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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아의 문화톡톡] 「반딧불」과 『달빛 조각』: 시와 그림책 향연
[김시아의 문화톡톡] 「반딧불」과 『달빛 조각』: 시와 그림책 향연
  • 김시아(문화평론가)
  • 승인 2021.10.05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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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 윤동주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 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

그믐밤 반딧불은

부서진 달조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 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

 

『달빛 조각』(창비, 2021)을 보다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펼쳐 「반딧불」을 다시 읽었다. 그림책을 만든 윤강미 작가가 「반딧불」에서 영감을 받아 『달빛 조각』을 지었다고 ‘작가 소개’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과 끝이 반복적인 시 「반딧불」은 가운데 연에서 “그믐밤 반딧불은 부서진 달 조각”이라는 서정적인 이미지를 만든다. 그림책 작가는 그믐달도 사라진 캄캄한 숲을 따뜻한 느낌을 주는 ‘터키 블루’색으로 칠했다. 금빛 타이포그래피로 빛나는 『달빛 조각』 제목을 보며 표지를 넘기면, 독자는 앞 면지에서 바로 첩첩이 쌓인 산과 강이 그려진 초록 풍경을 만난다. “엄마와 이모가 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오자고 했습니다”라는 문장과 함께 숲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야기는 윤동주의 시처럼 간결하다. “그믐밤 반딧불은 부서진 달 조각”이라는 시적 이미지를 불러오며, 작가는 자매 둘이 아이 둘을 데리고 떠나는 여행을 이야기한다. 보호자인 엄마, 이모, 주인공인 ‘나’, 그리고 동생이 함께 반딧불을 보러 숲으로 간다. 어둠을 뚫고 밤 산책이 시작된다.

 

Ⓒ 윤강미
Ⓒ 윤강미

“엄마, 왜 달이 안 보여요?”

한숨 돌리는 틈에 동생이 물었습니다.

엄마는 대답을 망설이다가 휴대 전화를 들여다보고는 말했습니다.

“음.... 오늘이 그믐밤인가 봐. 달빛이 없어서 별이 잘 보이지?”

 

보름달이 환한 밤도 아닌 그믐밤을 시인 윤동주와 화가이자 그림책 작가인 윤강미는 왜 주목할까? 반딧불은 여름밤에 볼 수 있다. 『달빛 조각』에서 달이 보이지 않는 여름밤, 반딧불의 향연이 별빛과 만난다.

달은 언제나 둥글지만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로 향하며 매일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한가위 추석을 맞이하며 보름달을 보기 위해 사흘 내내 하늘을 쳐다보았고, 며칠 전, 하현달이 된 아침 달을 보았다. 『달빛 조각』을 펼쳐 두고, 하얀 모니터를 쳐다보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새벽은 우연히 시와 그림책의 시간적 배경처럼 그믐달도 없는 캄캄한 그믐이다. 어릴 적 반딧불을 본 경험이 있지만 어른이 되어서 반딧불을 본 경험이 거의 없는 나는 이제 그림책을 통하여, 윤동주의 시를 통하여 반딧불을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과 화가는 그믐밤 달빛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조차 ‘달빛’을 만든다. 보이지 않는 달을 보이게 만든다. 독자에게 반딧불은 ‘부서진 달빛 조각’이라고 명명하며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보여 준다. 도시 숲에선 볼 수 없는 자연의 빛을 재현한다. 평소 우리가 잘 볼 수 없는 풍경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마법을 펼친다. 독자는 그림책 속의 등장인물과 함께 “향긋한 밤공기”를 느끼며 달맞이꽃을 보기도 한다. 가슴 속 깊은 (무)의식적 슬픔은 깊은 숲속에서 반딧불이 있어 길을 잃지 않을지 모른다. 그림책에서 이야기 화자인 아이는 소원을 빈다. “반딧불이야, 숲을 오래오래 비추어 줘.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나는 거다.” 이 문장에 작가의 소망이 담겨 있다. 이제 우리 모두의 소원으로 만들자.

그믐밤이면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시를 읊으며 숲으로 가자. 반딧불을 보러 숲으로 가자. 반딧불을 볼 수 없는 날이면 그림책 『달빛 조각』을 펼치자. 어른들이여! 무지막지한 개발의 욕망과 정치권의 소음을 잠시 끄고 그림책을 펼치자. 그리고 우리들의 미래를 생각해 보자. 깊이 잠든 동심을 깨워 자연을 보자.

 

 

글. 김시아 KIM Sun nyeo

문학·문화평론가. 파리 3대학 문학박사. 대학에서 문학과 그림책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기계일까 동물일까』 『아델라이드』 『에밀리와 괴물이빨』 『세상에서 가장 귀한 화물』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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