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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 독재
브로커 독재
  • 세르주 알리미
  • 승인 2009.09.03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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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주 알리미(프랑스판 발행인) 칼럼]

빈곤층에게 현금과 식량 등을 직접 제공하던 미국의 복지 프로그램이 1996년 공화당이 지배하는 의회와 민주당 출신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폐기됐다. 이 프로그램이 사기·낭비·남용을 부추긴다는 (기만이나 다름없는) 이유가 제시됐다. 13년이 지났지만, 개혁 주창자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절망적인 의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는 못할 것이다. 의회에 돈을 주고 보호막을 구입한 기득권자들이 기존 시스템의 혜택을 쉽게 포기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1996년 폐기된 사회복지 프로그램 예산은 미국 전체 예산의 약 1%에 불과했다. 반면 의원들의 보호를 받아온 민간보험 회사들은 이 수준의 사회복지 예산 가운데 의료 비용에 할당된 국가 재정의 17%가량을 탕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은 사회적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오바마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민간 보험회사들의 탐욕에 짓밟히는 실태를 매일 밤 언론을 통해 고발한다. 민간 보험회사들이 소외 계층을 볼모로 잡고 이들의 사회보장을 거부하거나, 이들이 정작 보험 수급을 필요로 할 때는 이들의 보험증권을 취소하고, 치료가 절실히 필요할 때는 그 대가로 이들이 낼 수 없는 웃돈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사회의 의료 시스템이 일반 국민보다는 보험회사를 위해 더 잘 작동되고 있다”고 지적했다.(1)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 이 프로젝트를 주창했을 때만 해도, 그 안에는 두 개의 현실적인 제안이 포함돼 있었다. 첫째는 의료보험이 없는 4600만 명의 미국인(이들 중 극빈자에게는 보조금을 지급해서)에게 의료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민간 기업(2)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보험을 제공하는 공공 시스템을 갖춘 보험사를 창설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민간 기업들은 보험 가입자들이 아플 때 치료비를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법적인 빈틈을 찾는 데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우파에서 경종을 울렸던가? 공화당 소속 루이지애나 주지사는 “만약 ‘공적 의료 시스템’이 등장하면, 그것이 민간 보험회사들에 불공정 경쟁을 강요하게 돼 민간 기업들을 파산으로 내몰 것”이라며 격노했다.(3) 하지만 주지사가 이보다 더 가슴 저리게 하는 다른 파산에도 관심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성싶다. 특히 루이지애나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주 가운데 하나가 아니던가!

미국의 정책은 산업체 및 금융계가 로비에 뿌리는 돈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의회 장벽을 무난히 통과하는 것은 감세정책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아무리 좋은 개혁정책이라고 하더라도 은행·보험사·제약업체에 그 무엇을 강요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이 경우 개혁정책을 채택하려면 민주당 소속의 상원 재무위원회 위원장이자, 병원 및 보험업자 그리고 개인 의사들로부터 가장 후원을 많이 받는 맥스 보커스 의원 같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보커스의 후원자들은 그의 작은 시골 몬태나주에 별 관심이 없다. 보커스가 합법적으로 받는 후원금 목록을 보면 90%가 다른 지방에서 보내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보커스가 현재의 의료 시스템을 문제 삼는 행위에 반대한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붕괴 1년이 지난 지금, 소수 과두체제에 대한 (작은) 공포는 사라졌지만, 정치 시스템은 마치 그들의 이익을 위해 굳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이따금 다른 사람보다 더 부패했든지, 혹은 더 불운한 작자가 법정에 서기도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선도·윤리·규제·주요 20개국(G20) 등 마법의 단어들을 읊조린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시카고 기업 담당 변호사 출신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경부 장관은 ‘BNP 파리바’ 은행의 브로커들이 챙긴 막대한 수당의 적합성과 관련해 “만약 사람들이 ‘보너스를 금지합시다’라고 말하면, 최고의 브로커 팀들은 다른 곳으로 가서 터를 잡을 게 뻔하다”며 이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브로커들은 자신이 보호하고 자신을 보호해주는 정치 시스템 속에 머물면서 대중의 냉소와 좌절을 이용하고 있다. 브로커와 의료보험업자는 자신들의 기생충 역할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직권남용’이란 상도의 이탈이 아니라, 상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작 필요한 것은 그들이 동의할 수 있는 ‘개혁’이 아니라, 그들의 ‘소멸’이다.

글· 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로 알리앙스프랑세즈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각주>

(1) 2009년 8월 14일 몬태나주 공공집회에서.
(2) 2009년 8월 3일자 미국 경제지 <비즈니스 위크>에 따르면, 미국의 50개 주 중 15개 주에서 보험시장의 반 이상을 한 민간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3) 보비 진들(Bobby Jindall),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기사 ‘초당적 의료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참조, 뉴욕, 2009년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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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주 알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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