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호 구매하기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 <초록밤>의 오묘한 초록색에 대하여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 <초록밤>의 오묘한 초록색에 대하여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3.03.20 10: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록밤> 포스터

영화는 다양한 색을 다양한 의도에 따라 담아낸다. 윤서진 감독의 <초록밤>(2021)에서 초록색은 답답한 현실에 갇힌 가족의 현실을 오히려 판타지 같이 느끼게 한다. 

오늘은 <초록밤>이 초록색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을 섞어내고 있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와 색의 관계에 대한 단상이라 하겠다.

 

- 초록색의 배신

사전적으로 초록색은 노랑과 파랑의 중간색으로, 평화, 안전, 중립 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비상구, 구급상자 등도 초록색으로 표시된다. 또한 초록색은 사람의 눈을 편안하게 해, 긴장을 완화하고, 혈압을 낮추며, 교감 신경계에 최면제 작용을 한다.

일반적으로도 초록색은 나무, 숲, 산 등의 자연을 떠오르게 하는, 일종의 힐링 색으로 통한다. 공부방을 초록색으로 꾸미라는 말도 들어본 적이 있다. 사전적으로나 일반적으로나 초록색은 긍정적인 의미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영화 <초록밤>에서 초록색은 좀 다르다. 짙고 어두운 초록색이기도 하고, 인공적인 초록색이다 보니, 자연스럽지 않다. 더구나 다른 색과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오히려 튀기 때문에, 편안함보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초록밤>에서 초록색은 종종 비현실적이다. 화면 전체가 초록 색감을 갖기도 하고, 집 밖 가로등 불빛이 초록색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아들이 거실에 앉아있는데, 창밖이 온통 초록색이다.

 

<초록밤> 스틸

인위적으로 구성된 색감이라 현실보다는 꿈인 것 같기도 하다. 무기력한 인물들이 초록색 감옥에 갇힌 것 같다. 그들의 인생이 더더욱 답답해 보인다. 

초록색에 이서 검은색에 가까운 어두운 색도 자주 나온다. 제목대로 밤 장면도 많은데, 가로등이나 광고판으로 밝혀진 화려한 불빛과는 거리가 멀다. 인물들의 미래엔 과연 빛이 있을까? 

<초록밤>이라는 제목만 봤을 땐, 뭔가 긍정적이길 바랐다. 암울한 일상에 희망의 빛이 되어주는, 마치 인생의 비상구가 되어 주는 색을 의미하지 않을까 예상했다.

예상대로 영화 곳곳에 초록색은 배치됐으나, 예상과 다르게 영화는 전개된다. 초록색에 대한 편견 덕분에 영화를 보는 내내 일종의 배신을 당한 것같은 반전을 느끼게 된다.   

<초록밤>에서는 감정이입 하기에는 불친절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비현실적인 초록 색감이 더해지면서, 그들의 공간은 더더욱 이질적인 공간이 되어 버린다. 어딘가에서 누군가 겪고 있을 만한 일상을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다가, 잠시 공감이라도 하려 하면, 거리감이 확 느껴지는 것이다. 

인물들의 마음도 도통 알 길이 없다. 고양가 살해당하고, 아버지가 사망하고, 또 누군가가 죽어도, 그들의 일상은 흐른다. 그런데 어디로 흘러갈지는 모르겠다. 무심한 듯 초록색이 그들의 공간을 채운다. 

 

<초록밤> 스틸

- 흑백영화의 추억

흑백영화에서 컬러영화로 대세가 바뀐 지 어언 70여 년이 흘렀다. 사실 컬러영화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이전 초창기 영화들에도 색깔이 입혀진 적은 종종 있었다. 촬영은 흑백필름으로 했지만, 영사기에 상영할 최종 필름(프린트)에 색을 칠하거나 찍어냈다. 

현재 남아있는 영화 중 에디슨 영화에도 분홍, 노랑, 초록, 파랑 등의 색이 입힌 버전도 있고, 조르쥬 멜리에스의 1902년 영화 <달세계 여행>도 화려한 색이 입혀진 버전이 발굴되어 공개된 바 있다. '스텐실 필름'으로 불리는 영화들도 있다. 

 

<달세계 여행> 포스터

흥미로운 점은 흑백영화 시절에 컬러는 비현실, 판타지를 표현하는데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빅터 플레밍의 1939년 컬러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도 도로시의 현실은 흑백으로, 오즈의 나라는 컬러로 표현되었다. 

비현실이나 판타지를 상징하던 영화 속 색감은, 초기 흑백영화 시기를 거쳐, 테크니컬러, 컬러필름 등의 시기를 지나 디지털 후반 공정을 통해 다양한 색감을 만들어낸 것이 가능해진 현재, 영화 속 시각 이미지의 주요 요소로 다양한 의도를 표현해내고 있다.

영화와 색을 활용하는 방식, 영화 속 색의 힘 등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하는 영화 <초록밤>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