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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좌파, 숙명이 된 무기력
유럽 좌파, 숙명이 된 무기력
  • 세르주 알리미
  • 승인 2011.11.11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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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질서를 깨는 것은 그것을 영속시키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사회변화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형성된 좌파가 기존 질서를 깨기 위한 전략을 놓고 분열되고 있다. 개혁인가, 아니면 혁명인가? 1914년 미국에서 있었던 노조 논쟁이 현재 ‘붉은 장미 물결’이 휩쓸고 있는 중남미에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유주의의 족쇄가 정치적 발의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는 이때, 유럽에서는 시장경제에 대한 무기력한 재정비가 도마 위에 오른 것처럼 보인다. 유토피아적 공동체든 사회참여단체든, 난관을 타개할 해법을 찾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해법이 유럽 좌파를 살려낼 수 있을까?

1930년대 이후 자본주의가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주요 좌파 정당들은 당혹해하며 침묵을 지키거나 기껏해야 고장난 시스템을 보수하겠다는 약속에 머물고 있다. 그들은 자주 당내의 자유주의적 경향을 비판하며 여전히 책임감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사회적 분노가 갈수록 확산되는 시기에 진퇴양난에 빠진 좌파의 정치적 게임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원문 보기>>

미국 뉴욕의 월가를 점령한 시위대는 금융인들만 비난하지 않는다. 민주당과 백악관에서 금융계를 대변하는 이들 역시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들은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이 여전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모범으로 꼽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터이다. 니콜라 사르코지와 달리 오바마는 은행을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착각일 뿐일까? 자유주의 질서의 기초(금융화, 자본과 상품 교역의 세계화)가 공격받는 걸 원치 않는 이들(혹은 원할 수 없는 이들)은 현재의 재앙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면서, 자본주의 위기는 내부의 적을 양산하고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이라고 말한다. 프랑스의 위기는 ‘사르코지 때문’, 이탈리아의 위기는 ‘베를루스코니 때문’, 독일의 위기는 ‘메르켈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치자. 그럼 다른 곳은 어떨까? 미국뿐 아니라 여러 국가에서 오랫동안 온건 좌파들이 모범으로 여기던 정치 지도자들이 분노한 시위대의 표적이 되고 있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의장이기도 한, 그리스 총리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는 대대적인 민영화, 공공부문 인원 감축과 함께 자유주의 ‘트로이카’(1)의 손에 경제·사회적 주권을 넘겨주는 내용의 가혹한 긴축안을 추진하고 있다. 스페인·포르투갈·슬로베니아 정부 역시 좌파라는 말이 유명무실해질 정도로 본래의 정치적 지향점을 상실했다.

유럽 사민주의의 한계를 가장 정확히 비판하는 이는 역설적이게도 프랑스 사회당 대변인 브누아 아몽이다. 그는 최근에 펴낸 저서 <새로운 시작>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럽 사회당들은 기독교민주주의 세력과 타협하며 역사적으로 유럽 시장의 자유화 전략과 그 결과인 사회적 권리와 공공서비스의 축소를 지지해왔다.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강요한 긴축정책을 받아들인 것은 다름 아닌 사민주의 정부들이다. 그리스는 물론이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긴축안 반대 시위대는 IMF와 EU 집행위원회뿐 아니라 자국의 사민주의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중략) 유럽 좌파 일부는 우파와 마찬가지로 예산 균형을 회복하고 금융시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국가복지를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에 더 이상 반대하지 않는다. (중략) 우리는 이런 식으로 세계 곳곳에서 진보를 향한 발걸음을 가로막았다. 나는 이런 경향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2)

그러나 브누아 아몽을 제외한 대부분은 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이 부르주아화한 데서 원인을 찾으며 현재의 변화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역시 온건좌파로 분류되는 브라질 노동당(PT)은 남미의 좌파가 지나치게 자본주의화·미국화되는 바람에, 민중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명분을 잃은 유럽 좌파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비판한다. “오늘날 전세계 좌파의 이데올로기적 지도력이 지리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 9월에 나온, 브라질 노동당 전당대회 준비 문건에 실린 글이다. “이런 맥락에서 남미는 다른 곳과 구별된다(로벵송 기사 참조) (중략) 19세기부터 전세계 좌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유럽의 좌파는 경제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채 신자유주의의 지배에 무릎을 꿇은 것으로 보인다.”(3) 유럽의 쇠퇴는 노동조합주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배태한- 그러나 동시에 그것들의 소멸을 가장 먼저 용인한- 구대륙의 이데올로기적 영향력 쇠퇴를 의미하는 것일까?

좌파는 이렇게 패배하는 것일까? 과연 좌파 유권자와 활동가는 자유주의에 굴복했으면서도 선거에서는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동료들과 함께 우파에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서구 국가들에서도 이것이 가능할까?          

그러나 선거 때마다 한 편의 무도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개혁주의 좌파는 선거 유세의 착시효과에 의해 보수주의자와 구별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단 정권을 잡은 뒤에는 그들의 적과 별로 다르지 않은 정책을 추진한다. 이렇게 기존 경제 질서는 그대로 유지되고 부유층의 재산은 보호된다.

정권을 잡아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나서는 대부분의 좌파 후보들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회개혁은 단순히 선거를 위한 레토릭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또한 이는 정권을 잡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 점에서 온건좌파의 상황은 ‘급진좌파’ 혹은 분노한 시민들에게 교훈을 준다. 온건좌파는 더 이상 ‘위대한 저녁’을 기다리지 않는다(새뮤얼 곰퍼스·모리스 힐퀴트 대담(13면) 참조). 그렇다고 타락한 세상과 담을 쌓은 예외적 인간들의 반(反)사회적 공동체로 숨어들지도 않는다. 프랑수아 올랑드의 표현에 따르면, “온건좌파는 실천하기보다는 저지하는, 행동하기보다는 딴죽을 거는, 공격하기보다는 버티는 태도에 반대한다”. 따라서 “선거를 통해 우파와 대결하지 않는 것은 우파를 비호하고 우파의 편에 서는 것과 같다”고 간주한다.(4) 올랑드는 급진좌파의 경우 이와 반대로 “현실주의적 선택을 하기보다 사람들의 분노를 이용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고 비판한다.(5)

<모래장수>, 2007-도로시슈즈

집권하면 ‘현실론’ 들어 우파 정책

제도권 좌파들은 ‘지금 여기에서’ 동원이 가능한 유권자들의 지지와 초조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중견 간부들을 임용해 곧바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선거에서 우파를 이겨야 한다’는 당위가 정책이나 비전을 대신할 수는 없다. 설사 선거에서 승리했더라도 선거를 통해 표출된 변화에의 의지가 기존 (국가, 유럽, 국제적 차원의) 구조에 가로막힐 수도 있다. 가령 오바마 대통령은 국민 다수의 지지로 탄생한 의지와 낙관주의(“Yes, we can”)가 기업 로비와 공화당 의원들의 방해로 힘을 잃게 됐다고 주장했다.

다른 곳의 좌파 정부들 역시 갖가지 ‘제약’이나 ‘과거의 유산’(생산 부문의 국제 경쟁력 약화, 과도한 정부 부채 등)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우유부단함과 소심함을 변명한다. 1992년에 이미 리오넬 조스팽은 “이상한 모순적 사고가 현재의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실업, 교외지역 문제, 온갖 사회적 불만, 극우파의 부상, 좌파의 침체 등의 책임을 모두 (사회당) 정부에 돌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경제·금융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6) 20년이 지난 지금도 조스팽이 지적한 모순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다.

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은 ‘전술적 투표’(반대 후보의 낙선을 위한 투표)의 필요성을 역설할 때마다, 좌파의 선거 패배는 우파에게 자유주의적 ‘개혁’의 길(민영화, 노조 권리 축소, 공공예산 삭감)을 열어주고 좌파는 새로운 정치를 실현할 수단을 잃게 될 것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러나 좌파의 선거 패배는 교훈을 얻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가령 브누아 아몽은 “2009년 9월 총선에서 한 세기 이래 최악의 득표율(23%)을 기록한 독일 사민당의 지도부는 방향 전환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7)고 했다.

1993년 총선에 패배한 프랑스 사회당과 2010년 보수당에 정권을 빼앗긴 영국 노동당 역시 대대적이지 않지만 ‘독트린 바로잡기’에 나섰다. 아마 곧 스페인과 그리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현재의 사회당 정부들이 차기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자신의 정책이 지나치게 혁명적이어서 패했다고 생각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엘레나 파나리티스 사회당 의원은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를 두둔하기 위해 엉뚱한 논리를 펼친다. “그리스보다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던 영국에서도 마거릿 대처 총리가 제대로 개혁을 추진할 수 있기까지 11년이 걸렸다. 그러나 그리스의 개혁 조처들은 불과 14개월 전에 도입됐다.”(8) 한마디로 “파판드레우가 대처보다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급진 세력에 등돌린 뒤 우파에 패배

이 곤경에서 빠져나오려면 금융 세계화에 앞서 요구되는 선행 조건들의 목록을 작성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곧바로 한 가지 문제가 가로막는다. 지난 30년간 투기자본이 국가경제를 맘대로 주무를 수 있도록 섬세하게 고안된 수많은 규정이 온존하는 한, 상대적으로 느슨한 개혁(조세 불평등 최소화, 임금 구매력 소폭 상승, 교육예산 유지 등)이나마 성공시키려면 많은 분야에서 과거와 철저히 단절해야 한다. 다시 말해, 현재 유럽의 질서뿐 아니라 과거의 사회당 정책과도 단절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자유무역(EU 집행위원회의 독트린)에 대한 비판은 말할 것도 없이 △유럽중앙은행(ECB)의 ‘독립성’에 대한 문제 제기(EU의 조약에 의해 ECB의 통화정책은 모든 민주주의적 통제로부터 자유롭다) △‘안정 및 성장 협약’ 내용의 완화(경제위기가 도래했을 때 이 조약은 실업을 줄이기 위한 모든 전략을 무력하게 만든다) △유럽의회에서 자유주의자에게 협력하는 사민주의자에 대한 비판(사민주의자는 전 골드만삭스 임원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후보를 지지했다) △공공재정 재검토(유로존의 취약한 국가들을 공격한 투기꾼들에게 채무 상환을 거부하기 위해)(9) 등 이 모든 것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개혁’이라는 말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고 좌파의 패배는 기정사실화될 것이다.

프랑스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독일 사민당의 지그마르 가브리엘, 영국 노동당의 에드워드 밀리번드가 버락 오바마, 호세 사파테로, 파판드레우가 실패한 일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탈리아의 마시모 달레마는 “유럽의 정치적 통일을 핵심 목표로 삼는 좌파동맹의 출현이 진보주의의 부흥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희망한다.(10) 그러나 이는 한낱 백일몽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정치적·사회적 판도에서 연방화된 유럽은 기껏해야 우리의 숨통을 조이는 자유주의적 조처들이 더 확대되지 않게 막을 수 있을 뿐이다. 또한 불투명하게 운영되는 관료기구들에 권력을 양도해 시민을 주권에서 더 소외시킬 것이다. 화폐와 무역이 이미 ‘연방화’됐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온건좌파가 진보 진영 유권자 다수의 지지를 받을 경우- 정책에 지지를 보내는 것이든, 임박한 정권 교체를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해서든- 더 급진적 세력(혹은 생태주의자)은 들러리 혹은 보조세력, 그도 아니면 공연히 소란만 피우는 세력으로 간주될 것이다. 프랑스 공산당(PCF)은 15%의 득표율로 국회의원 44명을 당선시키고 4개 부처의 장관 자리를 차지하고 수만 명의 당원을 거느리고 있었음에도, 1981~84년 프랑수아 미테랑의 경제·금융 정책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했다. 중도좌파와의 연합에 발이 묶인 이탈리아 재건 공산당이 결국 몰락한 것도 똑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의 연합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재등장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비록 나중이긴 하지만 베를루스코니는 다시 돌아왔다.

선거-사회운동, 성공적 변증법 찾아야

프랑스 좌파전선(공산당 포함)은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들은 사회당에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사회당이 과거로부터 유전된 ‘습관’을 버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원칙적으로는 매력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좌파전선이 후보 정당 간 세력 관계, 제도적 한계 등의 제약에 갇히지 않는다면 과거의 역사적 성공을 재현할 가능성도 있다. 프랑스 인민전선이 이룩한 위대한 사회적 성취(유급휴가, 주당 40시간 노동 등)는 선거에서 승리한 1936년 4월과 5월의 (매우 온건한) 정책 속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경영자와 우익에 대항해 이런 조처들을 관철한 것은 6월의 노동자 대파업이었다.

이 시기의 역사는 겁에 질려 우물쭈물하는 좌파 정당들은 불가피하게 사회운동의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로만 요약되지 않는다. 인민전선의 선거 승리가 노동자로 하여금 사회적 저항에 나서더라도 예전처럼 경찰과 자본가에게 폭력적으로 진압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감을 얻은 노동자들은 스스로 압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자신이 뽑아준 정권이라고 해도 거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역사 속에서 우리는 선거와 사회운동, 공장과 투표소 사이에 존재하는- 드물긴 하지만- 성공적 변증법을 발견한다. 현 상황에서 향후 집권할지 모르는 좌파 정부는 당시만큼의 사회적 압력을 직시하지 못할 경우 자유주의적 관행에 길든 관료주의의 뒤로 숨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결국 신용평가사에 잘 보이는 게 그들의 유일한 목표가 될 것이다. 진정으로 좌파적 정책을 추진하는 모든 정부는 신용평가 점수 강등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과감하게 나설 것인가, 기운 빠진 상태로 견딜 것인가? 용기의 대가(국제적 고립, 인플레이션, 신용평가 점수 강등)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견디기만 할 텐가? 역사학자 칼 폴라니는 1930년대의 유럽 상황을 분석하면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부딪힌 한계가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모든 민주적 제도들의 희생 아래 진행된 시장경제 개혁을 통해 극복됐다”는 사실을 지적한다.(11) 미셸 로카르 같은 온건한 사회주의자조차 현 상황에 우려를 표명한다. 그리스에 더 엄격한 구조조정 압력을 가할 경우 민주주의 작동이 멈출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경고했다. “민중의 분노가 심각한 수준에 이를 경우 그리스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군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암울한 전망은 포르투갈과 아일랜드, 그보다 큰 다른 국가들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현 상황이 어디까지 확대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12)

온갖 제도와 언론이 버티고 있음에도 중도파가 이끄는 공화국은 흔들린다. 우리는 자유주의적 권위주의 강화냐 자본주의 체제와의 단절이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후자로 가는 길은 멀게만 보인다. 그러나 인민이 조작된 정치적 게임에 더 이상 속지 않게 될 때, 자국 정부가 주권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은행에 대한 통제를 요구할 때, 아직은 자신의 분노가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알지 못한 채 거리로 나서기 시작할 때 좌파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글. 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

번역. 정기헌 guyheony@gmail.com

(1)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을 말한다.
(2) Benoït Hamon, <새로운 시작>, Flammarion, 파리, pp.14~19, 2011.
(3) <AFP>, 2011년 9월 4일.
(4) François Hollande, <진실을 밝힐 의무>, Stock, 파리, p.91, p.206, 2006.
(5) 같은 책, p.51, p.43.
(6) Lionel Jospin, ‘좌파의 재건’, <르몽드>, 1992년 4월 11일자.
(7) Benoït Hamon, 같은 책, p.180.
(8) Alain Salles, ‘파판드레우의 오디세이’, <르몽드>, 2011년 9월 16일자 인용.
(9) 가령 브누아 아몽은 “좌파가 선거에 나와 투기꾼들에게 진 빚을 갚아달라고 유권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10) Massimo d’Alema, ‘덴마크 좌파의 승리는 유럽에 새로운 봄을 예고한다’, <르몽드>, 2011년 9월 21일자.
(11)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거대한 전환>, 길, 2009.
(12) Michel Rocard, ‘다시 생각해야 할 금융 시스템’, <르몽드>, 2011년 10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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