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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영의 문화톡톡] 죽은 자가 남긴 이야기에 대하여: 드라마 <대박 부동산>(KBS)
[문선영의 문화톡톡] 죽은 자가 남긴 이야기에 대하여: 드라마 <대박 부동산>(KBS)
  • 문선영(문화평론가)
  • 승인 2021.08.09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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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귀, 빙의, 퇴마

1930년대부터 등장했던 ‘납량특집’이라는 말은 한 여름 무더위를 피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공포물은 신문, 잡지의 괴담으로, 방송에서는 공포 드라마로 유행하며 오랫동안 여름 특집 이벤트로 활용되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한국 방송에서는 7~8월이 되면 납량특집 드라마를 방송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드라마가 리메이크 된 <전설의 고향>이었다. 하지만 2010년 이후부터 공포 드라마는 특정 시기 방송되는 장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났고, 자연스럽게 ‘납량특집’이라는 말도 사라지게 되었다. 한국 TV공포 드라마의 변화는 가족, 멜로 중심에서 추리, 스릴러, 공포 등 다양한 장르적 확대가 이루어지는 분위기와도 맞물리는 분위기와도 연결되어 있다.

한국 공포 드라마에서 자주 활용되는 소재 중 하나인 원한을 가진 귀신의 형상이나 특징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한국 공포 드라마에서는 불합리한 상황에서 죽은 자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원귀가 되어 출현하고, 이를 해원하는 이야기가 가장 많다. 한국의 전형적인 귀신의 이미지를 대중화시킨 <전설의 고향>의 경우 억울한 죽음의 여귀가 대표적이었다면, 이후 현대 공포물에서는 원귀가 살아 있는 사람에게 빙의되는 서사가 중심이 되어, 이를 퇴치하는 이야기가 많다. 대표적인 드라마는 <M>(1994, MBC), <고스트>(1999, KBS), <혼>(2009, MBC), <주군의 태양>(2013, SBS), <오 나의 귀신님>(2015, tvN), <손 the guest>(2018, OCN), <방법>(2020, tvN) 등이 있다. ‘원귀, 빙의, 퇴마’는 한국 공포 드라마에서 여전히 인기 있는 테마 중 하나일 것이다. 최근 방영된 <대박 부동산>(극본 하수진이영화정연서, 연출 박진석이웅희)은 이 세 가지 요소를 적절히 활용한 흥미로운 공포 드라마이다.

 

집에 얽힌 죽은 자의 진실

<대박 부동산>은 귀신 들린 집의 원귀나 지박령을 퇴치한 후 부동산 매매 계약을 진행하는 퇴마사가 운영하는 독특한 부동산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박 부동산’의 대표 홍지아(장나라 분)는 가업으로 물려받은 퇴마 부동산을 운영하는 전문 퇴마사이다. <대박 부동산>은 다양한 사연을 가진 원귀가 출현하고 영매를 이용하여 빙의된 원귀를 퇴치하는 에피소드형 공포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빙의, 퇴마를 다룬 공포 드라마의 전형적인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박 부동산>에서 주목할 점은 원귀의 출현 장소와 그들의 사연이다. 이 드라마는 귀신이 출몰하는 집에서 생활할 수 없기 때문에 부동산 처분을 문의하러 온 의뢰인과 관계된 원귀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그러니까 <대박 부동산>의 원귀들은 모두 ‘집’과 관련된 사연으로 인해 떠나지 못해 귀천을 떠돌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집’은 생존에 있어 기본적 조건일 뿐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을 담고 있는 개인적인 공간이다. ‘집’은 단순한 거주 의미만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공간이다. 특히 최근 한국 사회에서 집은 성공의 상징이자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되어, 집에 대한 관심은 집착으로 확장되고 있다. 

 

출처: '대박 부동산' KBS공식 홈페이지
출처: '대박 부동산' KBS공식 홈페이지

<대박 부동산>의 원귀들이 거주하거나 일했던 집이나 건물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부동산 관련 억울한 사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원귀들에게 집은 이루고자 하는 꿈, 지키고 싶은 삶이었지만, 현실은 그들의 소망을 쉽게 무너뜨리고 짓밟아버린다. 분양 사기로 인해 투자한 자금뿐 아니라 미래마저 잃게 된 청년, 임신한 딸을 위해 어렵게 얻은 집을 이중계약 사기로 허무하게 잃어버린 엄마, 건물주와 임대문제로 갈등하다 살인을 당한 청년 자영업자, 공공임대와 일반임대 사이의 갈등 상황에서 아이를 잃게 된 부부, 부실시공 문제로 붕괴된 건물에서 죽은 사람들 등 <대박 부동산>의 원귀들에게 ‘집’은 소망이었지만, 그 소망은 너무도 쉽게 절망이 되고, 죽어서도 그 공간을 떠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그들이 억울한 사연의 원귀가 된 것은 삶의 안식처이자 꿈이었던 ‘집’을 누군가에 의해 쉽게 빼앗기거나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집이 투자와 투기의 목표로 집중되어 탐욕이 되어 버린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누군가의 평범한 삶을 무너뜨린다. <대박 부동산>의 원귀들은 특정 범죄나 개인적 복수에 의한 악령이 아닌, 평범한 원혼들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집에서 먹고, 자고, 쉬면서 일상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 전부였던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떠나지 못한 사연은 안타깝고 서글픈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원귀의 마지막 기억을 읽는 것은 고통이 따른다.

<대박 부동산>의 홍지아는 영매 오인범(정용화 분)에게 원귀를 빙의시킨 후 귀신을 퇴치하는 침을 찔러, 원귀를 퇴마하는 방법을 쓰는데, 이 과정에서 영매나 퇴마사는 원귀의 생전 마지막 기억을 읽게 된다. 죽기 전 마지막 기억은 원망, 후회, 염려 등 남아있는 사람을 향한 감정이 포함되어 있다. 죽은 자의 마지막 기억은 떨칠 수 없는 감정을 응축하고 있는 것이다. <대박 부동산>의 오인범이 퇴마 이후 원귀들의 마지막 기억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까닭이다. 드라마에서 ‘대박 부동산’은 단순히 귀신 나오는 집에서 원귀를 퇴마하고 부동산 매매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집에 얽힌 원귀가 남긴 마지막 기억과 관계된 사연을 풀어주는 방식, 즉 해원을 한다. 원귀가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남아있는 사람에 대한 후회, 염려 등을 전달하는데, 이는 죽은 자에 대해 온전히 기억하기 위한 애도의 방식이라 볼 수 있다. <대박 부동산>의 퇴마 과정은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놓치지 않고 진실을 복원한다는 점에서 죽은 자에 대한 최소한의 애도의식이다.

 

그들은 왜 떠나지 못하는가

홍지아는 어떤 원귀든 퇴치하는 능력 있는 퇴마사이지만, 정작 자신은 엄마의 원귀를 보내지 못해서 20년 동안 한 집에서 살고 있다. 홍지아는 엄마가 지박령이라 믿고, 재개발을 추진하는 도학건설로부터 갖은 협박을 당하면서도 이사도 가지 않고 엄마의 원귀와 함께 산다. 그녀는 엄마의 원귀를 빙의할 수 있는 특별한 영매를 만나지 못해서, 제대로 된 빙의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엄마 홍미진(백은혜 분)을 떠나보내지 못한다. 홍지아의 합리적인 이유는 오인범을 만나기 전까지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지켜져 온 듯하다. 하지만 그녀는 특별한 영매 능력을 가진 오인범을 만나고, 엄마의 죽음과 얽힌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엄마 홍미진의 원귀를 보내지 못한 진짜 이유를 찾게 된다. 홍지아가 엄마의 원귀를 보내는 방법을 찾는 것은 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그녀 자신에게 있다.

홍지아가 기억하는 엄마의 죽음은 퇴마사였던 홍미진이 마지막으로 한 퇴마 사건에 집중되어 있다. 홍지아는 엄마가 퇴마를 하던 중, 원귀에 스스로 빙의되어 퇴마에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퇴마를 돕지 못한 자신의 나약함이 엄마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것은 엄마의 죽음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의문을 갖는 동시에 자신을 방어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홍지아는 엄마의 죽음의 직접적 원인은 마지막 의뢰인과 관계되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평소 같지 않은 퇴마를 했던 엄마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기억은 마지막 의뢰인과 원귀가 엄마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굳어진다. 결국 홍지아는 마지막 의뢰인과 원귀의 정체에 집착하게 되며, 엄마 홍미진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다른 원귀들과 동일하게 억울함 때문이라고 판단해온 것이다. 그녀의 합리적 의심은 엄마 죽음과 관련된 마지막 의뢰인이 오인범의 삼촌 오성식(김대곤 분)이며, 어린 오인범이 원귀이자, 심지어 달걀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확신을 갖게 된다.

 

출처: '대박 부동산' KBS공식 홈페이지
출처: '대박 부동산' KBS공식 홈페이지

홍지아의 엄마는 전쟁이나 역병, 큰불로 인해 한날한시에 죽은 혼이 한데 엉켜 만들어진, 달걀귀의 재앙을 없애기 위해 퇴마를 하다 결국 죽음에 이른 것이다. 달걀귀는 눈코입이 없는 것이 특징이고 이 원귀가 출몰하면 많은 이가 병들거나 죽는 재앙이 발생하는 무서운 악귀이다. 엄마의 마지막 의뢰인이었던 오성식은 자신이 거주하던 판자촌 마을을 재개발하려는 도학건설의 대표 도학성(안길강 분)의 계략에 넘어가 마을에 방화를 일으킨다. 그는 재개발로 인해 가족의 유일한 안식처인 집을 잃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한 이기심으로 마을에 불을 지른다. 결국 오성식의 잘못된 판단으로 달걀귀가 출현하게 된다. 홍미진의 마지막 의뢰인인 오성식이 안고 온 아이, 즉 오인범은 달걀귀가 빙의된 상태였던 것이다. 달걀귀 퇴마로 알려진 유일한 방법, 빙의된 사람을 함께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홍미진은 오인범을 희생시키는 선택을 한다. 드라마 초중반까지 엄마 홍미진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는 홍지아의 추정을 채워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대박 부동산>의 후반부는 홍지아의 예상과 다른 진실이 드러나면서 흥미로운 반전을 제시한다. 홍지아는 엄마의 원귀를 보내기 위해, 영매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가 빙의되는 방법을 선택한다. 이는 엄마의 마지막 기억을 읽어야 하는 고통을 수반한, 즉 엄마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대면해야 하는 과정이다. 진실을 대면한다는 것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조작되고 왜곡되었던 기억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철저하게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기억은 진실을 왜곡하고 있었다. 홍지아가 대면한 진실은 엄마의 죽음은 달걀귀를 퇴마하는 과정에서, 엄마 홍미진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홍지아가 퇴마를 하기 위해 찌른 귀침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엄마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홍지아의 죄책감은 왜곡된 기억을 만들고 있었다.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접근은 조금 쉬워질 수 있다. 드라마 <대박 부동산>에서 홍지아는 창화식당 어머니의 죽은 아들 원귀를 퇴마하는 과정에서 원귀가 떠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원귀가 존재하는 것은 원귀가 가진 감정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귀는 억울한 사연으로 스스로 떠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남아있는 누군가의 보내지 못하는 마음, 끝까지 놓지 못하는 집착에 의해 남겨지기도 한다. 홍지아가 엄마의 원귀를 보낼 수 없었던 이유는 그녀 스스로에게 있었다. 원망, 후회, 죄책감 등 엄마에 대한 집착하는 그녀의 마음이 엄마의 원귀를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대박 부동산>의 후반부는 퇴마사 홍지아가 진실을 대면하고,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진실을 온전히 수용한다는 것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착했던 사실과 감정을 털어내는 것을 포함한다. 홍지아는 엄마의 마지막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과정을 거친다. 또한 죄책감을 내려놓으며, 자신과 진정으로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죽은 엄마를 온전히 보낼 수 있게 된다.

<대박 부동산>은 퇴마를 통해 죽은 사람의 사연을 읽어내고, 억울한 원귀를 애도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서 퇴마는 드라마에서 제시했듯 “원혼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남아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하다. 남아있는 사람이 제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허망하게 버리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대박 부동산>의 원귀에 대한 공포, 그리고 퇴마에 대한 상상력은 이러한 사실을 기반하고 있다.

 

 

글・문선영

지식융합학부 조교수. 라디오부터 텔레비전까지 한국 방송극 전반을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 방송극의 장르 문화와 형성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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