회 모습

 

신다임: 훌륭한 글로 잘 탄생시켜주신 안치용 소장에게 감사한다. 노수빈과 함께 1차 교열자 역할을 수행했지만 완벽한 글을 산출하기란 불가능하지 않은가. 내가 교열을 본 글을 안 소장이 마지막으로 봐주고 항상 좋은 글을 만들어 주어서 감사했다. 필자들에게 마감을 많이 재촉했는데 아무도 불평을 안 하고 글을 잘 써주어서 고맙다. 저임금 아르바이트생 황승원과 비정규직 파견노동자 구의역 김 군 기사를 후원해 주신 분(닉네임‘감사함’)이 “나비 날갯짓 같은 작은 외침이지만 꾸준히 무언가를 이룰 그래서 힘없는 사람들도 잘 사는 나라가 되도록,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소리 내어 주시길 바랍니다”는 댓글을 남겨주었는데 기획의도와 맞는다고 생각했다. 청년의 사망, 이런 기사를 쓴다고 세상이 하루아침에 나아지진 않겠지만 지속적으로 이렇게 노출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나가다 우연히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고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구나’를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의 기획의도에 맞게 읽어주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이 좋았다. 누군가가 우리 글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깊이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도 날갯짓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오랜 시간 고생이 많았지만 끝나려니 아쉽기도 하다.

이혜원: 나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다뤘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관해 쓰면서 공부를 굉장히 많이 했는데 공부를 통해 86세대를 이해하게 되어서 좋았다. 세월호를 쓸 때는 그건 정말 많이 달랐다. 내가 경험한 것과 아닌 것을 쓰는 것은 매우 달랐다. 예를 들어 김귀정 등은 공부와 조사로 글을 썼다면 세월호는 나의 경험과 함께 흘러가며 쓰는 느낌이 컸다. 세월호와 관련한 기억이 개인적으로 많이 있어서 울면서 글을 썼다. 빨리 끝내려고 공공도서관에서 집중하며 썼는데, 마스크 써서 벗지 못한 채 일주일을 많이 울면서 썼다. 원고를 마친 다음엔 격한 감정을 나누기 위해 신다임한테 글을 보내며 짧은 편지를 함께 보냈다.

안치용: 이혜원은 필자 중 유일하게 글에 자신이 등장한다. 자신의 경험과 글을 쓰는 경험은 많이 다르지 않은가?

이혜원: 그때 고등학생이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몇 개월이 지난 2014년 7월 어느 날이었다. 단원고 희생자 아버지 두 분이 십자가를 메고 진도까지 간 일이 있었는데, 전주를 지나가는 시점에 전주에 살았던 내가 그 분들과 함께 하루 종일 걸었던 적이 있다. 마음이 아팠고 내가 그 사건의 희생자가 됐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책감이 있었다. 내가 단원고 사고 학생들보다 한 학년 아래였었는데, 사건 당일 국어 수업시간에 모든 학생을 포함해 전원 구조됐다는 소식을 듣고 담임교사와 농담을 했다. “얘네는 수학여행 가는 날 구명조끼까지 입어보고 찐한 추억이네.”그런데 다음 날 그 소식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개인적으로 죄책감이 들었다. 광주 민주화운동 편을 썼는데, 요즘 미얀마 사태를 보면서 광주가 떠올랐고, 역사를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안치용: 여러분은 아무래도 세월호에 제일 공감이 되나 보다.

송휘수: 필진을 모집했을 때 처음엔 지원하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때 근현대사 수업을 들으며 너무 힘들고 피로감이 컸던 기억이 있어서였다. 필요한 만큼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이 프로젝트 글을 쓰면서 많이 느꼈다. 윤금이 편은 내 첫 글이었는데 기사를 쓰기 전까지 그 사건을 아예 몰랐다. 잊히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이주노동자 사건을 쓰고 나서는 이 시점에서 당연히 해결됐어야 하는 문제들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데 충격을 받았고, 직시해야 할 것들을 핑계를 대며 외면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서너 명의 친구로부터 기사를 보고 연락이 왔다. 자신이 몰랐던 것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 고맙다, 다른 글을 더 읽고 싶다는 말들을 해줘서 이 일의 의의를 느꼈다. 글쓰기와 관련해서는 대학생에게 요구되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해보았다. 교열 도중 안치용 소장이 내가 논문에서 인용한 정보가 정확한 것인지를 물어보았을 때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것까지 지적을 받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이후에는 무엇인가 자료를 찾으면 공신력 있는 원 출처를 찾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은 훨씬 책임감 있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안치용: 송휘수는 자료를 잘 모았고 주석량이 제일 많았다. 신뢰할만한 많은 주석을 찾은 것이 칭찬할 만하다.

강우정: 윤동주 편을 쓰면서 느꼈던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연구가 많이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교과서나 역사서에서 배우는 것보다 입체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윤동주가 실제로 독립운동을 한 것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

안치용: 윤동주는 시만 썼다는 시각 같은 것?

강우정: 많은 사람이 윤동주를 시로만 독립운동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천적이었고, 판사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열사다운 모습을 보인 게 많아서 놀랐다. 실미도나 민청학련 사건은 자료가 거의 없었다. 군사정권에서 자료를 폐기했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 때의 진실화해를 위한 보고서가 실미도의 유일한 자료다. 경북대 학생운동가 여정남 같은 응당 기억해야 할 사람들의 죽음을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슬펐다. 독자들이 우리 글을 읽으면서 과거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 주변에 어떤 죽음이 있고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박수연: 모란공원뿐 아니라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위령탑이 있는 양재시민의숲을 다녀왔다. 거기에 국화를 놓고 서 있는데 옆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조형물인가 싶을 정도로 위령탑이 예쁘게 생겼다. 자세히 보면 삼풍 사건에서 사망한 사람 이름이 다 적혀 있다. 나만 이 탑과 함께 외롭게 분리된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소외되었다고 할 수는 없고 잊힌 것을 나만 보고 있는 느낌, 이 공간만 멈춰있고 그것을 나만 보는 느낌, 기묘한 경험이었다. 지금 삼풍백화점 터에 세워진 주상복합 아파트에도 위령탑에서 버스를 타고 가봤다. 기억되어야 할 사람과 사건장소가 떨어져 있다는 게 이상했다. 성수대교 위령탑은 아예 접근이 되지 않아서 서울숲에서 멀찍이 저기 있겠거니 짐작이나 하고 말았다.

안치용: 기억하는 방법에 관한 좋은 지적이다.

 

방담회 현장
방담회 현장

 

노수빈: 사실 처음부터 어떤 회의감이 있었다. 눈물 짜내는 영화 한 편을 제작하고 마는 사업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글을 교열하는 과정에서도 어떤 노동자 어떤 여자가 죽었다. 많은 사건이 일어난 후 시간이 지나갔지만, 현실은 똑같고 전태일의 죽음과 황승원의 죽음이 다르지 않았다. 뭔가 무기력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송휘수가 피로감을 많이 느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았다. 그의 글 두 편을 교열할 때 다른 분들이 그러한 것처럼 송휘수가 사건 자체를 존중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자료조사를 많이 해주어서 그만큼 해주었다는 태도에 많이 감사하고 많이 배웠다. 본인이 피로감을 느껴서 안 하려고 했다면서 고민하면서도 끝까지 찾아서 했다는 것이 특히 감동이었다. 내가 피했다고 보면 송휘수는 계속 찾아서 이만큼 찾은 거에서 힘을 얻었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했는데 송휘수 글 몇 편을 읽으면서 기록하는 것 자체의 의미, 말하는 것 자체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안치용: 그렇다. 기록하고 말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실천이다.

황경서: 우리는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는데 청년의 죽음을 쓰게 됨으로써 그 죽음으로 인해 울고 분노하고 그러지 않았나. 굳이 이걸 선택해서 글을 쓴 것인데 이것이 변화의 불씨, 밑거름이 되는 것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가족한테 많이 자랑했다. 아버지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느꼈던 것들을 평생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주었다.

김유라: 누군가의 죽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체감했다. 모두가 순간순간 용기를 냈기에 이 책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이 출판되면, 독자들과 함께 더 큰 의미를 찾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박수연: 황유미 편을 쓰면서 조금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제 3자 입장에서 사건을 보고 이런 것에 관해 이야기를 쓰는 반면 나에게는 실제로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있다. 안부를 전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우리가 잊고 있는 것들에 대해 사회의 일원으로서 둘러보는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 가까이에 있는 이야기라는 걸 체감했으면 좋겠다.

 

방담회 현장
방담을 마치고 기념촬영

 

신다임: 우리가 글을 쓴다고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잊힌 죽음 속의 청년 하나하나를 되새겨보자는 의미였는데 생각보다 주변에서 이것을 따라주는 독자들이 많았다. 계속 읽어주는 사람들이 계시니까 우리가 한 일이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주변에도 우리처럼 정의감을 가지고 읽으면서 응원을 보내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다.

 

『청년의 죽음, 시대의 고발』, 내일을여는책
『청년의 죽음, 시대의 고발』 표지(내일을여는책)

 

 

<시리즈 끝>

*이 시리즈는 『청년의 죽음, 시대의 고발』(내일을여는책)이란 제목의 책으로 묶여 출간된다. 6월항쟁의 상징인물이자 시리즈의 중간쯤에서 다룬 고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즈음으로 출간일을 맞췄다.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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