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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물이 빚은 한국 건축물에는 자연과 사람이 있다.’
‘바람과 물이 빚은 한국 건축물에는 자연과 사람이 있다.’
  • 김유라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기자
  • 승인 2021.06.30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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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자 백승만 인터뷰]

“프랑스 건축물은 굳건한 제국의 상징처럼 석조와 대리석으로 이뤄졌지만, 한국의 건축물은 바람과 물이 빚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자연적이며 생태적이라는 이야기지요. 비록 식민지 시대를 거친 탓에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구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한국의 건축물은 여전히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편입니다.” 

 

건축예술의 국가인 프랑스에서 한국 등 아시아의 에코 건축양식에 대한 묵직한 저서가 최근 출간돼 현지인들의 한류 이해를 확장시키고 있다. 

프랑스어로 『Ecosystème urbain et architecture en Asie orientale 동양에서의 도시 에코시스템과 건축』(L'Hartamttan. 2021)이라는 책을 펴낸 백승만 교수(56). 프랑스에서 건축사 자격증을 따고 고등사회연구원(EHESS)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아, 영남대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백 교수는 건축설계소 ‘공간’의 수석 건축사,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 서울연구원)의 연구위원을 거친, 국내에 몇 안 되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건축가로 손꼽힌다.  

 백 교수의 저서 목차를 살펴보니, 아시아 정체성의 사유적 흐름, 인간과 자연의 관계의 우주학, 은유학, 도시의 형태학, 코르뷔지에식 도시화와 오스만식 식민화 등 대단히 철학적이며 난해한 용어들이 기자의 숨을 막히게 한다. 

 

- 얼핏 살펴보니 건축서라기보다는 철학서 같네요. 

“원래 건축은 철학과 밀접해요. 철학자들에게 미안하지만, 따지고 보면 해체주의, 구조주의, 현실주의, 신현실주의, 현대화 같은 철학 용어들은 모두 건축용어들입니다. 건축학은 단순한 설계가 아니라, 개인의 취향은 물론, 인간과 자연의 관계, 마을과 공동체 같은 사회적 관계, 나아가선 국가적 이데올로기가 종합적으로 반영된 종합 학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 대학 건축학과 교수이자 한국건축설계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느라 굉장히 바쁘실 텐데, 왜 이 책을 내셨는지요. 더욱이 한국어도 아닌 프랑스어로…

 “20여 년 전, 파리에서 건축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근대 건축물을 많이 살펴봤어요. 그러면서 도시 전반에 영향을 미친 역사라든가, 철학 등을 알고 있어야 하나의 건물도 제대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시는 차가운 돌과 쇠로만 만들어진다고 여겨지곤 하지만, 사실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내는 거니까요. 그리고 프랑스의 건축학계 사람들이 동양에 대해 너무 무지한 거예요. 한국 건축물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작심하고 동양에도, 특히 한국에도 철학적이며 인문학적인 건축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 한국과 아시아 건축물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일까요?

“한국의 도시는 근대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요. 특히 식민지 이전까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중국 전통 건축의 특징은 종교성입니다. 특히 주나라 때의 역성혁명이 큰 영향을 끼쳤죠. 당시 백성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유교적으로 하늘의 기가 바뀌어 천자가 교체됐다는 논리가 필요했습니다. 이런 자연의 원리를 토대로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가 편찬됐고, 이는 중국 도성 건축의 원형이 됐죠. 이후 한족의 영토는 산이 많은 남방지역으로 이동하는데, 이것이 풍수지리설이 발달하는 계기가 됐다고 봐요. 이런 ‘자연의 원리’나 ‘풍수지리설’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어느 정도 변용돼 적용돼 왔습니다.” 

 

- 현대의 도시는 겉보기에는 어느 나라나 비슷해 보이는 듯 한데요.

 “그건 제국주의 시대, 서구의 건축양식이 이식되며 벌어진 현상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종교에 기반한 전통적 도시가 발달하는 동안, 서구에서도 고유의 건축양식이 발달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오스만 모델이 있죠. 이 모델은 계획도시를 기반으로 도시 전체가 매우 정교하면서도 동질성을 갖추게 되는 게 특징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을 거쳐서 한국에도 이 모델이 들어왔습니다. 그 다음으로 언급되는 것이 르 코르뷔지에 모델입니다. 이것은 산업화 당시 ‘노동자’를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의 건축양식입니다. 과거 노동자들이 대거 도시로 몰리며 불량한 주거시설에 머물자, 콜레라 등의 전염병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이에 안전하고 깨끗한 집합 주거를 위한 다양한 방법론이 제기됐어요. 르 코르뷔지에는 일조권, 집 간격 등 주거 단위의 개념을 세웠지요.”

 

- 한국에서도 르 코르뷔지에 건축전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흔히 예술가적 건축가로 알려진 그가 한국에도 영향을 준 것이 놀랍습니다.

“르 코르뷔지에 모델을 도시 중심부 깊숙이까지 들여온 것은 대부분 식민지 국가였어요. 우리나라 도시 중심부에 아파트가 많이 세워지는 것도 이런 영향을 반영합니다. 이런 현상으로 식민 지배를 받은 국가 고유의 색이 사라져 획일화된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 프랑스에서 공부하셨음에도 한·중·일 건축 철학으로 관심이 뻗어간 계기는 무엇인가요?

“건축학자로서, 창작의 고통에 시달릴 때가 있습니다. 창작은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을 재료로 삼는 일입니다. 때문에 스스로의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돼 있어야 더 좋은 재료를 찾을 수 있고, 더 좋은 창작이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정체성을 가졌고, 어떻게 변화해왔나를 바탕으로 건축 관련 글들을 쓰게 된 거죠.” 

 

- 이런 작업을 위해서는 역사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 면도 있지만 저는 스스로를 역사가가 아닌 이론가라고 생각합니다. 역사가는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당대의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고 생각해요. 반면 저 같은 이론가는 ‘현재에서’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집중합니다. 역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현대의 학문에 적용하는 게 저의 일이죠.”

 

-요즘 생태도시 만들기가 유행인 것 같습니다. 건축가로서 어떤 도시가 좋은 걸까요?  

“도시의 의미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도시를 단순히 기술의 집합체로, 아주 차가운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도시의 의미를 회색 콘크리트에 둘지, 그 너머의 ‘문화’에 둘지는 인간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도시를 이루는 건축의 기술도 이런 문화적 감성에 초점을 맞춰서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도시는 언제까지나 사람이 사는 공간이니까요.”

백승만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건축을 단순히 잠자는 공간으로서의 집 짓기로 생각한다면, 공간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투기적 관점만 따지게된다”며,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고려해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추억을 나눌수 있는 장소로서의  건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득, 지금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집’의 가치를 되돌아보게된다. 사실 우리는 ‘집’이 아닌 ‘돈’안에서 살고 있었던게 아닌가? 

 

 

 

글·김유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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