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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자산어보> ― 대역죄인과 청년어부의 친교를 통한 학문과 삶의 변혁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자산어보> ― 대역죄인과 청년어부의 친교를 통한 학문과 삶의 변혁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1.12.0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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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대역 죄인과 청년 어부의 거래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2019)는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유배지 흑산도로 귀향을 온 정약전(설경구)이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와의 교류로 바다 생물에 매료되어, 글공부 지식과 물고기 지식을 바꾸자는 거래로 스승/제자의 관계를 맺는 내용을 다룬다. 창대는 정약전의 어류도감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의 길을 따르기로 결심하면서 스승/제자의 인연을 끊게 되고, 정약전은 창대가 공부보다 출세를 지향한다는 사실에 실망한다. 이 영화는 2019년에 제작되었으나 코로나 사태로 인해 2021년 3월에 뒤늦게 개봉되었으며, 역사영화 불패신화를 이어가는 이준익 감독의 연출력과 이전과는 차별화되는 설경구의 연기로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주자는 참으로 힘이 세구나

: 사학죄인에서 손님으로, 상놈 자식에서 생명 은인으로

 

<자산어보>의 전반부 내러티브에서는 복수와 죽음의 공적 탄압과 목숨을 건 형제들의 우애가 대조적으로 그려지며, 대역죄인이라는 공적 멸시와 따뜻한 사적 교감의 대비, 청년 어부 창대와의 교류를 통한 인식의 변화가 강조된다. 공적 복수-죽음과 사적 우애-삶이 대비적으로 그려진다. 순조 1년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시대 신유박해가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남인 천주교도 지도급 인물에 대해 복수와 죽음의 공적 탄압을 보여준다면, 정약전-정약종-정약용 3형제는 서학과 천주교로 인해 심한 혹형을 받는 가운데 목숨을 걸고 형제들을 구하고자 하는 우애를 보여준다. 둘째 정약종은 ‘난 천주교이나 형이나 아우는 천주교가 아니다’라며 자신이 참수당하는 순교로 정약전과 정약용의 목숨을 구한다.

 

아우를 지키려는 정약전과 형을 염려하는 정약용의 우애가 외면적인 거짓과 내면적인 좌절로 대비되어 그려진다. 첫째 정약전은 ‘난 사학 하는 사람이 원수이며 나에게 관원 몇 명만 붙여준다면 사학의 뿌리를 뽑아주겠다’라며 거짓을 말하기도 하고, ‘선왕(정조)에게 천주교를 버렸다고 맹세하였는데도 약용을 죽이려고 하는가’라며 강하게 항변하기도 하면서 정약용의 목숨을 구한다. 또한 정약전은 정약용과 유배지로 떠나가다가 헤어지면서 ‘살아 있는 것을 욕되게 생각하지 마시게. 버틸 데까지 버텨 보세.’라며 당부하고, 섬(흑산도)에서의 생활이 기대된다며 거짓 미소로 아우를 안심시키고 삶의 길로 나아가도록 독려한다. 정약용은 ‘우리 형은 더 깊은 바다에 있다’며 속으로 정약전을 염려하고, 정약전은 ‘두고 온 아내는 과부가 되고 이별한 자식은 고아가 되었다네’며 혼자 좌절한다.

 

죽음의 고통을 겪는 정약전은 섬 주민의 인간적인 응대와 물고기에 대한 지적 호기심으로 삶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가거댁은 정약전이 사악한 학문에 빠진 대역죄인이니까 잘해주지 말라는 관리의 말을 무시하며, ‘죄인이라도 내 손님은 제대로 대접’해야 한다며 홍어를 상에 올린다. 정약전은 ‘생물(홍어)은 처음이라 이런 맛일 거라 꿈에도 생각 못 했다’며 바다 생물에 관심을 보이게 된다. 정약용은 학문에 관심이 있는 청년어부 창대에게 글을 가르쳐 주겠다고 제안하지만, 창대는 ‘400년을 이어온 주자의 나라에서 부모도 없고 제사도 없는 사학죄인에게 물들까봐 겁난다’며 거절한다. 이에 정약전은 자신이 효가 근본인 유교 나라에서 제사를 금하는 문제로 ‘역적이 되느니 차라리 배교를 하겠소’라고 화를 내자, ‘주자는 참으로 힘이 세구나’라는 말을 듣게 된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창대는 내적 좌절로 술에 취해 바다에 빠지게 된 정약전을 구해내고, 그로 인해 앓게 된 정약전을 위해 문어와 전복을 구해 오며 정약전의 목숨을 두 번 구하게 된다.

 

<자산어보>의 전반부 스타일에서는 공적 탄압, 사적 죽음으로 인한 주인공의 내적 좌절을 카메라 숏 크기를 통한 극과 극의 대비, 기쁨/슬픔의 감정 대비로 표현한다. 정약전이 흑산도로 귀향 가는 장면에서, 바다에 떠있는 조그마한 배를 익스트림롱숏의 공중촬영로 보여주며 미약한 존재를 그려내고, 뒤이어 슬픈 고뇌에 찬 정약전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며 극과 극의 카메라 숏 크기와 편집으로 대비시킨다. 정약전과 정약용이 유배지로 가다가 헤어지는 장면에서, 형 정약전이 아우 정약용 앞에서 섬에서의 생활이 기대된다며 미소를 짓다가, 돌아서자마자 암담하고 슬픈 얼굴 표정을 보여주며, 천주교에 대한 박해와 둘째 정약종의 죽음으로 인한 공적/사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셋째 정약용을 살리고자 애쓰는 첫째 형의 배려를 표현한다.

 

홍어 가는 길은 홍어가 안다

: 상놈 자식에서 제자/스승으로, 사람 공부에서 사물 공부로

 

<자산어보>의 중반부 내러티브에서는 공적 관계를 통해 권력을 희화화하고, 사적 관계를 통해 상놈 자식에서 제자/스승으로, 사람 공부에서 사물 공부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정약전은 흑산도 책임관리인 별장에게 전라우수사에게 청탁 편지를 써주는 대신 옥에 갇힌 창대를 풀어주고, 어린 소나무에 대한 부당한 세금 문제에 대한 상소문을 건네준다. 정약전은 ‘산삼보다 더 귀한 문어’와 전복을 먹고는 바다 생물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느끼고는 창대에서 학문 지식과 물고기 지식을 바꾸자는 ‘거래’를 제안한다. 그래서 ‘양반 나리’인 정약용과 ‘상놈의 자식’ 창대는 학문 지식과 물고기 지식에서 스승이자 제자의 관계를 맺게 된다. 창대는 홍어와 가자미의 차이점을 말하면서, ‘홍어 다니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 다니는 길은 가오리가 안다’라는 이치로 설명한다. 제자 정약전은 스승 창대의 바다생물 가르침으로 사람의 갈 길을 알고자 하는 공부에서 사물 공부로 학문의 길을 바꾸게 되고, ‘밭이 안 좋으면 씨가 싹을 못 틔운다며 자식도 어미 귀한 줄 알아야 하고 남자도 여자 귀한 줄 알아야 한다’는 가거댁의 현명함에 감탄하게 된다. 제자 창대는 학문을 가르쳐 주지만 시는 멀었다는 스승 정약전의 말에 실망하고, 책/시, 제자/머슴, 학문/출세 등의 문제로 갈등하게 된다. 권력 혹은 인간사회에 대해 환멸을 드러내는 정약전과 양반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학문을 배우는 창대가 서로의 가치관으로 대립하게 된다.

 

<자산어보>의 중반부 스타일에서는 틸트, 극과 극의 카메라 대비, 수중촬영 등으로 사적 관계의 변화를 강조한다. 정약전이 창대에서 서학·천주학을 권유하는 장면에서, 정약전이 ‘성리학과 서학이 따로 있지 않으니 너의 영특한 머리로 다른 문물을 배울 생각은 없는지’, ‘서양 사람들도 땅이 둥글다는 것을 알고 천주학을 받아들였다’며 권유할 때 카메라가 지구본 쪽으로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창대가 정약전에게 선물할/가르쳐줄 큰 흑돔을 잡는 장면에서, 창대가 넓은 바다에 떠있는 조그마한 배에 혼자 있는 모습을 공중촬영과 익스트림롱숏으로 보여주다가, 상어를 미끼로 큰 흑돔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미디엄숏과 바스트숏으로 가까이 다가가며 강조한다. 창대와 복례가 만나는 장면에서, 욕설하는 모습, 이쁘다고 칭찬하는 말, 물속에서 서로 쳐다보는 모습 등으로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며, 특히 물속에서 창대와 복례가 눈빛을 교환하는 장면을 몽환적으로 그려낸다. 정약전과 가거댁이 마루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정약전의 어깨에 기대다가 떨어지는 가거댁, 가거댁의 어깨를 안는 정약전을 카메라가 뒤에서 보여주다가, 앞으로 다가가면 아이를 임신한 가거댁의 모습이 보여지면서 손님, 연인, 남편의 관계로의 변화를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드러낸다.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

: 상놈 제자에서 벗으로, 흑산에서 자산으로

 

<자산어보>의 후반부 내러티브에서는 학문/출세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로 스승/제자의 관계가 끊어지고, 공적 사회의 부패와 사적 관계의 좌절을 그려낸다. 정약용의 양반 제자와 정약전의 상놈 제자가 ‘먹을 식’을 운으로 하여 시를 짓는 과정에서 신분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드러낸다. 창대는 ‘곡식이 있어도 먹을 게 없네.’라는 시에 ‘벼슬이 있는 사람은 어리석기만 하고 재능 있는 사람은 기회가 없네.’라는 시로 답하며, ‘애비가 아낀다 해도 자식이 늘 탕진하고’라는 시에 ‘세상만사 다 그렇고 혼자 웃는 사람 아는 이 없네.’로 답한다. 이에 정약용은 ‘과연 형만한 아우가 없구나.’라며 형 정약전의 상놈 제자 창대의 학문을 높이 평가하고, 창대는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고 학문의 길과 공직의 길의 나아갈 바를 깨닫게 된다. 창대는 ‘양반도 상놈도 없고 임금도 필요 없는 세상’을 추구하는 정약전에게 ‘스승의 생각이 처자식을 위험하게 만든다며 목민심서의 길을 걷겠다.’며 스승/제자의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하자, 정약전은 목침을 던지며 ‘이제 배울 만큼 배웠으니 출세도 하고 재물도 모아야겠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라며 목침을 던지며 분노한다.

 

창대는 아버지를 따라 나주로 가서 소과에 급제하여 현감 벼슬을 하면서 공직 사회의 부패에 좌절하고 아버지에게 환멸을 느낀다. 창대는 아기에게 군포 세금을 매기며 소를 빼앗는 아전에게 분노하여 목을 조르고, 그의 아버지는 감옥에 갇힌 창대에게 창대를 빼내느라 큰 재산을 썼다며 원망한다. 한편, 정약전은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집필하면서 고동소리, 성게 등 창대와의 학문적 교류와 소통을 그리워하며, ‘창대가 말하기를 ······’ 혹은 ‘······라고 창대가 말하였다’라는 문구로 바다생물의 스승인 창대의 공적을 기록한다. 창대는 학문의 스승 정약전의 죽음에 통곡하며, 『자산어보』의 서문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다. 정약전은 서문에서 ‘물고기, 해초, 바닷새의 성질을 터득한 창대의 말은 믿을 만하며 오랜 시간 그의 도움을 받아 책을 완성했다’며 창대의 공헌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한다. 또한 정약전은 창대에게 남긴 편지에서 ‘창대 덕분에 음험하고 죽은 흑산도에서 살아 있는 자산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학처럼 살아도 좋으나 구정물 다 묻어도 의연한 자산 무명천처럼 사는 것도 뜻이 있는 거 아니겠느냐’는 뜻을 밝힌다. 이에 창대는 흑산도를 가리켜 ‘흑산이 아니라 자산이오’라는 말로 스승의 유지를 따른다.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는 정약전의 말대로, 창대와의 교류는 정약전에게 있어서 청년 어부 창대는 ‘상놈의 자식’, ‘스승이자 제자’, ‘벗’으로 점차 변화해 간다.

 

<자산어보>의 후반부 스타일에서는 편집과 하이앵글을 통한 부패/자유의 대비, 흑백/칼라를 통한 고통/희망의 대비, 롱테이크를 통한 강조를 보여준다. 정약전이 고동을 보며 창대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정약전의 아들이 고동을 만지며 노는 모습, 정약전이 고동으로 창대를 떠올리는 모습, 창대가 ‘마을에서 조금이라도 슬프거나 억울한 일이 생기면 고동 껍질이 스스로 운다’라고 말하는 모습, 창대가 고동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을 편집으로 보여주면서 과거의 교감과 현재의 부재로 인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창대가 고동 껍질 위에 누워있는 모습을 하이앵글로 보여주면서 마을 사람들과의 소통, 자유로운 영혼을 그려낸다. 우이도에서 정약전이 스승이자 제자인 창대를 그리워하는 장면은 나주 감옥에서 창대의 아버지가 쓸모가 없어진 창대를 멸시하는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대비를 보여준다.

흑백영화인 <자산어보>에서 칼라 장면이 두 번 나온다. 첫 번째는 정약전이 창대를 회상하면서 성게에서 파랑새가 나오는 장면에서 강렬한 파란색을 보여주며, 정약전의 학문의 자세와 벗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며 현실에서의 고통과 낙관적 세계관을 그려낸다. 두 번째는 아내 복례가 ‘난 육지보다 흑산이 좋소.’라고 말하자, 창대가 ‘흑산이 아니라 자산이오.’라며 스승의 뜻을 따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창대가 흑산도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흑산도를 롱테이크로 잡아내며 이때 흑산도가 흑백에서 칼라로 바뀌며 영화가 끝이 난다.

 

······라고 창대가 말하였다

: 세상을 살아가는 세 가지 길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정약종-정약용 3형제의 삶은 세상을 살아가는 세 가지 길을 보여준다. 정약종은 자신의 학문과 종교를 위해서 순교하는 영웅적 삶의 승화를 보여주고, 정약용은 『목민심서』를 통해서 공직자의 올바른 자세를 말하며 부패하고 무능한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며, 정약전은 『자산어보』를 통해 학문, 사회, 신분의 편견에서 벗어나 이상사회를 꿈꾼다. <자산어보>는 양반 정약전과 상놈 창대의 대비, 형 정약전과 아우 정약용의 대비를 통해 현실, 학문, 가치관에서의 차이를 드러낸다.

 

이 영화는 100권이 넘는 저서, 수많은 제자, 높은 공적으로 사회의 존경을 받는 ‘강진’ 정약용이 아니라 오랜 세월 어류도감에 매달리고 상놈 제자 한 명을 길러낸 ‘흑산’ 정약진에게 주목한다는 점에서 이준익 감독의 새로운 시각을 드러낸다. 이준익 감독은 연산군/장생/공길의 삼각관계로 권력/예술의 삶과 동성애를 그린 <왕의 남자>로 천만 관객을 동원했으며, 이후에도 시인 윤동주와 행동하는 지식인 송몽규를 그려낸 <동주>, 아나키스트 박열과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의 투쟁을 그려낸 <박열> 등 역사영화에서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내고 있다. 설경구는 <박하사탕>에서 현대사의 상흔에 괴로워하는 소시민, <오아이스>에서 사회의 편견 속에서 지체장애인을 사랑하는 건달, <불한당>에서 경찰을 이용하려다 사랑하게 된 조폭,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살인자 등 강렬하고 센 연기를 보여줬다면, <자산어보>에서 힘을 뺀 연기, 자연스럽게 배역에 스며드는 연기로 새로운 연기 변신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르몽드 아카데미 원장, 생활ESG영화제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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