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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인생은 아름다워(2022)>, 추억으로 연주한 뮤지컬 영화
[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인생은 아름다워(2022)>, 추억으로 연주한 뮤지컬 영화
  • 김 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2.11.17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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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거둬내기 위한 추억의 가치

<국가 부도의 날>의 최국희 감독과 <극한 직업>의 배세영 작가가 함께한 <인생은 아름다워>는 염정아, 류승룡 주연의 뮤지컬 영화다. 이미 대중적으로 검증 받은 곡들을 편집한 컴필레이션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답게, 익숙한 추억의 명곡들이 적절하게 작품 내용과 플롯의 일부가 된다. 로베로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1997)>를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꼽은 배세영 작가는 영화 제목뿐만 아니라 영화 주제에서도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오마주했다. 인생의 고단한 현실에 대한 은유라고 볼 수 있는 죽음이 ‘사형’(베니니)이든 ‘폐암’(최국희)이든, ‘죽음’이라는 형태에 맞서 용기와 웃음(노래)으로 헤쳐 나간다는 상황이나, 그 과정을 통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긍정적이고 용감한 주인공이 진정성 있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 등이다. 유머와 노래가 주인공의 위기와 죽음을 위로한 것처럼, 고단한 삶에 지지친 관객들도 따뜻한 위로를 얻게 된다. 가사만 들어도 마음이 촉촉해지는 옛 음악과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반복될 가족 멜로드라마가 결합해 영화의 공감 능력은 배가 된다. 그리고 공감의 끝자락에서 편견을 깨는 추억의 가치가 드러난다.

 

죽음을 앞두고 첫사랑을 찾아 떠나는 남편 동행 추억 여행
죽음을 앞두고 첫사랑을 찾아 떠나는 남편 동행 추억 여행

혼성장르와 세대 공감 대중 음악이 소환하는 레트로 정서

무뚝뚝한 남편과 사춘기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자기 인생은 뒷전인 오세연(염정아)은 폐암 선고를 받고 비로소 잃어버린 자신(의 첫사랑)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죽기 전 의식처럼 행해지는 여행과 소망 목록은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버킷 리스트>, <라스트 홀리데이> 등을 통해 익숙하다. 이렇듯 새로운 것 없는 로드무비 형식이지만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은 강진봉(류승룡)과 오세연의 추억 소환 여행을 통해 벌어진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그들에게 추억은 각각의 망상일 뿐이다. 영화 시작 부분에서 세연은 버스를 잘 못 타는 바람에 도착한 서울극장 앞에서 옛 추억을 떠올려보지만, 아직 세연 혼자만의 것이다. 진봉에겐 일상의 스크래치일 뿐이다.

 

신혼 여행지 부산에서 소환하는 깨소금 추억
신혼 여행지 부산에서 소환하는 깨소금 추억

그러나 추억 여행을 통해 풋풋했던 그 시절로 함께 돌아가게 된 세연과 진봉은 점차 닫힌 마음의 빗장을 열게 되고, 엄마의 투병을 알게 된 아이들 역시 엄마의 빈자리에서 엄마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우리 가족이 달라졌어요’ 식 변화는 지나칠 정도로 도식적인 클리셰라 아쉽지만, 음악이 이를 보완한다. 예를 들어, 아들(하현상)이 엄마에게 노래하는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적)’은 도식적인 비약으로 생긴 간극을 부드럽게 이어준다. 또, 세연이 소망 목록을 만든다거나 갑작스럽게 여행을 떠나기로 하는 장면에서는, 적막한 밤에 내리는 처연한 비와 ‘잠도 오지 않는 밤에(이승철)’를 통해 아무도 챙겨주지 않은 마지막 생일을 쓸쓸하게 보내며, 여행 결심을 내린 그녀의 행동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위해 원곡의 색소폰 도입부가 트럼펫 도입부로 편곡된 것이나 연주자가 빗속 정자의 허름한 할아버지라는 설정 등은 디테일한 연출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런 식으로 이 영화에서는 신중현의 ‘미인’, 임병수의 ‘아이스크림 사랑’, 유열의 ‘이별이래’,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 ‘솔로 예찬’, ‘애수’, 이승철의 ‘잠도 오지 않는 밤에’,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에코브릿지 &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 등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세대를 관통하는 대중가요를 적절히 사용해 단순한 스토리가 만들어주는 여백을 절묘하게 메웠다.

 

세연과 진봉은 추억으로 가득한 여행의 끝에서 비로소 편견과 마주친다
세연과 진봉은 추억으로 가득한 여행의 끝에서 비로소 편견과 마주친다

특히 세연을 보낸 후 홀로 남은 진봉이 부르는 재즈풍의 ‘애수(이문세)’는 세연을 위해 무뚝뚝한 남편이 배려했던 숨겨졌던 스토리와 세연에 대한 그리움을 잘 나타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이 영화의 레트로 감수성에 공감할 즈음, 말랑거리는 추억의 한쪽에 묻혀 있던 ‘편견’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오해와 편견을 극복할 때까지, 기다림의 미학

영화 결말 부분에 다다르면 세 가지 편견과 마주친다. 진봉이 세연의 암선고에 대해 무뚝뚝하게 반응한 이유와 진봉이 동사무소 공무원으로서 할머니의 사망을 신고하지 않은 할아버지에 대해 느꼈던 피해 의식, 그리고 세연의 첫사랑 소년이 예쁜 세연이 아니라 평범한 외모의 현정에게 고백했다는 반전을 통해 보는 편견 등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편견을 모두 마주하려면 1시간가량의 영화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세연과 진봉의 여행이 보길도에서 마무리될 시점,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세연과 진봉, 관객은 함께 편견을 마주하게 되고 함께 극복한다.

일반적으로 1시간 만에 편견이 깨지는 것은 쉽지 않다. 스스로 편견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조차 일생을 거쳐도 불가능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영화의 가치 중 한 가지는 단시간에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편견과 마주하게 하고 스스로 편견의 알을 깨고 나오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가치를 위해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면 기다려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이런 기다림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보이는 것처럼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꽃잎 한 장으로 결실을 본다. 친구 집을 찾아다니던 긴 여정은 우물 옆 꽃잎 한 장을 친구 공책에 꽂아 놓기 위한 시간과 공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과 같다.

이제 우리는 그 꽃잎을 만난다. 여행을 마치고 마침내 진봉이 입을 연다. 암 선고받은 세연에게 무뚝뚝했던 이유를. “괜찮냐? 안 무섭냐? 진짜 방법이 없냐? 그거 왜 안 궁금하냐고? 사실은 내가 안 괜찮다. 내가 무서워서, 진짜 방법이 없을까봐 못 물어봤다. 미안해. 여기까지 오게 해서.” 드라마 속 여행을 통해 서로 추억을 공유하고 마음을 열어 고백할 때까지 1시간이 걸린 것이다. 세연과 관객은 비로소 진봉의 진심이 서투른 표현에 갇혀 있었던 것을 알게 되고 모진 남편 진봉에 대한 편견을 거둬낼 수 있게 된다. 한편 진봉도 할머니 사망신고를 하지 않는 할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어떻게 종이 한 장으로 끝내냐? 할머니 사망 신고하면, 할머니의 사망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도저히 못 하겠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진봉에게도 이제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 단단한 편견 껍데기들이 떨어져 나가면 비로소 변하지 않아도 좋은, 변하지 않아서 더 좋은 평범한 일상과 가족 그리고 추억이 불러일으키는 가치를 돌아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은 아름다워’진다.

 

 

글·김 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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