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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오버, 보편적 시대정신을 담아야
크로스오버, 보편적 시대정신을 담아야
  • 류지연 l 수원대 국악과 겸임교수, 전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악장
  • 승인 2021.12.01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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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국악에 대하여 

 

사진 : 신민형

한국의 전통 음악을 ‘국악’이라고 한다. ‘한국 음악’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한국에 뿌리를 내린 음악, 또는 한국적 토양에서 나온 음악을 가리킨다. 나무위키에서는 4분류법, 즉 정악, 민속악, 제례악, 창작국악으로 나누는 방법을 사용한다. 창작국악은 세분화 시키자면 정말 많은 방법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서양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는 추세다. 심지어 12음으로 작곡된 음악도 있다. 장르별 분류 기준은 정악, 궁중의식 음악, 민속악, 창작국악이며 정악에는 영산회상, 천년만세, 도드리 등이다. 궁중의식 음악은 제사에 사용되는 제례 음악과 궁중무용, 잔치에 쓰이는 음악, 그리고 임금의 행차할 때 쓰이는 행악이 이에 해당한다. 민속악은 산조, 시나위, 풍물놀이 등이 이에 해당하며, 창작국악은 기악 합주곡이나, 관현악곡 등의 연주 형태가 이에 속한다.

창작국악은 국악인들이 “퓨전 국악”이라고도 불리는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며 대중에게 다가가려 노력하고 있다. 특히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팝 그룹 <이날치>는 2020년 한국관광공사와 콜라보를 진행해 서울, 부산, 전주, 안동, 목포, 강릉을 배경으로 퓨전 국악을 활용한 홍보영상을 촬영했다. 서울, 부산, 전주편이 공개되자 한 달여 만에 세 유튜브 영상의 총 조회수가 7300만을 넘어섰다.

 

대중음악에 국악적 요소 도입 늘어 

현대인들이 국악에 흥미를 갖지 못하는 것은 서양악식 12음계와 화성전개에 익숙한 탓이기도 하다. 서양 음계와 화성이 매우 수학적으로 구성돼 있는 것은 피타고라스 음률만 봐도 알 수 있다. 음계 차이보다도 더 큰 문제는 국악이 대부분 현대인들의 취향과 먼 고전음악 위주이고, 홍보도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래도 유튜브 등에서 생활국악, 창작국악, 사극 OST 곡 등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걸 보면, 대중이 국악 그 자체를 멀리하는 건 아닌 듯하다. 특히 방탄소년단(BTS)이 흥행한 이후로 현대 음악에 국악의 요소를 도입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참고로 가야금에 대한 창작활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가야금 창작곡인 1962년 황병기의 12현 가야금 독주곡 <숲>을 시작으로 점차 늘어났다. 1960년대에는 이성천, 이해식, 황병기 등의 국악 작곡가를 중심으로 다수의 가야금 독주곡이 작곡됐고,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실내악단이나 관현악단의 창단으로 많은 작곡가에 의해 독주곡, 협주곡 등의 가야금 창작곡이 생겨났다. 

1990년대부터는 가야금의 개량으로 줄의 수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연주기법이 시도됐고, 2000년대부터 이어지는 연주자들의 활발한 연주 활동은 작곡가 김대성, 김성국, 박경훈, 이건용, 임준희, 정동희 등으로 하여금 다양한 장르의 가야금 창작곡을 더욱 성장하게 했다. 

 

국악 크로스오버의 경연장인 <풍류대장>에 대한 시청자들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국악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는 과감한 실험정신을 발휘하되, 국악의 본질을 잃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판소리의 문학적인 요소에 보편적이고도 미래지향적인 시대정신을 녹여야 한다.

국악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 경연 TV 프로그램인 <풍류대장>(JTBC)과 <조선판스타>(MBN)를 볼 때 참가자들의 실력도 눈여겨봤지만, 심사위원들의 평도 흥미롭게 들었다. <풍류대장>의 경우, “일부 심사위원들이 국악 전문가가 아니어서 심사기준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라는 시청자들의 지적이 많았다. 

심사위원중에 국악을 한 분과 가요·재즈를 한 분들 간에 음악적 특징이나 선호가 다르고, 심사위원 본인의 기준도 달랐다. 예를 들면 가수 박정현은 리듬이나 재즈분위기가 잘 소화되는지에 중점을 두는 듯했고, 가수 송가인은 창법에 더 비중을 두는 것으로 보였다.

 

크로스오버 심사기준, 세우는 것 자체로 의미 있어 

이렇듯 평가 기준은 심사위원마다 달랐지만, ‘올 크로스 판정’이 내려진 무대에서는 참가자와 심사위원,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었다. 필자가 크로스오버나 퓨전에 바라는 것은, 전통 국악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창작자의 실험정신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도 단순히 팝송이나 대중가요를 국악 창법으로 부른 참가자보다는, 국악에 기반해 과감한 실험정신을 발휘한 창작물을 선보인 참가자들이 돋보였다.

예를 들면 <서도밴드>의 경우 ‘사랑가’를 부를 때 자기가 좋아하는 판소리 한 대목을 던지고 본인들이 창작한 소리들로 풀어내는 전개가 인상 깊었다. <서도밴드>의 이런 시도는 으로 퓨전 국악이 가야 할 길을 보여준 듯하다. ‘배 띄워라’를 부를 때 한복 차림의 밴드 반주자들이 뱃사공처럼 주고받는 열성적인 추임새들이 와 닿았다. 전통의 본질에 창작을 가미한 시도가, 가요나 팝송을 그대로 부르는 것보다 훨씬 재능을 잘 표현했다.

 

판소리의 문학적 요소에 시대정신을 담아야 

크로스오버 경연에서도 지켜야 할 것은 다름 아닌 ‘본질’이다. 참가자들은 전통적인 기본기를 충분히 다져, 국악의 해학, 흥의 요소를 끌어내야 한다. 판소리는 ‘소리’, 즉 음악이면서 문학이다. 앞으로 판소리가 시대정신을 잘 담을 수 있다면, 한층 미래지향적이고 보편적인 장르로 발전할 것이다. 예술가의 고단한 삶을 노래한 오단해 참가자, 가난한 예술가의 슬픈 시대적 현실을 해학으로 풀어낸 최재구 참가자는 많은 이들에게 동시대인으로서의 공감을 샀을 것이다.

크로스오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이들도 아직 많다. 이전에도 “국악의 기본을 무너뜨린다”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필자가 국악을 공부할 때에도 학교에서나 전통 국악인들 사이에서는 크로스오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강했다. “뭐하는 거지, 이도 저도 아닌 게”라는 식의 지적들이었다. 예를 들면, 김덕수 사물놀이도 그 시대에는 크로스오버였다. 당시 국악계에서 “실외에서 하는 농악을 실내에서 시끄럽게 하는 것이 음악인가”라고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이 세계에서 알아주는 사물놀이로 거듭나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국악과 대중음악 사이에 부정적인 경계선을 긋기보다는, 크로스오버의 긍정적인 면모를 더 많이 고려했으면 한다.

 

크로스오버, 국악의 본질을 잃지 않아야

과거나 지금이나, 크로스오버 공연에서 팝송을 부르는 것에 식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시도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크로스오버가 있는 것이라고 본다. 비틀스의 ‘Let It Be’ 등 메들리를 가야금 크로스오버로 연주하던 과정을 거쳐, 현재의 크로스오버가 탄생한 것이다. 이는 하루아침에 이뤄낸 일이 아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 뿐만 아니라 <슬기둥> 밴드도 그랬다. 그들은 국악가요 ‘꽃분네야’, ‘칠갑산’ 등을 불렀고, 당시 국악계에서는 “저런 걸 왜 하냐”라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민요 가수 김세레나도 그 당시엔 퓨전이었다. 그러나 그런 맥이 이어져 이제는 국악의 요소를 활용한 방탄소년단(BTS)의 곡이 빌보드에 오르는 시대까지 왔다.

글로벌 팬덤을 가진 BTS는 국악과의 만남을 통해 2018년 ‘idol’이라는 곡을 발표했다. “덩기덕 쿵 더러러러” 같은 추임새와 장단을 랩과 가사들 사이에 적절히 사용했다. 이 곡의 퍼포먼스에서 BTS는 한옥을 배경으로 한복을 입고 특유의 춤동작으로 봉산탈춤을 재해석했으며, 후반부에는 북청사자놀이도 연출했다. 우리나라 특유의 ‘흥’ 요소를 글로벌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2020년 BTS의 멤버 슈가는 ‘대취타’를 발표했다. 노래 도입부에 “명금일하 대취타하랍신다”라는 원곡 일부가 그대로 도입됐다. 국악 일부를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악에 내재된 음악적 특징을 총체적으로 자기화시킨 시도였다. 한 달 만에 9,000만 뷰를 기록했고, K-컬쳐의 핵심어로 급부상했다. 대취타 관련 조회수도 자연스레 급증했다.

 

국악에 확산된 스토리텔링, 시대적 요구

이제는 국악 장르 전반에 ‘스토리텔링’이 확산되는 추세다. 자신의 삶을 비롯해 우주, 평화, 청청(淸淸, 맑음) 등의 주제가 실로 다양해졌다. 어린이날이면 어린이 특집, 환경의 날에는 환경의 중요성을 담아 국악을 작곡한다. 시대적 요구에 유연하게 부응하는 사례들이다. 

이에 대해, 크로스오버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일부 국악인이 피해를 보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이는 선택의 문제다. 본인이 크로스오버 프로그램에 나오거나, 올곧게 자신의 길을계속 정진하면 된다. 젊은 국악세대는 열려있는 세상과 교류를 원한다. 이제 국악은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다.

 

젊은 국악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크로스오버라고 해도 금도는 있는 법이다. 그저 무분별한 크로스오버는 도태되는 시대다. 8~9년 전 한 때, 중국 시장을 겨냥한 크로스오버가 남발해 우려했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은 젊은 국악인들 가운데 스마트한 친구들이 많아 국악의 본질을 잃지 않고 본인만의 크로스오버를 발전시키는 예가 속속 나오고 있다. <풍류대장>과 <조선판스타> 등을 통해 다수의 시청자들이 “역량있는 젊은 국악인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더 다양한 실험의 마당이 열려야 한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젊은 국악인들이 크로스오버를 통해 삶의 무게와 시대적 아픔을 절묘하게 표현해냈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줬기 때문이다. 

 

 

글·류지연
수원대 국악과 겸임교수, 줄풍류연구소 소장.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수석 및 악장 역임. 서울대, 이화여대, 한양대 겸임교수 역임. 서울대 국악과 및 동대학원 졸업. 이화여대 음악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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