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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평가되는 파리코뮌의 국제주의
재평가되는 파리코뮌의 국제주의
  • 크리스틴 로스
  • 승인 2015.04.3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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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즈 미셸의 장례식> 수많은 역사가들이 파리 코뮌을 1871년 3월 정규군을 시켜 의용병 집단인 국민군으로부터 대포를 압수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발발한 애국적인 봉기라고 분석한 바 있다.그러나 이 봉기의 지적 배경은 훨씬 더 이전으로 거슬러 가야 할 것이다.이미 1868년부터 파리 시민들은 사교 클럽과 대중모임에서 “세계 공화국”을 제창했었다.

1871년 4월, 파리 코뮌이 절정에 달했을 때, 런던의 7,000명의 노동자들이 파리의 동지들과 연대 시위를 벌여 사나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겨운 동네”라고 불렀던 클라큰엘 그린(Clerkenwell Green)에서부터 하이드 파크까지 행진했다.그들은 팡파르까지 동원하고 “코민 만세”와 “세계 공화국이여 영원하라”는 슬로건을 수놓은 깃발을 흔들어댔다.

같은 주에 교수들이 모두 베르사이유로(1) 피난 가버린 소르본느 의과대학 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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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로스
크리스틴 로스 뉴욕대 비교문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