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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스펙트럼
무지개 스펙트럼
  • 은정 | 초등학교 교사
  • 승인 2023.03.16 2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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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불편하지만...

작년 이맘때가 기억이 난다. 새학기를 앞두고 학급에 자폐스펙트럼 특수아가 2명 있다는 걸 알고 적잖게 걱정이 되었다. 최근 몇 년간 매년 학급에 특수아가 있었지만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처음이었다. 교육 장면에서 일어날 돌발상황을 가늠해보며 무엇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영화 <레인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인물이 떠올랐다. 살아오면서 접한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영화에서 본 이미지가 전부였다. 자폐스펙트럼장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긴장감과 사명감이 더해진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때마침 재학 중인 대학원에 ‘특수아 상담’이란 과목이 개설되었다. 강의에서 배우고 익히면 현장에서 대처 능력이 향상될 것이라고 기대를 하며 수강신청을 하였다. 강의 중에 영화 <카드로 만든 집>을 보았다. 1993년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로 주인공인 6살 샐리를 포함해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등장한다. 영화에서 받은 감동과는 별개로 1993년 이후 30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보니 영화속에서 묘사한 자폐스펙트럼장애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당시에는 자폐스펙트럼이라는 명칭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장애가 있는 다양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의미 있는 시도였다.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용어에는 자폐가 심각도와 기능 수준에서 다양한 스펙트럼 혹은 연속적 형태로 나타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2013년에 ‘자폐스펙트럼장애’가 공식 명칭으로 확정되었다. 나에게 스펙트럼은 다른 뜻으로 다가왔다. 빛을 분해해서 무지개 빛깔을 보여주는 스펙트럼처럼, 특수아 2명이 있는 교실은 새롭고 다채로운 풍경이 생겨났다. 가르쳐주는 아이, 놀라는 아이, 챙겨주는 아이, 대화하는 아이, 상황을 알려주는 아이, 기다리는 아이 등 처음 걱정과 달리 아이들이 유연하게 교실 상황에 적응하였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때마침 작년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주인공 우영우가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이어서 호기심을 가지고 드라마를 시청하였다. 우영우의 모습에 우리반 A와 B를 대입해 보았다. 우영우는 비상한 암기력으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로펌 근무 첫 날 스스로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다고 동료들에게 소개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손 근육을 움직이는 우영우의 모습이 A를 떠올리게 하였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언행 특성을 세밀하게 표현해내려는 연기자의 노력이 엿보였다. 이상적인 조력자들 속에서 우영우는 회차를 거듭할 수록 일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다가 중단했다. 내가 경험하는 현실과 괴리가 컸다. 실제 자폐스펙트럼 장애인 중에서 서울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A는 말할 때 어순이 뒤섞이며 문장 구성이 완전하지가 않다. 가끔 복도에서 튀어나온 벽 뒤에 서 있거나 앉아 있다. 창틀을 지지대 삼아 창문으로 타고 올라가는 시도를 한다. 아침에 등교하면 복도에서 서성이는 습관이 있다. 아이들이 복도에 A가 있다고 알려주곤 하였다. 교사가 교실로 들어오라고 하면 이내 장난기 어린 웃음을 보이며 놀이로 상황을 받아들였다. 뒷문으로 들어오고 바로 앞문으로 나가버렸다. A는 가만히 앉아서 활동하는 걸 어려워하였다. 자리에 앉아서 인내하며 학습하기가 A가 성취해야 할 주요 과업 중 하나였다. 교실에는 A의 학습 지원을 위한 추가 인력이 배치되었다. 수학이나 사회 시간의 팀 게임에서 A가 설레는 표정으로 나름의 속도로 역할을 해내려고 노력하였다. A가 게임에서 1등을 하였을 때 상품을 받은 후 신나는 표정으로 나에게 “00(A 이름)가 1등! 1등!”이라고 말할 때 A가 수업 중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특수교실 수업이 끝난 후 계단을 올라오느라 교실에 조금 늦게 들어왔지만 팀활동을 하는 친구들을 보며 스스로 자신의 책상을 서둘러 팀배치 형태로 바꾸어 친구들과 함께하는 걸 보았다. 속도가 다르지만 A가 발전하고 있었다.

B는 보고 쓰기와 보고 따라 읽기를 잘 하였지만 문단의 맥락을 알지 못했다. B에게는 의사소통의 시도가 주요 과업 중 하나였다. B가 대화를 먼저 열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순간 B에게 어떤 성장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꼈다. B의 대화 내용은 반복되는 경향이 있었다. 교실 빈 공간을 가로로 빠르게 반복적으로 왔다 갔다 하였다. 행동이 몇 분간 지속 되었는데, 의사들은 여기에 상동행동이란 설명을 붙여 놓았다. B는 그리기를 좋아해 몰두한다. 미술 시간에 잘 그린 B의 그림을 들고 반 전체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칭찬을 하였다. 그 순간 평소보다 더 반짝거렸던 B의 눈빛이 기억난다.

작년은 일년내내 긴장하였다. 특수아가 취약한 부분이 안전이다. 아이가 위험 상황을 판단하고 명확하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지도하여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는 게 안전 교육의 목표이다. 특수아는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대처 능력이 현격히 부족하여 안전 사고를 비롯한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을 더 써야 한다. 학기 초에 특수교사, 담임교사, 특수아 학부모가 참여하여 장애에 따른 개별화 교육과정을 이야기나눈다. 부모는 자녀가 또래 아동과 상호작용을 통해 긍정적인 자극을 받고 사회화를 진전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초등학교에는 장애 정도가 다양한 아이들이 입학한다. 중증 장애가 있는 특수아는 학교 교육과정을 거의 따라오지 못한다. 교실에 와서 친구들에게 “안녕, 주말에 뭐했어”, 교사에게 “안녕하세요, 주말에 뭐하셨어요?”라는 인사말을 건네는 것이 그 아동의 주요 활동이었다. 학교에 오는 이유는 또래 아이들과 상호작용때문이다. 반 아이들이 한 번씩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내면 특수아는 하루에 수십 번 “안녕”을 말한다. 이런 과정이 자극이 되어 발달의 주춧돌을 쌓는다는 작은 희망을 품은게 아닐까.

특수아 부모 중에는 자녀를 기르며 거듭한 시행착오 속에서 터득한 지혜를 교사나 다른 장애아 부모에게 나누는 사례가 있다. 강사로 활동하는 어머니는 지적 장애가 있는 자녀를 바리스타로 길렀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에서 물론 보람을 찾을 수 있겠지만 자녀의 희망과 무관하게 아이가 어른이 되어 바리스타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가 얼마나 될까. 특수아를 기르는 부모의 희망과 바람은 간절하면서 소박하다. 바리스타 만들기는 그런 장애가 있는 자녀를 기르는 부모들에게 소박하고 간절한 목표가 되기도 하지만, 그 길은 멀고 험난하기 마련이었다.

몇 년 전에 만난 여학생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 학습 이상이 관찰되어 2학년 때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장애 진단을 받고 특수교육대상아동으로 등록하였다. 학습장애가 있었다. 특수교실과 통합학급 수업을 병행하면서 어머니는 자녀의 ‘장애아 됨’에 많이 힘들어하였다. 부모는 특수교육대상 등록을 취소하고 말았다. 담임교사인 내가 보기에도 단순히 학력차라고 말하기 어려운 특이점이 보여 개별화 교육이 필요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아이가 지금 어떤 상태로 학교 생활을 할지 문득 궁금해진다.

현실의 우영우가 있다면 아이가 특수교육대상 아동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부모가 개별화와 통합교육을 병행할까, 아니면 내가 목격한 그 여학생 부모처럼 개별화 교육을 포기할까. 사회성이 약간 부족하고 언행에 특이점이 있지만 머리가 비상하고 모범적으로 공부하는 똑똑한 아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기를 원할 것 같다.

올해도 교실에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아이가 한 명 있다. 우영우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사람들 덕분에 우영우의 남다른 관점이 돋보일 수 있었다. 샐리의 어머니가 샐리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였기 때문에 샐리는 자폐스펙트럼장애에서 호전될 수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와 완전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나의 교실도 그러길 바란다. 도와주고 이해해주는 아이들 속에서 무지개 빛깔처럼 아름다운 역동을 볼 수 있길 희망한다.

 

글·은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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