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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죽여주는 여자>: 성적 욕구와 죽음의 요구에 대한 부응과 딜레마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죽여주는 여자>: 성적 욕구와 죽음의 요구에 대한 부응과 딜레마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2.07.0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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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여주는 여자>와 박카스 할머니

이재용 감독은 한국외대 터키어과와 영화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단편영화 <호모 비디오쿠스>(이재용·변혁, 1991)로 끌레르몽페랑 영화제 심사위원상, 비평가 대상과 샌프란스시코 영화제 대상을 수상한다. 이재용은 첫 장편영화 <정사>(1998)로 단아한 화면의 영상미와 절제된 대사로 서울관객 70만 명으로 호평을 받는다. 이후 <스캔드-조선남녀상열지사>(2003)으로 금기시된 소재와 뛰어난 연출력으로 전국 350만 명 관객의 흥행작이 되었고 해외로 수출도 하였다. <다세포 소녀>(2006)에서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이며 흥행에 참패하였지만, 저예산 영화인 <여배우들>(2009)로 흥행을 하게 된다. 이재용 감독의 연출 특징은 특이하거나 비정상적인 상황이나 관계를 정갈하고 덤덤한 톤과 아름다운 영상미로 그려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2016)는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파고다공원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는 65세의 박카스 할머니 소영(윤여정)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소영은 노인들 사이에서 ‘죽여주게 잘 하는’ 여자로 입소문을 얻으며 박카스들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그녀는 트랜스젠더인 집주인 티나, 장애를 가진 가난한 성인 피규어 작가 도훈, 성병 치료 차 들른 병원에서 만나 무작정 데려온 코피노 소년 민호와 함께 살아간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단골 고객이자 뇌졸중으로 쓰러진 송 노인의 죽여 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받고 죄책감과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다 그를 진짜 죽여주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죽고 싶은 노인들의 부탁이 이어지면서 소영은 깊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2. 유사가족의 형성과 존재 지우기

<죽여주는 여자>의 전반부에서 소영은 코피노 소년을 데려오면서 유사가족을 형성한다. 소영은 비뇨기과 병원에서 임질에 걸린 사실을 확인하고, 담당 의사를 가위로 찌른 필리핀 여성의 아들 민호를 집에 데려온다. ‘죽여주는 여자’로 인기가 많았던 소영은 성병에 걸린 사실이 밝혀져 파고다공원에서 남산공원으로 일터를 옮기고, 호객 행위를 하던 중에 동두천 양공주로 함께 일했던 해피 전복희를 만나게 되면서 심란해진다.

 

소영은 트랜스젠더인 집주인 티나, 다리 불구인 가난한 피규어 작가 도훈, 아버지를 가위로 찌른 상해죄로 어머니가 구속된 코피노 소년 민호와 함께 유사가족을 형성한다. 이들은 각각 흩어져서 개별적인 삶을 사는 인물들이지만, 민호를 계기로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게 된다. 남성/여성, 건강/불구, 한국/필리핀 등 성 정체성, 육체적 조건, 민족성 등 정상/비정상의 범주를 넘나들며 사회로부터 소외된 인물들은 유사가족을 형성한다. 소영에게 민호는 미국에 있는 혼혈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이다.

 

소영은 ‘죽여주게 잘 한다’는 평가로 인기 있는 박카스 할머니이다. 하지만, 실제 성행위에서 소영은 입에 배설물을 받아내는 등 고된 노동을 보여준다. 다른 박카스 할머니는 인기 많은 소영을 질투해서 소영이 성병에 걸린 사실을 퍼뜨리며, ‘서방도 없는 년’, ‘양키에게 몸 팔던 년’이라며 멸시한다. 사실상 ‘죽여주게 잘 한다’는 소영에 대한 평가는 노인들의 일방적인 성적 욕구를 맞춰주는 것,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것,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을 의미한다.

 

<죽여주는 여자>의 전반부 스타일은 클로즈업을 통해 상징과 감정이입을 표현하고, 여주인공의 뒷모습을 통해 고된 일과를 표현하며, 침울한 얼굴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슬픔을 표현한다. 우선, 영화의 처음에서 자연 속에 핀 들꽃에 대한 클로즈업 장면은 험한 인생 속에서 배려의 삶을 보여주는 소영을 상징한다.

 

다음으로, 생계를 위해 성매매 현장에서 일하는 소영은 대부분 뒷모습으로 표현된다. “소문 듣고 왔으니까 잘 부탁한다”는 노인의 바지를 벗기고 로션을 손에 발라 애무하는 장면은 흥분하는 노인의 앞모습과 동작을 힘들게 반복하는 소영의 뒷모습을 대비시킨다. 다른 노인이 로션을 손에 바르고 있는 소영의 뒷머리를 거머쥔 채 자신의 성기를 넣고는 배설하는 장면에서 흥분하는 노인의 앞모습과 고통스러워하는 소영의 뒷모습을 대비시킨다. 이때 붉은 조명은 성매매 과정에서 돈을 주고 자신이 원하는 행위를 원하지 않는 상대에게 하는 비정상성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소영이 동두천 동료 양공주 전복희를 만나고 돌아서는 장면은 소영의 슬픈 얼굴을 강조한다. 소영의 슬픈 얼굴은 정상적인 가족을 이룬 복희와 여전히 박카스 할머니로 일하는 소영의 대비, 옛 동료 남편에게 성매매 권유를 했다는 수치심, 미국에서 크고 있는 아들에 대한 언급 등으로 인한 소영의 복합적인 심정을 표현한다.

 

3. 죽음에 대한 요구와 개인에게 책임 전가시키기

<죽여주는 여자>의 중반부에서 송 노인에 대한 존엄사 요청으로 인해서 소영이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소영은 재우(전무송)가 전하는 송 노인(박규채)의 뇌졸중 소식을 듣고 송 노인의 병실을 방문한다. 송 노인은 자신이 냄새나고 사는 게 창피해서 죽고 싶다며, 자신을 죽여 달라고 소영에게 부탁한다. 소영은 쥐약을 사서 송 노인을 죽여주고, 재우에게 그 사실을 털어 놓는다. 소영은 박카스 할머니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감독과 인터뷰를 하고, 민호 엄마를 면회해서 민호와 만나게 해준다.

 

송 노인은 한때 연금이 많은 양복신사로 세비로 송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자신의 손으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으며, 미국에 사는 아들 가족의 냉대를 받는다. 소영이 송 노인의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에 연민을 느끼고, 죽여 달라는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행위를 하게 된다. 이러한 행위를 목도하면서 드는 의문은 왜 노인들의 고통을 소영이라는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가, 왜 사회적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가이다. 사실상 소영의 안락사 살인은 성매매 노동과 다르지 않다. 소영은 성매매 현장에서 타인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부응하듯이 안락사에 대한 요구에서도 개인적 친분과 동정심에서 살인을 저지른다.

 

<죽여주는 여자>의 중반부 스타일은 유리창과 창살, 뒷모습, 클로즈업, 롱숏, 슬픈 얼굴 등을 통해 상징, 현실 표현, 감정이입, 거리두기, 과거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소영이 보호센터로 민호를 데리고 가는 장면에서, 담당자가 “이게 납치이고 유괴”라고 나무라자, 함께 따라간 도훈이 “우리 나쁜 사람 아닙니다”라고 해명한다. 뒤이어 바로 창살 뒤로 소영, 도훈, 민호의 모습이 보여 그들이 갇혔다고 생각하는 순간, 카메라가 반대로 넘어가면서 구치소에 갇힌 민호 엄마를 보여준다. 이렇게 창살 너머로 보이는 소영의 모습은 남이 하지 않는 선행을 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소영의 운명을 암시한다. 소영이 송 노인에게 먹일 쥐약을 사서 돌아가는 뒷모습 장면은 소영의 고달픈 현실을 표현한다.

 

소영이 송 노인에게 쥐약을 먹이는 장면에서, 쥐약을 송 노인의 입에 붓는 소영, 고통스러워하는 송 노인을 교대로 보여주다가(투숏), 송 노인의 고통에 눈물을 흘리는 소영의 모습(원숏)을 클로즈업으로 잡아내면서 감정이입을 한다. 남산의 땅바닥에서 노인과 성관계를 하는 소영의 얼굴에서 카메라가 위로 올라가면서 외롭게 핀 들꽃을 클로즈업으로 잡아내면서 소영의 삶을 상징화한다. 다큐멘터리 감독과의 인터뷰 후 헤어지는 장면에서 화면 밖으로 들려오는 감독의 말과 멀리 화면에 잡힌 소영의 모습을 통해 영상/사운드의 불일치로 거리두기를 표현한다. 흑인과 한국인의 혼혈인 미군병사와의 대화 이후 택시를 타고 떠나가는 모습을 보고 소영이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에서 소영의 과거 그림자를 엿보게 만든다.

 

4. 배려·연민·선행의 대가와 희생양

<죽여주는 여자>의 후반부 내러티브에서 소영은 치매 노인 환자 종수와 외로운 노인 재우의 죽음에 동행한 죄로 체포된다. 재우는 치매 환자이자 가족이 없는 종수를 죽여 달라고 부탁하자, 소영은 종수의 동의하에 종수를 산 절벽에서 밀어뜨려 죽인다. 재우가 레스토랑 식사와 호텔 숙박 후, 자신이 죽을 때 옆에 있어달라고 부탁한다. 재우가 죽은 후 소영은 자신에게 준 100만원과 금반지를 대부분 헌금한 후, 이웃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체포되어 교도소에서 최후를 맞고 무연고로 처리된다.

 

독거노인 재우는 자식을 먼저 보내고 아내까지 죽자, 혼자 남은 자신의 신세가 너무 처량하고 혼자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진다며, 소영에게 자신이 죽는 순간에 함께 있어주기를 부탁한다. 재우는 신사적이고 점잖은 인물이지만, 종수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의 순간에 항상 소영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소영을 곤경에 빠지게 한다. “날 위해 좋은 일을 해 준 것 잊지 않으리다”라는 재우의 감사로 인해서 소영은 체포되어 독거노인으로 외로운 인생을 살다가 교도소에서 죽게 된다. 사실상 소영도 독거노인이라는 점에서 사회에서 돌봐줘야 할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노인들의 성적 욕구와 죽음의 요구에 부응할 뿐 정작 자신은 아무런 배려도 받지 못한다.

 

<죽여주는 여자>의 후반부 스타일은 시선과 유리창을 통해 소영의 힘겨운 현실과 출구 없는 인생을 표현한다. 재우가 소영에게 종수를 죽여 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에서,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라는 종수의 말에 재우가 소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소영의 부담감을 표현한다. 소영이 산 위에서 종수를 죽이는 장면에서, 재우가 소영만 남겨 놓고 내려가자 소영이 종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소영의 힘겨운 감정을 표현한다. 이때 종수가 소영에게 말하지만,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음으로 관객은 그 말을 듣지 못한다. 종수가 소영에게 하는 말은 누구도 들을 수 없거나 혹은 누구도 듣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결국 노인들의 소원을 들어준 소영이 사회의 처벌을 받게 되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암시한다.

 

소영이 체포되는 장면에서, 티나, 도훈, 민호 세 사람이 바라보는 시선 끝에 소영은 경찰차 유리창에 갇힌 모습으로 표현된다. 소영은 경찰차에서 담배를 피우며 경찰에게 자조적인 대사를 한다. “혹시 봄 되어서 감방 가면 안 될까요? 제가 추위를 많이 타서. 도망 안 칠게요. 어차피 양로원 갈 형편도 안 되고. 세 끼 밥은 먹여주는 거잖아요. 요즘은 반찬이 뭐가 나오나? 올 겨울은 안 추웠으면 좋겠다.” 희망을 가장한 소영의 말은 곧 이어 보여주는 장면에서 절망으로 끝이 난다. 소영이 교도소 마당에서 혼자 앉아 있고 교도소 방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죽은 후 무연고 시체로 처리되는 모습을 냉철한 카메라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5. ‘죽여주는’ 여자의 이중성과 동질성

<죽여주는 여자>는 ‘죽여주는 여자’의 이중적 의미를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성적인 능력 혹은 서비스가 죽여준다는 의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죽여 달라는 요구에 죽여준다는 의미이다. 전자의 ‘죽여준다’는 ‘끝내준다(잘함)’는 의미이고, 후자의 ‘죽여준다’도 ‘끝내준다(죽음)’는 의미라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요소를 보여준다. 소영은 노인들의 성적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주려고 하기 때문에 성적으로 죽여준다는 평가를 받았고, 노인들의 죽여 달라는 요구를 모두 들어주기 때문에 목숨을 죽여주는 여자가 된다. 결국 두 가지 문제에서 소영은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곤경에 빠지게 된다.

 

결국 소영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연민하고 동정하는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이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노년의 성적 욕구와 죽음의 요구이며, 사실상 소영 본인도 마지막에 교도소에서 고독하게 죽어간다. 성적 욕구를 해결할 수 없는 노인들이 많다는 것,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노인들이 많다는 것. <죽여주는 여자>는 노년의 성적 욕구와 죽음의 요구를 한 여성에게 모두 떠넘기고 사회적 처벌을 가하는 힘겨운 현실을 냉철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서울영상진흥위원회 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총무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편집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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