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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내 안의 동물의 왕국
<짝>, 내 안의 동물의 왕국
  • 김도훈
  • 승인 2011.12.12 12:08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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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상경하셨다. 누군가의 결혼이 있다는 의미다. 이번에는 번듯한 강남 특급호텔의 회계사 커플 결혼식이다. 다녀오신 어머니는 “거기 식사가 참 좋더라”는 말씀만 하신다. 이게 뭔 소린고 하니, 서른다섯에 고양이나 키우고 잡문이나 쓰면서 인생 허비하지 말고 얼른 호텔에서 하객들 모아놓고 국수라도 말아먹을 수 있는 행사를 마련해보란 이야기다. 그러다가 어머니는 한 말씀 덧붙이신다. “듀오라도 연락해볼까? 방송 쪽에 아는 사람 있으면 <짝>이라도 나가볼래?” 맙소사, 어머니는 <짝>을 보신다.

어떤 짝짓기 프로그램과도 다르다

나도 <짝>을 본다. SBS에서 무려 ‘시사·교양’ 섹션으로 구분하는 <짝>은 21세기 한국 TV계가 낳은 가장 기이한 프로그램일 것이다. <짝>은 서로 번호로 부르는 남녀들이 개량한복 스타일의 유니폼을 입고 ‘애정촌’이라 이름 붙인 꼬질꼬질한 합숙소에서 서로를 탐색하는 짝짓기 프로그램이다. 첫 방영분을 보자마자 나는 이 괴상한 프로그램이 절대 오래갈 리 없을 거라 확신했다. <짝>은 이전에 존재한 어떤 한국 짝짓기 프로그램과도 다르다. 먼저 방영을 시작한 케이블 채널 tVN의 <러브 스위치>를 한번 떠올려보라. 수십 명의 여자들이 한 남자를 스튜디오로 불러놓고 버튼을 눌러 호오를 결정하는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은 심각하게 구는 법이 단 한순간도 없다. 그녀들은 누구를 꼭 만나고 싶어서 나온 게 아니다. 그저 TV 카메라 앞에서 (스스로를 끝내주게 근사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남자들을 망신주는 게 즐거울 따름이다. 그러므로 <러브 스위치>는 어디까지나 가상의 엔터테인먼트 세계에 속해 있다. <짝>은 다르다. 사회자도 없고, 시청자가 함께 즐길 만한 게임이나 장기자랑도 없다. 오로지 끓어넘칠 것 같은 리비도의 세계만 존재한다. 이건 한마디로 ‘동물의 왕국’이다.

<짝>은 그리 독창적 프로그램은 아니다. 짝짓기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모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선구자인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왔다. 가장 유명한 프로그램은 ‘독신남’이라는 뜻의 <더 바첼러>(The Bachelor)다. 미국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시대를 열어젖힌 초기작 중 하나인 <더 바첼러>는 한 명의 미혼 남성이 25명의 미혼 여성과 데이트를 하며 짝을 찾는다는 콘셉트이다. 미혼 남성은 매주 여러 돌발적 상황을 통과하며 25명의 여성과 데이트하고, 매주 1명의 여성을 탈락시킨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살아남은 여성에게 프러포즈를 한다. <더 바첼러>는 완벽한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쇼’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혼 남성은 백만장자에 가까운 거부이거나, 이탈리아 귀족 가문의 왕자이거나, 적어도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항공모함에서 일하는 건실한 장교다. 당연히 여자들의 목적은 단 한 가지다. 신분상승.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더 바첼러> 참가자들에게는 또 다른 신분상승의 열쇠가 있다. 프로그램 안에서 개성을 내보임으로써 연예계로 진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더 바첼러>는 단순한 짝짓기의 욕망 외에 수많은 욕망이 이글거리는 버라이어티쇼에 가깝다. <폭스TV>가 2003년부터 방영한 <백만장자와 결혼하기>(The Next Joe Millionaire) 시리즈는 더욱 노골적이다. 역사적인 1편에서 주인공 백만장자 남자는 20명의 여성과 데이트한 뒤 마지막 남은 여성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남자는 땡전 한푼 없는 빈털터리였다. 그런 상황에서 마지막 남은 여성은 과연 그를 선택할 것인가? 마치 클리프 행어로 끝나는 연속 드라마처럼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는 한국에도 방영됐고, <SBS>는 2005년 이 프로그램 출연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동명의 드라마까지 만들었다. 요는, 이 모든 게 어쨌거나 거대한 쇼 비즈니스라는 거다.

<짝>은 다르다. 미국 리얼리티 짝짓기 프로그램들이 할리우드 제작진의 연출 솜씨와 출연자들의 셀레브리티적 욕망을 자양분으로 굴러간다면, <짝>은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화법으로 시종일관 진지하게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 출연으로 유명인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짝>이 미국식 리얼리티 짝짓기 프로그램과는 다르다는 증거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선배 리얼리티 짝짓기 프로그램들이 주는 오락적 쾌감 대신 남이 몰래 인터넷에 올린 섹스 동영상을 지켜보는 듯한 불편함이 존재한다. 제작진이 “인간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이라고 자화자찬하길 망설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는 얼마 전 방영한 <짝>의 ‘모태 솔로 특집’을 보고 기함을 했다. 제작진은 평생 단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못한 남녀들만 모아서 애정촌에 집어넣었다. 어떤 참가자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하지 못했고, 심지어 누군가가 관심을 보이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달아났다. 이런 답답한 인간들…, 혀를 차고 있는데, 과학고를 졸업하고 카이스트를 졸업한 뒤 강남의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는 ‘남자 3호’는 타깃으로 삼은 여자가 부담을 표하자 카메라 앞에서 격렬하게 분노를 표하기 시작했다. “연애를 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100만 개 정도 댈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연애에 정신이 팔리면 경쟁에서 도태되기 때문에 결국 학원가에서도 퇴물이 될 것입니다.”

다른 프로는 일종의 쇼 비즈니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짝>은 연애에 관한 버라이어티쇼가 아니었다. 연애에 관한 진실을 보여주는 리얼리티쇼도 아니었다. 이건 우리가 그토록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연애의 가장 찌질한 속성만 모아놓은 일종의 동물 다큐멘터리였다. 남자들은 여자의 직업이나 인성이 아니라 육체적 아름다움으로 짝을 선택한다는 속성, 여자들은 한 남자가 아니라 여러 남자를 후보로 두고 물밑 작업을 한다는 속성. 그런 속성 속에서 어떤 인간은 영원히 변방에서 외롭게 죽어가고야 말 거라는 무시무시한 연애의 속성이 여기에 있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공정하기 위해 연애의 속성을 입 밖에 내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짝>은 짝짓기의 세계에서 정치적 공정성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낱낱이 까발리고야 만다. 외모와 학벌지상주의는 끝없이 재생산되고, 짝을 가로채기 위한 출연자들의 마음속 술수는 그대로 카메라 앞에 드러난다.

재미있는 건 이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두는 이유가 바로 그 불편한 연애의 극단적인(그에 더해서 ‘한국적인’) 속성 때문이라는 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짝>은 TV를 바라보는 한국의 결혼적령기 남녀들이 마음속에 몰래 가지고 있는 속물 근성을 슬금슬금 건드린다. 참가자들은 육체적 끌림으로 첫 번째 짝을 선택했다가 그들의 진짜 직업을 알고 난 뒤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마음을 바꾸어버린다. 이 치졸하기 짝이 없는 짝들의 행태는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가장 사악한 모습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이다. <짝>이 짝짓기, 그러니까 연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짝짓기를 위해 발라드를 부르고, 이메일을 쓰고, 반지를 사고, 꽃을 사고, 때로는 차와 집을 산다. 하지만 <짝>은 번호표를 가슴에 단 실험체들의 짝짓기를 동물 실험처럼 카메라에 담아낼 따름이다. 선택받지 못하면 홀로 도시락을 먹어야 한다. 그들은 홀로 도시락을 먹지 않기 위해 경쟁하고 싸우며 짝을 찾는다. 이왕 도시락을 함께 먹을 거라면, 더 근사한 도시락을 만들 줄 아는 짝을 찾는다.

욕망 까발리는 노골적 정신과 상담 

나는 이 무시무시한 연애의 리얼리티쇼를 보면서 이상하게도 <2012> 같은 재난영화가 떠올랐다. 우리는 재난영화를 보면서 안도한다. 재난의 스펙터클에 몸부림치면서도, 그 재난 현장에 내가 없다는 것을 떠올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나는 <짝>을 보면서 안도한다. TV 카메라 앞에서 내 치졸한 속내를 들키는 일 없이 속편하게 ‘남자 3호’의 저열함을 욕할 수 있어서 안도한다. 치과의사를 뿌리치고 고졸 출신의 정비공을 택한 ‘여자 2호’를 보며 “좀더 솔직해지라”고 버럭 소리를 지를 수 있어서 안도한다. 어쩌면 나는 끝없이 정치적으로 불편해하면서도 계속 <짝>을 보게 될 게다. <짝>이 끝내주는 쇼라서가 아니다. 내 속의 속물적인 짝짓기 욕망을 대신 까발려주는 일종의 정신과 상담, 그것도 극약처방의 정신과 상담에 가깝기 때문이다.

/ 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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