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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트로이메라이'에서 '발트슈타인'으로 <전장의 피아니스트>
[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트로이메라이'에서 '발트슈타인'으로 <전장의 피아니스트>
  • 송연주(영화평론가)
  • 승인 2022.01.03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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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장의 피아니스트>(원제: Broken Keys)는 시리아 내전 중에 음악을 향한 희망을 잃지 않은 피아니스트 카림의 이야기다. 지미 케이루즈 감독은 “시리아에서 음악이 금지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너무 충격을 받았고,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생각했다.”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영화에서 음악이 카림의 희망과 성장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지 살펴본다.


트로이메라이

극단주의 단체가 이라크와 시리아를 장악하고, 이슬람 샤리아법(Islamic Sharia Law)을 엄격히 시행했다는 정보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자막과 함께 영화는 시작된다. 작은 빛이 스미는 어둑한 지하, 갇힌 공간에서 카메라는 피아노에 앉은 남자 카림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연주하기를 잠시 망설이는 카림의 뒷모습 위로, 밖에서는 폭탄과 총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카림이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 중 제7곡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하기 시작하면, 카메라는 서서히 이동하며 롱테이크로 공간의 풍경을 담는다.

 

‘트로이메라이’는 ‘꿈꾸는 일, 공상’을 의미한다. 첫 장면에서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하는 것은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꿈꾸는’ 카림의 마음을 은유하는 것 같다. 그러나 피아노 선율과 함께 드러나는 풍경은 ‘꿈’이라는 것을 갖기 어려운 분위기다. 갓 난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와 아기의 울음소리가 피아노 선율과 섞이고,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듣는 남자, 영어 공부를 하는 여자, 바느질하는 여자가 보인다. 허물어져 철근이 다 드러난 기둥에 전등을 걸어두고, 일각에는 빨래까지 널어놓은 내부. 노트를 들고 들어와 아빠와 글쓰기를 공부하는 아이 지아드, 요리하는 여자, 물도 식량도 떨어져 간다며 상황이 좋지 않다고 대화하는 남자들, 카메라는 이렇게 한 공간에 모여 은신해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다시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하는 카림으로 돌아온다. 카림이 연주하는 ‘트로이메라이’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꿈을 다룬 곡이지만, 이곳에서의 연주는 처연하게 들리고, 은신한 사람들을 공허하게 감싼다. 피아노 연주를 멈추는 카림. 그의 얼굴 위로 겹쳐지는 사운드는 유럽 밀항 브로커의 목소리다. “죽을지도 몰라요.”

 

카림은 죽을지도 모를 길을 선택한다. 13일 뒤 시리아를 떠나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서 그곳 오케스트라에 들어갈 꿈을 가진다. 그 길을 나서기 전, 이곳 사람들의 문제를 외면하고 떠나야 한다는 미안함과 함께, 비용을 준비하는 과정마저도 카림에게는 험난하다. 투사의 아들이고, 한때 투사를 했던 것으로 보이는 카림은 돈이 없기 때문에 어머니의 유품인 피아노를 팔아야만 빈으로 갈 수 있다. 어머니가 가장 소중하게 지켰던 피아노이기에 그것을 팔아서 시리아를 떠날 비용을 마련하려는 것에 카림은 죄책감을 느끼지만, 새장에 갇힌 새처럼 희망 없는 삶을 사는 것보다는 떠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극단주의 단체가 은신처를 급습하고, 카림의 피아노를 총으로 부숴버린다.

 

이제는 부서진 피아노를 고쳐야 하는 카림. 그러나 같은 브랜드의 부품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카림을 가장 잘 이해하고 낙천적인 가게 주인마저도 카림에게 꿈을 포기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카림에게 한 줄기 희망이 생긴다. 카림의 피아노와 같은 브랜드의 피아노가 람자라는 곳에 있다는 것이다. 카림이 있는 세카보다 더 위험하다는 람자. 그곳에서 부품을 구해 8일 안에 세카로 돌아와야만 오스트리아로 갈 수 있다. 어려운 일이지만 포기할 수 없다. 세카에서 음악도 못 하고 ‘짐승같이 사는’ 것보다 꿈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 카림에게는 나은 길이다.

 

카림은 부러진 건반을 고칠 부품을 찾으려 모험을 떠난다. 차도 없이, 척박한 땅을 하염없이 걷고, 히치하이크를 하고, 삼엄한 검문도 통과해야 한다. 카림의 여정에 여성 민병대원 등 조력자가 생기고, 아빠를 구하려는 지아드의 상황은 나빠지고, 카림을 시기하는 듯 보이는 극단주의단체 수장의 방해가 구체화 된다. 그사이 카림은 고된 여정을 끝내고 돌아와 부서진 피아노를 고치고, 건반을 완성한다. 피아노 거래가 성사되고 이제 다음날 피아노를 팔기만 하면, 시리아를 떠날 수 있다.

그날, 카림은 꿈을 꾼다.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동한 카림은 꿈에 그리던 무대에 오르고, 그곳에서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한다. 영화에서 다시금 연주되는 ‘트로이메라이’는 꿈속에서 꿈을 이룬 카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공상 속 행복은 순간적이다. 카림의 꿈을 깨우는 숨 막히는 현실이 다시 다가온다.

 

발트슈타인

카림은 오스트리아 빈으로 탈출하기를 꿈꿨지만, 어머니의 피아노를 팔아야 하고 혼자서만 시리아를 떠난다는 죄책감이 있었고, 불안했다. 그러나 피아노를 고치려 고된 여정을 거쳤고, 돌아온 은신처에서 카림은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자각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카림은 ‘트로이메라이’가 아니라 ‘발트슈타인’을 연주한다. 그것도 지하 은신처에서 몰래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세카의 건물들 사이 탁 트인 공터에서 목적을 가지고 말이다. 베토벤의 ‘발트슈타인’은 베토벤이 귓병을 앓아 삶의 희망을 놓아버리고 자살까지 꿈꿨다가 다시 삶의 희망을 찾고, 빈에서 전성기(영웅시기)를 시작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빈으로 가려 했던 카림이 이곳 세카의 공터에서 극단주의 단체들에 저항해 ‘발트슈타인’을 연주하는 모습은 희망을 끝까지 추구하겠다는 외침으로 들리고, 카림이 영웅으로까지 느껴진다. 그래서 총성이 오가는 가운데, 카림이 연주하는 ‘발트슈타인’은 함께 듣는 사람들에게 공허하지 않고 울림을 준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

 

 

글·송연주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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