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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가 알아야 할 것들> 서문
<좌파가 알아야 할 것들> 서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승인 2015.05.15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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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소속 정당

| 서문 1 |

 
왼쪽 심장에 희망을 품다
 
성일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발행인
 
▲ <마니에르 드 부아 시리즈 1: 좌파가 알아야 할 것들>
좌파가 집권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선 아직 꿈같은 이야기지만, 지구촌 곳곳에 진보정치를 천명한 좌파정권들이 당당히 들어서고, 또 사라졌다가 다시 출현하고 있다. 좌파 세력이 어느 국가에선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절차를 거쳐 집권하고, 또 어느 국가에선 피와 눈물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정권을 잡는다. 우리가 아직 순전한 좌파정권을 맞이하지 못한 것은 아직도 흘려야 할 피와 눈물이 남아서일까? 아니면 우파정권의 철벽을 뛰어넘을 만큼 좌파의 역량이 부족해서일까? 혹자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빨간 색을 덧칠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선 우파의 한 분파어쩌면 중도 우파?이지 순전한 좌파라고 말할 순 없다.
 
그래서일까? 한때는 집권당에서, 이제는 수권 야당을 자처하는 제1야당의 정치세력은 더 이상 좌파정책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거 때만 되면,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정치권을 제도권 안팎으로 나눠 자신 이외의 정치세력, 즉 좌파 세력들을 제도권 밖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보수성향이 강한 한국의 양당 구도에서 좌파 정당들의 성적표는 초라하기만 하다.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 4개 정당으로 나누어진 정당의 의회 진출은 과거에 비해 현격하게 줄어들었고, 그 원인으로, 많은 평론가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구태의연한 정당 이미지를 꼽고 있다. 좌파 정당들의 패인에 대해 미디어 지식인들은 “시대와 사회 흐름에 맞는 가치를 제시하지 못했고, 시대적 공감대마저 상실하였다.
 
운동권 이미지, 종북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물론, 좌파적 가치를 명백히 제시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가치를 제시할 수 있는 학습 및 연구능력 부족은 분명 문제다. 또 일부 성과를 가지고 있는 것이나마 이를 표현하는 정치활동 능력도 매우 서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에 비추어 좌파 정치의 가장 큰 오류는 선거 때마다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혹은 여론과 미디어에 영합하고자 자신들의 주장과 정체성을 일관되게 끌고 가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정당과 지지자 사이에서는 늘 정당 통합이나 신당 창당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늘 그렇듯이, 예전과 같은 정치공학적인 통합이나 창당이 반복된다. 집권을 꿈꾸는 정당이라면 가치와 비전 그리고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정책, 이를 만들어낼 실력을 갖추는 데 노력을 쏟아야 한다. 한국 정치는 촘촘하게 짜인 보수정치에 포획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아직도 좌파가 집권의 꿈을 꾼다면, 시시각각 변심하는 유권자들을 의식하는 대신에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일반 대중에 진정성을 갖고서 접근하고, 이를 기초로 정당 정치를 구현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기억할 게 있다. 대중은 좌파에게도 진정성이 담긴, 일관성 있는 정책을 요구한다는 것을.
 
이 책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이 발행하는 격월간지 〈마니에르 드 부아Manière de voir〉 124호의 〈집권좌파의 역사L’histoire des gauches au pouvoir〉를 기본 텍스트로 삼았으며, 이 주제와 관련한 한국 학자들의 글을 추가해 문맥의 상관성을 담아내고자 했다. 저명한 외국 필진 27명과 국내 필진 7명의 글, 총 34편을 담은 이 책은 진보정치를 향한 인류의 거대한 희망과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과 좌절, 새로운 진보정치의 재시도, 그리고 한국 진보정치의 시련과 도전을 다루고 있다.

1부 ‘거대한 희망을 품었다’에서는 세계 진보정치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파리 코뮌을 비롯하여, 전후 서구 최초의 좌파정권을 수립한 프랑스사회당의 국제주의, 아프리카, 중남미, 미국 진보정치의 투쟁과 희망을 조망한다.
 
2부 ‘다양한 얼굴의 좌파주의’에서는 북유럽의 예외적인 사회모델을 비롯해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 프랑스 코뮌들의 직접민주주의 시도 그리고 베네수엘라, 서유럽의 에콰도르,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의 선구적 진보정치 실험을 소개한다.

3부 ‘버뮤다 삼각지대’에서는 진보정치의 좌절을 보여주는데, 프랑스 좌파정권의 궤도 이탈, 스페인 사회당과 영국 노동당의 탈선, 그리스와 이탈리아 좌파정치의 실종, 그리고 진보좌파정치의 시련과 좌절을 진단한다.

4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는 꿈꾼다’에서는 기본소득제 도입의 현실성과 미국 진보정치의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진보적 정치 공동체의 등장, 폴라니 사상의 재발견 등을 조망한다.

마지막 5부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정치체제에 포획된 한국 진보정치의 갈림길과 새로운 탐색을 제시한다. 내용적 측면에서 통합된 통일성을 애써 제시하는 대신에, 필자들 간의 상이한 삶의 경험과 참신한 시각을 담아 한국 진보정치의 다양성과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 서문 2 |

좌파가 알아야 할 것들
 
모리스 르무완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2012년 5월 6일 사회당 출신의 프랑수아 올랑드가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올랑드는 “많은 이들이 오래전부터 기다렸던 순간이며 나이가 어린 젊은이들은 결코 접하지 못했던 순간”이라며, 프랑스는 이제 자신이 제시한 대로 변화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사회당 출신의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삶을 바꾸자”고 주장한 1981년 5월 10일 이후,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세 번이나 지나고서야 이번에 상·하원 모두 다수 의석을 장악한 좌파가 국가를 이끌어 나갈 대사를 떠맡게 된 것이다. 흔히 과거의 경험에서 지혜를 구할 수 있기에 현재의 좌파가 지난 집권기의 결산을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깊다. 그런데 어디부터? 그리고 언제적 정부를? 모호한 주제다. 이른바 좌파의 정의에 대해서는 각자가 다른 개념을 갖고 있으며, 또 시대에 따라 각 개인의 신념도 변하는 까닭에 그 정의를 명확히 내리기가 쉽지 않다.
 
이 책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지구촌 수억 명의 꿈을 앗아간 소비에트 연합의 정치를 오래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오쩌둥의 중국이나 카스트로의 쿠바, 제국주의에서 해방된 옛 식민지역에서의 사회주의 이념의 역할이나 그 영향도 길게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 집권 중이거나 집권을 준비 중인 좌파세력의 다원적 체제다. 그리고 첫 번째 전제가 있는데 그것은 변화와 개혁을 잘 이끌기 위해서 집권은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피에르망데스 프랑스는 “유감스럽게도 정부와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생산량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킬 수도 없고, 그 생산량의 완벽한 분배를 이룰 수도 없으며, 사회 계층 간의 관계를 완전히 뒤집을 수도 없고, 삶의 질을 바꿀 수도 없으며, 학교나 농업이나 화폐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고 냉정하게 지적한 바 있다. 게다가 정치·사회적 개혁에 반대한 모든 세력은 예컨대 1920년대, 제도권 밖의 금융자산가들의 조직들에서 시장에 이르기까지, 대기업 및 다국적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사회적 파장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자유주의적 사고를 가진 테크노크라트, 보수적인 미디어, 혹은 오늘날의 사이비 진보주의자들은 모두 국민이라는 주권 앞에 굴복하기를 거부하고 은밀하고 때론 격렬하게 또 다른 경로를 통해서 자신들만의 시각을 주입하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사회적 단절이 생겨나지 않겠는가?
 
이번 책의 제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수식어를 추가한 것처럼, 좌파는 어느 시대에서나 수많은 집권의 꿈을 실현하고자 시도했다. 어찌되었건, 1997년 유럽연합EU의 한복판에서 15개 국가 중 13개 국가에서 좌파가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EU의 지향점을 놓고, 수많은 시민단체 및 노동조합들이 특정세력의 이익을 도모하는 ‘하나의 유럽’보다는, 공유재산의 연대적 가치를 중시하는 반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모두 공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합리적 숙명주의를 들먹이며 화폐와 시장이라는 이념에 기대어 규제 완화와 국가 개입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자본주의는 1930년 이래 가장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올랑드는 “오늘날 금융시장은 법을 준수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다”며, “세계 금융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국제신용평가 에이전시에 의해 왜곡된 국가적 주권을 다시 세우려 한다”고 선언했다.03 그가 자신의 약속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시장 경제를 소심하게 정비하거나 시스템을 얼기설기 꿰매는 수준에서 자신의 ‘책임감’을 만족시키는 수준에 그칠 것인가?
 
라틴 아메리카는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마치 강제수용소 정도와 동일시하려 드는 사람들의 조바심에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 볼리비아와 이 지역의 기타 좌파 성향이 두드러지는 “불그스름”한 국가들이 세계의 적대감과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해서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 지역에서는 어느 한 지역에서 선거에 패배했다고 해서 그것이 지배계층이 권력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다른 계층에 우호적인 지역의 한 줌의 패배일 뿐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성향이 강한 정권들이 다소간 심각한 도전을 받았지만 여전히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2009년 온두라스, 2012년 파라과이에서는 거의 성공할 뻔하기도 했지만, 2002년의 베네수엘라, 2008년 볼리비아, 2010년 에콰도르 등에서 발생한 체제 흔들기가 결국은 실패했다는 점도 이를 증명한다.
 
유럽은 어떠한가? 그리스에서 아주 사회 민주적이라던 파속Pasok당이 붕괴하고 시리자Syriza라 불리는 ‘좌파 중의 좌파’당이 떠오르고 프랑스에서 좌파전선, 기타 세계 곳곳에서 ‘분노에 찬’ 당들이 등장하는 마당에서 그들의 경험을 최소한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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